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91화 (391/422)

그들이 기다린다 (3)

유일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우드 부부를 위해, 나는 앨리스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곧바로 앨리스가 우드 부부에게 속삭였다.

“냅킨 계약서를 축구계에서 누가 받았었는지 검색해 보세요.”

잠시 후 우드 부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희 애가 그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저희가 잘못 키운 겁니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네 자릿수 재능이다. 그렇게 키워야지. 암.

잠시 후 희주가 냅킨을 가져왔고, 나는 빠르게 슥슥 내용을 적어 내밀었다. 그러자 마일즈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받아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썬··· 아니, 구단주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드 씨.”

부모와 차례로 악수한 다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어린아이를 구단 유스로 뛰게 하면 어려운 점도 많을 겁니다. 저희도 각별히 노력하겠지만, 부모님께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앨리스 양도 잘 챙겨주고요.”

“맡겨주세요! 구단주님은 오늘을 위해 저를 유소년 팀에 넣으신 거군요.”

앨리스가 힘차게 대답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옆에선 페르난데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분석팀과 프레스팀이 앞다퉈 탐내는 인재, 앨리스 양을 굳이 유스팀에 넣으신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아니, 이 사람들은 내가 무슨 신인 줄 아나.

어느새 우드 부부도 꼭 종교 집회 온 사람처럼 열기를 띠고 나를 바라보는 중이다.

옆에서 톰슨이 슬쩍 귓속말을 했다.

“진짜냐?”

“그럴 리가.”

“다행이네. 사실 나도 가끔 의심스러웠거든.”

나는 피식 웃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애나 잘 키워. 그러려고 너 유소년 코치 시킨 건 맞으니까.”

“그나저나, 네 계약서 말인데··· 구속력은 있는 거냐? 너무 모호한 것 같아서.”

톰슨의 걱정스러운 눈을 바라보며,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 * *

내 호출을 받은 다미가 영국까지 날아왔을 때, 나는 마침 크리스와 구단주실에서 단둘이 있었다.

아이 부모는 직장에 출근했다. 원래는 크리스를 위해 베이비시터를 불러야 했을 텐데, 내가 먼저 구단에 와 있을 것을 제안했다. 어차피 곧 아카데미 소속이 될 테니 팀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취지에서.

아무리 크리스가 타고난 축구 천재라도, 이제 겨우 세 살짜리 어린애라면 낯가림 문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작 크리스는 조금의 낯가림도 없이 아주 태연했고, 구단주실에 준비된 손님용 소파에 매우 만족감을 드러냈다.

장차 거물이 될 느낌이다. 심지어 크리스는, 조금 혀 짧은 발음으로 사과 젤리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군것질 밝히는 것도 아주 똑같이 닮았네. 축구의 신도 어렸을 때는 식단 문제로 꽤 고생했다고 들었다. 그쪽은 젤리가 아니라 콜라였던 모양이지만.

“오빠, 어떻게 할까? 젤리 줘도 돼?”

“나중에는 끊어야 하겠지만, 지금부터 못 먹게 하기는 조금 가혹하지. 사다 줘.”

20년 후의 선덜랜드를 책임질 에이스의 환심을, 고작 사과 젤리 몇 개로 살 수 있다면 싸다. 그에 더해 여동생을 부려먹을 수 있다니, 고민할 이유가 없다. 나는 곧바로 희주를 파견했다.

잠시 후, 크리스가 다시 기운차게 외쳤다.

“구단주님? 공 주세요! 고옹!”

“그래.”

이 아이가 성인용 5호 축구공 아니면 거들떠도 안 본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공을 꺼냈고, 크리스는 기다렸다는 듯 소파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내가 환한 미소와 함께 아이를 향해 공을 굴렸을 때···.

“사장님?”

다미가 들어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나는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원래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희주가 먼저 연락을 받고 다미를 안내했을 테니까··· 그놈의 사과 젤리!

“사장님··· 설마···.”

다미는 마치 나라 잃은 표정으로 나와 크리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다미의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여자가 당장에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자, 크리스 또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덕분에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다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장님, 이 아이의 이름이 뭐죠?”

“크리스인데.”

“크리스 군? 신의 후계자가 되려면 이런 자리에서 울어서는 안 된답니다.”

이제 겨우 세 살, 한국 나이로는 기껏해야 다섯 살일 아이에게 그런 논리가 통할 것 같지는 않지만.

