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1화 (12/497)

Chapter 11 - 11. 편의점

우리는 모텔 밖을 나온 후 거리에 돌아다니는 목인들이 있는지 경계했다.

김지수는 어제 내린 비로 허기를 채운 목인들이 구석진 곳에 숨어 휴식을 취하고 있을 거라고 했으나 그녀의 예상을 비웃듯 거리에는 몇몇 목인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으어어어어······.]

[히이이···이이···.]

지금은 목인들이 아무런 목적 없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있다는 것을 들킨다면 상황은 급변할 것이 분명하다.

"계획 변경이야. 생각보다 거리에 목인이 많네. 정말 이것들은 예측할 수가 없다니까."

"어떻게 하시게요?"

"어떻게 하긴. 이렇게 하지."

눈가를 찌푸린 채 거리의 상황을 지켜보던 김지수는 어떻게 행동할지 정한 듯 도끼를 들어 건물 외벽에 붙은 넝쿨 줄기를 잘라 냈다.

퍽-!

퓨쉬이익!

잘린 넝쿨 줄기는 꿈틀거리며 체액을 뿜어냈고 김지수는 체액을 온몸에 펴 바르기 시작했다. 치덕치덕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꿈틀거리는 넝쿨을 보고 몸서리치던 예린도 이내 한숨을 쉬며 자기 언니인 김지수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오빠도 빨리 발라요."

내가 멍하니 그녀들의 행동을 보고만 있자 예린이 뭐 하고 있냐는 듯 눈짓하는 것과 동시에 작은 손에 체액을 담아 내게 건넸다.

나는 망설이다가 예린이가 준 넝쿨 체액을 손바닥에 받았다.

손바닥에 고인 넝쿨의 체액은 투명하며 약간의 점성을 가지고 있었다.

주욱 늘어지는 액체.

이건 마치······.

'···더 생각하지 말자.'

내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꼼꼼히 체액을 바르고 있을 때 김지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존 수칙 3번. 밖에 돌아다닐 때는 넝쿨 체액으로 체취를 숨길 것."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바른 거잖아요?"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몰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방법도 만능이 아니야. 그러니까 서둘러야 해."

그리 말하던 김지수는 도끼를 들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오빠. 차랑 너무 가까이 붙지 마요. 위험하니까요."

"응? 혹시 검은빛이 보여서 그래?"

"아뇨. 언니가 그랬어요. 비가 온 후 차 밑에 괴물이 숨어 있을 수 있다구."

나는 예린의 말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거리에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 밑을 급하게 훑어보았다.

다행히 날이 밝아 가까이 가지 않아도 차 밑까지 환하게 보였고 숨어 있는 목인은 없어 보였다.

앞서나간 김지수가 여기까지는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서 나와 예린은 서둘러 그녀의 곁으로 붙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또 다른 모텔 간판이 보였다.

<댄드윈 모텔>

이 모텔의 앞까지는 안전하게 왔으나 문제는 골목 코너 쪽에 돌아다니는 목인들이다. 나는 김지수의 뒤에 바싹 붙어 속삭였다.

"무슨 방법 있어요?"

"힉!"

바로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서 놀랐는지 몸을 움찔거렸던 지수는 뒤를 돌아 나를 살짝 노려봤다.

"···기다려."

그녀는 도끼를 살며시 내려놓고 옆에 놓인 작은 돌멩이를 들어 댄드윈 모텔 내부로 힘껏 던졌다.

휙!

팅-!

돌멩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내부에 있는 유리에 부딪혔는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아으으으으···.]

그리고 목인들은 어기적거리며 소리가 들린 모텔 내부로 들어가 사라졌다.

당장 눈에 보이는 위협은 사라져서 거리는 안전해 보였다.

"가자. 편의점은 이 모텔 바로 옆에 있어. 조심히 따라와."

이제 곧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는지 예린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골목은 넓은 편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널린 차들 때문인지 체감으로는 폭이 좁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길을 몸을 최대한 숙이면서 지나가는데 옆 건물의 깨진 유리 벽 너머 나무 인간이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는 것이 보인다. 간혹 숨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기는 했지만.

[흐···으으······.]

까득-

지금은 가만히 있지만, 만약 들킨다면.

-우릴 찢어발기겠지.

나는 불길한 상상을 애써 털어냈다.

우리는 저 앞에 보이는 편의점을 향했다.

<이마트 편의점> 간판과 그 옆에 있는 <빈센트 부동산>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불현듯 기억이 떠오른다.

<댄드윈 모텔> 과 <빈센트 부동산>.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나무 인간들에게 쫓기고 있을 때, 나는 이 건물들을 지나쳤었다.

그것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길을 틀면서 뛰었다고 생각했건만 사실 내가 몸을 숨긴 <월드 모텔>, 지금 우리 일행이 지나친 <댄드윈 모텔>, 우리의 목적지인 편의점 옆에 있는 <빈센트 부동산> 모두가 같은 건물 블록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인간의 정신이 궁지에 몰리면 시야가 짧아진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창문을 보지 못했다면 같은 공간을 빙빙 돌다가 몰이 당해서 죽었겠구나.'

나는 결국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혹시나 나무 인간이 숨어 있을까 경계하며 천천히 걸었지만 가까운 거리라서 그런지 어느새 편의점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편의점 앞 전봇대에는 주정차금지 팻말이 붙어 있고 그 밑에는 외부손님용 플라스틱 의자들이 제 자리를 잃고 널려 있었다.

부스럭-

우리는 편의점에 바로 들어가기보다는 일단 도로 옆에 나 있는 수풀 안에 숨어 편의점을 관찰하는 것을 택했다.

편의점은 넝쿨에 의해 셔터가 반쯤 내려간 채 고정되어 있었지만 유리문은 마른 핏자국들이 묻어 얼룩이 졌다는 것을 빼면 멀쩡해 보였다.

