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92화 (392/422)

그들이 기다린다 (4)

크리스의 선덜랜드 유소년팀 입단 절차는 착착 진행되었다.

중간에 미들즈브러에서 발 빠르게 하이재킹을 시도했지만, 부모가 ‘더비 라이벌 팀으로는 죽어도 못 보낸다’며 거부했다. 이후 몇 개의 팀의 접촉 시도는, 리미트리스 SM&C에서 모조리 방어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나자, 구단과 부모 모두 크리스를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 두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만, 지금의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는 크리스 또래의 아이가 없고, 다른 애들과 똑같은 훈련 프로그램을 하기엔 너무 어리다.

그래서 크리스는 대부분의 일정을, 다른 소년들의 연습을 멀뚱멀뚱 참관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했다. 심심할 법도 했을 텐데, 다행히도 크리스는 축구를 보는 동안 아주 얌전했다.

“단장님, 하루 종일 연습을 보기만 하는 게 도움이 될까요?”

“도움이 될 거야. 이 아이의 축구 보는 눈은 남다른 편이니까. 물론 다른 애들의 훈련만 계속 보면 지루하니까, 너무 심심해하면 스킬볼을 내주도록.”

페르난데스의 지시에,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저··· 단장님, 크리스는 스킬볼은 거들떠도 안 보던데요? 5호 축구공 아니면 막 집어 던져요.”

“자기가 아는 축구공과 크기가 달라서 혼란스러운 거겠지. 그래도 이해시켜. 우리가 크리스에게 유일하게 허락할 수 있는 축구공은 스킬볼밖에 없어.”

“이해시키라고요?”

앨리스의 반문에, 페르난데스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스킬볼로 리프팅 시범 같은 거 보이면 되겠지? 원래 스킬볼은 선수들 개인기 연습용으로 나온 거니까.”

“알겠습니다. 시범은 누구에게 부탁할까요?”

페르난데스는 대답 대신 물끄러미 앨리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앨리스의 고개가 힘없이 털썩 떨어졌다.

“아, 네. 저죠. 제가 해야죠.”

“분석실의 영상도 보여주고.”

앨리스를 크리스에게 보낸 후, 페르난데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톰슨을 호출했다.

“자네는 애들에게 좀 더 신경 써 줘. 자칫하면 애들이 부모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기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거든.”

페르난데스의 요구에, 톰슨이 빙긋 웃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알지 말고, 가슴으로 이해해야 해. 사실 좀 불안한데··· 톰슨 자네는 자식 한 명밖에 안 낳았잖아?”

“저도 형제는 있었으니까요.”

“그럼 다행이군. 특히 테오를 각별히 신경 쓰자고.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 아닌가?”

선덜랜드 유소년 중 ‘포스트 메시’ 후보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그래서 크리스에게 질투할 확률도 가장 높아 보이는 테오를 떠올리며, 페르난데스와 톰슨이 머리를 맞댔다.

“물론입니다. 다행히 테오는 짐을 잘 따르는 편이니, 의젓한 우리 주장의 통솔을 믿어야겠군요.”

* * *

어른들의 걱정과 달리, 테오는 크리스를 아주, 아주 예뻐하는 편이었다.

“어때, 방금 플레이. 패스 루트가 보였어?”

“으응. 좌측면?”

“그렇지, 똑똑하네. 그런데 대답은 좀 더 씩씩하게 해야지?”

“그치마안, 축구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종목이 아닌걸?”

“그래도 비실비실한 녀석은 절대로 선덜랜드의 7번이 될 수 없어. 배에 힘주고 다시 대답해!”

“으응!”

크리스가 퍽 씩씩하게 대답했다. 사실 이번엔 배가 아니라 목에 힘을 주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만으로 네 살도 안 된 아이치고는 퍽 훌륭하다.

만족스럽게 웃는 테오를 향해, 월터가 속삭였다.

“야, 7번은 테오 네가 탐내는 번호 아니야?”

그러자 테오는 월터에게, 마치 악마라도 보는 듯한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무슨 얼빠진 소리를 하는 거야. 크리스 쟤하고 내 나이 차이가, 나하고 캡틴 차이랑 똑같거든? 우리 캡틴 말고 캐앱틴.”

테오와 크리스의 나이 차이는, 테오와 JJ 듀오의 차이와 정확히 똑같았다. 물론 앞으로 두 달만 지나면 크리스가 네 살이 되어 계산이 달라지겠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잠시 손가락을 꼽아 보던 월터가 멋쩍게 웃었다.

“어라, 그렇게 되네?”

“내가 먼저 신의 7번을 물려받을 거고, 은퇴할 땐 저 녀석에게 주고 갈 거야. 후후··· 앞으론 9번만이 아니라 7번도 선덜랜드의 레전드 번호로 만들 테니까. 할 수 있지, 크리스!?”

“으응!”

테오가 크리스에게 퍽 붙임성 있게 대했던 덕분에, 굳이 짐이 나설 필요조차 없었다. 그래서 짐은 자신의 스마트폰 전자책 뷰어를 슬그머니 종료했다.

