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95화 (395/422)

그 등에 짊어진 것 (3)

리그 우승 경쟁을 유지하면서 챔스와 FA컵 4강을 동시에 치르는 일정 때문에, 구단 스태프들은 또다시 본격적인 비상 상태가 되었다.

“물론 메인은 뮌헨과의 챔스 4강전이겠지?”

“그렇죠. FA컵보다는 챔스가 좀 더 중요하기도 하고, 뮌헨이 훨씬 부담스러운 팀이니까요.”

“뮌헨에게 기세를 내주면 걷잡을 수 없어.”

“그렇죠. 따라서 베스트 일레븐은 당연히 뮌헨 상대로 두 번 내고···.”

브라이언과 이야기를 나누며, 샐리가 흘끗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묵묵하게 둘을 응시하는 메디컬 팀을 발견했다.

메디컬 팀장 버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샐리는 제 발이 저렸던 모양이다. 그녀가 재빨리 덧붙였다.

“FA컵은 로테이션 멤버 위주로, 균형을 맞춰서 치르도록 하죠.”

메디컬 팀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들 기준으로도 퍽 만족스러운 답변이었음을. 버드도, 포터도 평소보다 의자에 조금 더 깊숙하게 몸을 파묻었기 때문이다.

FA컵 이야기가 나오자, 브라이언이 눈살을 찌푸렸다.

“FA 4강전은 재경기 있던가? 중간까진 재경기 있는 게 확실하고, 결승은 확실히 없는데··· 4강은 살짝 애매하단 말이지.”

“4강부턴 재경기 없어요. 단판 승부죠.”

희주가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아무래도 구단주 비서로 오래 일해서 그런지, 일정에 관련한 대회 규정에는 아주 빠삭한 편이다.

“감사합니다, 레이디··· 아무튼 재경기는 없단 말이지.”

브라이언이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고, 샐리도 똑같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대신 루벤의 얼굴은 허옇게 떴다.

“루벤 씨는 또 왜 저래?”

궁금해하는 희주에게, 간단히 해설했다.

“재경기 없으면 승부차기 갈 수 있거든.”

뮌헨전에 베스트 일레븐을 모두 보내고, 로테이션 멤버만으로 FA컵 4강전을 치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처음부터 승부차기를 노리는 게 훨씬 쉽지. 특히 상대가 첼시라면 더욱 그렇다··· 첼시 골키퍼는 승부차기 교체 거부로 유명해진 선수니까.

이후에 해명하고 동료들과도 잘 풀었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승부차기 상황은 명백히 첼시에게는 좋지 못한 과거를 상기시킬 것이다.

물론 분석팀에게는 꽤 고된 작업이 기다린다.

모든 팀이 그렇겠지만, 우리 선덜랜드는 승부차기에 대비해 상대 팀 키커와 키퍼가 선호하는 코스를 전부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루벤이 창백해진 것도 이해는 간단 말이지.

브라이언과 샐리가 루벤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도 스태프가 고생하는 게, 선수가 갈려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수고해. 도움 필요하면 말하고.”

샐리의 태도는 퍽 선선했고, 만일 루벤이 도와달라고 한 마디만 하면 기쁜 마음으로 함께 분석할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렇다고 루벤이 정말로 샐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리는 없다. 트레블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 이럴 때 1군 수석코치의 귀중한 시간을 분석 업무에 할애해 달라는 이야기는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이다.

대신 루벤은 다른 쪽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니까 메디컬 팀 쪽으로. 간절히 호소하는 눈빛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스태프의 혹사도 나쁘다고 말해 주세요. 제발요.]

[그건 저희들 업무가 아닙니다만.]

결국 루벤은 쓸쓸히 분석실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앨리스가 또다시 분석실에 에스프레소 반입을 시도했다가, 프레스팀과 카페인 소유권을 두고 가벼운 분쟁을 벌이게 되지만···.

그건,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 * *

[FA컵 4강전, 선덜랜드 대 첼시]

챔스 8강전 파리 원정은 물론, 챔스 4강전 뮌헨 원정에도 따라가지 못하게 된 우드 부부는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맹렬한 기세로 FA컵 4강전 티켓을 확보했고, 기쁜 발걸음으로 런던 원정에 합류했다.

