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 3. 어두운 골목
[아아아아아!]
[키아아아악!]
[까가가가각!]
"허억-허억!"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나는 달빛에 겨우 의지해 어둠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그것들이 나를 붙잡을 것이고 그 끝이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을 테니까.
일직선으로 달리면 이 빌어먹을 골목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무질서하게 세워진 차들 때문에 달리는 속도가 붙지 않는 것은 내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쿵쿵쿵쿵쿵-!
그것들이 나를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잡히면 안 돼.'
골목길 입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조금만 더 뛰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더 빠르게 다리를 놀렸다.
그때, 골목길 입구 쪽 건물의 유리창이 깨지며 어떤 형체가 내 앞에 떨어졌다.
콰차차장!
쿵-!
으직!
하얀, 아니 하얬을 것이 분명한 가운을 입고 있는 그것은 땅에 떨어지며 다리가 박살 났지만 그 눈만큼은 나를 뚜렷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던 나는 급하게 다리에 제동을 걸어 멈추려고 했으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쿠당!
넘어지면서 거친 바닥에 무릎이 쓸렸는지 조금 쓰라린 느낌이 들었다.
[크아아아악!]
그것이 코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넘어진 나를 붙잡겠다는 듯이 팔을 어설프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이것이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자연스레 연상되는 생각에 얼굴이 핼쑥해졌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내가 지나친 건물에서 그것들이 수없이 떨어지며 쏟아져 나왔다.
마치 지금까지 침묵에 잠겨 있었던 것은 거짓이었다는 듯이 사방에 괴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야···!'
급하게 주저앉은 몸을 일으켜 다시 뛰려고 했으나 넘어진 충격이 생각보다 강했던 건지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아윽!"
여기는 안전하지 않다.
그렇다고 사방이 뚫린 도로로 도망칠 수도 없다.
놈들을 따돌릴 수 있는 길과 잠시나마 몸을 숨길 수 있는 건물들이 있는 곳.
···그런 곳이 있나?
높게 솟아오른 아파트 단지들이 보였지만 나는 포기했다.
아파트를 지지대로 삼았는지 거대한 나무들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아파트에 기본적으로 달린 공동 현관문을 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힘들게 갔는데 만약 닫혀 있다면?
지금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게 분명하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고민할 시간도 충분치 않아 결국, 나는 일단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가려는 골목도 놈들로 가득 차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잠시 접어 두었다.
지금 당장 몸을 피하지 않으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하나가 되자.」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건너편 골목길을 향해 달렸다.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게 울리는 속삭임이 나를 더 힘들게 했지만, 어떻게든 뛰었다.
"허억-허억!"
[아아아아아!]
쿵쿵쿵쿵쿵-
놈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나를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다.
골목길로 들어온 나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제발.
잠시라도 몸을 숨길 수 있는 곳 좀 나와라.
<왕궁 모텔>
이 건물은 굵은 나무줄기가 내부로 파고들어 건물을 반파로 만들었다. 불가.
<메이저 요양병원>
대소동이 있었는지 수많은 차들이 병원 입구에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거나 건물 입구에 박혀 있는 것을 보니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이런 상황이라면 제일 위험한 장소는 병원이겠지. 불가.
<댄드윈 모텔>
건물 자체는 멀쩡해 보인다. 들어가도 괜찮을까?
콰창창-!
[으우으으으]
모텔로 방향을 틀기 직전, 1층 유리문을 깨며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왔다. 여기도 불가.
<빈센트 공인중개사> 건물 유리 벽이 전부 깨져 있어 숨을 곳이 없다. 불가.
골목길을 정신없이 달리며 많은 건물들을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의 건물들 입구가 나무줄기에 막혀 있거나 그나마 들어갈 수 있는 창문들은 내가 올라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있어서 계속해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단독주택 건물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주택 외부도 아닌 내부에서 나무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모습을 보니 그런 마음은 싹 사라졌다.
"케흑, 켁."
기침과 함께 숨을 가쁘게 들이마실 때마다 쇠맛이 짙게 느껴졌고 다리의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숨을 곳이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끝이라고?'
절망감.
그것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른다.
'아니야. 아직, 아직 더 뛸 수 있어. 제발제발제발. 나와. 나오라고.'
방향을 틀어 다시 좁은 골목길을 달리던 와중에 나는 급하게 멈춰 섰다.
