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진곡 (2)
통화를 마친 내 귓가에, 회장의 이야기가 자꾸만 맴돌았다. 나는 좀 더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특히 결혼식이라면 더욱 그렇다는 이야기가.
그래도 신부하고는 꼭 상의하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축협 회장··· 아니, 왕세손 본인의 부모부터 썩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을 보냈음을 알기에, 그의 조언이 더욱 절절하게 들렸다.
그리고 아무리 결혼이며 연애에 무관심한 나라도, 상식은 있다. 결혼식과 출산을 앞두고 아내에게 흠잡힐 짓을 했다가는 평생 간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가뜩이나 다미 기억력은 거의 반영구적인 수준이란 말이지.
그래서 나는 곧바로 다미를 찾았다.
“우리 결혼식장 말인데.”
“네.”
다미의 초롱초롱한 눈동자 가득 떠오른 기대심에 살짝 망설여졌지만, 일단 지르기로 했다··· 싫다고 하면 바꾸지 뭐.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서 해도 괜찮을까?”
지금보다 좀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한다면, 나로서는 그 장소 말고는 다른 후보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
소년 시절, 내가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던 터전이자, 결국 라인을 넘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던 벽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미련이 없어진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공을 차는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결혼식장으로 매우 적합한 환경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시즌 개막을 앞두고, 우리 선수들의 훈련에 방해가 되는 것도 신경이 쓰이긴 한다. 그래서 다미가 반대하면 곧바로 포기하려고 했다.
다미의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네.”
“아니, 그렇게 즉흥적으로 대답하지 말고. 따지고 보면 거기는 피로연장도 따로 없고···.”
“괜찮아요. 근사한 건물도, 훌륭한 식당도 딸려 있잖아요?”
“클럽하우스와 구내식당이지만 말이지.”
“구내식당이긴 해도, 솜씨는 아주 좋다고 들었는데요. 그래도 정 불안하시면··· 제가 요리할까요?”
“날 결혼식 당일 신부한테 요리시키는 막장 신랑으로 만들려고?”
그러자 다미가 눈웃음을 보냈다.
“뭐 어때요. 앞으로 같이 있는 날엔, 매일 해드릴 텐데··· 하지만 혹시 제 요리 실력이 미덥지 못하신 거면, 고든을 초청할게요.”
“아니, 우리 식당 조리사들이면 충분해. 리버뷰 브래서리 쉐프 카일도 있고. 하지만 훈련장 환경 특성상 음악은 틀기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행진곡은 틀어야 할 거 아니야.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행진곡을.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면 되죠. 사실은 이미 섭외도 끝났어요. 선덜랜드 시립 교향악단하고 로열 필하모닉이 합동 공연할 거에요.”
“언제 섭외했어? 아니, 그보다 그런 오케스트라들이 개인 결혼식에 브금 깔아주러 오기는 하고?”
나하고 다미가 결혼하는 마당이다.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신랑-신부의 조합이니 결혼식 비용은 조금도 문제가 아니겠지만··· 보통 예술 하는 사람들은 콧대가 좀 높지 않던가?
“축협 회장님께 ‘로열’ 필하모닉 소개를 부탁드렸고, 선덜랜드 ‘시립’ 교향악단은 이곳 시장님이 직접 파견 결정하신 거라서 말이죠.”
우리 재력에, 권력까지 더해졌다는 뜻이다. 그럼 순순히 와서 연주해야겠지.
“아, 그리고 축가는 드림스케이프가 맡을 건데요. 꼭 자기들이 부르게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종합하면, 나는 이제 신부 드레스만 고르면 된다고 한다··· 꽤 어려운 선택이긴 하다. 다미는 뭘 입혀도 예쁜 데다, 애초에 본인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는 전부 빼놨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그런 걸 다 준비했어? 결혼식장에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저는 관심 없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 사장님이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고 대답했죠.”
정말로 우리가 ‘어디서’ 결혼해도 아무 지장이 없도록 미리 준비해둔 모양이다. 하긴, 다미는 단 한 번도 나한테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미가 배시시 웃었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를, 완벽한 식장으로 바꿔 놓을게요.”
* * *
이후,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을 정도다.
다미는 결혼 기념으로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를 더 확대해서 열겠다는 말과 함께, 제 3세계의 공장을 더욱 늘렸음을 보고했다. 자기 딴에는 혼수 대신이라서 사비까지 털었다는데···.
···역사상 가장 비싼 혼수품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뭐, 신부가 좋다면 넘어가야지.
그렇게 다미가 리미트리스의 2인자다운 수완을 과시하며 척척 준비를 해나갔지만, 그렇다고 구단 스태프들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샘 아저씨의 은퇴 이후 선덜랜드 최선임 스태프가 된 시설관리팀장 조엘이, 구단을 대표해 이번 결혼식 준비의 지휘를 맡았던 것이다.
“리지! 37번 그라운드 옆으로 카펫을 깔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물론이죠. 배수 위치를 조절할게요.”
“땡큐, 그리고 카펫 옆에는 구단주님 오시고 획득한 트로피 모형을 빠짐없이 깔아야 해··· 아드리안, 트로피 모형은 언제 도착하나?”
“미니어처는 내일 나옵니다. 등신대는 모레 이후고요.”
고맙게도, 다들 무척이나 의욕적이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구단주의 결혼 준비는 구단의 업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살짝 돌려 말했더니 조엘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FC 선덜랜드는 뉴캐슬 산하의 위성 구단이 됩니다.’라고 통보받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톰슨이 한마디 참견했다.
“썬, 행복한 결혼 생활의 원칙은, 일단 쓸데없는 말을 안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말을 아꼈고, 조엘은 다시 행복해졌다.
그리고 부모님 인사 자리에서는···.
“혹시라도 우리 애가 속상하게 하면 바로 이야기해요. 내가 따끔하게 이야기할 테니.”
