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98화 (398/422)

딱 한 걸음 (2)

알리안츠 아레나에서의 챔스 4강 1차전이 끝난 직후, 양 팀 감독들이 믹스드존에 섰다.

[모든 선수들이 수고했지만, 그중에서도 골키퍼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특히 선덜랜드 골키퍼 리델에게요.]

뮌헨 감독 나겔스만의 인터뷰에는 여유가 있었고, 상대적으로 브라이언은 훨씬 긴 인터뷰를 해야 했다. 평소와 달리 무척 흠잡을 데 없는 인터뷰였는데, 유일한 아쉬움은 1차전에서 패배했다는 것뿐이었다.

[뮌헨 3 - 1 선덜랜드]

스코어만 보면 홈팀 뮌헨이 패기를 부릴 만도 하다. 원래는 더 많은 골이 나올 경기인데 선덜랜드 골키퍼가 잘해서 이 정도로 끝났다는 식의.

“그 정도까지 밀린 건 아니었는데.”

희주가 분함에 몸을 떨었는데, 사실은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4강 1차전은, 내가 보기엔 딱 한 걸음 차이였다.

객관적으로 양 팀의 경기력은 큰 차이까지는 없었다. 비록 승패를 바꾸기는 어려웠을지언정, 3-1로 질 정도의 격차는 아니었다. 하물며 상대 감독에게 ‘골키퍼가 잘해서 그 정도로 끝났다’고 얻어맞을 만큼 형편없는 경기는 더욱 아니었다.

경기는 후반 80분까지도 팽팽했고, 1-1로 치열하게 치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역전골을 내준 순간, 갑자기 달아오른 경기장의 분위기에 휘말린 우리가 추가골을 헌납하며 순식간에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강팀의 홈 경기장이 갖는 특별한 힘, 칠만 명의 관중이 보여준 마법이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희생양이 되었지만.

[80분간은 팽팽했다고요?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축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가 없는 스포츠입니다.]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잘했네. 그렇지, 축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는 없는 스포츠지.”

아직 우리에게는 2차전이, 그리고 9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축구는 언제나, 휘슬이 세 번 울리는 순간에만 이기고 있으면 되는 경기다.

* * *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 돌아온 직후, 곧바로 브리핑 룸에 주요 스태프들이 다시 모여 머리를 맞댔다.

“선수들은 괜찮습니다. 심폐 데이터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되어 보입니다.”

분석팀장 루벤의 보고에, 메디컬팀장 버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도대체 무슨 원리로 심리 데이터까지 분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이 함께 보증한다면 믿을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로 괜찮겠지.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저 사람들은 괜찮은 겁니까?”

버드와 루벤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하긴, 내가 보기에도 썩 괜찮지는 않아 보인다.

평소 시티시티 노래를 부르던 우리 감독과 코치에게,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상대’가 한 팀 늘었다. 당연히 뮌헨뮌헨인데, 조만간 합쳐서 뮌헨시티 소리도 외치지 않을까 싶다.

“박살 내버릴 거야. 아주 밟아놓을 거라고.”

“그래도 1-3이라 다행이네요. 0-3이나 1-4였으면 조금 위험했을지도 몰라요.”

“뭐, 2차전은 우리 홈이니까. 우리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두 골 차를 따라잡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대화를 주고받는 우리 감코진을 바라보던 희주가 낮게 속닥거린다.

“역시 샐리 씨가 침착하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저게 침착해 보이면, 안경 맞춰라. 기왕이면 뿔테로. 그 왜, 유능한 비서 코스프레 할 때 쓰는 디자인 있지?”

“헤헷. 역시 그 안경이 잘 어울리지?”

“응. 예쁘더라.”

거짓말은 아니다. 일단 안경은 예뻤고, 여동생 얼굴은 가리면 가릴수록 예뻐질 테니까. 아예 마스크를 씌우면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무튼 샐리의 눈은 서늘했고, 마치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화난 정도가 브라이언 못지않다.

“일단 추가실점은 위험해. 쓰리백으로 가야겠어.”

“그건 좋은데, 그랬다간 뮌헨도 대놓고 내려앉지 않겠어요? 물론 천하의 뮌헨이 우리 홈에서 텐백하는 모습은 퍽 통쾌하겠지만··· 통쾌함이 밥 먹여주는 거 아니잖아요?”

“그건 그래. 아무튼 뮌헨은 절대로 우리 홈에서 맞불 놓아 주진 않을 거고, 잘게 썰어가는 플레이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철퇴 먹여야죠.”

둘의 눈이 또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공통의 적이 있어서인지, 오늘따라 호흡이 평소보다 더욱 잘 맞는 느낌이 든다.

“역시 전방엔 중량감 있는 스트라이커를 둬야겠지?”

“네. 마르틴은 측면에서 부하를 걸고, 3선에서 올라가서 돕고요.”

“좋아. 텐백 박살의 키는 언제나 중거리지.”

“헤더가 아니고요!?”

