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421화 (421/422)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진곡 (1)

<이 클럽은 내 인생 그 자체였다 - 밥 페이즐리>

사이드라인에서 팔짱을 낀 채, 브라이언은 프리시즌 연습 경기를 치르는 선덜랜드 선수들을 지켜보았다.

지난 시즌 트레블을 차지한 스쿼드는 변함없이 강력했고, 선수단의 사기 또한 최고조였다. 감독으로서는 보기만 해도 흐뭇한 장면에 브라이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올 시즌은 처음으로 영입 없이 치르는 거였지?”

크리그가 은퇴로 이탈했지만, 베리와 터너의 기량이 본격적으로 피어났기에 스쿼드 뎁스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결국 고심 끝에, 브라이언은 올 시즌 선수단 보강이 없어도 괜찮다는 의견을 밝혔고 구단주 또한 동의했다.

옆에서 샐리가 새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세상에 영입 없이 새 시즌 치른다는데 웃는 코칭스태프는 감독님밖에 없을걸요?”

“그치만··· 우리 스쿼드는 영입 없어도 지나치게 강력할 정도잖아.”

“하긴, 이제 우리 1군 선수는 메시와 하퍼, 레이 셋만 삼십 대죠. 나머지 멤버들은 이제 겨우 이십 대 중반이고요··· 부상만 없으면 굳이 영입으로 분위기를 흐릴 필요는 없겠죠.”

“뭐, 장기 부상은 안 나올 거야. 우리 메디컬 팀은 축구계에서 가장 우수하니까··· 정 보강이 필요하면 이번엔 겨울에 사 달라고 하지 뭐.”

“그러게요. 정 급하면 U-18 애들을 콜업해서 한두 경기 때우는 방법도 있죠.”

“그것도 괜찮네. 리타이어즈 유니폼 입고 직접 상대해 보니 우리 애들 진짜 빡세더라고. 브로가 아주 잘 키웠지.”

“구단주님이 잘 키우신 건 동의하지만, 애들 상대하기 빡센 건 그냥 감독님 축구 실력이 별로라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샐리 또한 웃고 있었다. 선덜랜드 유소년 팀은, 축구 관계자 입장에서는 거의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테오와 바르카, 월터, 필은 확실한 당첨 복권 취급이었고, 주장 짐은 지금 당장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팀은 이미 충분히 강력하다. 그리고 지금의 주전 선수들이 은퇴를 고민할 때쯤엔, 유소년이 자라나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어쩌면 트레블 세 번이 생각보다 빨라지겠는데.’

정말로 트레블 세 번을 달성하자마자 바로 은퇴해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감독으로서 트레블 세 번은 정말 역사에 남을 위업이다. 그리고 스태프를 다소 험하게 쓰는 경향이 있는 선덜랜드 구단주로부터 ‘은퇴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 보람찬 일이다.

“해리슨! 템포 더 끌어올려! 바스티아노는 더 들어가고! 다들 폼을 바짝 끌어올려! 이번 커뮤니티 실드는 무조건 이겨야 하니까!”

그날, 선덜랜드는 인테르를 홈에서 꺾으며 프리시즌 전승 기록을 유지했다. 지켜보는 감독으로서는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한 경기력이었다.

* * *

한편 인테르와의 연습 경기를 마친 직후, 분석팀 멤버들이 서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날,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우뚝 선 브라이언이 유난히 늠름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휘하는 내내 기백이 아주··· 연습 경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죠?”

“맞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복장도 이상해. 칼정장 입으셨던데··· 평소엔 그냥 트레이닝복 아니었어?”

“칼정장이 뭡니까. 그 정도면 거의 연미복이죠.”

그러자, 분석팀원들 사이에서는 각종 증언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감독님과 수석 코치님이 오늘따라 사이가 유난히 좋아 보였습니다.”

“감독님이 콧노래를 부르시는 걸 들었습니다. 솔직히 감독님 허밍 솜씨가 별로라 장담하긴 어렵지만, 분명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진곡이었습니다.”

그러자 분석실 신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독님 혹시 군대 가셔요?”

“그게 아니고, 결혼 행진곡!”

잠시 후, 행진곡을 들었다는 팀원이 허밍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브라이언이 직접 흥얼거린 녹음본을 틀었는데, 그때는 지옥에서 울려퍼지는 악마의 행진곡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팀원이 고쳐 부르자, 반응이 바뀌었다. 아주 뜨겁게.

“결혼식 행진곡이네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진곡이요!”

“그렇긴 한데··· 네가 방금 부른 건 축혼 행진곡 아니야?”

“이게 결혼 행진곡 아닙니까, 팀장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진곡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네.”