“네, 어머님.”
“그리고 혹시라도 희주 쟤가 시누이 노릇을 하려고 까불면···.”
그러자 희주가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아닌데, 엄마. 나 다미 언니랑 되게 친한데···.”
“앞으로 제가 희주 씨에게 더 잘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님.”
살짝 눈웃음을 치면서, 다미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희주가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희주 쟤가 시누이 노릇을 할 수 있다고? 그것도 다미 상대로? 차라리 짐 상대로 페널티 킥을 성공시킬 확률이 훨씬 높아 보이는데 말이지.
그래도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톰슨의 조언을 상기하면서.
그렇게 다미는 무사히 우리 부모님을 구워삶았고, 나는 무사히 다미네 부모님께 따님을 달라는 전통의 멘트를 날렸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식 당일에는 축협 회장은 물론, 페르난데스, 톰슨과 헨도, 은사 로저스와 샘 아저씨를 비롯한 수많은 하객들과 마주했다. 신랑에게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덕분에 옆에서 희주가 또다시 중얼거리는 일도 생겼다.
“핸드크림 빌려줄까?”
“고오맙다. 앞으로는 그냥 장갑을 줬으면 하는데.”
어째서 영국 결혼식에는, 신랑이 흰 장갑을 끼는 문화가 없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이대로라면 손이 부르틀 것 같다.
그래서 무심코 으르렁거린 건데, 희주에게는 좋은 건수였던 모양이다.
“앞으로? 왜, 또 결혼하고 싶어서? 설마 일부다처제 같은 것에 눈을 떴다거나···.”
“이 시간 이후, 그러니까 다음 하객부터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괜히 다미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한편, 주례는 로저스 감독에게 부탁했고, 베스트맨 역할은 브라이언과 잭이 나눠 맡았다.
틀림없는 축구 천재이지만 스피치에는 소질이 없는 우리 감독을 배려한 선택이었는데, 막상 브라이언의 연설은 꽤 훌륭했다.
“반복되는 연습이, 다소 가혹하다 느껴질 정도의 훈련만이 최고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도 이번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어째서인지 결혼식 시작부터 목이 쉬어 있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신랑 썬은, 우리 모두가 아시다시피 어릴 때부터 바로 그렇게 훈련했을 만큼 축구에 진심이었고, 또 선덜랜드에 진심이었으며···.”
이후에도 행사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나보다 몇 달 먼저 결혼했다는 이유로 제법 여유가 생긴 잭이 요소요소 적절히 훈수를 뒀고, 신부 들러리로 붙은 에이미도 맹활약했다.
뭐, 사실 다미 정도라면 처음 치르는 결혼식 자리라고 해서 딱히 어리버리하게 구는 일은 없다. 실제로 다미는 마치 사백팔십 번쯤 결혼해본 사람처럼 능숙했고, 자연스러웠다. 유일하게 당황해서 굳어진 순간은, 딱 한 번뿐이었다.
나하고 처음 키스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
* * *
서약과 반지 교환에 더해, 한국식 풍습까지 섞었다. 양가 부모님들께 큰절까지 올린 것이다. 이로써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나는 마침내 다미와 부부가 되었다.
순간, 오케스트라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행진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멘델스존의 웨딩 마치에 맞춰, 나는 다미의 손을 잡은 채 잔디에 깔린 레드 카펫 위를 걸었다.
“확실히 프로 오케스트라는 대단하네. 따로 안내 같은 거 없이도 우리 걸음에 연주를 맞추고.”
내 혼잣말에, 다미가 옆에서 속삭였다.
“그리고 사장님께서 키우신 이 팀 스태프들도 아주 대단해요. 저와 사장님 보폭이나 걷는 속도를 계산해서 카펫 길이를 정했으니까요.”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기분 탓인지 카펫이 조금 긴 것도 같다.
그때,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바뀌기 시작했다. 비록 결혼행진곡보다 더 유명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선덜랜드에서는 그 어떤 노래보다 유명한 곡이었다.
경기장에서, 매치데이마다 흘러나오는 곡이니까.
Wise man say, only fools rush in.
“이것도 러브송이라 결혼식에 꽤 어울리긴 하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달콤한 러브송이라 선곡한 건 아니지만요.”
다미의 눈이 살짝 휘었고,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곡의 분위기가 점차 바뀌기 시작한다.
관현악단의 연주답게 부드럽게 시작된 선율이 점차 경쾌해졌고, 타악기의 거친 비트도 섞이기 시작했다. 하객의 합창 또한 점차 커진다.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러브송이 아니라, 매치데이 응원가 버전이다. 아니, 열기를 따지면··· 매치데이를 훨씬 뛰어넘는 것만 같다.
“오늘, 도시의 모든 사람이 이 결혼식에 함께하고 있어요. 풋볼 스퀘어에서, 로커 파크에서, 도시 곳곳에서요.”
다미의 설명에, 순간적으로 시야가 살짝 흐려졌다. 그래도 명색이 결혼식을 치르는 신랑이니만큼, 끝까지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아무리 결혼 앞두고는 좀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하지만··· 도시 사람들에게 굳이 이런 부탁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러자 다미가 곧바로 대답했다.
“저는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어요. 지시하지도 않았고요. 그저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에요.”
들어줬다고?
“보통의 신부보다 조금 더 걸어도 되도록, 조금 편한 신발 신어달라는 부탁··· 그리고 웨딩카 대신 사인교를 이용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동의했어요.”
나와 다미는, 그렇게 훈련장 입구까지 길게 늘어선 카펫을 따라 걸어 나갔다. 멀리 보이기 시작한 울타리 너머에는, 선덜랜드 시민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그날, 나와 다미의 ‘결혼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썩 하객다운 복장은 아니었다. 정장을 입은 이는 아무도 없었고, 전부 선덜랜드 유니폼··· 홈 킷을 입었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 앞을 가득 메운 그 붉은 물결 앞에, 한국 전통 혼례에 쓰일 법한 가마 두 개가 놓여 있다.
