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2. 생존과 의문
"케흑-! 켁. 허억!"
나는 숨을 급하게 들이쉬며 눈을 떴다.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여긴···여긴 어디야?
흰색 벽지, 뿌연 창문, 침대에 달린 안전바.
···병실이구나.
'병실? 병실이라고? 내가 왜?'
"큭···."
머리가 지끈거린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여기는 내 방이 아닌데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와중 문득 내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정신 차려···
-부작용?! 하지만···!
그래···나는-
「갈증」
-목이 마르다.
목이 메마르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것 같다.
숨을 쉴 때마다 목이 간지러워 내뱉는 기침 소리에는 쇳소리가 가득하다.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갈증」 그래···갈증을 해소 해야지···.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실 문을 향해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문을 여니 엉망진창으로 변한 건물 내부가 보였다.
여기저기 연한 갈색의 자국들이 묻어 있고, 응급 침대들은 엎어지고 부서져 제자리에 있는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중요하진 않았다.
「갈증」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해···.
나는 천천히 발을 움직여 건물 밖으로 향했다.
바스락바스락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언가가 발에 바스라지며 소리를 내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거대한 나무들과 허리춤까지 오는 수풀이 도로나 건물을 가리지 않고 뒤덮은 풍경이 보인다.
누구라도 이상하게 여길 풍경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익숙함을 느낄 뿐 낯선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 ━━━!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무언가가 뾰족한 가시가 나 있는 넝쿨에 얽혀 있는 것이 보인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다.
━! ━━!
그것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발버둥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찾았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것의 목덜미를 잡고 고정시켜 천천히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그것은 발버둥을 멈추고 내 손에 몸을 맡겼는지 몸을 진정시킨다.
그 순간.
콰득-!
━━━━!!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내가 물어뜯은 곳에서 물이 샘솟는다.
나는 심한 갈증을 달래기 위해 고개를 처박고 정신없이 물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아.
청량감이 목을 적신다.
시원하다.
욕구가 해소된다.
고개를 잠시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
다시 고개를 내려 그것을 바라본다.
그것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촤아악!
그때, 날카로운 것이 내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한동안 멍하니 피가 턱을 타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다가 사방에 널려 있는 벽돌 파편을 주워 그것을 향해 내리찍었다.
콱! 콰직! 빠악!
그것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한동안 몸을 경련시키다가 이내 축 늘어진다.
됐다.
나는 갈증을 마저 해소하기로 했다.
꿀꺽- 꿀꺽 츕-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니 숨 쉬는 것이 편해졌다.
몸에 활력이 생기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모자라.
아직 모자라.
「공복」 ···배가 고프다.
나는 다시 고개를 내려 그것을 바라본다.
한동안 고기 뜯는 소리가 주변에 퍼지다가 어느새 소리는 멎고 털썩하는 소리를 끝으로 거리는 침묵에 빠져들었다.
*** 「생존」
"아윽-!"
누가 날카로운 바늘을 들고 내 머리를 찌르는 것 같은 고통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렸다.
이마를 만져보니 무언가 굳어 오돌토돌한 딱지가 져있는 게 만져진다.
다친 건가? 모르겠다.
기억이 몽롱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으···.'
시간이 지나자 고통이 점차 가시는 게 느껴진다.
나는 흐릿한 눈을 애써 뜨고 손으로 바닥을 짚어 일어나려고 했으나 바닥에서 들린 짤그랑! 하는 소리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바닥을 짚은 손에는 이름표가 새겨진 금속성 목걸이가 있었다.
<까미> <010-4767-XXXX>
까미···?
개 목걸이인가? 이런 게 왜 이런 곳에 떨어져 있는 거지?
휘이이잉-
불현듯 부는 강한 바람에 몸이 싸늘하게 식자 나는 개 목걸이 따위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길 한복판에 엎드리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야···?"
내 기억의 마지막은 누나가 준 알약을 먹고 내 방에서 쓰러진 건데 나는 왜 길 한복판에 엎드리고 있었을까···. 그것도 환자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상황 파악을 하려 했지만 오히려 의문만 늘어났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느껴지는 바닥은 아스팔트인데 도로를 덮은 허리춤까지 오는 수풀은 무엇인가?
왜 수십 년이라도 지난 것처럼 도시가 풍화된 모습인가?
자동차들은 왜 주인도 없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가?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점은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벌레 소리도, 새 소리도 없이 그저 조용할 뿐.
수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해결할 수 있는 의문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단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좆 됐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삐걱···끼익-
바람은 계속 불고 근처 간판은 떨어질 듯 불안하게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흔들리는 간판을 보니 약국이라는 글씨가 써져 있고 현재 몸 상태가 나쁘다는 걸 느낀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약국에 가면 뭐라도 얻을 게 있겠지.'