“워낙 유명한 곡 두 개가, 입장용과 퇴장용 세트로 쓰이다 보니 아무래도 헷갈리는 거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토마스가 눈을 빛냈다.

“아무튼 감독님이 그 허밍을 하셨단 말이잖아요!? 그럼 마침내 감독님과 수석코치님이···?”

루벤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게만 된다면 장차 선덜랜드 차차기 감독으로 아주 희대의 전술 천재가 등장할 것 같긴 한데···.”

“차기 감독이겠죠. 감독은 수명이 길잖아요.”

“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 이야기는 놔두자고. 거긴 애 이전에 결혼 계획부터 세워야지. 그 전에 둘이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지부터 체크하고.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아니거든.”

정확히 표현하면, 브라이언과 샐리는 둘 다 연애에 관심이 없다는 게 루벤의 평가였다.

“그럼··· 감독님은 결혼 행진곡은 왜 부르신 겁니까? 연미복은 왜 입으시고요?”

“결혼식 때문이겠지··· 구단주님의.”

루벤이 생각하기에, 브라이언으로서는 아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상황이긴 했다.

1군 감독으로서, 구단주의 결혼 시즌에는 당연히 화끈한 승리와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개인적인 친분 관계도 걸려 있다··· 친분만 따지면, 신랑의 베스트맨 역할은 마땅히 브라이언이 맡아야 할 것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구단주님 곧 결혼하시죠? 날짜 나왔나요?”

순간, 루벤은 말을 잇지 못했다.

* * *

결혼을 진작에 결심하고, 심지어 프러포즈까지 마쳤는데도 막상 결혼식까지는 신경 쓸 게 많았다.

식장부터 일정까지, 골라야 할 것투성이다.

“구단의 VVIP 고객 우드 부부의 결혼식부터, 충성스러운 캡틴과 스태프의 결혼식까지··· 리버뷰 브래서리야말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실 구단주님께 어울리는 최고의 식장임을 자부합니다!”

쉐프 카일의 웅변에, 시설관리팀장 조엘이 인상을 썼다.

“에잉··· 구단주님 결혼식이라면 마땅히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전체를 써야지. 그라운드 잔디 위에서, 라인 위에서!”

옆에선 리지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다. 그녀에게서, 결혼식에 어울리게 예쁘게 잔디를 깎아놓겠다는 열의가 전해졌다. 혼잣말을 듣자니, 꽃말에 영원한 사랑의 의미가 담긴 모든 꽃을 잔디 위에 수놓겠다는 야심이 담겼다.

“팀장님 마음은 알겠는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곧 증축 공사 들어가잖아요. 설마 구단주님을 공사판에서 결혼시킬 생각이십니까?”

“이봐, 타일러가 시즌 진행에 차질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니 구단주님 결혼식에도 차질이 없을 거 아닌가?”

“맞아요. 그리고 경기장이라면 유사시 로커 파크도 있는데요.”

옥신각신하는 주위를 바라보니, 내 머리가 다 아프다. 그리고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오른팔도 좀 뻐근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오른팔에 매달리듯 팔짱을 끼고 머리를 기댄 다미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가면 사회적 오른팔과 생물학적 오른팔이 융합할 기세다.

“어디가 좋을 것 같아?”

그러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전 사장님이 고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요. 리버뷰 브래서리도, 축구장 잔디 위도, 리미트리스 구내식당도,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전부요."

“이상한 게 섞여 있는 기분인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왕실 전용이라, 돈을 아무리 써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설마 거기서 결혼하는 게 다미의 소망은 아니겠지.

“괜찮아요. 저는 그냥 동사무소 앞에서 혼인신고만 해도 행복하니까요. 신랑이 사장님이고, 제가 신부기만 하면 다른 건 필요 없어요.”

다미의 헌신적인 발언에 뿌듯해지는 한편, 냉정하게 생각하면 평소 그렇게 믿음직하던 신의 오른팔, 리미트리스의 넘버 투조차 결혼식장 고르는 일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이상하다. 원래 결혼식에서는 그냥 신부 말만 들으면 고생 안 한다고 그랬는데.”

페르난데스와 톰슨, 심지어 잭까지 그렇게 조언했는데··· 내가 속은 건가?

그나마 일정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정했다. 식장에 비하면 답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시즌 개막 일주일 전에 결혼식, 커뮤니티 실드 당일에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계기는 앨리스의 반응이었다.

[트로피를 하나 더 들면 그때 결혼식을 치르는 게 어떠세요? 우승 기념으로요. 결혼식의 기쁨을 신성한 트로피와 함께 맞이할 수 있고, 심지어 트로피 들고 입장하실 수도···.]

