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419화 (419/422)

위대해지는 순간 (2)

몰디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미세스 맥그리거, 에이미에게서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홍보 영상의 화면 너머로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우드 일가의 거실에 모인 일행들은, 에이미의 화사함보다는 영상의 다른 부분에 더 눈부셔하는 반응을 보였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5차 증축 계획, 이른바 ‘트레블 스탠드’의 추가건축 안내 이야기에 다들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증축될 추가 좌석은 오천 석. 만일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맨유의 올드 트래포드를 넘어, 잉글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축구장이 된다.

1위는 웸블리니까, ‘프리미어리그 클럽팀 홈경기장 중 가장 큰 축구장’이라는 표현을 써도 틀리지 않는다.

영상을 지켜보던 우드 부부와 브라더스가 환호했다. 기세를 탄 핫도그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창했다.

“이 도시에는 위대한 두 개의 팀이 있다.”

리버풀을 붉은 제국으로 만들었던 감독, 빌 샹클리의 명언을 살짝 비튼 멘트에, 맥주집 사장이 재빨리 호응했다.

“선덜랜드와 선덜랜드 유스!”

“그리고 이 도시에는 완벽한 두 개의 경기장이 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와 로커 파크!”

마일즈와 수잔, 심지어 제이슨과 아이반마저 신나 죽으려고 하는 상황이었지만, 브렌든은 홀로 냉정함을 유지했다.

‘이 도시에서 따지면 당연히 그렇게 되지··· 따지고 보면 ‘그 팀’은 뉴캐슬어폰타인 소속이라 옆 도시잖아?’

애초에 핫도그 사내가 인용한 문장의 원래 버전부터가 리버풀이 숙적 맨유가 아니라, 이웃 라이벌 에버튼을 비꼬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선덜랜드와 뉴캐슬 사이에서 곧바로 적용하기는 살짝 무리가 있다.

물론 브렌든은, 당연한 사실을 굳이 지적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비록 선덜랜드가 다른 팀과 사랑했던 과거를 따지지는 않는 구단이라지만, 그렇다고 브렌든이 전직 조르디였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모인 열성 블랙캣츠 사이에서, 혹시라도 뉴캐슬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곤란하다.

그가 침묵하는 사이, 화면 안에서는 에이미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FC 선덜랜드는, 이번 증축 공사 기간 동안, 블랙캣츠 여러분의 시즌 중 경기 관람에 어떠한 지장도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관람이 불가능해지는 경우, 로커 파크로 안내드릴 것입니다.]

그러자 맥주집 사장이 곧바로 반응했다. 아무래도 경기장 바로 옆에 자기 술집을 운영하는 중이라 이런 문제에는 민감했던 모양이다.

“로커 파크는 이만 석인데··· 대체가 되려나?”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에이미가 상냥하게 설명했다.

[그 경우, 수용인원 부족으로 입장하지 못한 시즌권 이용자께는, 일할 계산하여 차액을 환불해 드립니다. 이때 환불금을 선덜랜드 멤버십 포인트로 받으실 고객께는, 10%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맥주집 사장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 모습 지켜보던 브렌든은, 낮은 목소리로 핫도그 사내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아니,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좋아해?”

“생각을 해 보게. 선덜랜드 멤버십 포인트는 구단 제휴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잖아?”

“그렇··· 지?”

“즉, 포인트가 늘면 저 친구네 매출도 늘지 않겠나?”

“그런 속셈이었군.”

고개를 끄덕이는 브렌든을 향해, 핫도그 사내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구단에서도 엄청 머리 잘 쓴 거야. 아무래도 제휴 매장들 입장에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사용불가 상태가 되는 게 달갑지 않을 일이잖나?”

“아직 못 쓴다고 확정 난 건 아니지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아마 높은 확률로 아무 탈 없이 운영될 거라고, 브렌든은 그렇게 믿었다.

썬이 인수한 이후, 선덜랜드 운영에는 한 치의 실수도 일어난 적이 없다. 게다가 시공업체는 바로 그 파퓰러스니, 오차 따위가 생길 리 없다.

하지만 핫도그 사내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공사를 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사람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 아무튼, 이렇게 포인트를 뿌리면 어떻게든 매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상황을 이해한 브렌든이,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마치 고대 켈트 드루이드가 된 것처럼 열렬히 주술을 시도하는 맥주집 사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발 하루 정도는 멤버십 포인트 뿌리고··· 나머지 경기는 시즌 내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끝까지 치러지게 해주세요.”