[좋은 아빠가 되는 법 : 동생을 질투하는 큰애를 달래는 비결!]

‘보아하니 테오와 크리스 사이는 내버려 두는 게 제일 낫겠네. 괜히 클라라에게 전자책 골라달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유소년이 크리스를 예뻐한 것은 아니었다. 바르카의 경우 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크리스가 개인기 보여달라고 부탁하면 일부러 엉뚱한 개인기를 쓰는 식으로 심술을 부렸다.

“바르카 쟤는 또 왜 저러는 거야?”

짐의 혼잣말에, 월터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캡틴, 내 생각인데··· 보좌관님 뺏겼다고 생각한 거 아닐까? 바르카는 앨리스 보좌관님 엄청 좋아하잖아.”

“하긴, 쟤는 보좌관님을 곧 죽어도 인턴 누나라고 부르지···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아하면 전략을 바꾸는 방향을 추천하고 싶긴 한데.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그거 절대로 거짓말이라고.”

“클라라가 그랬지?”

“응.”

“캡틴보고 자기한테 계속 착하게 굴라는 이야기네··· 아무튼 바르카가 인턴 누나라고 우기는 건, 나쁜 남자 코스프레는 아니야. 내 기억으로는 육성단 보좌와 유소년 선수는 결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다음부터 저랬던 것 같은데.”

“앨리스 보좌관님을 인턴 누나라고 부른다고 보좌관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닌데··· 그럼 앞으로도 테오가 계속 힘써줘야겠다. 테오가 크리스를 챙기는 비중이 늘면 앨리스 보좌관님도 자유로워지잖아.”

그러자 월터가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캡틴은 외아들이지?”

“응. 그런데 왜?”

“바르카는 이제 앨리스 보좌관님에 이어 테오까지 뺏겼다고 생각할걸? 저거 봐. 크리스에게 도끼눈 뜨는 거!"

짐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전자책을 켰다. 그리고, ‘그럴수록 첫째에게 관심을 줘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본인이 직접 바르카를 챙기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 역효과가 났다. 우선 바르카는 짐에게 캡틴으로서 경의를 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막 엄청나게 친하게 따르는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덜랜드 유소년 중, 세상에서 짐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는 따로 있다.

느닷없이 테오가 바르카에게 강한 경쟁심을 보이기 시작해, 짐은 머리를 싸맸다.

* * *

구단주실에서는, 희주가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짐이 요즘 엄청 고생한다는데? 그래서 말인데, 클라라를 단기 알바로 기용하는 게 어떨까?”

“포지션은?”

“육성단장 보좌의 보좌.”

곧바로 대답하는 희주를 향해, 나는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냥 베이비시터라고 부르는 게 여러모로 경제적이지 않을까? 단어도 짧고, 알아듣기도 편하잖아.”

“나는 아직 크리스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앨리스의 업무 중에서, 클라라가 당장 도와줄 수 있는 건 크리스를 돌보는 것 정도일 테니까.”

“아니··· 다른 것도 할 수 있을걸? 예를 들면, 짐의 사기를 북돋운다거나?”

“놔둬.”

“어째서? 짐의 부담을 덜어줘야지.”

희주는 그렇게 되물었지만,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페르난데스가 왜 크리스를 데려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같은 아카데미에서 같은 철학을 공유하며 자라난, 심지어 사적으로 친한 유소년 선수들이 그대로 프로가 되어 같은 팀에서 뛰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는, 축구계에서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심지어 페르난데스는 그중 하나를 직접 겪었다··· 바르샤 라마시아를 상대했으니 아주 잘 알겠지.

즉, 페르난데스는 우리 유소년들을, 자기들끼리 철통같은 결속을 자랑하는 조직으로 키워내려 하는 것이다.

그 구심점 역할을 맡을 선수가 바로 짐이다. 그리고 테오와 바르카에게는 에이스로서의 자각을, 월터에게는 조율자로서의 센스를 키워주려고 하겠지.

“이해했어. 오빠 말대로라면, 페르난데스 단장님이 짐을 괴롭힌다는 뜻이지?”

“괴롭힌다는 표현은 좀 그렇고, 믿고 있는 거지.”

“네에, 네에. 그런데 오빠, 좀 이따 하퍼 선수가 면담하고 싶다는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작 짐의 부담을 늘리려는 사람은 따로 있는 모양인데.”

“하퍼 씨는 짐하고 상관없지 않아?

“없지 않을걸.”

없지 않았다.

* * *

구단주실을 찾은 하퍼는 한참을 망설였다.

“차가 아주 맛있군요.”

“다행이군요. 희주가 좋아하겠네요. 하퍼 선수가 네 번이나 칭찬했다고 꼭 전할 테니 안심하십시오.”

“네, 네.”

아무래도 하퍼의 입이 먼저 열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선수를 치기로 했다.

