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90화 (390/422)

그들이 기다린다 (2)

요즘 아드리안이 아주 물이 올랐다.

도시가 트레블 기대감으로 잔뜩 달아오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달아 신상품을 마구 히트시키는 중이었다.

희주의 조언을 듣자마자 무알콜 버전 ‘국뽕’을 카페에 공급한 수완도 훌륭했고, 매치데이 머플러를 카페에 가져다 판다는 발상도 아주 비범했다.

평소 경기장을 찾지 않던 사람들에게 굿즈를 판매한다는 점도 그렇지만, 원래는 매치데이 당일에 팔아야 할 머플러를 경기 며칠 전에 미리 구입하게 한다는 점이 특히 예리하다··· 덕분에 매치데이 머플러 발주량 관리가 수월해졌다.

정작 아드리안 본인은 또 구단주실에 몰려와서 약을 파는 중이었지만.

“저와 보는 눈이 비슷한 아이를 찾았습니다. 아직 학생이라 정직원은 안 되겠지만, 알바로는 문제가 없다는 자문을 받았습니다. 채용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알바 뽑는 정도는 굳이 보고할 필요 없습니다. 팀장급이면 그 정도는 마음대로 뽑아도 괜찮습니다.”

물론 약간의 예외는 있다. 굳이 따지자면 대외비 자료를 다루는 분석팀에서는 알바 채용이 절대로 금지되어 있고, 부서에 따라서 팀장이 아니더라도 알바를 마음대로 뽑을 권한을 준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잔디관리인 리지, 그녀는 비록 팀장은 아니지만 필요한 인력은 얼마든지 조달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아드리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잘못하면 싸움이 필요해질 것 같아서요.”

“싸움? 혹시 집이 엄해서 부모가 알바를 금지하는 경우입니까?”

그런 경우라면 구단주가 나서도 별 소용 없을 텐데···.

“아뇨, 다른 부서에서 찜해둔 모양입니다. 찾아보니 시설관리팀에서 단기 알바한 적도 있더라고요. 그 왜, 예전에 앨리스 양 문제로 CS팀과 프레스팀, 그리고 분석팀이 한바탕한 적 있어서 신경이 쓰이네요.”

아드리안의 이야기에, 희주가 옆에서 눈을 빛냈다.

“CS팀도 앨리스 탐냈었어?”

“···아니, 거긴 앨리스를 제발 다른 부서에 보내달라고 민원 넣었지.”

앨리스는 머리도 일 처리 요령도 좋은데, 손재주만은 아주 궤멸적인 수준이다. 손만 대면 물건이 고장 나고, 음식이 폐기물로 바뀌며, 진열대가 개판이 되는 기적의 역연금술사다. 브라이언과 좋은 맞수가 될 정도로.

“흠흠, 아무튼 앨리스 양 사태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 미리 구단주님께 의논드립니다.”

아드리안의 이야기에, 나는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혹시 뽑고 싶다는 알바 이름이 재닛입니까?”

“아시는군요! 혹시 구단주실에서 쓰실 거라면 양보할 수 있습니다만, 그 아이를 시설관리팀에 보내는 건 재능 낭비입니다.”

“본인은 CS팀 지망이던데··· 아, 예전에 리지 밑에서 알바한 적이 있긴 하군요.”

나는 잠시 재닛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마의 가치만 봐도, 스태프로서 아주 인상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특히 스낵바에 대한 개선 아이디어는 아주 훌륭했다.

그러니 시설관리팀에 두어도 활약하긴 할 것이다. 구단 스낵바나 푸드코트 관리는 시설관리팀 업무에 해당하니까.

하지만 아드리안의 말처럼 신상품기획팀에 두어도 맹활약할 인재다. 적어도 먹거리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획력을 가졌고, 재능도 있으니 아드리안 밑에서 경험을 쌓으면 본격적으로 성장하겠지.