마지막 순간, 또다시 다른 결론에 도달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진짜 딱 한 발짝이었는데.”

아쉬움을 토로하는 희주를 향해, 나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둘 다 정답이니까.”

둘의 의견이 언제나 그렇듯, 우리 감독과 코치가 내놓은 해법은 서로 공존할 수 있었다. 한 골쯤은 중거리로, 한 골쯤은 헤더로 뽑으면 되겠지.

시간은 길다. 넣어야 할 득점도 많다. 그러니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90분이, 아주 길다는 걸 보여줄 시간이다.

* * *

킥오프를 앞둔 잭의 기분은 썩 좋지 않은 상태였다.

우선, 코인 토스에서 진 것이 계기였다. 그것만으로도 살짝 분한 일인데, 심지어 뮌헨이 여유롭게 선공을 고르면서 기름에 불을 붙였다.

비록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표정과 행동은 가끔 말보다도 많은 것을 전한다.

[원정팀이 절대로 후반에 등지지 말아야 한다는 나이얼 스탠드를, 뮌헨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공이 훨씬 값지다.]

그렇게 선언한 셈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잭의 부아를 돋웠다.

물론 선공이 갖는 전술적 가치를 고려하면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지만, 원래 축구는 썩 합리적이지는 않은 종목이었다.

‘애초에 합리적이었다면, 공 하나를 두고 다 큰 사내 스물두 명이 90분간 뛰지는 않을 거잖아.’

진정으로 합리적인 인간은 함성 소리에 심장이 뜨거워지지도 않고, 이 팀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가슴이 벅차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때 요니가 팔꿈치로 잭의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그리고 눈짓으로 스탠드 구석을 가리켰다.

[No matter what happens, We are always here.]

오늘 챔스에서 떨어지더라도, 뮌헨에 패배하더라도 자신들은 늘 경기장에 오겠다는 팬들의 걸개가, 잭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어금니를 꾹 깨무는 선덜랜드의 주장을 향해, 에디가 옆에서 히죽 웃었다.

“경기 전이니까, 울지 마.”

“안 울어.”

배에 힘을 주면서, 선덜랜드의 주장은 입 밖으로 흘러나오려는 감정을 억눌러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동료들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자, 다들 죽을 때까지 싸울 준비는 끝났어?”

원진을 짠 선덜랜드 일레븐의 어깨 위에, 팬들의 함성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Sunderland ’til I die. I'm Sunderland ’til I die.

그리고, 2차전의 흐름은 초반부터 선덜랜드에게 기울었다.

‘감독님 전술이 잘 들어맞았어.’

쓰리백을 내보내 뒷공간을 단단하게 지키며, 좌우 윙백 곤잘로와 브루노가 일방적인 폭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최전방에는 빅 앤 스몰 형태로 출전한 바스티아노와 마르틴이 뮌헨 수비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측면을 장악하고 상대 수비라인을 후퇴시키자, 단숨에 중원에 넓은 공간이 생겼다. 그 잔디 위에서 활발히 뛰어다니는 역할은, 잭에게 있어 가장 자신 있는 플레이였다.

다음으로 자신 있는 플레이는, 당연하게도 슛이었다.

전반 5분, 바스티아노의 공이 뮌헨 키퍼 노이어의 손에 걸렸다. 어찌나 세게 찼는지, 흘러나온 공이 박스 바깥까지 굴러 나왔다.

잭은, 마치 감정을 때려 박듯 체중을 실어 공을 걷어찼다.

[아깝습니다! 크로스바를 직격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잠시 응원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아직도 떨리는 골대의 소리, 선덜랜드의 득점을 원하는 노랫소리를!]

언제나처럼 분위기를 띄우는 장내 아나운서의 절규를 들으며, 잭은 태연하게 등을 돌렸다.

몇 번이든 더 시도할 생각이었다. 뮌헨이 라인을 올리거나, 그에게 전담 마크를 붙일 때까지.

혹은··· 들어갈 때까지.

전반 20분, 또다시 세컨볼을 차지한 잭은, 달려드는 기세 위에 자신의 체중까지 실어, 그대로 오른발로 공을 걷어찼다.

발등이 공에 닿은 순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제대로 때렸다는걸. 주위의 중력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그에게 사소한 확신을 제공했다.

합리주의자는 말할 것이다. 그저 오른발을 휘두른 기세로 몸이 살짝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축구는 원래 썩 합리적인 종목은 아니다.

허공에서 자세를 고쳐잡고 땅에 왼발을 디뎠을 때, 장내 아나운서의 절규와 같은 외침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메웠다.

[들어갔습니다! 오늘 경기의 선제골을, 우리 주장이 뽑아냅니다! 총합 스코어는 이제 2-3입니다! 선덜랜드, 이제 한 걸음 차이로 뮌헨을 추격합니다!]

쏟아지는 팬들의 함성 속에서, 선덜랜드의 주장은 그대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골라인 너머에 구르는 공을 빼앗듯 주워 들고, 하프라인을 향해 달렸다.

