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 - 프롤로그 - 어느 연구원의 음성 기록
- 기록 제 1번: 지구의 자정능력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지구는 이미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다. 대기오염은 극에 달했으며 하늘은 우주쓰레기로 가득하다. 우리는 더 이상 지구가 불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한다.
- 기록 제 8번: 탐사선이 대기권에서 벗어나는 도중에 폭발했다. 폭발 원인은 미상.
- 기록 제 21번: 또 실패했다. 처음에는 흔쾌히 지원해주던 상층부가 슬슬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제기랄, 얌전히 돈만 주면 알아서 할 텐데!
- 기록 제 32번: 드디어 성공했다. 화성 탐사를 위한 무인탐사선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고! 비록 화성 궤도를 돌면서 표면 사진만 찍는 수준이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위대한 첫 발자국이나 다름없다.
- 기록 제 36번: 탐사선이 수집한 데이터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 자료를 확인 중인데······. 이게 뭐지? 전송되는 데이터에 뒤로 갈수록 푸른 점이 점점 커져가는 게 보인다.
- 기록 제 68번: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보내던 탐사선이 갑작스레 신호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전송받은 데이터는 푸른빛으로 가득 차있는 사진이다. [잡음]은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 기록 제 70번: 사라진 화성 탐사선의 신호가 갑자기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호가 돌아온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봐-! 신호가 지금 어디에서 발신되고 있다고?
- 기록 제 71번: 탐사선을 회수했지만 자료가 대부분 손상되었다. 화성 궤도에 있어야 할 탐사선이 어떻게 지구 궤도로 돌아왔는지 의문이다.
대체 어떻게? 나는 이런 의문을 제기했지만 위에서는 연구나 마저 하라며 일축했다. 카메라의 오작동탓인지 그나마 구할 수 있는 데이터에는 푸른빛만이 가득한데 이걸로 뭘 연구하라는 거야? 이래서 책상놀음만 하는 놈들이란···.
[누군가 기록자를 부른다.]
다른 연구원이 선체에 무언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약간의 점성을 가진 알갱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고 한다. 우주에서 붙은 오염 물질? 하지만 탐사선을 회수할 때 소독처리가 끝났을 텐데 잔여 오염 물질이 있을 수가 있나?
- 기록 제 76번: 이것은 무언가와 계속해서 결합하려는 성질을 보인다. [누군가 놀라는 소리] 뭐야?! 무슨 일이야? [두 남성이 다투는 소리, 잡음] 후우···. 방금 팀원의 실수로 샘플이 화분에 엎어졌다.
평소에 실수 한 번 안 하는 사람이었는데. 실수하기 전에도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 많이 피곤한 듯 하다. 이렇게 된 거 식물과 결합한 샘플을 지켜보기로 했다.
- 기록 제 78번: 샘플의 결과가 나왔는데···결과는···상상 이상이다. 매우 높은 수준의 공기 정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거면 지구를 정화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거야. 결합한 개체의 능력을 극대화해주는 것일까? 그럼 동물이나 인간한테 결합하면 무슨 결과를 보여줄까···.
- 기록 제 80번: 요즘 들어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다. 그나마 연구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것에 대해 새롭게 알아낸 것은 특정 온도 이상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이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반응도 보이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데-[가래가 들끓는 소리, 심각한 기침 소리]-이건, 후우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 기록 제 84번: 상층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해당 연구를 즉각 중단하고 화성 연구에 다시 참여하라고 했다.
안 돼···안 되지···. 누구 마음대로? 이 연구가 화성 따위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다. 이 멍청한 놈들! 나는 그들의 지시를 거부할 것이다.
조금만 더···앞으로 조금만 더···연구하면 화성에 갈 필요도 없이 지구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남성의 기침 소리] 우리가 이 지구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고 하잖아······.
- 기록 제 86번: 정말 끊임없이 방해하는구나. 우리랑 하나가 되면 알 수 있겠지···시끄러워. 조용히 해. 내 머리에서 나가···.
- 기록 제 100번: 우리는···[심각한 잡음] 지구를···[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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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