결국 재닛 본인만 동의하면 괜찮다고 조건부로 허가하자, 아드리안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런데도 곧바로 뛰쳐나가지 않는 그를 향해, 나는 슬쩍 눈짓을 보냈다.

“보아하니 신제품도 준비한 게 있겠군요. 온 김에 같이 봅시다.”

“네! 구단주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드리안이 곧바로 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구단주실로 올라오세요. 제품 들고서.”

대체 뭘 가져오려는 거지?

* * *

나는 눈을 조심스럽게 깜빡였다. 그런데도 눈앞의 풍경은 바뀌는 게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제품의 외견도, 예상하지 못한 제품명도.

“이 제품 이름이 뭐라고요?”

아드리안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현재는 축알못 판별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전혀 그런 이름이 아닌 것 같은데. 왜냐면 정작 함께 따라온 (주) 풋볼존 엔지니어는 아무 말도 않고 있거든.

뭐, 이름은 나중에 다시 고치면 그만이다.

“생긴 건 꼭 VR 기기같은데요.”

“그렇습니다. 경기를 보여주는 용도죠. 단, 핵심은 시청자의 안구 움직임을 체크한다는 것입니다. 시선을 파악하기 위해서요.”

옆에서 희주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시선 확인에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나요?”

“좋은 질문이십니다, 비서님. 기술적인 이야기는 전문가가 설명할 겁니다.”

전문적인 이야기로 흘러가자 풋볼존 엔지니어의 표정이 밝아졌고, 말문도 트였다.

“축구에는 크게 세 가지 찬스가 있는데요. 우선 첫째로는 누구나 아는 찬스, 예를 들면 아크 정면에서 생긴 와이드 오픈 같은 찬스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놓치면 욕을 먹죠.”

희주가 웃었다.

“그놈의 빅찬 스미스 씨 말이군요.”

빅찬스 미스. 축구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일 거다. 아마도.

“두 번째 타입의 찬스는 축알못들 눈에 바로 보이지 않지만, 공만 넘어가면 완벽한 찬스인 상황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입은 좀 어려운데, 지금은 찬스가 아니지만 선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생겨나는 찬스고요.”

“이해했어요. 이미 존재하는 찬스를 얼마나 빠르게 찾아내는지, 앞으로 존재할 찬스를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는 사람의 시선을 보면 파악할 수 있겠군요!”

희주가 감탄했고, 나는 무심코 턱을 쓸었다. 일단 컨셉은 꽤 흥미롭다.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저희는 브라이언 감독님, 샐리 수석코치님의 시선 처리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두 분은 축구계에서 이름 높은 전술 천재들이니, 두 분과 시선 처리가 비슷하다면 축잘알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죠.”

설명을 들은 희주가 씩 웃으며 손을 들었다.

“한번 해보고 싶네요.”

그래서 시험 삼아 희주를 분석한 결과, 브라이언과의 시선 일치율이 약 47%로 나타났다··· 응, 다음 축알못.

“···학교 다닐 땐 단 한 번도 90점 이하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시무룩해진 희주를 달래듯, 엔지니어가 설명했다.

“47%는 충분히 높은 수치입니다. 평균은 30% 정도거든요. 그리고 비서님은 주로 경기장 좌측면과 최전방을 보셨는데, 아마 공격 상황에 흥미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하하핫, 그렇죠.”

수상하게 얼버무리는 희주를, 나는 빤히 바라보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해설이었다. 애초에 희주는 공격 축구보다 역습 축구를 좋아하는 타입으로, 신나게 날뛰던 상대 팬들이 역습 한 방 맞고 침울하게 고개 떨구는 모습이 가장 즐겁다는 인간이다.

따라서 주로 좌측면과 전방을 보는 이유는 아마, 다른 흑심이 담긴 거겠지. 마르틴과 바스티아노는 팀에서 손꼽히는 미남들이거든.

그나저나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혹시 훈련용으로 쓸 수는 없습니까?”