다미가 말한 사인교인 모양인데, 수수한 쪽은 아마도 신랑인 날 위한 가마일 테고, 좀 더 화려한 장식이 신부용이겠지.
우리가 자리를 잡자, 가마가 허공에 번쩍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Sun! Sun! Sun!
어느새 -덜랜드를 빼먹기 시작한 사람들, 가마를 헹가래치듯 위아래로 흔드는 붉은 물결은 마치 영원처럼 이어졌다.
아카데미 정문에서 풋볼 스퀘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와 그 옆에 세워진 내 동상을 지나··· 리미트리스 하이웨이 진입로에 도착할 때까지.
“사실은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싶지만,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겠지?”
의외로 빠르게 왔다고는 생각한다. 누가 가마를 들고 걷는 게 아니라, 미리 밀집한 군중들의 머리 위를 헹가래로 이동하는 방식이었으니까.
멀미가 좀 나긴 했지만, 이것도 다 추억이 될 거다.
그래도 여기서부터는 차로 다녀와야겠지. 고속도로에 행렬이 진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국도로 돌아가면 필연적으로 뉴캐슬어폰타인을 지나게 될 테니까.
아무리 그 동네를 카퍼레이드로 통과하는 게 내 취미라지만, 결혼식에서 도발은 좀 그렇다.
나는 다미를 에스코트해서, 갓길에 미리 세워둔 선덜랜드 한정판 로드스터에 올라탔다.
“감사합니다, 블랙캣츠 여러분.”
시동을 걸고 손을 흔들자, 온 사방에서 왁자지껄한 함성이 몰려들었다. 축하한다, 잘 살아라, 건강한 아이 낳아라··· 전부 고마운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애 열한 명은 살짝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그 함성들이, 차츰 하나의 목소리로 바뀐다.
“선덜랜드에 와 줘서 고마워!”
행진곡 리듬 같은 박수, 심장 박동 같은 발 구름을 신호 삼아, 나는 로드스터의 액셀을 힘차게 밟았다.
구단주가 없는 풍경
<축구에는 시인들이 많지만 시인들은 많은 타이틀을 따지 못한다. - 주제 무리뉴>
선덜랜드의 요나스 ‘요니’ 뮐러가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 도착했을 때, 정문 철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물론 잠겨 있지는 않았다. 이맘때면 잔디관리인 리지는 이미 출근해서 훈련장을 싹 정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 다만, 문이 닫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요니에게는 생경한 느낌이었다.
안에서 공 차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잠시 후, 요니는 육중한 소리가 나는 철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제 결혼식이 열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훈련장의 풍경은 평소와 거의 똑같았다. 그만큼 스태프들이 완벽하게 일한다는 증거지만, 지금은 그저 사람만을 지워 놓은 느낌이라 오히려 을씨년스러웠다.
어제 하루, 구단주의 결혼식 당일을 제외하면, 이곳에서는 공 차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었다. 물론 메디컬 팀은 질색하는 풍습이지만, 일부 연습광들을 완벽히 통제하기는 어려웠다. 아무튼 선덜랜드는 구단주부터가 새벽에 공을 차던 팀이다.
하지만, 이제는···.
“크리그 씨도 없고. 구단주님도 없고.”
매일같이 나와 있던 크리그는 이제 은퇴했고, 구단주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물론 이희성은 일주일 후 돌아오겠지만, 앞으로도 새벽마다 공 차러 나올지는 모를 일이다.
“뭐, 결혼은, 누군가의 삶을 바꿔 놓는 법이니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바스티아노와 베리, 해리슨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크리그나 이희성만큼 부지런하지는 않다. 따라서 당분간은 혼자 공 차는 시간이 이어질 것임을 요니가 직감했을 때.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소시지 안 필요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굳이 돌아볼 필요조차 없었다. 요니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공을 곧바로 발로 끌어당겨 백 힐 패스를 넣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캡틴?”
“연습하러. 아니면 뭐 하러 아카데미에 오겠어?”
“음··· 결혼하러 오는 경우도 있던데?”
“아깝다···! 난 이미 해버려서.”
등 뒤에서 들려온 너스레에, 요니는 비로소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그의 오랜 친구, 잭이 싱긋 웃었다.
“잠이 오지 않더라고. 그래서 일찍 깼어. 아마 구단주님께서 안 계셔서 그런 거 아닐까 싶긴 한데.”
“누가 보면 어디 멀리 가신 줄 알겠다.”
“팔라우면 멀지. 시차만 아홉 시간이라던데. 거의 지구 반대편이야.”
“그렇긴 한데, 네 표정은 마치 달나라쯤 가신 것 같아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남 일처럼 들릴 수도 있겠는데.”
선덜랜드가 자랑하는, JJ 듀오의 어깨가 동시에 축 늘어졌다. 아내 에이미로부터 ‘주인에게 버림받은 유기견’ 같은 상태가 되었다고 평가받은 잭은 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사실은 요니도 잭 못지않았다. 오랜 듀오가 그렇듯, 둘의 표정은 거울처럼 똑같았던 것이다.
“실은 악몽을 꿨어. 우리는 7시즌간 승격하지 못하고, 팬들은 그때처럼 펑펑 울고··· 요니 너는 재정 때문에 다른 팀에 팔려가고, 스태프 인원 감축 통보에 에이미는 구단 그만두고 카페에 일하러 가는···.”
“어휴, 듣기만 해도 끔찍하다.”
“구단주님이 안 계셔서 그런가봐. 더 무서운 건, 가만 생각해 보면 전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던 일이라는 거야.”
“대체로 동의해. 나보다 네가 먼저 팔려나가긴 했겠지만.”