“투자의 신을 계승하려는 거잖아요?”

축구의 신을 계승시킬 건데?

“저를 엄마라고 불러도 괜찮으니까요.”

그 이야기에 크리스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울지 마. 네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 수잔 우드 씨야.

“으이그. 내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요. 고새를 못 참고 애를 울려가지고··· 다미 언니, 언제 왔어요?”

사과 젤리를 사 들고 돌아온 희주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치 여신처럼 보였다.

* * *

대량의 사과 젤리를 동원한 끝에, 겨우 크리스의 울음보를 막을 수 있었다. 곧바로 페르난데스와 앨리스가 크리스를 회수했고, 구단주실에는 나와 다미가 남았다.

“아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데?”

약간의 억울함을 담아 항변하자, 다미가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아뇨,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발 더 이상은 묻지 말아 주세요. 아무리 사장님이라도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다미는 말까지 살짝 더듬었다. 얘가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모습은 오랜만이다. 리미트리스에 입사한 다음에는 이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잠시 후 희주가 내준 허브티를 마시며 진정한 다미가, 평소의 차분함을 되찾았다.

“그래서 냅킨 계약서를 쓰신 거군요? 상징적인 의미로요.”

“맞아. 사실 정식 계약까지는 사소한 문제들이 널려 있거든.”

지금까지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서 세 살짜리 아이를 뛰게 한 적은 없다. 세 살짜리를 위한 훈련이 있는지도 궁금하고, 법률적 문제도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크리스를 받지 않는다는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이마의 숫자도 그렇지만, 그 아이는 부모 모두가 골수 블랙캣츠다. 특히 아버지 쪽은 구단의 오랜 팬이니, 아마 크리스 본인 또한 누구보다 열렬한 블랙캣츠로 자라날 것이다··· 누구보다 재능이 넘치고, 충성심이 가득한 로컬 보이로.

만에 하나, ‘어리다는 이유로 계약을 미뤘다’가 다른 팀이 낚아채가는 일을 겪는다고 상상하면 끔찍하다. 그 몸 위에 다른 유니폼을 걸치게 허락할 수 없다. 우리 유니폼 말고 다른 걸 입힐 수 없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은 참아줄 수 있지만, 다른 팀은 안 돼.

무심코 주먹에 힘이 들어가자, 다미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이해해요. 사장님의 인재 욕심은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긴 하니까요. 그동안 리미트리스 인력을 빼내려는 어리석은 무리는 전부 처절하게 응징했고요. 다만 축구업계에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차를 마저 마시며 목을 축인 다미가, 눈을 빛냈다.

“오히려 투자의 신이 눈독 들인 아이니까, 빼돌리려고 덤비지 않을까요?”

“그래서 널 호출한 거야. 세 살짜리 아이와의 계약이 법률적으로 가능한 건지 알아보려고. 불가능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상관이 없어. 하이재킹 시도도 불가능할 테니까.”

“그런 업무는 제 전문이죠. 우선 이상한 에이전트가 꼬이면 곤란하니, 리미트리스 SM&C를 붙이도록 할게요.”

“부탁할게.”

그러자 다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맡겨두세요. 아 맞다. 사장님, 오는 길에 아주 재미있는 정보를 한 가지 입수했는데요.”

* * *

“드디어 선덜랜드로부터 빼앗아 올 게 생겼군요.”

나지프는 보기 드물게 흥분한 상태였다. 회장 비서 사만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리그는 올 시즌에도 또 더블 당했다. EFL컵은 선덜랜드가 챙겨갔고, FA컵에선 맞대결 끝에 무너졌다. 대체 뭘 빼앗을 수 있다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기에, 사만다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설마 그 아이를 노리시는 건 아니겠죠?”

“아이요?”

“그 왜, 투자의 신이 냅킨 계약서를 내밀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아이요.”

그러자 나지프가 산뜻하게 부정했다.

“아아. 관심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냥 돈으로 선수를 사 올 겁니다. 그게 빨라요. 당장 성적이 안 나오는데, 언제 애들 키웁니까. 일단 윈나우부터 해야죠.”