<가톨릭 약국>
그러나 약국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기대감은 조금씩 부서져만 갔다.
본래 빨간 글씨로 약이라는 글자 스티커가 붙어 있을 유리 벽은 건물 내부로 뻗어진 나무뿌리와 줄기에 의해 깨진 지 오래되어 보였고, 넝쿨 사이로 언뜻 보이는 내부는 밖에서 봐도 멀쩡한 기물이 없었으며 흙먼지가 가득 쌓여 있기까지 해서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얻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드는 아쉬움은 속으로 삼켰지만 한숨을 참을 수는 없었다.
'아까 보니까 약국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주변이 다 약국이던데 다른 곳으로 가 봐야 하나···. 하지만 곧 있으면 어두워질 텐데. 온도도 떨어질 거고.'
······쿵! ······쿵! ······쿵!
해가 조금씩 저물고 주변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서 일단 약국 건물로 들어가서 몸을 추스르려는 그때,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장소에 갑자기 울려 퍼지는 소리.
마치 공포 영화 같은 클리셰에 긴장감이 차올랐지만 이건 현실이라며 일축해 애써 긴장감을 몰아냈다.
'보통 영화에선 이상한 소리를 따라가면 소리 소문 없이 죽던데···.'
하지만 현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소리의 발원지를 보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 지금 아는 것도 없고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해결되는 건 없어.'
"후···."
나는 심호흡하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소리는 지금 내가 있는 약국 건너편의 골목길에서 들려오고 있다.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에 도착하니 소리는 점점 커지고 간격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쿵! ···쿵! ···쿵!
내가 들어가려는 골목 입구를 보니 한숨을 참지 못하고 또 내뱉고 말았다.
안 그래도 좁은 골목길인데 차들까지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으니 차 사이로 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차들 사이에 빽빽하게 자란 수풀을 힘겹게 헤치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해 나아갔다.
그나마 다행일까.
걸은 지 체감상 10분도 되지 않아 노란색 간판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떤 형체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멀진 않았지만 내 예상보다도 해가 더 빨리 떨어져 주위가 거뭇거뭇해졌기 때문에 앞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식별할 수가 없었다.
'사람? 사람인가? 제발 사람이어라.'
나는 이것이 제발 사람이길 바라며 가까이 다가가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것과 제일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는 차 뒤에서 확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 뒤에서 숨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본 광경은 양복을 입은 한 남성이 손으로 유리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쿵! ···쿵! ···쿵!
[···고파······.]
'아. 사람이다.'
순간 차오르는 안도감에 소리 내어 웃을 뻔했지만 꾹 참고 양복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양복 남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는 애써 무시한 채로.
「하나가 되자.」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도 애써 무시한 채로.
"저기요?"
···쿵! ···쿵! ···쿵!
[···배고······.]
양복 남자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릴 뿐이었다.
나는 내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 않았나 싶어 이번에는 좀 크게 불러 보았다. 점점 몸 상태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내 목소리에는 약간의 다급함도 섞여 있었다.
"저기요···!"
-쿵!
이번에는 내 소리를 들은 것일까.
그 남자는 알 수 없는 행동을 멈추고 중얼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내뱉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
"어···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순간.
휙!
끄드드드드득!
양복 남자의 고개가 급하게 돌아가며 비틀리는 소리를 냈고 그의 눈은 나를 직시했다.
흠칫하며 팔에 소름이 돋았고 어둑해진 사위였지만 나는 보고 말았다.
검은색의 이끼로 추정되는 것이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하며 생각했다.
'이런 시발. 대체 저게 뭐야?'
[으어어어어어!]
양복 남자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손을 뻗었고 깜짝 놀란 나는 급하게 널려 있는 차 뒤로 피했다.
타앙-!
양복 남자의 손이 차의 보닛을 때렸는데 들리는 소리가 이상했다.
쿵도 아니고 탕?
우직- 콰드득-
이제는 보닛을 우그러트리고 있는 양복 남자의 손을 급하게 봤지만 어두워서 정확히 보이지가 않았다.
그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끼가 그의 얼굴을 덮은 것처럼 그의 손도 무언가에 덮여 있다는 것뿐이다.
[키에에에에엑!]
한창 보닛을 우그러트리고 있던 양복 남자는 나를 다시 응시하며 괴성과 함께 나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사람이 너무 놀라면 오히려 아무 소리도 내뱉지 못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나는 소리 지르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 비명소리가 골목길 주위로 메아리처럼 울려퍼지고 깨워선 안될 것들을 깨웠는지 사방에서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당장 이 장소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경종이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렸다.
나는 한가하게 관찰이나 할 상황이 아닌 것을 깨닫고 황급히 몸을 돌려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