실제로 에이미는 이미 한 번 잘렸었다. 이희성의 전임 구단주, 로널드 시절의 일이다. 또한 로널드였다면 옛 감독 라일 파커를 경질하지도 않았을 테니, 팀은 승격에 계속 실패했을 게 뻔하다.
그리고 잭에게 들어온 빅클럽의 오퍼를, ‘선덜랜드 선수를 갖고 싶으면 그냥 피규어나 사가라’며 단칼에 잘라 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구단주님이 이렇게 오래 자리 비우신 적, 처음이지?”
“그러게··· 구단주님 보고 싶다.”
그때, 또다시 목소리가 났다.
“그럼 보여줄까?”
훈련장 입구에서, 에디가 특유의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지금은 아침 7시, 사람이 가장 잔인해지는 시간이지. 그리고 팔라우와의 시차는 9시간, 따라서 그쪽은 한낮이다. 통화하면 받으시겠지. 영상통화 넣으면 얼굴도 볼 수 있어.”
그러자 잭과 요니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신혼여행 떠난 새신랑에게 영통 넣는 사람이 어딨냐.”
하지만 에디는 둘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람 머리는 헤더 따내라고 달려 있는 게 아니야, 이 친구들아. 왜 신행을 팔라우로 가셨겠어?”
잭이 침착하게 받아쳤다.
“그야 예전부터 사모님께서 팔라우 노래를 부르셨기 때문이지. 주장단에게는 말씀해주셨는데··· 에디 넌 못 들었나 보구나?”
“다, 당연히 나도 들었지. 아무튼 내 말은 사모님이 왜 팔라우를 고르셨는지야··· 당연히 한국과 시차가 같으니까지. 업무상 필요한 연락을 받기 위한 복안 아니겠어?”
어이가 없어진 잭과 요니가 서로를 마주 본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최새벽, 그리고 마르틴이었다.
“잘못 짚으신 것 같은데요. 일단 한국 직장인들은 신혼여행 떠난 오너 부부에게 전화 쉽게 못 걸거든요.”
“새벽의 의견에 동의를 표함. 연락이 필요하다면 그냥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는 명확한 방법을 통해 더 간편하게 달성이 가능.”
어느새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는, 선덜랜드 1군으로 가득했다. 평소 아침 훈련을 안 나오던 선수들까지도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니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니, 다들 어쩐 일인데?”
“그야 엿새 뒤가 커뮤니티 실드라서지.”
“어··· 누가 들으면 챔스 결승 엿새 전에도 아침부터 나와서 훈련하신 줄 알겠어?”
“그땐 구단주님 결혼 안 하셨잖아.”
“그건 그래.”
잠시 후 선덜랜드 1군이 마치 경기 날처럼 원진을 짰고, 언제나처럼 주장 잭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매일같이 나오자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커뮤니티 실드까지, 앞으로 딱 엿새 동안은 후회 없이 준비하자. 신혼집 장식장에 꼭, 커뮤니티 실드 트로피를 넣어 드리는 거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크리그가, 조용히 몸을 돌렸다.
“굳이 참견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군요.”
그의 이야기에, 옆에서 메디컬 팀장 버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메디컬 팀으로서는 말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데요.”
사실 둘은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크리그는 오랜 습관 때문에, 그리고 버드는 선수들을 관리하려고 아카데미에 나왔다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예전에 제 훈련엔 학을 떼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었죠.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그건 메디컬 팀이 크리그 선수의 훈련에 터치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너스레를 떠는 버드를 향해, 크리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늘도 터치 안 하실 겁니까?”
“네. 얼마 전에 프리시즌 휴가가 있었으니, 오히려 훈련 강도를 살짝 늘려도 괜찮을 겁니다. 지금처럼 선수들이 모두 참석한 것도 좋고요. 이러면 이따가 정규 훈련 때 강도를 살짝 조절할 수 있거든요.”
버드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이야기는 체계적이었다.
“게다가··· 지금 훈련 못 하게 막아버리면 오히려 경기력이 떨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크리그 자신도 경험했던 것처럼, 선수의 경기력에는 동기부여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무엇을 위해 공을 차는지는 사람마다, 선수마다 모두 다르다.
잭은 팬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요니는 팀의 엠블럼을 가리킨다. 솔직하지 못한 에디는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것이며··· 마르틴은 일단 돈이라고 답할 것이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
하지만, 이 제각각인 선수들에게도 공통된 동기가 있다. 팀을 위해서, 동료를 위해서. 선덜랜드에서 뛰는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게 되어 버린다.
그리고 구단의 스태프 또한 팀의 동료이다.
[여러분을 위해서 요리하고, 매일 클럽하우스를 청소하며, 경기 후에 다리를 주물러 주고, 원정 날에는 버스를 모는 그들의 이름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선덜랜드 선수라면 전부 안다고 대답한다. 이곳은 그런 팀이다. 클럽하우스 곳곳에선 구단 직원의 인사 영상이 흘러나오고, 선수들은 수시로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이런 문화를 만들어낸 장본인, 구단주 이희성 역시 선덜랜드 선수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동료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든 작든··· 우리 구단주님을 위해서 뛰지 않는 선수는 이 팀에 아무도 없겠지요.”
“그러니까요.”
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선덜랜드에서 뛰었던 모든 선수들 중, ‘구단주를 위해서’라는 동기가 가장 컸을 전직 스트라이커에게 슬쩍 물었다.
“크리그 선수는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진로를 묻는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크리그는 약간 엉뚱한 대답을 했다.
“클럽하우스에 갑니다. 아침이나 얻어먹고 가려고요.”
버드가 짐짓 인상을 썼다.
“얻어먹다뇨. 구단 관계자라면 당연한 권리인데··· 가만, 설마 우릴 버리고 구단을 떠나려는 속셈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어떤 역할을 맡아야 팀에 가장 보탬이 될지를 고민하는 중이라 그렇습니다.”
