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방법 (2)
선수들이 아침 자율 훈련을 시작했을 때, 선덜랜드 분석팀 역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한 상태였다.
이들이 출근시간을 앞당기게 된 건, 토마스의 제안 때문이었다.
“팀이 아주 중요한 상황이니까, 조금 일찍 모여서 분석 업무 시작하자. 우리, 이제 딱 두 경기만 이기면 되잖아.”
“어··· 저는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요.”
신입의 불평에, 토마스는 묵묵히 라이프치히와 잘츠부르크 엠블럼을 가리켰다. 명확한 암시였다. 축구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그 두 팀의 스폰서가 세계적인 에너지드링크 회사라는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만 일찍 모이나요?”
신입 두 명을 인솔하면서, 토마스가 웃었다.
“그렇지. 사실 우리 팀장님은 좀 주무셔도 괜찮아. 수석코치님 정도면 아예 늦잠 자도 돼.”
“어··· 미녀는 잠꾸러기라서?”
“그분들은 천재니까. 마찬가지로 감독님이나 구단주님 같은 분들은 아예 하루 17시간씩 주무셔도 될 거야. 하지만 우린 아니지. 우린 천재들이 잘 때 출근해서 일해야···.”
토마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신입이 손을 들어 주차장 구석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저거 구단주님 차 아닌가요?”
토마스가 입맛을 다셨다.
“내일부터는 좀 더 일찍 나오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재들보다 일찍 나와서 먼저 일하겠다’는 토마스의 시도는 그날, 완벽한 불발로 돌아갔다. 그들이 분석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에 루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팀장님! 일찍 나오셨네요? 그런데 안 들어가고 뭐 하세요? 혹시 비번 잊어버리셨어요?”
명랑하게 말하는 신입을 향해, 루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웠다. 심상찮은 태도에, 토마스는 분석팀원들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잠시 후, 토마스는 루벤이 왜 분석실 밖에서 기다렸는지 알게 되었다.
분석실 안에는 이미 샐리가 나와 있었다.
얼마나 일찍 나왔는지, 테이블 위며 바닥에 빈 커피잔과 에너지드링크 캔이 굴러다녔고, 스크린 속의 축구 영상도 이미 한창이었다. 워낙 유명한 경기라, 분석팀 식구들은 곧바로 어느 경기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1년 전, 맨시티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다. 그날 선덜랜드는 맨시티에게 무너졌고, 챔스 4강 진출권을 빼앗겼었다.
공교롭게도 카메라는 당시의 선덜랜드 벤치를 향했다. 덕분에, 샐리는 화면 속의 그녀 자신을 응시하게 되었다. 고운 입술을 피나게 깨문 채, 손을 파르르 떠는 1년 전의 자신을··· 샐리는 조용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고요한 분노로 타오르는 중이었다. 화면 속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분석팀원들은 살짝 질린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어··· 솔직히 말하면 저는 시티에게 원한을 충분히 갚아줬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원한관계만 따지면 시티야말로 우리에게 원한이 있어야 정상 아닌가요?”
“맞아요. 특히 저 패배는 우리가 커뮤니티 실드에서 바로 되갚았죠. 그때도 웸블리였어요. 지금도 웸블리에서 만날 거고··· 우리 팀은 웸블리에 좋은 기억이 많잖아요.”
구단주가 바뀐 이후, 선덜랜드는 아직까지 결승전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특이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승하지 못한 대회는, 전부 결승전에도 가지 못한 채 중간에 떨어졌다.
그런데 영국에서, 주요 컵 대회 결승전은 전부 웸블리에서 열린다. 그리고 결승전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승부를 내는 특성상, 무승부조차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웸블리의 선덜랜드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선덜랜드 이상 가는 강팀이었다. FA컵 결승전이 웸블리에서 치러지는 이상, 굳이 맨시티를 저렇게까지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게 분석팀원들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심지어 토마스조차도, 조금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부하들을 데리고 일찍 나와 분석 업무를 시작하려 했던 건 어디까지나 트레블이라는 대업을 코앞에 두었기 때문이지, 맨시티가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루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이겼던 경기를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졌던 경기를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며 반성할 점을 찾아내는 게 바로 분석팀의 일이지··· 우리 수석코치가 예전에 그런 식으로 말했었어.”
