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418화 (418/422)

위대해지는 순간 (1)

<이 도시에는 위대한 두 개의 팀이 있다- 빌 샹클리>

한편, 그날의 경기는 세계 각지에 중계되었다. 비록 정규 스포츠 채널에 편성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각종 온라인 채널에 올라갔다.

이벤트 매치라는 특성상, 중계권에 관해 굳이 복잡한 협상이 필요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시어러는 그렇게 짐작했다.

“아주 신났네. 중계까지 하고.”

태블릿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시어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초췌해 보였다.

무리도 아니다. 더비 라이벌의 경기를 보는 것은 뉴캐슬의 레전드로서는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니. 하물며 이번처럼 홈팀도 원정팀도 온통 선덜랜드 일색인 경기는 고통이 두 배다.

그래도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선수 시절이라면 그냥 외면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뉴캐슬의 감독이다. 분석관이 따로 있다고는 해도, 마땅히 감독 또한 자기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래도 몇 가지만은 신께 감사드려야겠어.”

“···예를 들면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딸 사만다를 향해, 시어러가 열없는 농담을 했다.

“음, 탈모가 일찍 온 것도 꽤 고맙구나. 아니었으면 스트레스로 머리칼이 온통 다 빠질 뻔했어.”

“그리고요?”

침착하게 반문하는 딸, 사만다 덕분에 시어러 또한 농담을 빨리 그만둔 채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놈들이 무슨 축구를 하려는 건지 조금은 알 것 같구나.”

그러자 사만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야 뻔하죠. 전환이 빠르고 많이 뛰는 축구가 선덜랜드의 트레이드 마크잖아요? 공수 밸런스는 상대와의 상성에 맞추고요. 잉글랜드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그야 그렇지. 그런데 오늘은 조금 특별하더구나. 상성상 대등한 상대··· 그러니까 자신과 똑같은 축구를 하는 팀 상대로 공수 밸런스를 어떻게 잡는지 볼 수 있었지.”

그러자 사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선덜랜드 유소년은 1군 팀과 똑같은 전술을 쓰기로 유명하죠?”

“그래. 덕분에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아. 아직은 어렴풋한 단서지만.”

선덜랜드는 모든 경기에, 심지어 이벤트 매치에도 최선을 다하는 팀이었다. 따라서 이런 이벤트 매치를 분석하면, 선덜랜드로부터 꽤 많은 데이터를 뽑을 수 있다.

비록 이벤트 매치에서 뛴 선수 중 1군 프로는 아무도 없었지만, 전술 경향에 대해서는 파악하기 충분했다.

“도움이 되셨다니 잘됐네요. 멋져요. 아버지가 우리 팀 감독이라 다행이에요.”

“그런데 왜 로커 파크였을까?”

뜬금없는 시어러의 의문에, 사만다가 눈을 깜빡거렸다.

“네?”

“생각해 보렴. 그 팀은 맥켐즈 놈들에겐 사실상 종교나 마찬가지야. 아마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은퇴식을 치렀어도 몇만 석쯤은 채웠을 텐데···.”

“로커 파크를 새로 지은 기념 아닐까요?”

사만다의 답변에, 시어러가 살짝 인상을 썼다.

“너도 전혀 짐작이 안 가는 모양이구나. 그럼 나중에 회장에게 물어봐야겠다.”

“우리 회장님이 도움이 되려나요?"

“나지프는 내가 겪어본 모든 보드진 중 두 번째로 우수한 친구거든.”

“···아버지께서 기껏해야 딱 세 팀의 유니폼만 입으셨다는 걸 지적하면 불효가 될까요?”

소튼에서 데뷔하고 블랙번에서 리그 트로피를 들었던 사내, 시어러는 전성기의 정점을 맞이한 상태로 고향 팀 뉴캐슬에 돌아왔다. 그 외의 다른 팀에서 뛰거나 일했던 적은 없다.

그런 시어러가 말하는 ‘2위’라는 평가는 묘하게 낮은 느낌이 들었지만···.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인물까지 전부 포함해서 2위라는 건데.”

간신히 의미를 알아챈 사만다의 표정이 변했다.

“···썬 바로 다음이라고요? 우리 회장님이요?”

“그래. 그나마 우리 회장이 아니었으면 우린 진작에 망했을 테니까. 나머지 반은 마르지 않는 석유의 힘이고.”

처음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나지프가 준비한 모든 계획은 투자의 신에게 읽혔기 때문이다. 마치 사무실에 도청기라도 달린 것처럼.

하지만 사만다의 생각은 곧 바뀌었다. 그녀 자신부터가 선덜랜드 구단주 비서, 이희주를 버겁게 상대하는 중이었으니···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지프의 적수는 바로 그 투자의 신 본인이다.