대답을 들은 사만다가 안도했다.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그 아이를 빼오려는 거라면, 반대하려고 했어요. 세 살짜리 아이와 계약 운운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애초에 상대는 일가 모두가 선덜랜드 팬이니, 그 정도 성골은 빼오기도 힘들죠. 빼 와도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요. 제가 빼앗으려는 건 다른 겁니다.”

대답하면서, 나지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멀리 내다보이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 쪽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가진, 세계 최대 스크린 기록입니다. 이번에 초대형 스크린을 새로 발주했거든요.”

“아, 네.”

조금 소소한 느낌이 들어 사만다는 살짝 실망했지만, 나지프는 진지했다.

“물론 투자의 신이 진작에 선언하긴 했죠. 혹시라도 역전당하면, 다시 더 큰 스크린을 살 거라고.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단 며칠만이라도, 우리가 그들보다 앞서는 걸 하나라도 만들어야 하니까요.”

사만다는 간신히 회장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렇군요··· 선덜랜드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군요. 선수들에게 좋은 어필이 되겠는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크기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품질에도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듣자니 디스플레이는 한국산이 좋다고 해서 특별 주문 제작을···.”

사만다의 얼굴이 먼저 굳었다.

“어느 나라 제품이라고요?”

잠시 후 나지프의 얼굴이 따라 굳었다.

뉴캐슬의 보드진은 황급히 업체에 연락을 돌렸고, 정보 유출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특히 발주자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로 했음을 확인받았다.

두 사람이 가슴을 쓸어내리려 하는 찰나···.

[그런데, 듣자니 저희 경쟁사에서도 주문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정확한 정보는 모르겠지만, 예상하기로는 저희가 만드는 것보다 조금 더 크다는 모양입니다.]

“어디서 주문했는지는 모릅니까?”

[그것까진 모릅니다. 그쪽도 비밀로 하고 있으니까요. ]

전화를 끊고, 사만다가 내뱉듯이 말했다.

“틀림없이 선덜랜드 놈들이네요.”

“아니, 도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정보가 샌 게 아니라면!?”

“진짜 우리 방에 도청기 단 거 아닐까요···?”

* * *

뉴캐슬이 주문한 스크린은, 우리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 도착했다. 덕분에 뉴캐슬이 추진하던 음모, 이른바 [세계 최대 스크린을 가진 경기장 기록 탈취 계획]은 미수로 그쳤다.

“어떻게 알았어?”

신기하게 바라보는 희주를 향해,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딱히 알았던 건 아니야. 그냥 대응한 거지.”

모 전자가 초대형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것 같다는 루머가 여의도에 퍼진 것이 계기였다. 그리고 사실 투자업계에는 원래 그런 식의 루머가 사방에서 들어온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옥석과 진위다.

그리고 다미는 그 정보를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내게 보고했다.

다음은 쉬웠다.

“만일 어느 축구팀이 우리 경기장의 기록을 깨고 싶은 거였다면 우리 것보다 조금 큰 스크린을 주문할 거야. 따라서, 우리도 곧바로 더 큰 스크린을 주문하면 끝나는 거지.”

“아니었으면?”

“아니었으면, 내가 괜히 스크린 하나 더 산 거지··· 어차피 그거 얼마 안 하잖아.”

스크린 완성 자체는 상대가 무조건 빠르겠지만, 경기장에 스크린을 설치하는 속도는 우리가 무조건 빠르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에게는 경기장 건축 전문 업체 파퓰러스 지분도 있고, 우리 스태프들은 이미 몇 번이나 스크린을 옮겨 단 경험이 있다. 풋볼 스퀘어에도, 그리고 로커 파크에도.

“갑부 오라버님, 그럼 이제 스크린이 하나 남는데요. 어디로 옮길 거야?”

희주의 질문에,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공항 앞이지.”

예전부터 나는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원정 지옥이라는 이야기는, 적어도 영국에서는 진리로 통한다. 우리는 리그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경기장을 가진 팀이고, 역대 최다 홈 무패 기록을 계속 경신해 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챔스를 기준으로 하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그렇게까지 악명 높은 경기장은 아니다.

장거리와 혹독한 날씨를 자랑하는 러시아의 가스프롬 아레나가 있고, 팬들의 열기나 규모로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나 캄 노우, 혹은 산 시로가 더욱 유명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을 계기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을 것이다.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자신들이 누구를 상대하게 되는지를 알려줄 거야. 이제부터 시티 오브 선덜랜드라는 도시 전체와 싸우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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