[ (2) 선덜랜드 1 - 0 뮌헨 (3) ]

* * *

후반에도 우리의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나이얼 스탠드의 팬들은 끊임없는 외침으로 상대의 얼을 뽑아버렸고, 팬을 바라보며 공격해 들어가는 우리 선수들은 그만큼 더 힘을 얻었다.

후반 60분.

또다시 잭이 중거리 슛을 쏘아 올렸다. 앞서 한 차례 실점했던 뮌헨은, 이번에는 필사적인 육탄 방어를 시도했다. 잠시 후 뮌헨 선수의 몸에 맞은 공이 크게 떠올라 사이드라인을 넘었다.

바깥으로 나간 공에, 볼보이가 재빨리 따라붙었다. 비브스 차림이라 확실하진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바르카 같았다.

유스팀 최고의 준족으로 통하는 바르카는, 포지션 특성상 세컨볼에 대한 감각에도 남다르다. 최단거리로 공을 추격한 바르카가, 공을 다이렉트로 걷어찼다.

···마르틴의 곁에서 기다리던 테오에게로.

바르카의 다이렉트 패스가 테오의 발에 닿은 순간, 공이 정확히 얼굴 높이까지 수직으로 떠올랐다. 관중석에서 무심코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의 묘기를 선보인 테오가, 공을 이너셔츠로 한번 슥 문지른 다음 내밀었다.

여기까지 딱 2초, 마치 F1 레이싱의 피트인 장면을 연상시키는 빠른 볼배급이다.

잠시 후 마르틴이 지체 없이 공을 길게 던졌다. 선덜랜드가 자랑하는 롱 스로인이 뮌헨의 문전을 향해 똑바로 날아들었다.

“막아!”

“아니, 건드리지 마···! 괜히 건드렸다가 먹히면 골 아프다!”

뮌헨 수비가 약간 우왕좌왕하는 사이, 틈을 놓치지 않은 바스티아노의 몸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상대보다 머리 하나쯤 높은 위치에서, 이탈리아 스트라이커의 이마가 공을 힘차게 찍었다.

[ (3) 선덜랜드 2 - 0 뮌헨 (3) ]

동점골이다. 우리가 마침내 총합 스코어를 원점으로 돌린 순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1차전의 알리안츠 이상 가는 열기에 뒤덮이고 말았다.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 * *

바스티아노의 동점골 직후, 하프라인 너머에서 에디가 특유의 히죽거림 함량 높은 표정을 지으며 상대에게 도발을 시도했다.

“계속 웅크려 있어도 상관없어. 독일 챔피언 여러분. 우린 무승부 가도 괜찮거든.”

“우리도 괜찮아. 승부차기엔 자신 있으니까. 우리 키퍼는···.”

뮌헨의 응수에, 에디가 다시 히죽거렸다.

“알아, 노이어지. 자신감은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혹시··· 뭐 잊은 거 없나?”

“잊은 거?”

“승부차기 전에는 반드시 연장전이 선행된다는 거 말야. 이 경기장에서 굳이 연장전을 치르겠다는 용기에는 나도 응원을 보내고 싶긴 한데.”

에디는 모든 면에서 대단한 센터백이지만, 도발에도 상당한 자질이 있었다.

특유의 히죽거리는 표정과 말투가 사람 속을 긁어놓는 것도 그렇지만, 도발을 시도하는 타이밍이 무척이나 예술적인 선수였다.

뮌헨 선수들이 울컥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어차피 총합 스코어가 원점으로 돌아간 이상, 지키는 플레이에는 의미가 없다.

뮌헨에게는 이제 득점이 필요해졌다. 자연스럽게 이후의 경기는 난타전 양상으로 흘렀다.

후반 89분.

미드필더에서 요니가 공을 따냈다. 곧바로 잭에게 짧은 패스가 넘어갔고, 선덜랜드의 주장이 오른쪽 측면을 가로질렀다.

요니 또한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절호의 역습 찬스였고, 챔스 4강전을 완전히 끝내버릴 기회임을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뮌헨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다못해 파울로라도 끊으려고 애썼다. 잭의 유니폼에 손을 뻗었고, 하다못해 다리라도 걸려고 시도했다.

뮌헨의 시도는, 딱 한 발짝 모자랐다.

간발의 차이로 수비를 피해 오른쪽 측면 깊은 곳까지 파고든 잭이, 낮고 빠른 컷백 패스를 아크 정면에 깔았다. 그리고 전력으로 따라온 요니가, 그대로 공에 발을 가져다 댔다.

[ (4) 선덜랜드 3 - 0 뮌헨 (3) ]

결승점이었고, 팀을 다시 한번 챔스 결승으로 이끄는 귀중한 득점이기도 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치러질 챔스 결승전, 이 도시 사람들 모두가 줄곧 바라던 꿈의 무대에, 마침내 선덜랜드 축구단이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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