“즉, 아버지 말씀은 이런 거군요. 우리 회장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유능하다. 그저 선덜랜드 구단주가 정말로 괴물일 뿐이다··· 따라서 그 괴물의 행동에는 반드시 의도가 있다?”

“그렇지. 단지 새 경기장을 하나 지었으니까 그곳에서 경기를 해봐야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하물며 트레블 직후엔 더더욱.”

결국, 시어러 부녀는 서로를 향해 의문 섞인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뭐지? 선덜랜드 구단주는 대체 또 뭘 꾸미고 있는 거지?’

* * *

다미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온 건 크리그의 은퇴식 이벤트가 완전히 끝난 다음의 일이었다.

[증축은 언제부터 진행하면 될까요?]

귀신같네, 정말. 나는 입맛을 다시며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가 세 번 울리기 전에, 다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요즘은 암호 안 물어보네.”

[영상통화가 더 좋은 거 같아서요.]

물론 나도 동의한다. 잠시 후, 다미가 전화기 너머에서 배시시 웃었다.

[사실 희주 씨가 권해준 다른 인증 방식이 있긴 한데··· 그건 좀 그렇고요.]

“희주가 권했으면 정상적인 방법은 아닐 거야.”

[그럴까요? 사실 꽤 평범한 방식이긴 한데요. 그, 결혼식 올리고 나면···.]

정상이 아닌 여동생의 정신세계, 그리고 평소와 달리 매우 부끄러워하는 다미를 보면 ‘다른 인증 방식’이 대충 짐작이 간다. 사실은 나도 살짝 부끄러우니, 그냥 일 이야기나 해야지.

“증축 계획을 눈치챈 건 너밖에 없더라.”

[그런가요? 전혀 어려운 이야기는 아닌데요. 사장님께선 하고 싶은 일을 하실 때, 항상 경제적 이득이라는 명분을 챙기시잖아요?]

“흠, 흠.”

[은퇴식도 하고 싶고, 유소년의 새 홈경기장도 홍보하고 싶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득이 되지 않죠. 그렇다면··· 로커 파크를 이용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증축을 처리하는 게 리미트리스의 방식이죠.]

사실 다미가 지적하지 않은 이유도 두 가지쯤 있지만, 이번에 굳이 로커 파크에서 이벤트를 진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증축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증축 공사 과정에서 혹시 모를 변수가 생겨 홈경기장을 쓸 수 없게 되는 사태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별 탈 없이 빛의 경기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처음 지어질 때부터 칠만 석까지는 쉽게 확장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 경기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당초 예정된 이상으로 규모를 늘려야 한다. 힘든 공사가 될 것이 틀림없고, 상황에 따라서는 경기장 사용에 차질을 빚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시공업체 파퓰러스를 들들 볶아서, 절대로 경기장 사용에 지장 없게 하라고 통보하겠지만··· 플랜 B는 언제나 필요하단 말이지. 자칫 일이 꼬이면, 시즌 중에 경기장을 빌리러 다니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니, 신세가 처량해지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노스이스트 잉글랜드에서 프리미어리그급 경기장은 ‘그 팀’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하고, 다른 팀의 리버사이드 스타디움만 남게 되죠.]

“아니, 안 남아. 그쪽에선 절대로 빌려주지 않을 테니까.”

[빌려준다고 하면 빌려 쓰시긴 하실 거고요?]

“설마. 차라리 더스턴의 웰링턴 로드를 빌려 쓰지.”

대답을 들은 다미가 살짝 웃었다.

[거봐요. 그래서 시험하신 거죠? 로커 파크가 비상시에 팬들을 맞이하기에 적당한 경기장이 되었는지.]

“거기까지 눈치챘으면 뭘 굳이 물어보고 있어. 그냥 바로 증축 진행하지.”

[그래서 로커 파크는 마음에 드셨나요?]

물론, 아주 만족스럽다. 경기장의 시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스태프의 대응도 합격점이다.

그리고 잔디도.

재개장된 로커 파크는 선덜랜드 유소년의 홈으로 쓰일 장소다. 따라서 이곳의 피치는 최상의 축구력 발휘보다는 부상 예방에 훨씬 초점을 두고 조성되었다. 다시 말하면 어느 무엇보다 푹신한 쿠셔닝을 중시했다는 뜻이다.

이 경기장에서라면 우리 애들도, 상대 유망주들도 제풀에 무릎이나 발목을 해 먹지는 않을 것이다···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물어보는 다미의 눈이,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뭔가 애원하는 것도, 호소하는 것도 같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미에게 부케를 건넸고, 반지도 전했다. 즉, 프러포즈는 이미 끝난 상태다.

하지만 구체적인 결혼 일정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축구단이 늘 그렇듯, 프리시즌이 끝나고 새 시즌이 개막하면 정신이 없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이 경기장 증축만 챙기면, 음, 속상할 만도 하겠지.

그래서 재빨리 덧붙였다.