토마스가 부끄러운 듯 눈을 깔았다. 어느새 그의 부하들 또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발끝으로 복도 바닥을 문지르는 중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분석실 앞 복도에 울렸다.
“내일부터 더 일찍 나오겠습니다. 팀이 트레블에 성공할 때까지.”
* * *
희주의 하품 소리가 구단주실에 울렸고, 나는 가볍게 눈쌀을 찌푸렸다.
“입 찢어진다. 그러게 졸리면 더 자고 나오지.”
“그치만 오빠가 출근하니까. 나만 계속 자기도 그렇잖아.”
“누가 들으면 언제는 내 아침 연습에 매일 따라나왔다고 착각하겠네.”
“이제 트레블이 코앞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나도 이제 베테랑급 구단주 비서거든? 이럴 때 팀이 가장 바쁘다는 것 정도는 알아.”
“구단주실은 별로 안 바쁘지 않나.”
슬쩍 야유를 보냈지만, 희주는 줄곧 진지했다.
“우리 구단주님은 자기 스태프들이, 새벽같이 출근하는 걸 빤히 알면서 혼자 늦잠 주무시는 분이 아니셔서··· 그러니 별수 있나. 나도 일어나야지.”
“알면 됐어. 그럼 업무 체크부터 하자. FA컵 결승전 티켓팅 현황은?”
희주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야 전부 매진이지. 결승 당일 현장을 찾을 블랙캣츠는 약 5만 명, 그리고 시티즌은 3만 8천으로 경기장 분위기는 우리가 우세할 것으로 예상 중이야.”
희주가 재빨리 태블릿을 내민다. 화면에는 웸블리의 좌석 배치도가 떠 있었는데, 우리의 붉은 색과 맨시티의 하늘색으로 나뉘어 칠해졌다.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경기장의 과반수가 붉었다. 이만하면 만족스럽다··· 구석에 달라붙은 먹구름만 빼면.
“그런데 저 검은 건 뭐지?”
희주가 냉큼 대답했다.
“뭐겠어. 그 팀 팬이지. 선덜랜드가 트레블에 실패하는 걸 꼭 두 눈으로 보겠다던데.”
“어 그래.”
나는 무덤덤하게 덧붙였다.
“입장상 응원은 못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시라고 전해 드려··· 숙소와 교통편은?”
체크리스트를 지우듯 하나씩 물어볼 때마다, 희주가 척척 대답한다.
“선덜랜드의 오랜 전통에 따라, 결승전 티켓 소지자에게는 하루 숙박을 제공합니다. 단체로 버스 이동할 계획이고, 티타늄 회원권 고객에게는 특별히 항공편을 제공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희주가 재빨리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나머지 준비는 모두 완벽해.”
“그럼 완벽하네.”
공이 둥글다는 것도, 맨시티가 상당한 강적임도 알고 있다. 그래도,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보고를 마친 희주는 본격적으로 시계를 흘끔거렸다.
“아이참. 우리 스낵바는 왜 이리 늦게 여는 거야?”
“구내식당 가. 구내식당. 아침부터 군것질로 때우지 말고.”
슬쩍 핀잔을 주자, 희주가 의외로 진지하게 반론했다.
“갑부 오라버님. 거긴 크레이프가 안 나오는데요.”
크레이프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실제로 이번에 발매한 점보 크레이프가 모든 면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긴 하다.
희주처럼 단걸 좋아하는 사람들 - 주로 아이들이나 여자들 - 에게도 폭발적인 인기였지만, 남자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물론 남자들은 단것 자체보다는 카드에 더 열광하는 거겠지만.
“트레블 기념이 아니라, 기원으로 앞당겨 발매한 게 정말 신의 한 수라니까? 이거 시즌 끝까지 못 먹고 기다렸으면 인생 손해볼 뻔했어.”
신의 한 수라고 말할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신은 있었다. 우리 점보 크레이프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기념품치고는, 무척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이었으니까.
물론 길거리에서 흔히 팔리는 크레이프보다야 가격대가 조금 셌지만, 그만큼 재료가 풍부하게 들어간 데다가 기념품 카드까지 지급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성비는 훨씬 낫다는 말이 나왔다.
우승의 기쁨과 부담 없는 가격이 더해지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살 법도 하다. 그리고 크레이프를 사면 선수나 스태프의 카드가 딸려온다는 특전이 생긴다.