“그럼 다행입니다만···.”
“팀이 필요로 하는 한, 떠나지는 않을 겁니다. 한 번 선덜랜드가 되고 나면, 다른 팀이 되는 건, 이제 불가능하잖아요··· 살아 있는 한.”
대답하면서, 크리그가 고개를 들어, 훈련장 바로 옆 골목에 내걸린 플래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Sunderland ’til I die.
* * *
크리스 우드의 목소리가 천진하게 울렸다.
“축구, 안 해애?”
“이제 곧 할 거야. 한 시간도 안 남았어. 그러니까 누나랑 형들 말 잘 듣고, 잘 따라와야 해?”
“으응! 앨리스 누나 좋아.”
“아유, 귀여워라!”
당장에라도 크리스를 끌어안을 것처럼 눈을 빛내는 앨리스의 모습을 보며, 바르카가 투덜거렸다.
“솔직히 조금 귀여운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인턴 누나한테 자꾸 수작 부리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악!”
한결같이 ‘인턴 누나’라는 호칭을 쓰던 바르카에게,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묵직한 꿀밤이 날아들었다. 유소년팀 주장 짐의 솜씨다.
“보좌관님이라고 부르랬지.”
그러자 이번엔 테오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캡틴은 왜 자꾸 바르카만 챙기는데!?”
“꿀밤 먹이는 것도 챙기는 건가···.”
“나중에 클라라한테 물어보라구! 다른 여자애와 이야기하면 내용에 상관없이 싫어할걸?”
“네가 여자애냐.”
투덜거리면서도, 짐은 가슴을 펴고 누구보다 앞장서 걸었다. 팀을 이끄는 자리에서는 항상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 또한 주장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선덜랜드의 주장은 전부 그렇게 한다.
그렇게 선덜랜드 유소년들이 웸블리에 진입하자, 누군가 그들을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선덜랜드 유스다···!”
이윽고 웸블리 관중석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니까, 재능이 클래스 오브 92에 필적한다는 그 애들? 걔들이 여긴 왜···.”
“멍청아. 오늘 선덜랜드 1군이 여기서 경기하잖아. 커뮤니티 실드!”
“누가 멍청이야. 원래 걔들은 원정까지는 안 따라온다니까?”
“아니지,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실제로 선덜랜드는, 이번 커뮤니티 실드를 맞아 창단 이래 초유의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풋볼스퀘어와 메가스토어 운영, 그리고 경기장 보안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뒤에 남기고, 모든 스태프들이 일제히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너무나도 길게 느껴진, 일주일의 웨딩 마치를 끝마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선덜랜드 팬들 또한 역대 최대 인원으로 웸블리에 향하며 팀의 움직임에 호응했다. 덕분에 오늘의 웸블리는, 역대급으로 붉게 물들었다.
“아니, 대체 여기가 웸블리야 아니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야?”
그러자 인솔자 앨리스가 장난스런 얼굴로 윙크를 보냈다.
“이 경기장은 이제 저희 겁니다.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참고로 저희는 캠브리지 공작 전하께 웸블리 써도 된다고 이미 구두로 허가받았기 때문에.”
잠시 넋을 놓고 앨리스를 바라보던 관중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 이야기는 들었지만, 왕세손께선 결혼식장으로 써도 된다고 허락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에이, 신혼여행까지가 결혼식이죠. 집에 돌아올 때까지가 여행인 것처럼요. 그러니까 아직··· 허가는 계속되는 중인 거죠.”
미소 지으며 이동하는 앨리스를 따라, 선덜랜드 유소년들이 일제히 경기장에 들어왔다.
“오프닝 매치로 우리도 좀 뛰게 해 주면 안 되나? 나도 구단주님께 선물 드리고 싶은데.”
“무리하지 마. 너흰 유스컵에서 선물 드리면 되니까. 대회 3연패면 결혼 축하 선물로 손색없을 거야.”
“아니죠, 보좌관님. 대회 최다득점하고, 최소실점 기록도 얹어야 구단주님 선물이 되겠죠. 유스컵 우승은 이미 몇 번이나 했잖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한 시간 뒤 펼쳐질 커뮤니티 실드의 승패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임을 확신했다.
사실 아무리 강팀이라도 시즌 첫 스타트에는 버벅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스쿼드 변화 때문에 호흡이 맞지 않기도 하고, 여름 휴가를 맞아 폼을 끌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의 선덜랜드에는 적용되지 않을 이야기일 것이다.
누가 보기에도 오래전부터 칼을 갈고 준비해온 게 뻔하다. 심지어 경기를 보러 온 유소년들의 걸음조차 절도와 패기, 승리에 대한 열망이 느껴졌으니··· 1군 선수들의 폼은 굳이 말할 것도 없으리라.
누군가 입맛을 다셨다.
“올해도 선덜랜드가 다 해먹겠구만.”
그때 조금 떨어진 스탠드에서 무시무시한 환호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로 선덜랜드 팬들의 목소리였기에 나머지 관중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Sun! Sun! Sun!
이윽고 소리가 노래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랑한 팀에 대한 찬가이자, 그 팀을 만들어준 사내에 대한 축가로.
Wise ma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시리도록 푸른 잔디와 열정적인 붉은 물결, 축구장은 언제나의 풍경을 되찾았다. 그저 한 사내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뿐인데, 웸블리는 언제나의 선덜랜드 스타일로 물들고 말았다.
그날 선덜랜드는, 10년 뒤에도 회자될 깔끔한 경기력으로 커뮤니티 실드를 따내며 구단주의 결혼을 자축했다.
라인 너머에서 –완-
올해로 스물여섯이 된 테오도르 ‘테오’ 헨슨은 선덜랜드의 젊은 에이스이자 발롱도르 위너였으며, PFA 올해의 선수 수상 또한 누구보다 유력해 보이는 선수였다.