엔지니어와 아드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대충 보니까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찍은 영상으로 만든 물건 같은데, 그렇다면 선수 시점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축구의 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디를 보는지, 찬스 직전에 요니가 어디를 보는지···.”

비록 누군가의 안구 움직임이 항상 완벽한 정답은 아니겠지만, 판단의 근거를 세우는 데에는 꽤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

“즉시 제품화에 착수하겠습니다!”

엔지니어와 아드리안이 사이좋게 황급히 달려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희주가 한숨을 쉬었다.

“근데 오빠, 재미있는 제품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이러다 괜히 메시 선수 시선 데이터를 다른 팀에 뺏기는 거 아니야?”

“다른 팀에 왜 뺏겨. 선덜랜드 독점 제품인데.”

“신상품기획팀 OEM이 아니라 풋볼존 신제품 아니야?”

희주의 걱정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정 그러면 나중에 풋볼존 주주명부 확인해 봐.”

그 회사 지분은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판매처를 정할 수 있는 겁니다.

* * *

앨리스는 아주 긴장한 상태였다.

일단 오전부터 컵을 대차게 깨 먹었는데, 하필이면 귀한 컵을 박살 냈다. 로얄 코펜하겐, 페르난데스가 단장으로 취임했을 때 부인에게 선물 받은 물건이다.

당황한 앨리스는 파편을 치우겠답시고 반사적으로 테이블 위를 손으로 쓸었고, 당연히 다쳤다.

페르난데스는 로얄 코펜하겐이 무참하게 박살 났을 때는 무덤덤했지만, 손으로 파편을 쓸었을 때는 격노하고 말았다. 페르난데스의 호통에 곧바로 메디컬 팀이 출동했고, 앨리스를 잘 싸매 병원에 호송했다.

꼼꼼하게 손에 박힌 파편을 모두 제거한 앨리스는 시무룩하게 돌아왔다.

어찌나 표정이 어두웠는지 처음에는 ‘겨우 그까짓 컵 따위와 손을 바꿀 셈이냐.’며 격노하던 페르난데스조차 더 혼낼 마음이 사라진 채, 부드럽게 위로할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날 배려한 거였지? 은퇴했지만 아직도 골키퍼로 대해 준 거잖아. 골키퍼의 손은 아주 중요하니까.”

“네··· 단장님은 현역 시절엔 종이책조차 조심해서 다루셨다고 들었거든요.”

“마음은 고마운데, 다음부턴 그냥 전문가를 불러서 해결하자.”

“네, 네.”

사실 아무리 손재주 없는 앨리스라도, 평소 같으면 깨진 도자기 파편을 손으로 쓸어내겠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그저 긴장했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 육성단장실에는 아주 중요한 손님이 온다. 그녀의 지인, 우드 일가가 아카데미 입단을 상담하러 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사소한 드립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마일즈가 유소년 입단은 언제부터냐고 묻자, 브렌든이 크리스는 틀림없이 구단의 전설이 될 아이이니, 하루빨리 아카데미에 입단하라고 거들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온 선덜랜드가 환호했거든! 이름까지 속삭였으면 큰일 날 뻔했지 뭐야. 그래서 앨리스, 보통 유소년 아카데미는 몇 살부터지?]

유소년육성단에서 일하는 앨리스로서는, 크리스의 유소년 입단 이야기에 일단 공식적인 지침을 답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특별한 규정은 없긴 해요. 메시 선수는 네 살 때부터 지역 클럽에 입단했다더라고요. 그리고 선덜랜드 유스팀은 기본적으로 오는 선수를 막지 않아요.]

유소년의 대부분은 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일단 도전할 기회는 주는 게 선덜랜드 유스팀의 방침이고, 대신 프로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후의 인생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키운다는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만 선덜랜드는 너무 어린 선수는 받지 않고 있지만요. 보통은 아홉 살 전후에 들어오는데···.]

[예외는 없어?]

[페르난데스 단장님이 판단하시면요?]