카드가 랜덤이라는 것도, 이번에 발매 시기를 앞당긴 이유였다. 원하는 카드를 얻기 위해 크레이프를 여러 번 사 먹는 사람들도 늘겠지만, 팬들끼리 서로 카드를 교환하는 경우도 많아질 거라고 예상했기에.
그러다 보면 자연히 선수 이야기며 스태프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까, FA컵과 챔스 결승전에 대한 관심도 더욱 폭발하겠지.
* * *
축구 펍, ‘죽어도 맥켐즈’에 모인 사내들이 굳은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한 명 정도는 해냈으리라 믿어.”
마일즈가 굳은 얼굴로 선언하며, 주위와 시선을 교환했다. 이윽고 사내들이 일제히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선덜랜드가 이번에 배포한, 관계자 카드들이었다.
[No.77. 테오도르 ‘테오’ 헨슨 (U-18 MF)]
[No.19. 요나스 ‘요니’ 뮐러 (MF)]
[No.18. (C) 잭 맥그리거 (MF)]
[No.99. 해리슨 프레이저 (MF)]
“이야,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엄청나게 세 보이네. 중원 퀄리티 실화냐?”
“이렇게 다이아몬드 4-4-2로 나가면 진짜 장난 아니겠다. 공간연주자에, 중원을 지탱하는 사냥개, 패스 마스터··· 어휴, 거기에 테오까지 더해지면 상대 팀은 축구하기 싫겠는데.”
“하지만, 아마도 보기 힘든 조합일 거야. 테오가 1군 주전으로 뛸 때면, JJ의 전성기는 지나갔을 테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사내들을 바라보던 마일즈가 가슴을 탕탕 쳤다.
“아니, 그래서 우리 크리스 카드는 어떻게 된 건데?”
그러자 사내들이 침통하게 고개를 떨궜다.
“미안, 마일즈. 우리의 근성이 부족했던 모양이야.”
“혹시 카드를 더 많이 뽑아야 나오는 걸까.”
“그러게. 리미트리스 부사장은 구단주 카드 80장을 가져갔다는데.”
“이렇게 된 거, 우리도 크레이프를 더 많이 먹어야겠어.”
“그러다 잘못하면 당뇨 온다. 우리 나이면 슬슬 신경 써야 해.”
점보 크레이프는 무척 고퀄리티 제품이지만, 성인 남성들 입맛에는 너무 달아서 자주 먹기는 곤란했다. 그런데도 매일같이 크레이프를 사들고, 카드를 뽑아서 모이는 사내들은 나름대로 근성을 발휘한 것이었다.
단, 그래 봐야 열 번 좀 넘는 시도였을 뿐이다. 한 번에 크리스를 뽑아내는 행운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그들은 주위의 다른 팬들과 교환까지 시도했지만,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뿐 아니라 애초에 크리스를 뽑았다는 사례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근데 마일즈 자네는, 크리스 카드를 왜 탐내는데? 그냥 집에서 직접 사진 찍으면 되는 거 아니야?”
브렌든이 항변하자, 마일즈는 묵묵히 테이블 위의 테오 카드를 집어 들었다.
카드 속에서는, 선덜랜드의 미래라고 불리는 천재 유소년이 역동적인 포즈로 드리블하는 중이었다. 당장에라도 카드를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생동감이 넘쳤고, 사진만 봐도 개인기의 이름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집에서 찍으라고? 그럼 브렌든, 자네는 사진 이렇게 찍을 자신 있어?”
“···없지. 솔직히 프로들하고는 장비도 다르고, 기술도 다르잖나.”
마일즈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문제야. 아빠로서 도저히 포기를 못 하겠어. 지금 구해 두면 우리 애한테 어쩌면 평생 추억이 될 수도 있는 건데.”
그러자 맥주집 사장과 핫도그 사내가 마일즈의 어깨에 차례로 손을 올렸다.
“이해하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나라도 하루에 크레이프 두 개씩 먹어야겠어. 나는 아직 혈당치가 괜찮은 편이거든.”
그때, 조금 펍에 늦게 도착한 수잔이 자리에 합류했다.