듣자니 꽤 솔깃했다. 특히 트로피 들고 입장한다는 부분이. 하지만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우선 앨리스의 계획대로라면, 구단주인 내가 부득이하게 시즌 중에 결혼식을 치른다는 점이 걸린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결혼식이 하염없이 뒤로 밀린다는 게 문제다.

다미에게 약속한 것도 있어서, 이번 여름 이적시장 마감일 전에 결혼할 생각이라고 밝히자···.

[커뮤니티 실드는 여름시장 마감일 이전인데요? 슈퍼컵도요.]

앨리스의 마지막 발언이 결정적 힌트가 되었다. 결혼식을 그 전에 올리고, 커뮤니티 실드 날짜에 맞춰서 돌아오기로.

트로피와 함께 결혼한다는 느낌도 살릴 수 있고, 여름 이적시장 마감일 전에 결혼한다는 내 약속도 지키면서, 시즌 중 경기 관람에 지장이 없다는 세 가지 장점에 다들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우리는, 식장 문제를 결정하지 못했음을 깜빡 잊고 말았다.

* * *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괜찮겠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찬성입니다. 직접 해본 사람의 추천이니까, 신뢰도 높은 리뷰 아닙니까?]

영국에서 하기엔 꽤 아슬아슬한 농담이다. 나보고 왕족이 되라는 소리니까. 단, 마침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신분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농담으로 받았다.

“설마 조건으로 신부 교체가 따라붙는 건 아니죠?”

[하핫. 들켰군요. 실은 제게 딸이 있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축협 회장, 왕세손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유쾌했고, 농담을 멈출 생각도 별로 없어 보였다.

참고로 왕세손의 딸은 나도 안다. 장차 대영제국의 프린세스 로열이 될 게 유력한 공주라 유명하거든··· 덕분에 나이도 대충 안다.

대략 열 살이었지, 아마.

뭐, 이런 종류의 농담은, 실제로 영국 왕실에 나와 결혼할 수 있을 만한 나이의 미혼 여성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종류긴 하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추천하고 싶지만··· 집에서 허락을 안 해줄 것 같군요. 그래서 말인데, 웸블리는 어떻겠습니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쓰라는 제의도 난감했는데, 웸블리라니··· 스케일이 더 커졌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내 결혼식을 무슨 콘서트 같은 걸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일정도 딱이잖습니까? 웸블리에서 결혼하고, 신혼여행 갔다가 다시 런던에 돌아오는 거죠. 커뮤니티 실드도 웸블리에서 하니까요.]

축협 회장의 목소리는 퍽 진지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잠깐 속을 뻔했다. 어차피 중간에 신혼여행 갈 거니까, 굳이 웸블리에서 결혼해야 할 이유는 없는데도.

[그나저나, 그럼 선덜랜드가 커뮤니티 실드에서 지면 큰일 나겠습니다? 구단주가 일부러 결혼식 날짜까지 맞춰서 허니문에서 돌아오는 건데···.]

나는 그 이야기에, 반사적으로 브라이언을 떠올렸다.

서양식 결혼을 앞두고는 썩 미덥지 않은 존재이기는 하다. 손재주도 나쁘고, 옷맵시는 형편없으며, 노래는커녕 허밍마저 못 부르고··· 마이크워크가 아주, 아주 별로니까.

자연히 베스트맨 스피치도 아주 엉망으로 할 게 뻔해서, 오죽하면 톰슨이나 헨도에게 맡겨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다.

그래도 한 가지는··· 딱 한 가지만은 믿을 수 있다. 내 친구는 최고의 전술가이고, 그가 이끄는 우리 팀은 세계 최강이라는 걸. 커뮤니티 실드에서 질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하지만 자신 있게 대답했다.

“경기에서는 지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그거참 다행이군요. 아무튼, 다시 한번 결혼을 축하합니다. 축구협회 회장이자 영국 왕세손으로서 꼭 참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식장은 어디라고요? 신혼여행 전에는 결정되는 겁니까?]

회장의 유머러스한 덧붙임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웸블리와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둘 다 아니니까, 시티 오브 선덜랜드까지는 오셔야겠습니다.”

[이미 마음에 둔 장소가 있는 것 같군요.]

“네, 결혼식장으로 괜찮을지··· 신부가 좋아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솔직하게 털어놓자, 회장의 목소리도 진지해졌다.

[썬, 당신은 지금보다 더 이기적으로 굴어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을까. 괜히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권력남용은 아닐까··· 그런 생각은 접어두세요. 그래도 일생일대의 이벤트 아닙니까?]

회장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부드럽고 또 점잖았다. 마치 가족에게 충고하는 것처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나이를 따지면, 회장은 내 큰형님뻘이긴 할 테니까.

그래서 곧바로 대답했다.

“네.”

[좋습니다. 아, 그래도 신부하고는 꼭 의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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