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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5화 (6/497)

Chapter 5 - 5. 카운터

어제부터 먹은 게 물뿐이라 그런지 기운이 없다.

배가 너무 고프다.

꾸르르륵-

갈증은 빈 생수통에 빗물을 담아 마셔서 어찌 해결은 했지만 물배에도 한계가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배를 움켜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공기 3분, 물 3일, 음식 3주···정도가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순 거짓말 아니야?'

공복이 된 지 겨우 하루지만 난 지금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멍한 상태로 침대에 걸터앉아 지금까지 만난 괴물들을 떠올렸다.

어제 그 양복 남자도 그렇고 가운 여자는 대체 정체가 뭘까?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피부는 마치 단단한 마른 나무 껍질과 같고, 그 껍질에는 검은 이끼가 잔뜩 달라붙어 있으며 어떤 것들은 등에 커다란 꽃이나 버섯 따위를 매달고 다니기도 했다.

외형이 인간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마치 걸어 다니는 나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무 인간? 이끼 인간? 어휴,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냥 목인이라고 하자."

나는 그것들에 대해 대충 정의를 내렸다.

내가 원래부터 이렇게 혼잣말을 자주 했나 싶기도 하지만 빗소리만 귓가에 맴도는 지금 아무 소리라도 내뱉지 않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방문을 바라봤다.

나가서 식량을 구해야 산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별개로 밖의 현실이 너무 무섭고 두렵다.

카운터 앞에 서성이다가 피 냄새에 이끌려 내 방문 앞까지 왔던 그 목인.

그 목인은 지금 어디 있을까?

다시 1층 카운터 앞으로 내려갔을까?

아니면 위로 올라갔을까?

위로 갔다면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분명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으니 바로 코앞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삐걱 삐걱-

나는 확인을 위해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돌려 살짝 열린 틈으로 밖을 살폈다.

우선,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왼쪽.

적어도 계단이 있는 곳까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은 막다른 복도 끝이 있는 오른쪽.

이 방향도 마찬가지로 닫혀 있는 문들이 주르륵 있을 뿐 목인은 보이지 않는다.

달칵-

나는 살며시 문을 다시 닫았다.

"후우-!"

강하게 몰려오는 피로감에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니 손에 식은땀이 잔뜩 묻어난다.

"그래. 밖에 나가기로 결심했잖아. 더 망설이지 말자."

나는 이번에야말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지만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목인이랑 마주치면 어떡하지?

다른 방으로 갔는데 안에 목인이 있다면?

'···무기가 될 만한 게 있나?'

나는 지금까지 본 목인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단단한 나무처럼 보이는 피부.

자동차를 우그러트리는 비정상적인 손아귀 힘.

지칠 줄 모르는 것 같은 체력.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려 방을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목인들을 상대할 만한 무기는 보이지 않는다.

"안 들키는 게 상책이야. 그냥 조용히 가자."

달칵-

끼이익···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문을 천천히 열었다.

전신의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지 녹슨 문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206호 문을 열고 복도를 조용히 둘러보니 한 층에 총 10개의 방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쪽 라인당 5개씩. 그렇다면 206호 건너편 방은 201호.'

나는 가장 가까운 방인 201호에 들어가기 전 문에 귀를 바싹 대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다.

쏴아아아아-

거센 빗소리만 들릴 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201호는 안전하다고 생각한 나는 누가 볼 새라 201호 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달칵-

달칵달칵

"···안 열리네?"

당연히 열려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자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나는 다른 방의 문도 닫혀 있나 확인하기 위해 201호 옆 방인 202호로 다가갔다.

이번에도 문을 열기 전 문에 귀를 가까이 대서 소리를 들어 보았다.

[으···우······.]

흠칫!

···소리가 난다.

202호.

이 방 안에는 목인이 있다.

물론 사람일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겠지만 굳이 문을 열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냥 다른 방도 다 닫혀 있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잠긴 문을 열려면 열쇠가 필요하고. 열쇠는 어디 있지?'

···카운터.

나는 일련의 사고를 통해 모텔의 열쇠 대부분은 카운터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결국, 내려가야 하는구나.'

나는 방향을 틀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차가운 철제 난간을 손으로 잡고 이번에도 한 계단씩 천천히 내려갔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1층으로 완전히 내려왔으나 가운을 입고 있던 목인은 다른 곳으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1층 로비는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어두웠지만 오히려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잔뜩 쌓여 있는 마른 나뭇잎들이 미처 가리지 못한 사방으로 튄 연한 갈색 자국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덤으로 제각기 다른 크기의 누런색 막대기들도 있었는데 자세히 보고 싶진 않아 고개를 돌렸다.

만약 날이 밝아서 이 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면 기절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쓰러진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나는 카운터 테이블로 향하면서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바깥을 떠올렸다.

고층 아파트를 지지대로 삼은 거대한 나무들.

나무 괴물로 변해 버린 사람들.

폐허가 된 도시.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깨어난 나.

세상이 완전히 끝장 나버린 걸까.

왜 이렇게 변해 버린 걸까.