“여름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에 구단 관계자의 거취 문제는 전부 마무리할 계획이야.”

아니, 이게 아니라.

말해 놓고 보니 솔직히 썩 좋은 드립은 아니었지만, 다미에게는 아주 잘 먹혀든 모양이다. 풉,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으니까.

하지만 다미의 표정은 다시 심각해졌다.

[굳이 직접 사장님 몸으로 직접 시험해보실 필요는 없으셨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던 거니까요.]

음, 안 되겠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다른 인증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전에 주위부터 좀 확인하고.

희주는 없다. 우리 스태프 몇 명이 근처에 돌아다니는 중이지만, 다행히 한국어 가능자는 아무도 안 보인다.

“사랑해.”

화상통화로도 다미의 얼굴이 아주 새빨갛게 변한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제가 더··· 해요.]

음,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모양이다.

[그래도 무릎 관리는 꼼꼼히 받으시고요.]

쳇.

* * *

뉴캐슬 회장 사무실에, 나지프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울렸다.

“증축을 해야겠습니다.”

“증축이요?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이미 오만 석이 넘는 대형 경기장인데요?”

사만다가 눈을 깜빡였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이미 영국에서 손꼽히는 경기장이다. 이곳보다 큰 축구장도 존재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런던이나 맨체스터 같은 대도시에 위치한다. 예외라고는 딱 두 곳뿐이었다.

노스이스트 타인위어에서 오만 석 이상의 경기장을 유지하는 건, 보통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옆 동네의 칠만 석 경기장 상대로 버틸 수 없게 됩니다.”

조용히, 하지만 힘차게 말하며 나지프가 자신의 모니터를 사만다 쪽으로 돌려놓았다.

크리그의 은퇴식 장면이었는데, 크리그의 사인볼과 사인 유니폼을 팬들에게 잔뜩 뿌리는 선덜랜드 CS 스태프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런 기념 행사에서는 항상, 지불한 입장료 이상의 혜택을 주는 게 그 팀의 방침이더군요. 이 정도 팬서비스로 칠만 석 경기장을 굴리고 있는데, 우리가 오만 석에 만족하고 안주하면 말라 죽습니다.”

사만다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어··· 오히려 반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듣자니 보로는 요즘 관중석 좌석을 조금 줄였다던데요.”

스탠드를 꽉 채워서 홍보 효과를 노리는 한편, 찾아온 팬들에게는 더 나은 서비스를 하겠다는 의도다.

나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아주 합리적인 방식이죠. 우리가 북동부 최고를 다투는 팀, 뉴캐슬이 아니었다면 저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겁니다.”

북동부 최고를 다투는 팀이라는 표현이, 사만다를 침묵시켰다. 아무튼 그녀는 구단 레전드의 딸이고, 아주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뉴캐슬을 응원해온 팬이다.

“그럼 리스크에 대해서 검토해 보시죠.”

“이미 검토했습니다. FFP는 문제없을 겁니다. 유일하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증축공사 중 며칠간 그라운드를 쓸 수 없다는 건데, 그땐 다른 경기장을 빌리면 그만이겠죠.”

“아시다시피 이 근처에는 빌릴 만한 경기장이 없는데요, 회장님.”

사만다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나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은 처음부터 후보에도 넣지 않았다.

“상관없습니다. 유사시 웸블리를 빌릴 수 있도록 협의 마쳤으니까요.”

“웸블리요? 런던은 너무 먼 것 아닌가요? 잘못하면 홈경기인데도 지옥의 원정길이 되는데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시간이 더 늦어지면 따라잡을 수 없게 되니까요.”

나지프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울렸다.

“사만다, 선덜랜드는 이미 트레블을 해버렸습니다. 분명히 좋은 팀이고, 선수들이 선망하는 팀이 되겠죠. 하지만 아직 위대한 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퍼기의 맨유처럼 한 시대를 지배한 건 아니니까요.”

“이해했어요. 아직은 따라잡을 여지가 있지만, 더 늦어지면··· 퍼거슨 경의 맨유처럼 몇 년을 군림해버리면 그땐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군요.”

정확한 현실 인식, 그리고 과감한 타개책이었다. 사만다는 나지프에 대한 자기 아버지의 평가를 떠올렸다. 시어러가 직, 간접적으로 겪은 모든 보드진 중에서, 그래도 2위는 된다는 평가를 떠올린 사만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지프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빌어먹을.”

“왜 그러시죠, 회장님?”

대답 대신, 나지프는 모니터에 기사 하나를 띄웠다.

[선덜랜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증축 계획 밝혀··· 새 스탠드의 이름은 ‘트레블’ 스탠드.]

사만다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굳이 로커 파크에서 행사를 치른 거였네요. 유사시, 로커 파크를 임시 경기장으로 쓸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새삼, 사만다는 자신의 상사가 아주 우수하다는 것과··· 그래도 2위는 2위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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