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 7. 성냥
뚝-
뚝뚝
"허억!"
무언가 얼굴에 떨어지는 느낌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물이 새는지 물방울이 한 방울씩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일어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는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기 위해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갔다.
카운터, 마스터키, 식량, 소리, 위기, 절망, 생존.
기억났다.
'허. 간신히 숨고 나서 바로 기절했다고?'
고개를 숙이고 잠이 들어서 그런지 입가가 흘린 침으로 흥건했다.
나는 팔 소매로 입가를 스윽 닦았다.
대체 피로가 얼마나 쌓였으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에서는 목인이 화풀이하는 상황에 잠이 들 수 있었나 싶다.
정말이지 그 난리통에도 기절하듯 깜빡 잠이 들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으니 그럴 가능성이 있긴 있었다.
'오늘은 모텔 2층을 탐색하기로 계획 했는데···.'
내 실수 때문에 전부 어그러지고 말았다.
드그그그극-
목인은 아직 2층에 있는지 무언가 긁는 소리가 머지 않은 곳에서 나고 있다.
목인이 이 방까지 오지 않는 이상 당장은 안전할 것이다.
당장은.
"후우···."
축축한 옷을 입은 채 잠이 들어서 그런가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손을 얼굴에 대보니 미열이 나는 듯도 하다.
다가오는 추위를 쫓아내기 위해 연신 팔을 쓸어 내렸지만 역부족이다.
정신이 흐릿해지고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애써 눈을 뜨려고 해 봐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억지로 뜬 시야에 완전히 어두컴컴해진 밖이 보이고,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은 건지 거센 빗소리가 들려온다.
언제 열렸는지 모르는 창문은 비바람을 방으로 들여오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쏴아아아아-
"콜록-. 흐으으-."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무언가 따뜻한 열을 내는 물건이라도 구했으면 좋았으렸만.
온기가 절실한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려 빠져나가는 열기를 붙잡으려고 했다.
열기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몸을 일으켜 창문을 닫아야 하지만 무거워진 몸은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하나가 되면 몸의 아픔도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
속삭임이 내가 일어나지 못하게 몸을 짓누른다. 수면 아래로 깊이 침잠하는 것처럼 내 몸과 의식이 점점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부스럭-
그때 들리는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
나는 상의 앞주머니에 젤리 1봉과 성냥갑을 넣어 두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유일하게 남은 식량인 젤리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잠시의 온기를 줄 수 있는···성냥.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냈다.
지금 내 꼴이 마치 성냥팔이 소녀 같아 아픈 와중에도 헛웃음이 나왔다.
추위에 떨고 있는 상황에 그걸 달랠 수 있는 건 작은 성냥뿐.
몸만 일으키면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닫을 수 있을 터인데, 그 간단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성냥이 내 추위를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기를 바라며 성냥을 켰다.
탁-
탁탁!
습기를 머금은 성냥갑이라 그런지 첫 시도는 불발. 여러 번 시도 끝에 불이 붙었다.
치이익···
-픽
불이 붙은 성냥이 자그마한 온기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그 빛에 의해 주위가 순간 밝아진다.
그리고 묘한 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다.
꾸득!
"······어?"
아주 잠깐의 온기였지만 취할 것 같은 느낌에 몸이 한껏 풀어지려는 순간.
내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방의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금 뭐였지······?'
넝쿨.
열려 있는 창문으로 들어온 넝쿨이 온 방 안을 다 뒤덮고 있었다.
초록색의 넝쿨 줄기가 벽면을 타고 침대, 냉장고, 서랍장 가리지 않고 전부 감싸고 있었다.
예전에도 넝쿨이 건물 외벽에 붙어 자라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하루 사이에 이 정도로 자란 것은 비정상적이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넝쿨 줄기는 마치 꿈틀거리는 핏줄처럼 보여 마치 괴물의 위장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였다.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환각을 봤을 수도 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져 잘못 봤을 수도 있다.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시 성냥을 켜 확인해 보기로 했다.
탁!
치이익···
꾸득!
이번에도 묘한 소리와 함께 불이 바로 꺼졌다.
다만 넝쿨이 방 내부를 뒤덮었다는 것은 처음보다 더 명확하게 보였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 넝쿨들은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잠깐 사이에 더 크게 덩치를 부풀렸다.
창문이 왜 열려 있나 했더니 넝쿨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열린 모양이다.
그리고 소리.
성냥은 다 타서 꺼진 것이 아니었다.
바람에 의해 꺼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성냥갑을 손으로 더듬어 성냥이 몇 개비 남았는지 확인했다.
남은 성냥은 6개비.
불을 강제로 끄는 다른 요인이 있지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성냥을 더 이상 낭비할 수 없었다.
알아본다 해도 날이 밝을 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알아야 하는 것은 방을 뒤덮은 넝쿨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다.
걸어 다니는 나무들이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빨리 자라기만 하는 넝쿨은 아닐 것이다.
피로가 계속해서 몰려왔지만 저 넝쿨이 잠든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워 잠들면···안 되는데···.
최대한 잠을 깨려 노력했지만 꾸벅꾸벅 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나가 되자.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내게 마음을 열어줘.」
군대 야간 근무도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는데.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현실이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옭아맨다.
꿈틀꿈틀······
조는 것과 깨는 것을 반복하는 그때.
발목 쪽에서 몸서리가 쳐지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흡!?"
화들짝 놀라 발목을 보니 어느새 문 근처까지 자란 넝쿨이 내 발목을 휘감으려고 하고 있었다.
뚜둑- 드드득-
나는 급하게 넝쿨을 잡아 뜯었다.
뜯어진 넝쿨은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격하게 꿈틀거린다.
"흐으-. 흐으···."