“먼저들 와 계셨네요··· 어머, 크레이프 카드 구해 왔네요? 테오가 되게 잘 나왔네! 크리스가 좋아하겠어요. 앨리스 양이 그러는데, 크리스가 테오를 아주 잘 따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무심코 대답한 마일즈를 향해, 수잔이 배시시 웃었다.
“그래서 크리스 카드도 테오하고 똑같은 구도로 만들었잖아요?”
“크리스 카드!? 당신 크리스 카드 구했어!?”
곧바로 수잔이 핸드백에서 카드를 꺼내 보였다.
[No.197. 크리스 우드 (U-9 MF)]
펍의 조명을 받은 크리스의 카드가 반짝거렸다. 며칠째 이 카드 한 장을 위해 백방으로 다니던 사내들에게는 마치 금덩이처럼 영롱해 보였다.
“역시 어머니는 강한 건가.”
“그러게. 우리는 넷이서 굴러도 도저히 구하지 못했는데.”
“어머나, 미리 말씀을 하시지···.”
수잔의 얼굴에 난처함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우리 크리스는 너무 어려서, 불특정 다수에게 카드로 배포하기는 좀 그렇다는 말이 나왔나 봐요. 그래서 제작은 했지만, 크레이프에 넣지는 않기로 했다더라고요.”
마일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라고!?”
“구단에서 배려해준 거죠. 그래도 모처럼 카드는 만들었으니까, 기념으로 우리 집에 보내준 거고요.”
“그걸 나는 왜 몰랐을까?”
“음, 당신이 그날 야근해서요? 근데 저는 다음 날 바로 말해줬던 것 같은데···.”
마일즈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좌우로 구르기 시작했다. 그런 마일즈를 향해 브라더스의 싸늘한 시선이 쏟아졌다.
브렌든을 시작으로, 핫도그 사내와 맥주집 사장이 차례로 마일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갑자기 메시 카드가 갖고 싶어졌어.”
“나는 구단주 남매 카드 세트면 돼.”
“바스티아노 카드, 사인 들어간 걸로. 자네 당뇨 오려면 아직 멀었지?”
마일즈가 애처로운 시선을 수잔에게 향했지만, 아내는 그저 화사한 미소만 지을 뿐,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마일즈에게 짐까지 얹었다.
“음, 저는 앨리스 카드가 좋을 것 같아요. 우리 크리스가 아시다시피 앨리스를 굉장히 따르거든요.”
마일즈가 울상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크레이프를 최소 다섯 개는 먹어야 한다. 그것도 원하는 카드를 한 번에 척척 뽑는다는 기적이 일어날 경우에나 그렇다.
다른 카드는 그나마 교환으로 획득할 수 있지만, 축구의 신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교환도 힘들다는 모양이다··· 게다가 투자의 신 카드는 리미트리스에서 80장을 쓸어가는 바람에 물량이 뚝 끊겼다.
그래도 해내야 한다. 친구들에게 저지른 잘못이 있기에.
각오를 다지며 펍을 떠나려던 마일즈의 등 뒤에, 수잔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아 맞다. 크리스는 크리그 선수 카드를 갖고 싶은가 봐요!”
새삼스러운 요구에, 마일즈가 한숨을 쉬었다.
“혹시 당신이 갖고 싶은 건 아니고? 애 엄마들 수법이 대체로 그렇잖아. 임신해서 먹고 싶은 거 이야기할 땐, 항상 아기가 먹고 싶은 거라고 말하고···.”
수잔은 대답 대신 빙긋 웃기만 했지만, 브렌든과 핫도그 사내, 맥주집 사장의 시선은 따가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수잔하고 떠들 시간이 있으면, 가서 카드나 구해 오라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마일즈는 펍 밖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그런데, 크리그라고?’
사실 마일즈는 이미, 크리그 카드를 원하는 장본인은 수잔이 아니라 아들 크리스임을 살짝 눈치챈 상태였다. 수잔이 예전에 말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역습, 특히 선수들 전원이 최선을 다해 달려 나가는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마무리하는 역할의 크리그보다, 역습 기회를 만들기 위해 달리는 잭이나 요니, 스티븐을 훨씬 좋아하는 취향이다.
굳이 수잔이 크리그 카드를 탐낼 이유가 없으니, 정말로 크리스의 요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럼 크리스는 대체 왜, 크리그 카드를 콕 짚어서 구해 달라고 조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