물론, 결과가 항상 사람들의 예상과 일치한다는 법은 없다. PFA 올해의 선수상은, 맨시티의 모리스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뜻밖의 결과에 기자들이 바삐 움직였고, 테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자신에게 마이크를 내민 상대가 뉴캐슬 쪽 언론임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테오 선수! 이번에 올해의 선수상에서는 아쉽게 밀려나셨습니다. 아무래도 팀 동료 해리슨과 바르카에게 표가 분산된 게 문제라는 목소리가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분하게 물어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기자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대조적으로 테오는 무표정하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표가 분산되었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만큼 우리 선수단이 골고루 활약했다는 증거니까요. 그리고 올 시즌에는 조기 우승을 확정해,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차분함도 잠시, 숨을 고른 테오의 얼굴엔 마치 악동과도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저희와 더비 라이벌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팀처럼,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 나올 사람이 없어서 표가 분산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니까요.”
뉴캐슬 쪽 기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러시군요. 한편, 일부에서는 올해의 선수상도 못 타는 선수가 어떻게 발롱도르를 받았냐며, 아무래도 레뮌선 소속이라 실력에 비해 버프를 받는다는 비아냥도 이어졌습니다만.]
“레뮌선이라뇨. 선레뮌이겠죠. 따라 해보세요. 선, 레, 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상을 지켜보던 클라라가 키득거렸다.
“비아냥이 아니라 저 부분에 반응하는 게 테오답네.”
일단 시작된 테오의 항변은,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그리고 투표 버프라니, 억울하네요. 오히려 저희는 손해만 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솔직히 PFA 올해의 팀 골키퍼에서 왜 짐이 빠졌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올해의 골키퍼로 선정된 맨유의 르메이가 두 손을 들어 동의를 표했다.
르메이 또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올 시즌의 짐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났다. 본인 스스로도 선뜻 인정할 만큼.
짐은 프리미어리그 리그 한 시즌 최다 클린시트 기록을 경신했고, 최소실점 - 최단 기간 우승 확정 기록까지 아울러 가져왔기 때문이다.
물론, 짐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무슨 상이야. 센터백이 에디 씨, 새벽 씨, 프랭크 씨 조합이면 솔직히 내 자리에는 화분만 놔둬도 멀티골은 안 내줄 텐데.”
그러는 사이 테오의 인터뷰에는 점차 열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보다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을 주목해 주십시오. 아, 물론 선덜랜드가 이미 진작에 우승 결정해서 김빠지신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중요한 경기입니다.
[네, 선덜랜드는 아직 무패 우승에 도전할 수 있죠.]
“그건 당연히 할 거고요··· 오랫동안 헌신한 캡틴이 떠나고, 캡틴이 캡틴이 되는 날이니까요.”
[캡틴이 떠나는데 캡틴이 캡틴이 된다고요?]
혼란스러워하는 기자를 바라보며, 테오는 마치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라도 된 것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웃었다.
“클럽에 오랫동안 헌신해준 캡-틴이 떠나고 캡틴이 캡틴-이 되는 거죠. 따라 해보세요. 캡-틴, 캡틴. 캡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덜랜드 선수단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이번 시즌에는 무패 우승의 대기록이 걸려 있다. 그리고 오래 헌신한 주장단··· JJ의 은퇴도.
[선수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사인해주고, 눈 마주치면 웃어주고,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그리고···.]
‘경기에서 이기면 더욱 좋겠죠. 알고 있어요, 캡틴.’
짐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 * *
잭은 고개를 들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모습을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다고 자부하는 그의 눈에도, 때로는 낯선 풍경이 보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원정 스탠드에 걸린 걸개 같은 것.
[함께해서 더러웠고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걸개는 한 개가 아니었다. 그 옆에도 뉴캐슬 팬들의 플래카드가 더 걸려 있었다. 하얀 천 위에, 뉴캐슬의 검은색 스프레이로 써갈긴 문구가 선명하다.
[평생의 적이 작별을 보낸다. 잘 가라, JJ - 조르디 울트라스]
평소였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조르디의 걸개가, 오늘따라 잭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자신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마지막 날임을 실감시켰기 때문이다.
‘이 경기장에서 선수로 뛰는 것도 정말로 마지막이구나.’
잭은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요니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경기 안 끝났어. 벌써부터 은퇴 기분 내지 마.”
“나도 알아.”
잭은 애써 차분하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사실, 울기는 요니가 먼저 울었다. 리그 37라운드, 미들즈브러 원정에서.
[JJ, 지난 10년간의 라이벌.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지만, 그대들은 충성을 다했다. - 보로 서포터즈]
“고마운 일이었지. 솔직히 미들즈브러는 우리가 끔찍이 싫을 법도 했는데. 걔들, 1부 다시 올라온 이래··· 아직 우리한테 한 번도 못 이겼지?”
“그랬지. 더비 경기마다 누구 씨가 미쳐 날뛰는 바람에···.”
“···위어티스 더비 한 경기 최다득점자는 님인데요.”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오늘의 경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선수 생활의 황혼을 맞이한 상태였다. 이제 몇 분 뒤면 은퇴할 예정으로, 전성기의 체력도 주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세상에는 죽도록 뛰어야 할 경기가 있다. 바로 더비 라이벌전이 그런 경기다. 그리고 팀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 또한 주장단의 역할이다.
[발을 멈추지 마라. 고개를 떨어뜨리지 마라. 휘슬이 세 번 길게 울릴 때까지, 아무것도 멈추지 마라.]
오랜 가르침을, 팀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잭과 요니는 필사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축구에는 언제나 끝이 찾아온다. 그들의 발놀림 또한 멈출 순간이 온다.