언제 가져왔는지, 맥주집 사장은 구단주 비서 피규어까지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친구들이 말참견을 시작했다.

“구단주 비서에게 빌려면 공물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크레이프가 좋다던데."

옆에서 수잔도 거든다.

“대진운이면 모르겠는데, 구단 운영 관련이니까 썬에게 빌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어느새 구단주 피규어가 같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그런 어른들을 바라보는 크리스의 표정이 냉랭해지는 것만 같았다.

마찬가지로, 친구들을 다소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브렌든이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보통, 축구단들이 이런 것들까지 다 검토해 가면서 공사하던가?”

* * *

선덜랜드의 ‘트레블 스탠드’ 증축 계획에 완전히 묻힌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뉴캐슬 역시 세인트 제임스 파크 증축 계획을 야심 차게 추진하는 중이었다.

칠천 석을 추가로 늘려, 수용인원을 육만 석으로 확장한다는 게 뉴캐슬의 복안이었다. 이번에 잡은 목표대로 무사히 완공되면, 에티하드 스타디움과 안필드를 넘어, 잉글랜드에서 여섯 번째로 큰 경기장을 갖게 될 것이다.

혹자는 ‘축구로는 도저히 맨시티 리버풀 못 이기니까 경기장 사이즈라도 어떻게든 비비려는 수작’이라고 비웃기도 했지만, 뉴캐슬 팬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종합적으로 아주 야심 찬 계획이다. 단, 실제로 진행된다면.

뉴캐슬의 증축은, 선덜랜드처럼 매끄럽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우선 자금 집행부터가 문제였다. 구단주 본인이 리미트리스의 오너이기도 한 선덜랜드와 달리, 뉴캐슬의 나지프는 어디까지나 고용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즉, 끌어 쓸 수 있는 자금의 규모는 물론, 의사결정과 처리 속도에서 차이가 벌어졌다.

다른 한계도 있었다. 예를 들면···.

“회장님, 민원이 속출하는데요? 정말로 증축 공사 들어가면 경기장 앞 상권 다 죽는다고요.”

사만다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보였다.

구단 관계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니 그런 것까지 우리가 신경 써가면서 공사해야 해?’ 같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구단 레전드의 딸이자 뉴캐슬어폰타인 지역 주민이다. 상인들의 민원을 딱 잘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선덜랜드 놈들은 어떻게 이런 불만이 하나도 안 나오게 처리한 거지?’

사만다가 그렇게 발을 구르는 사이, 나지프는 책상에 놓인 도면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뭐 하세요, 회장님?”

“최대한 빨리 신축 경기장 도면을 결정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힘들군요. 시어러스 바 위치 문제가 자꾸 걸려서··· 확 없애 버릴 수도 없고.”

처음엔 농담하나 싶었는데, 나지프의 표정은 의외로 진지했다. 하긴, 무슬림에게 술집은 썩 친숙하거나 편안한 장소는 아니긴 하다.

그렇다고 정말로 경기장에 딸린 스포츠 바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고심하던 나지프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역시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겠군요.”

“전문가요?”

“그 팀 경기장 증축한 업체··· 파퓰러스에게 맡기면 되겠죠. 수시로 증축을 해봐서 이런 일에는 아주 전문일 텐데요."

회장의 판단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지만, 사만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회장님··· 파퓰러스 대주주가 누군지 아시죠?”

뉴캐슬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불하는 공사 자금의 일부가, 배당금이라는 형태로 선덜랜드 구단주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장이 꼬이는 기분이었는데, 심지어 그 자금이 뉴캐슬을 다양하게 엿먹일 선덜랜드의 총알이 된다고 생각하니 사만다의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지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선덜랜드가 우리 사우디 기름 안 쓰진 않을 거 아닙니까? 하다못해 선수들 차에 연료도 넣어야 할 테니···.”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그 팀’은 선수들에게 전부 전기차를 지급했어요.”

“제기랄.”

* * *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증축 설계는, 언제나처럼 파퓰러스 수석 건축가, 타일러에게 맡겼다.

구단주 사무실을 찾은 타일러는, 마치 현대미술이라도 하는 듯한 거침없는 손길로 건축 조감도며 청사진을 뚝딱 찍어내기 시작했다.

“스탠드 형태는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네.”

“어···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으로요.”

여동생이··· 말참견?