그랬더니 한번 방문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인이라 입장이 곤란해진 앨리스는 마일즈의 요청을 곧이곧대로 보고할 수밖에 없었는데, 페르난데스가 흔쾌히 만나겠다고 하면서 일이 커졌다.

“손님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 긴장 풀고 있어.”

페르난데스의 지시에 톰슨이 끼어든다.

“요즘 우리 팀 스태프들 사이에서 축알못 판별기가 인기라던데, 앨리스 너도 써 보는 게 어때?”

톰슨은 앨리스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그녀의 얼굴에 VR 기기를 씌웠다. 잠시 후 축구 영상이 어지럽게 앨리스의 눈앞에 지나가기 시작했다.

[샐리 수석코치와의 시선 일치율은 89%입니다.]

[브라이언 감독과의 시선 일치율은 84%입니다.]

분석 결과에 톰슨이 혀를 내둘렀고, 페르난데스가 웃었다.

“이러니 앨리스 양을 분석실에서 계속 탐내는 거겠네. 아직 루벤보다 점수 높게 나온 스태프는 구단에 아무도 없었다던데.”

추측해 보면 루벤보다도 일치율이 높다는 모양이다. 앨리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톰슨 선수··· 아니, 톰슨 코치님보다도 제가 높았나요?”

그러자 톰슨이 유머러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브라이언이 내 비전을 딱 80% 정도 따라잡은 거지.”

“아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앨리스는 빠르게 덧붙였다.

“경기 관람 중의 시선 처리가 그렇게까지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건 그냥 재미죠, 재미.”

물론 속으로는 환호했다. ‘나는 누구? 선덜랜드 공식 축잘알!’ 같은 생각을 떠올리면서. 덕분에 긴장도 제법 풀렸다. 그래서 앨리스는, 우드 일가를 꽤 여유 있게 맞이할 수 있었지만···.

“비서님, 비서님!? 단장님께서 구단주님을 급히 뵙고 싶으시다는데요!?”

그녀의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 *

[샐리 수석코치와의 시선 일치율은 91%입니다.]

[브라이언 감독과의 시선 일치율은 93%입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저 어이가 없어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월드클래스 골키퍼 출신이라 그런지, 페르난데스는 상대적으로 침착했다.

“사실 시선 일치율은 반쯤은 재미로 본 거고, 축구 지식이 높음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놀라운 수치긴 하지만요. 참고로 이 아이는, 선수들과의 일치율도 무척 높게 나왔습니다. 메시와 90%쯤 비슷하던데요.”

사실이라면 아주 놀랍긴 하다. 사실 나는 다른 수치에 더 놀라는 중이지만.

옆에서는 톰슨이 거들었다.

“솔직히 너무 어려서 축구를 잘하는지는 아직 확신하기 힘들지만, 공 차는 자세 하나는 딱 잡혔더라. 따로 배우지도 않았을 텐데.”

잠시 크리스의 이마를 응시하던 나는, 시선을 돌려 우드 부부를 바라보았다.

“우드 씨. 이 아이를 축구 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러니까 아직 프로로 뛸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네.”

마일즈는 망설였지만, 수잔에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고쳐 물었다.

“선덜랜드 유소년팀에, 그러니까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 맡겨 주시겠다는 뜻이고요.”

이번 질문에는 부모 모두가 곧바로 대답했다.

“네. 그 아이는 부모 모두가 블랙캣츠니까요. 다른 팀은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게이츠헤드 출신이지만, 산부인과는 시티 오브 선덜랜드를 이용했으니 선덜랜드 태생이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아직 다른 팀 레플리카를 한 번도 몸에 걸친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나는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정말로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니?”

“네에.”

아이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곧바로 희주에게 지시했다.

“가서 손수건하고 펜 좀 가져와.”

희주는 어리둥절했지만, 톰슨과 페르난데스는 무척이나 흐뭇한 시선을 보냈다.

육성단장실에 앨리스의 들뜬 목소리가 울렸다.

“냅킨 계약서군요! 축구의 신이 어릴 때 받았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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