브라더스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맥주집 사내조차 가게를 닫고 함께했을 정도로.

마일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 오늘 가게 닫고 런던 가도 돼? 오늘 같은 원정경기가 제일 대목 아니야?”

맥주집 사내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돈은 이미 많이 벌었어.”

“···좋은 마음가짐인데요. 그 말씀, 사모님도 동의하신 거 맞죠?”

수잔의 질문에, 맥주집 사내가 내뱉듯이 실토했다.

“동의했죠, 미세스 우드··· 챔스 결승전에서 어금니 깨물고 일하는 조건으로요.”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챔스 결승 못 나가면 큰일 나겠네요.”

“나갈 겁니다. 나가야 해요.”

한편, 선덜랜드가 제공한 원정 버스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그들은 뜻밖의 인물과 만나게 되었다.

토트넘 팬 소년, 제이슨이었다.

“아니, 넌 런던 사는 애가 왜 원정 버스에 있어?”

마일즈의 질문에, 제이슨이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핫. 그게··· 실은 요즘 선덜랜드에 일하러 왔거든요. 챔스 결승 티켓값 벌려고요.”

“여기 선덜랜드가 챔스 결승 못 가면 큰일 날 사람 하나 더 늘었네. 그럼 아이반은 런던에 있고?"

“아뇨. 그게 선덜랜드에 같이 오긴 했는데요···.”

제이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첼시 팬 아이반 또한, 제이슨과 함께 선덜랜드에 넘어와서 일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FA컵 4강전 소식도 들었지만, 그는 이번에 관람을 포기했었다.

[보고 싶지 않아. 첼시의 승리도. 선덜랜드의 승리도.]

사정을 설명하면서, 제이슨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엔 그래도 첼시와 선덜랜드가 붙으면 첼시 응원하러 갔는데, 지금은 아예 중립이라더라고요. 도시에 머물면서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그래?”

“시티 오브 선덜랜드는 참 좋은 도시니까요.”

“그래서 정말로 ‘중립’이라는 거구나. 그럼 웸블리에는 못 오겠네.”

편의상 ‘중립석’으로 분류되는 지역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경기장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팀 중 어느 한 팀의 팬이다.

온전하게 ‘중립적으로 두 팀 모두를 응원할 수 있는 자리’ 같은 건, 축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스위스에도 그런 종류의 중립석은 없다.

따라서, 정말로 중립을 지키고 싶다면 그냥 TV중계를 보는 편이 훨씬 낫다.

“그래서 풋볼 스퀘어에서 경기 보겠다는데요?”

제이슨의 이야기에, 우드 부부와 브라더스가 이구동성으로 손사래를 쳤다.

“거긴 위험한데.”

“맞아. 거기서 혹시 실수로 첼시 응원하는 티를 냈다간···.”

“에이, 지 입으로 중립이라고 했는데요 뭐.”

제이슨의 반론에, 마일즈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맞아. 대부분은 중립을 잘 지킬 수 있어.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 자연히 눈이 가는 팀이 있을 거야. 그게 진짜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지.”

* * *

첼시 팬이었던, 그리고 이번엔 ‘중립’을 선언한 소년 아이반은 터덜터덜 풋볼 스퀘어로 향했다.

소년이 풋볼 스퀘어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스마트폰이 연달아 울렸다.

[아이반? 차라리 우리 집에서 중계를 보렴. 비어 있거든.]

[열쇠 위치 알려줄까?]

수잔과 마일즈의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제이슨 이 수다쟁이, 기어이 고자질했네.”

빙긋 미소 지으며, 아이반은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마음만 받을게요.]

우드 부부가 왜 그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알고 있었다. 혹시 실수로라도 풋볼 스퀘어에서 첼시를 응원하면 꽤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도.

타인위어 사람들이 얼마나 축구에 진심인지, 지난 몇 달 아주 잘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시티 오브 선덜랜드가 얼마나 축구에 미친 도시인지도 뼈저리게 배웠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오늘, 그는 정말로 중립을 지킬 자신이 있었기에.