후반 89분, 마침내 교체를 알리는 팻말이 올라왔다. 요니는 투입을 기다리던 디아라와 가볍게 포옹했고, 잭은 천천히 자신의 주장 완장을 풀어 팀의 부주장이자, 차기 클럽 캡틴 짐에게 넘겼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이드라인을 넘는 순간, 관중석의 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끔찍이도 사랑했던 홈 팬들은 물론이고, 둘을 끔찍이 미워한 원정 팬들 역시 오늘은 순순히 기립했다.
[We know you are. You’re Sunderland ’til you die.]
두 사람이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통로에,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파르르 떨렸다.
[환호가 쏟아집니다. 홈 팬들도, 원정 팬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오늘, 이곳에는 맥켐즈도 조르디도 없습니다. 오직 타인위어의 축구팬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축구계를 떠나는 선덜랜드와 잉글랜드의 주장에게, 독일이 낳고 타인위어가 키운 공간연주자에게 뜨거운 박수가 쏟아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받을 선수들에게도.]
[이제 경기는 계속됩니다. 선덜랜드가 트레블을 차지한 해에도, 뉴캐슬이 리그를 차지했을 때에도 변함없이 뜨거웠던··· 세계가 멈추는 90분은 다음 시즌에도 이어질 것입니다. 왜냐면···.]
라인 너머에, 친숙한 얼굴이 보였다. 손수 경기장 잔디 위에 내려와 그들을 기다리던 구단주 이희성의 모습이.
감독과, 그리고 구단주와 차례로 포옹하는 두 선수의 어깨 위에 아나운서의 멘트가 춤추듯 내려와 앉았다.
[축구는, 계속될 것이니까요.]
* * *
“축구의 판정은 언제나 두 가지다. 라인을 넘었거나, 넘지 않았거나··· 중간은 없다.”
선덜랜드 수석 코치, 샐리가 눈을 빛내며 덧붙였다.
“구단주님이, 그러니까 너희 아버님께서 유소년 시절에 하셨던 말씀이지. 무슨 뜻인지 알겠니, 루미?”
그러자 소녀는, 샐리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네, 스승님. 결과가 따르지 않는 축구는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전술가들이 그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모든 공격은 점수를 내기 위해, 그리고 모든 점수는 승리를 위해 필요한 만큼 만들어져야 합니다.”
“훌륭하구나. 음, 아주 훌륭해.”
소녀를 바라보는 샐리의 눈에서 사랑이 철철 넘쳐흘렀다. 자기 애였어도 이렇게까지는 예뻐하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구단주님처럼 축구에 대한 통찰력과 애정이 있고, 사모님만큼 예쁘고 똑똑해. 비록 선수로는 뛰지 못하겠지만, 널 월드컵과 챔스 모두를 우승한 감독으로 키워내고 말 거란다. 알겠니, 루미?”
“네, 스승님. 따라서 앞으로는, 승리를 위해 상대보다 딱 1점만···.”
그러자, 샐리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혹시 그 인간··· 아니, 감독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니?”
“네, 스승님. 감독님께서 어제 펀트 킥 카운터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 재미나는 전술이었습니다.”
“브라이언, 우리 루미에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말랬잖아!? 어디 숨었어, 당장 나오지 못해 브라이언 퀸!?”
격분한 샐리가 날렵한 발걸음으로 브라이언을 찾아 떠나가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크리스 우드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슬슬 돌아갈래?”
루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금 더 공부하고 싶어요.”
“어··· 그런데 너무 늦으면 너희 오빠가 아주 난리 날 텐데. 그러면 이따 훈련장에서 상대하기 귀찮아진다고.”
“별수 없지요. 저희 오빠는 고모에게 세뇌 교육을 받았거든요. 세상의 모든 오빠들에게는 당연히 여동생을 아끼고 사랑하고 예뻐할 의무가 있다고요··· 저희 아버지께서 고모에게 그러셨던 것처럼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어른스러운 루미의 답변에, 크리스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서 전술 공부 더 하고 갈 거란 말이지?”
“조금만 생각해 보려고요. 결국 축구는 돌고 도는 거니까··· 다음 흐름이 무엇이 될지를요.”
“돌고 돈다고?”
“네. 사람들은 압박이니 공간이니, 프레싱이니 두 줄 수비니 신나게 말하지만, 하늘 아래 어디 새로운 축구가 있었나요?”
“······.”
“이 스포츠의 본질은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이, 손을 쓸 수 없는 제약 속에서, 열한 명이 커버하기엔 너무 넓은 경기장에 서는 것이죠. 토털 사커도, 티키타카도, 게겐프레싱도 전부 그 제약을 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에요. 틀린가요? 제 말이 뭔가 이상한가요?”
크리스는 속으로만 절규했다.
‘이상하지. 네가 겨우 여덟 살인 게 아무래도 이상한데!?’
다행히, 크리스의 한탄은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는 않았다. 사실 크리스 본인도 어렸을 때부터 축구 보는 눈 하나는 조숙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엉뚱하게 들렸을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고, 예뻐해주고, 사랑으로 키워 준 주위 어른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어엿한 축구 유소년이 되었다는 걸, 크리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는, 자기가 받아왔던 만큼을 루미 남매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게다가 루미의 축구관은 분명 천재적이지만, 부족한 부분도 존재했다.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에, 혹은 그녀는 그라운드 위에서 직접 뛸 수 없기 때문에.
“음··· 전술가에게는 정확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그럼, 선수에게라면 정확하지 않은가요?”
“일단 아카데미로 가자. 테오 선수한테 지난주에 전수받은 플레이를 실수 없이 보여줄 테니까.”
트레이닝복 가슴의 엠블럼을 탕탕 두드리며, 선덜랜드 유스 U-15의 에이스이자,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주장 크리스 우드가 미소를 지었다.
* * *
선덜랜드 유소년 감독, 피터 톰슨이 미소를 지었다.
“기억해 둬, 주니어. 어른은 노련하단다. 죽은 척도 아주 잘하지.”
톰슨은 아주 침착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애를 잔디 위에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면서도 태연하게 훈계할 정도로···.