이런저런 생각하며 카운터 앞까지 왔는데 단순 카운터 테이블이 아닌 문이 달려 있는 별개의 룸이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모텔은 원래 이런가?'

카운터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고 살짝 열려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카운터 내부가 보인다.

카운터 테이블 위에 놓인 엎어지고 깨진 CCTV 확인용 모니터들.

그리고 내가 찾던 벽면에 걸려 있는 열쇠 보관함.

나는 카운터 문고리를 잡고 문을 천천히 밀었다.

소음 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문.

카운터 내부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몸 하나 숨기는 데는 충분해 보였다.

정말 다행으로 열쇠보관함의 자물쇠는 닫히지 않는 상태로 걸려 있기만 했다.

나는 열쇠보관함을 열어 남아 있는 열쇠를 확인했다.

잘그락 잘그락잘그락-

'201호, 203호, 206호, 208호···. 2층 키는 이게 다인가? 3층 키는 대부분 있는데. 4층 키는 반 이상 없고. ···잠깐만.'

일단 닥치는 대로 키를 빼서 확인해 보는데 열쇠 보관함 구석에 작은 너구리 인형이 달린 키가 따로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줄무늬 셔츠에 빨간 마이, 흰색 바지에 갈색 구두.

유명 놀이공원의 마스코트 인형이었다.

- 야. 회전 목마 타자.

- 아니, 무슨 애도 아니고 회전 목마야···.

- 됐고. 따라오기나 해. 사진 찍게.

- 어어?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 예전의 행복했던 일상의 추억들이 순간 머리를 잠식한다.

나는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을 그러모아 긴 한숨으로 내뱉어 애써 털어냈다.

보관함에서 꺼낸 너구리 인형이 달린 열쇠에는 이름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그 스티커에는 '마스터 키'라고 쓰여 있었다.

'마스터키······. 마스터키?!'

마스터키라니?

이 키 하나면 지금 있는 모텔의 잠겨 있는 문을 다 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식량도 더 많아지겠지.

정말 예상외의 수확을 얻어 희희낙락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건물이 흔들린다.

···쿵! ······쿠구궁-!

드드드드드드!

"어어?!"

풀썩-

끊임없는 건물의 흔들림에 단숨에 균형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테이블 위에 있던 모니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박살이 나고, 열쇠보관함에 걸려 있던 열쇠들이 충격에 사방으로 떨어졌다.

나는 이대로 있다가는 다치겠다는 생각에 황급히 카운터 테이블 아래로 들어가 몸을 말았다.

드드드드드드드!

쾅-! 콰장창!

으직-

건물 밖에서도 지진으로 인해 난리가 났는지 무언가 떨어지며 박살 나고 으깨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혹시 모를 부상을 피하고자 몸을 최대한 고정시켜 버티면서 눈을 꼭 감았다.

아무 이상 없이 지진이 끝나기만을 빌면서.

다행히 지진은 오래가지 않았다.

드드······드드드···

여진이 오는지 간혹 땅이 흔들리기는 했으나 이 정도 흔들림은 처음의 흔들렸던 지진의 강도에 비하면 아주 약한 수준이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눈을 뜨고 나서 한숨만 몇 번째 쉬는지 모르겠다.

"켁. 콜록-콜록-."

코가 간지러운 느낌에 기침하며 살며시 눈을 뜨니 건물이 흔들리면서 그동안 쌓인 먼지를 토해내기라도 했는지 온갖 부유물들이 카운터 내부를 가득 메운 광경이 보였다.

"케흑-."

나는 급하게 옷 소매로 입을 가렸다.

나름대로 먼지를 가라앉히려고 팔을 휘저어 봤지만 오히려 떠다니는 먼지만 늘어 잠자코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체감상 10분 정도 지나니 먼지들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나는 마저 카운터를 샅샅이 뒤져 보기로 했다.

처음 카운터로 들어왔을 때는 열쇠를 찾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테이블 아래에는 파란색의 PP재질로 된 2개의 상자들이 있었는데 나는 하나씩 밖으로 끄집어냈다.

마치 선물 상자를 여는 것 같은 기대감에 전신이 가볍게 긴장되는 게 느껴진다.

'과연 뭐가 들어 있을까···?'

나는 표정에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은 채 첫 번째 상자를 열었다.

<월드 모텔 근무 기록지> <보안 업체 출입 기록> <고무줄로 묶여 있는 신용카드 영수증 묶음> <출입 명부> <잉크가 반쯤 남은 볼펜들> <끝이 휘어진 가위> <거의 다 써가는 스카치 테이프>

'이게 뭐야?'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연 상자에는 쓸모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놓친 게 있을까 하는 마음에 상자를 뒤집어 탈탈 털어도 보았지만 먼지만 휘날렸다.

기대감이 사라진 만큼 실망감이 그 자리를 채운다.

'아니야. 아직 실망하기에는 일러.'

가차겜을 하는 사람의 심정이 이랬을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나는 기대감이 흩어진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꽝?

당첨?

<초코파이 1박스> <500ml 생수 2통> <반쯤 남은 물티슈 캡(100매)> <달콤한 직화 육포 1봉> <꿈틀이 젤리 2봉>

···당첨.

보물상자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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