체액을 뿜으며 이리저리 뒤트는 넝쿨 줄기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다.
눈을 뜨고 나서 보는 건 하나같이 끔찍하고 역겨운 것들뿐이다.
정말이지···.
지옥 같은 현실이다.
'여기가 진짜 지옥이라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하는 거야?'
세상에 대한 원망도 잠시.
그 뒤는 다가오는 넝쿨과의 사투의 연속이었고, 결국,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뚝-트득!
뜨득!
쏴아아아아-
빌어먹게도 계속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
해가 뜨는 지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 빗소리는 들리지 않고 천장에서 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린다.
내 주위에는 뜯어진 넝쿨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비가 그치자 넝쿨은 성장하는 것을 멈췄다.
비가 멈춰도 계속해서 자랐다면 내가 먼저 지쳐서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많은 햇빛이 방으로 들어온다.
방 안은 점차 밝아지고 내부의 모습이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켈록! 크흠!"
나는 피곤함에 말라붙은 입술을 침으로 적시며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방을 둘러봤다.
밤에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넝쿨이 방 안을 뒤덮은 모습.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넝쿨이 뒤로 갈수록 줄기가 두꺼워지고 그 중 일부는 가시가 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게 꿈틀거리면서 움직이기까지 하다니.
역시 미친 세상이 분명하다.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나 있는 넝쿨은 왜인지 낯익은 느낌이 든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 컹! 크르릉! 끼잉! 깽-!
가시 넝쿨에 얽혀 발버둥 치는 개가 순간 겹쳐 보였지만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피곤하니까 헛것이 다 보이는구나-하면서.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방문을 보았다.
외부로부터 나를 지켜 준 고마운 문.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문 너머 목인의 벽 긁는 소리도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는데 나는 그저 싫증이 난 목인이 다른 곳으로 갔겠거니-생각할 뿐이었다.
강한 피로감에 정신이 멍해진다.
사고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다.
분명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렇지. 2층···탐색하기로 했지.
피곤하다.
자고 싶다.
새벽 내내 그 고생을 했으니 잠깐 쉬어도 되잖아.
한숨 자고 해도 되잖아.
'안 돼.'
짝!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두 손으로 뺨을 후려쳤다.
어제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2층 탐색이 물 건너 갔고 오늘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탐색을 미룬다면 앞으로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계속 미루고 말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달팽이처럼 느리게 문을 열었다.
끼이익···
고개를 내밀어 좌우를 살펴보니 계단이 있는 왼쪽 복도는 멀쩡했으나 내가 어제 상자를 던진 오른쪽 복도는 아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복도로 나와 오른쪽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와우."
개판 5분 전, 아니 완전히 개판이 되어 버린 복도를 보니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그리고 함부로 소리를 낸 내 입을 탓하면서 나는 더더욱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202호, 203호를 지나 204호부터 205호.
207호, 208호를 지나 209호부터 210호.
쿵! 쿵! 쿵!
지금 내게 들리는 소리가 내 심장 소리인지 조심스럽게 걸어도 나는 발소리인지 모르겠다.
긴장감에 몸이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점차 복도 끝이 가까워지며 참상 또한 뚜렷하게 드러났다.
날카로운 것으로 긁혀 패여 있는 벽면.
쪼개져 내장재를 드러낸 4개의 방문들.
갈가리 찢겨 형체도 남지 않은 내 소중한 자원이 담겨 있던 PP박스.
PP박스의 내용물도 부서지거나 포장이 터져 건질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내 소중한 식량들은···이제 없어···.'
상자를 던진 순간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을 보니 그렇지 않아도 없는 힘이 더 빠졌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을 꾹 참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209호를 지나치기 전 잠시 멈춰 섰다.
복도에서는 목인이 보이지 않았지만 부서진 문 뒤로 목인이 숨어 있을지 혹시 모를 일이니까.
빼꼼
나는 숨도 참아가며 고개를 살며시 내밀어 209호 방 안을 들여다 봤다.
이 방도 넝쿨이 점령해 있었다.
다른 방도 전부 이런 상태라고 보는 게 옳겠지.
그러다 침대 옆 서랍장 위에 넝쿨로 감싸진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폰.
문명의 이기.
현대 과학 기술의 결정체.
"어!?"
나는 예상치도 못한 발견에 눈을 크게 뜨며 서둘러 209호 안으로 진입했다.
뿌득-찍!
부스럭-
물을 가득 머금은 넝쿨 줄기는 밟힐 때마다 체액을 찍 뿌리며 꿈틀거렸다.
역겨운 반응에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내 정신은 스마트폰에 쏠려 있었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감싼 넝쿨을 뜯어내 이리저리 돌려 봤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파손된 부분도 없고 멀쩡해 보인다.
꾹
"제발······!"
나는 스마트폰이 제발 켜지길 바라며 전원 버튼을 눌렀다.
꾸욱-
꾹
계속 전원 버튼을 꾹 눌러봤지만 무응답.
나는 현 상황에 대한 실마리를 스마트폰이 켜지면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켜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방전된 건지 아무런 반응도 보여 주지 않았고 오로지 내 마음만 타들어 갔다.
이 안에 내가 원하는 정보들이 전부 담겨 있을 텐데 전기도 끊겨 충전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결국 낙담하고 말았다.
한숨만 푹푹 쉬고 있던 와중에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갑작스레 들린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순간 보이는 것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옷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키 큰 여성 1명과 어린 듯해 보이는 키가 작은 여자애 1명.
그리고 어느새 시야를 가득 메운 나무 방망이.
"···바본가? 전자기기 망가진 지가 언젠데 이걸 낚이네."
뻐-억!
주르륵
화끈한 고통이 머리를 강타했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몸이 쓰러지며 생각했다.
'뭐? 아니,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
털썩-
시야가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