하지만 일과가 끝나고, 바 블랙캣츠에서 재회한 톰슨은 조금도 차분하지 않아 보였다.
“썬, 딱 하나만 묻자. 도대체 어떻게 저런 괴물을 키워냈냐?”
“글쎄.”
무덤덤하게 대답하면서, 찢어지려는 입꼬리를 억눌렀다. 우리 애가 축구 신동이란 말이지? 천하의 피터 톰슨 눈에도 괴물로 보일 정도로?
즉, 내가 팔불출이라 민서의 숫자를 잘못 매긴 게 아니라는 뜻이다.
가벼운 흥분에 떨리는 손을 바지춤에 문지르는 사이, 톰슨 또한 잔뜩 침을 튀기며 떠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는 늘 마시는 마티니를 주문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난 처음에 네가 미쳤는 줄 알았어. 당연히 너희 큰애한테는 경영을 가르칠 거라고 생각했거든. 앞으로 리미트리스를 물려받을 아이잖아?”
“뭐, 나중에 나하고 다미가 천천히 가르치면 되니까. 그리고 정 안 되면 전문경영인을 둬도 그만이잖아?”
“전문경영인? 그것도 네 후임으로?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눈에 차는 사람은 구하기 힘들 것 같긴 하다. 나하고 다미 눈에 들 정도의 경영자면, 자기 사업 하러 나가는 게 상식일 테니.
뭐, 어차피 나중 일이지만.
“아무튼, 네가 뜬금없이 축구를 시키겠다고 하길래···.”
“뜬금없는 건 아니야. 그리고 젊을 때 축구가 뭐 어때서. 그렇게 치면 나도 어릴 때 축구 했는데.”
“···그건 우리들 생각이고, 애 엄마들 생각은 다르지. 그래서 나는, 네가 집에서 바가지 긁히려고 작정한 줄 알았다.”
나는 빙긋 웃어 보였다.
“괜찮아. 다미는 나한테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없으니까.”
결혼하고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미는 변함이 없다. 성격도, 나를 대하는 태도도, 업무 스타일도··· 심지어 옷 사이즈도 예전 그대로란 말이지.
톰슨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썬, 지금이라도 당장 집에 가서, 주니어 동생 열 명만 낳아 주면 안 될까? 네 와이프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안 돼. 그러다 우리 다미 골병들거든.”
첫째 민서 때도 그랬지만, 다미는 특히 둘째 루미 낳을 때 아주 고생했었다. 우리가 아직 셋째를 갖지 않은 이유다.
···하물며 열을 더 낳으라고?
“쳇.”
“그래서 우리 민서가, 천하의 피터 톰슨을 애먹인다고?”
“말도 마라. 아홉 살짜리 애가 벌써 우리 U-15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어. 크리스 말고는 아무도 상대가 안 된다고!”
나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크리스에게 어울리는 파트너를 구할 수 있어서.”
네 자리 숫자를 가진 축구 천재, 크리스에게 자극이 될 만한 유소년은 우리 선덜랜드에서도 구하기 힘든 존재였다. 우리 팀의 위상이 레뮌선 - 혹은 선레뮌 - 이라 불릴 만큼 올랐음에도.
다행히 민서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어서, 구단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아빠로서는···.
“마스터, 쿠바 리브레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구단주님. 썬 스페셜로 드릴까요?”
“아뇨, 알콜 들은 버전으로요.”
아빠로서는, 축배를 들고 싶을 만큼 기쁜 날이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아이들이 대신 이뤄줄 것이 확실하니까.
그때 옆에서 브라이언이 히죽거리며 끼어들었다.
“가만 보면 루미도 장난 아니던데? 이대로만 크면, 최소한 샐리나 나보다는 훨씬 나은 전술가가 되겠어··· 아니면 브로만큼 훌륭한 구단주가 되거나.”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우리 둘째한테 떠맡기고 은퇴할 생각은 마라. 아직 트레블 한 번 더 남았으니까.”
“쳇.”
투덜거리면서도, 브라이언의 입가엔 미소가 매달린 채였다··· 나도 마찬가지고.
줄곧 꿈꿔온 무대 안에서, 직접 서지는 못했다. 구단의 이벤트 경기에 나선 적은 있어도, 프로 선수가 되지는 못했었다.
그래도 지금의 삶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예전에 리지에게 한 번 말했던 것처럼.
[혹시··· 이건 만약인데요.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 다시 선수로 뛸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때, 나는 분명히 대답했었다. 구단주가 되어 돌아오기 전이었다면 당연히 축구선수를 골랐을 거라고.
[투자의 신보다?]
“투자의 신보다.”
무심코 혼잣말이 나오자, 톰슨과 브라이언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구단주 자리가 훨씬 마음 편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하는 경기마다 잘 풀리잖아?”
“브로, 그 이야기 다미 씨가 들으면 울겠는데. 가뜩이나 다미 씨네 회사, 사장이 수시로 자리 비워서 일이 힘들다며?”
“안 울어. 다미도 이제 축덕 다 됐거든.”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너는 꼭 프로가 되어야만 해!]
대답하는 동안, 어째서인지 아주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가 귓가에 울렸다.
결국, 나는 라인 안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래도 삶을 다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선수는 아니더라도, 축구인으로 살고 있기에.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단순하고 원시적인 스포츠, 축구가 사랑받는 이유는··· 시간을 멈추지도, 플레이를 되돌리지도 않기 때문임을 아니까.
시즌이 끝나도, 누군가가 떠나도 축구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다. 그렇게 축구는 계승되고, 또 이어질 것이다.
’til I die.
앞으로도 계속, 내 사람들과 함께 달릴 것이다. 사이드라인 너머에서도.
*지금까지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 을 사랑해 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보내주신 관심과 사랑 덕분에 완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글로 곧 다시 인사드릴 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기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