두리번거리며, 아이반은 풋볼 스퀘어를 가득 메운 선덜랜드 유니폼 사이로 파고들었다.

기분 탓인지,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다. 당연히 첼시 유니폼은 입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선덜랜드 유니폼도 입지 않은 평상복 차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반은 최대한 뻔뻔하고 태연하게 행동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기 또래의 소년 소녀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여기는 선덜랜드 구역이야. 드레스 코드는 지켜야지.”

아이반은 선선히 사과했다.

“미안. 오늘은 미처 준비 못 했어.”

그러자 소년 소녀가 자기들끼리 얼굴을 마주보았다.

“처음 왔으면 모를 수도 있긴 해.”

“맞아. 유니폼은 아무래도 우리 같은 애들 용돈으로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풋볼 스퀘어의 터줏대감, 지미와 주디 남매가 배시시 웃으며 아이반을 끌어당겼다.

“그래도 나중에 여유가 되면 유니폼을 사 줘. 축구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거니까, 그 정도는 지켜야지.”

“다음부턴 그럴게.”

“오케이. 그리고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이곳에서 선덜랜드 이외의 팀을 응원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풋볼 스퀘어는 모든 경기에서 선덜랜드 구역이거든.”

아이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 명심할게. 잘 지킬 수 있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오늘은 정말로 중립이고, 첼시와 싸우지만 않으면, 선덜랜드 유니폼도 챙겨 입을 생각이었기에.

그리고,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날 선덜랜드는 로테이션 멤버 위주로 라인업을 짰고,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무승부 후 승부차기를 가겠다는 전략을 짰다. 덕분에 지켜보는 팬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아이반에게는 오히려 편안한 심정이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고마운걸.’

오늘은 세상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두 팀, 선덜랜드와 첼시가 맞붙는 날이었다.

축구를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기에 기어이 풋볼 스퀘어까지 걸어왔지만, 그렇다고 첼시의 승리도, 선덜랜드의 승리도 보고 싶지는 않았던 아이반에게는 마냥 다행스러운 흐름이었다.

90분간의 무승부도, 연장전도.

하지만, 마침내 11미터의 러시안룰렛이 시작된 순간.

처음으로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선덜랜드의 1번 키커, 요니는 발을 가볍게 풀었다.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몸을 푸는 녹색 유니폼, 첼시의 골키퍼 케파의 모습을 응시했다.

‘생각보다 크네.’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데, 눈대중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크게 보인다.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체형이라 더 그런 걸까? 프로필상 키가 비슷한 하퍼보다도 훨씬 커 보였다.

그래도, 못 넣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장이 아주 고요하거든.’

3부 리그 팀이 프리미어리그 팀을 꺾었던 기적의 날, 태어나서 처음 찼던 승부차기에서는 심장이 그의 통제를 벗어났었다. 미친듯한 두근거림, 마치 심장이 당장에라도 입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서 페널티 스폿에 섰다.

결과는 실축이었고, 그는 홈 팬들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물러나야 했다. 만일 다음 키커, 잭이 멋진 파넨카를 꽂아 넣지 않았다면 그대로 탈락했을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오늘, 선덜랜드는 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팀은 지지난 시즌의 유럽 챔피언이며, 지난 시즌의 무패우승팀이다. 그리고 올 시즌, 트레블에 도전하는 팀이기도 하다.

지금의 선덜랜드는 하부 리그를 전전하는 약팀이 아니다. 그리고 요니 자신 또한, 더 이상 예전의 소심하던 유망주가 아니다.

요니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첼시 골키퍼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눈빛만으로 상대를 죽여버릴 듯한 기세로 달려들면서···.

발이 공에 닿는 순간, 그대로 꾹 조인 발목을 풀었다. 그러자 공이 아주 부드럽게 떠올랐다.

파넨카 킥.

그의 친구 잭의 전매특허인 기술이고, 요니 본인은 태어나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킥이었다. 허를 찔린 첼시 골키퍼가 반사적으로 날린 몸을 넘어, 공이 유유히 날아들었다.

그렇게, 선덜랜드가 한발 앞서 나갔다.

[선덜랜드 0 (1) - (0) 0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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