나는 황급히 주위를 살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츄러스도, 스틱브레드도 보이지 않았다··· 조만간 다미에게 부탁해서, 국내산 마른오징어 좀 보내라고 해야겠어.

물론, 타일러는 누가 이곳 구단주인지 구분 못 할 아마추어는 아니었다. 덤으로, 누가 자기네 회사 대주주인지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감도는 대체로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고, 희주의 참견은, 기껏해야 ‘그 팀’의 득점 정도로 낮은 비율만 포함되었다.

“그럼, 이대로 도면을 다시 가져와 보고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는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무심하게 말했다.

“그리고 듣자니, 다른 부서에 이웃 팀의 증축 의뢰가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희주의 입꼬리가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이웃 팀이라고 하시면, 우리의 오랜 이웃으로··· 우리 선덜랜드가 버스까지 만들어서 우호를 다지는 바로 그 팀이죠?”

“네.”

타일러는 진지하게 대답했지만, 희주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숨넘어갈 정도로 폭소했고,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종합적으로는 아주 만족한다는 표정이다··· 누가 보면 파퓰러스가 지 건 줄 알겠네.

타일러가 돌아가고 나서도, 희주는 한참 동안 소파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그렇게 희주는, 살짝 정신 사나울 정도로 낄낄거린 다음에야 진정했다.

대조적으로 나는 차분했다.

“오빠는 안 웃겨? 더비 라이벌이, 굳이 오빠가 투자한 건설사 골라서 입금시켜 주겠다는데?”

“그다지.”

축구단을 운영하기 전, 투자업계에서 수많은 경쟁사를 상대했었다. 개중에는 리미트리스가 투자한 곳은 오기로 피하겠다며 자존심을 세우는 곳도 있었지만, 한 수 배우겠다며 우리 방식을 최대한 따라 하는 곳들도 있었다.

경험상, 후자가 훨씬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치만··· 우리가 하는 대로만 따라오면, 영원히 우리하고는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거 아니야?”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실제로는 달라. 언젠가는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오게 되어 있어.”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오빠 입은 웃고 있는데?”

“타인위어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 자체는, 우리에게도 이득이거든.”

현시점의 선덜랜드는 맨시티나 첼시, 리버풀, 맨유 같은 팀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타인위어가 런던이나 맨체스터, 머지사이드만큼 축구로 유명한 지역이 되지는 못했다··· 다른 지역에는, 위대한 팀이 두 개 있으니까.

모처럼 미들즈브러가 승격했고, 뉴캐슬은 구단주가 바뀌었다. 우리까지 세 팀이 노스이스트의 패권을 치열하게 다투는 구도가 되면, 지역 전체의 위상이 올라가고 축구의 열기도 달아오를 것이다.

“··· 그리고 지역 내 최강팀이 가장 직접적인 수혜를 입겠지. 이해했어.”

빙긋 웃는 여동생을 향해, 무덤덤하게 지시했다.

“알았으면 ‘그 팀’은 신경 끄고, 다른 팀 행보나 체크해.”

“다른 팀? 보로? 아니면 시티?”

“둘 다.”

덤으로 리버풀과 첼시, 토트넘, 아스널, 그리고 맨유까진 챙겨 주면 좋겠다. 유럽 전체로 눈을 돌리면 파리, 레알, 뮌헨, 유베가 신경 쓰이고.

흥행도, 팬 서비스도, 노스이스트의 주인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축구단의 최우선 미덕은 역시 성적이다.

특히 우리는 디펜딩 챔피언, 지난 시즌의 트레블 팀이니··· 올해부터는 더 거센 도전에 마주하게 되겠지.

축구 역사에는, 이른바 ‘위대한 팀’이 몇 개쯤 존재한다.

붉은 제국 리버풀, 퍼거슨 경의 맨유, 밀란 제네레이션, 펩 바르샤, 챔스 3연패 레알··· 그런 팀들은 예외 없이, 여러 시즌 동안 강력함을 유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아직, 그들만큼 위대한 팀이 되지는 못했다. 오랜 블랙캣츠로서의 팬심을 더하자면, 이제 겨우 입구에 섰다는 느낌이다.

다가올 시즌은 지난 시즌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 것이다. 우리를 만나는 모든 상대가, 디펜딩 챔피언 선덜랜드를 경계할 테니.

그러니 우리도 더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다른 팀의 행보를 관찰하고,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위대해지는 순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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