“혹시라도 짐을 내년에 콜업해, 세컨 키퍼로 만들자는 제안은 미리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퍼가 침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구단주님은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제 생각에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요.”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내가 구단을 인수한 이후, 하퍼는 처음 2년을 페르난데스의 세컨 키퍼로 보냈다. 그리고 4년간 팀의 주전을 맡은 다음, 올해는 자연스럽게 리델과 세대교체 수순을 밟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명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퍼와 리델의 기량은 틀림없이 교차했다. 현재는 리델이 선덜랜드의 넘버원 골키퍼이며, 하퍼가 넘버투다.

폼이 좋은 선수를 기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브라이언은 요즘 리델을 리그와 챔스에, 하퍼를 컵 대회에 기용하고 있다. 다시 세컨 키퍼가 된 셈인데, 하퍼의 나이까지 생각하면, 슬슬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려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구단주님, 리델에게는 이제 굳이 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친구도 체력 문제나 부상에 대한 대비는 필요할 테니 여전히 세컨 키퍼와 서드 키퍼를 써야 하겠지만··· 그게 굳이 저일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는 줄곧 낮고 무겁던 하퍼의 목소리에, 점차 열기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선덜랜드에는 역대급으로 꼽히는 골키퍼 유망주가 있습니다. 네. 짐이 데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간은 리델의 세컨 키퍼겠지만, 1군 경험을 쌓게 하면 그 아이는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겁니다.”

하퍼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주전을 시켜줄 다른 팀으로 떠나려는 겁니까?”

“아뇨. 가능하다면 구단 스태프로 남길 원합니다. 그렇다고 코치가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골키퍼 코치는 팀에 충분하니까요. 특히 유소년 골키퍼 코치는 아주 넘치겠죠.”

하퍼의 말대로, 골키퍼 코치는 부족하지 않다. 특히 유소년은 더욱 그렇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는, 한때 세계 축구계의 레전드였던 골키퍼가 유스팀 단장으로 재직 중이니까.

“이적하려는 게 아니라면 조금 더 선덜랜드의 선수로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하퍼는 잠깐 머뭇거린 다음 가슴을 폈다.

“폼이 더 좋은 선수가 골마우스에 서는 게 맞습니다. 선덜랜드의 골키퍼는 그렇게 하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짐은, 오는 9월부터는 열여덟 살이 됩니다.”

처음엔 무슨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하퍼의 눈은 아주 진지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 본인이 정말로 그렇게 결정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한 이유로 은퇴를 정하지는 말아줬으면 합니다.”

“네.”

하퍼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슬쩍 덧붙였다.

“아직도 하퍼 선수의 라커에는, 짐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선덜랜드 1번을 그린 거죠··· 때가 되면 제가, 다음 1번에게 넘겨줄 겁니다.”

* * *

챔피언스 리그 8강은, 선덜랜드 대 파리의 경기로 치러지게 되었다. 1차전을 위해 리미트리스 공항에 내린 파리 선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인간들이 우리를 기다린단 말이지.”

공항 앞에는 초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크기의 축구장 스크린이었던 물건인데, 지금 기준으로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스크린으로 통할 사이즈다.

그 커다란 화면이 열광적으로 날뛰는 붉은 물결을 비추고 있었다. 경기장의 풍경은 물론, 풋볼 스퀘어의 풍경이 어지럽게 스쳤다.

누군가 농담 삼아 말했다.

“반쯤은 정신병자 소굴 같네.”

“그러게, 영국 훌리건이 그렇게 무섭다지?”

파리 선수들이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선덜랜드를 상대한 적은 있지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들어가본 적은 아직 없다. 예전에 딱 한 번 챔스 결승에서 만났었는데, 당시에는 알리안츠에서 격돌했었다.

사만 칠천 석 규모의 파르크 데 프랑스를 홈으로 쓰는 파리로서는, 칠만 석짜리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무척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누군가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됐어. 축구는 목소리 큰 놈들이 이기는 종목이 아니잖아.”

“맞아. 영상이니까, 특별히 열광적인 씬을 편집했을 거야. 아무렴 매일같이 저렇게 날뛰겠어?”

그런 파리 선수들의 이야기에 대답이라도 하듯, 스크린 속에서는 선덜랜드 팬들이 거세게 플래카드를 흔들고, 머플러를 들어 올렸으며, 깃발을 흔들었다.

[This is Sunderland.]

[우리가 기다린다.]

스크린이 어찌나 큰지, 영상은 파리의 원정 버스가 공항을 빠져나와 리미트리스 하이웨이에 진입한 다음에도 한참 동안 눈에 띄었다.

마침내 스크린이 손톱만 한 크기로 줄어들자, 누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독한 것들. 이제 그놈의 뻘건 머플러 안 보여서 속이 다 시원···.”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창밖에 보이는 시티 오브 선덜랜드가, 어느새 붉게 물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영상하고 실제가 좀 다르긴 하네.”

분명, 차이는 있었다. 영상보다 실제가 훨씬 더하다는 정도의 차이가.

도시 곳곳에는 ‘This is Sunderland’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길거리의 시민들은 매치데이 머플러를 신나게 흔들었다.

[우리가 기다린다 : 선덜랜드 vs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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