<월드 모텔(후문)>
달을 가린 구름이 물러나며 환해진 달빛이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작은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아니, 높다면 높은 위치지만 이 창문은 모텔 주차장 입구의 난간에 발을 올리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위치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달빛이 인도해준 창문을 향해 뛰었고 앞에 다다르자마자 땅을 박차고 올라 주차장 난간에 매달렸다.
"끄응···!"
난간을 붙잡은 두 팔이 후들후들 떨렸지만 놓치면 죽는다는 생각에 이 악물고 버텼다.
쿵쿵쿵쿵쿵-
그것들이 접근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크게 들린다.
놈들이 나를 붙잡기 전에 빨리···!
나는 몸에 반동을 줘서 한쪽 다리를 난간에 힘겹게 걸치고 걸친 다리 힘을 이용해 남은 한쪽 다리도 마저 난간에 올렸다.
휙!
그것들 중 하나가 내가 완전히 난간에 오르기 전 손을 뻗어 발목을 잡힐 뻔했지만 내가 한 박자 더 빨라서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헉 허억-!"
난간에 올라와서 본 창문은 생각보다 더 작았지만 다른 곳을 찾기에는 이미 늦었다.
[키에에에엑!]
[으우어어어!]
몸의 열기가 머리에 쏠리면서 가물가물해진 시야로 내려 본 난간 밑에는 놈들이 가득했고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일까.
놈들은 달릴 줄은 알지만 점프는 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잠시 숨을 고르며 놈들을 살펴보니 정말 기괴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어두워서 자세히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말라비틀어진 피부에 이끼 같은 것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등에 커다란 꽃이 피어 있는 놈도 있었는데 놈이 움직이면서 몸이 흔들릴 때마다 뿌연 가루 같은 것이 휘날리는 것도 보였다.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은 여기를 들어가는 게 우선이다.
"후우!"
나는 심호흡하고 열려 있는 작은 창문에 어떻게 들어갈 것인지 생각했다.
내 몸집보다 작은 창문인데 여길 통과할 수 있을까···.
[으-어어어어!]
밑에서 들리는 놈들의 소리에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통과할 수 있을까가 아니다.
살기 위해선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나는 우선 머리를 방 안으로 집어넣어 내부를 살펴봤다.
1인용 침대, 작은 TV, 화장실로 추정되는 문.
특별할 것 없이 그냥 전형적인 모텔 방인 것을 확인 후에 나는 팔을 방 안으로 뻗고 몸을 우겨 넣었다.
끄득- 투두둑-
창틀에 땀으로 젖은 옷이 걸리며 뜯어지려는 소리를 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크으윽···!"
창틀을 기준으로 내 몸의 반만 내부로 들어와 있는 상황에 나머지 반인 다리는 허공을 허우적대고 있을 꼴을 상상하니 창피함이 올라왔지만 무슨 상관인가.
[키아아아아!]
어차피 진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이제 거의 다 들어왔어.
조금만, 조금만 더···!
나는 허공을 박차는 다리의 반동을 이용해 내 몸을 모텔 방 안으로 집어넣는 것에 성공했다.
"드디어!"
방에 완전히 들어온 순간 '살았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단순히 건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것뿐이지만 엄청난 안도감이 나를 덮쳤다.
몸이 휴식을 강렬하게 원하는 듯 내 시야에는 오직 침대만 보였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 낡은 침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출렁~
내 몸을 받아 낸 매트리스는 출렁이며 그동안 쌓인 먼지를 격하게 토해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워낙 급하게 움직였기 때문일까.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지만 긴장으로 위축된 몸이 침대의 푹신함에 순식간에 풀리며 노곤노곤해진다.
확실한 안전을 위해서 방문은 잠겼는지, 놈들이 사라졌는지, 지금 내가 있는 이 방은 정말 안전한 곳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했지만 나는 이미 한계였다.
이 상태에서 뭘 더 하기에는, 나는 너무 지쳐서 몸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땀으로 푹 젖은 옷을 힘겹게 벗어 던지고 침대에 펼쳐진 이불을 몸에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숨을 죽였다.
내 숨소리가 놈들에게 들릴까 두려워서, 혹여나 내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싶어서.
그리고 죽어라고 내달렸다고는 하나, 몸에 기이할 정도로 힘이 없었다. 마치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몰려오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끼이익-
-사람···확실···
-이 사람···파랑이가···
-하지만···
-안 돼!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