"예린아. 보여?"

"음···. 오늘은 아무것도 안 보여."

예린의 말에 김지수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무슨 말이에요?"

"저번에 예린이가 말한 파랑이와 검은색 말하는 거야. 그게 항상 보이는 건 아니거든."

"아."

"어쩔 수 없지. 우리가 더 조심하는 수밖에."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이제 가자며 일어났다.

"가자."

가장 먼저 편의점 앞에 도착한 김지수는 문에 달린 종을 소리가 나지 않도록 떼어 버리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예린도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언니를 따라 열린 문 사이로 잽싸게 편의점으로 들어간 것을 끝으로 수풀에는 나 혼자 남았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 고개를 들어 주위 풍경을 둘러봤다.

원래 건물 색이 초록색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빼곡히 붙어 있는 넝쿨들, 도로 군데군데 형성된 수풀, 아파트보다 높게 솟은 거대한 나무들.

'······어?'

나는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을 본 순간 위화감을 강하게 느꼈다.

나무가 저렇게 컸던가?

원래도 크긴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진 느낌이다.

비가 오면 급성장하는 넝쿨들처럼 나무도 커진 것일까?

아니면 단순 내 착각?

기억 속의 나무와 지금 보는 나무의 크기를 겹쳐보면서 비교하고 있을 때.

똑똑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유리문 너머 한 아이가 보인다.

최예린.

파랑이와 검은색이 보인다고 하는 아이.

배가 많이 고팠는지 벌써 무언가를 입에 한가득 물고 오물거리면서 나에게 들어오라며 손짓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편의점으로 향했지만 계속 드는 위화감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별일 아니겠지.'

나는 이유 모를 긴장감에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하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고 심호흡을 한 것이 무색하게 바로 당황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너무 멀쩡해 보이는 편의점 내부의 모습.

비록 진열대가 이리저리 엎어져 있고 흙먼지가 가득 쌓여 있지만 이런 세상에 이 정도면 양반이다.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통조림이나 캔 따위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다는 점과 냉장고 안에 음료수와 생수가 반 이상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그 와중에 예린과 김지수는 마치 이런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 먹고 싶은 것을 골라 까먹고 있었다.

'왜 식량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지···? 아니. 애초에 왜 이렇게 많이 남아 있지?'

세상이 망한다고 하면 보통 이런 편의점이나 마트가 제일 먼저 털려서 난장판이 되어야 하지 않나?

또 음식 썩는 냄새가 날 것 같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피톤치드 냄새로 가득 차면 찼지.

전기가 끊긴 지 오래되어서 냉장이나 냉동 식품들이 상해서 역한 냄새를 뿜고 있어야 정상 아닌가?

내가 킁킁 거리면서 가방에 식량을 담을 생각하지 않자 김지수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뭐 해? 바보같이."

"냄새가 안 나서요."

"냄새? 아···."

내 말에 알 것 같다는 듯 반응을 보인 그녀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참치캔 하나를 손에 들었다.

"전기가 끊겼는데 왜 음식 상한 냄새가 안 나냐- 그 생각하고 있었지?"

"네."

"그런 자극적인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면 나무 인간들이 와서 먹어 버려서 그래."

"네? 그럼 이런 캔들이 무사한 이유가···."

"뭘 물어?"

김지수는 손에 든 캔을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당연히 냄새가 안 퍼졌으니까 그렇지. 캔이 찌그러져서 내용물이 샌다면 모를까."

그녀의 말에 내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형태를 유지하는 통조림들은 무사했지만 캔 껍데기에 문제가 생긴 것들은 전부 찢겨져 내용물을 토해낸 흔적이 있었다.

"가방 이리 내. 식량 담게."

나는 얌전히 매고 있던 가방 중 하나를 풀어 김지수에게 건네주었다.

"아저씨도 배고플 텐데 손 베이지 않게 먹고 싶은 캔 따서 먹어. 일회용품은 카운터 서랍에 있어서 내가 꺼내놨어."

"아니, 잠깐만요! 하나만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귀찮게."

"상한 냄새 같은 자극적인 냄새를 풍기는 식량은 나무 인간들이 먹었다는 건 이해했어요. 하지만······."

"···? 하지만 뭐."

내가 말을 잇는 것을 머뭇거리자 그녀는 답답한 지 채근한다.

"식량이 왜 이렇게 많이 남은 거죠? 보통 난리가 나면 식량부터 챙기는 게 우선이잖아요."

반대로 이번에는 김지수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내가 대답을 채근했다.

"수첩에 스크랩 되어 있던 기사 봤지?"

입술만 달싹이던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산이 근원지다- 수도권 봉쇄다- 이런 지방 인터넷 기사 있었잖아."

"네."

"그 기사 날짜도 봤어?"

"날짜요?"

나는 기억을 더듬어 기사가 올라온 날짜를 떠올렸다.

-2021.03.09

"3월···9일?"

"그럼 이 사태가 발발한 날짜는?"

-[······남산 일대 이상 현상···3월 6일로 추정······.]

"···3월 6일."

"그래. 이해했어?"

이상 현상이 생긴 날은 3월 6일인데 기사가 3일이나 지연되어 9일에 떴다는 것은···.

"전부 한순간에 혼절하거나 죽어 버렸다고 추정했었더라."

"아······."

"전문가들은 대규모 사망과 통신망 손상이 원인이라고 하던데. 모르지. 그 사람들도 다 죽었을 텐데."

"······."

"뒤늦게 시도한 수도권 봉쇄가 실패했다고 하니까. 공기로도 퍼지는 걸 어떻게 막겠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어디죠······?"

"망해 버린 나라의 수도권. 수원시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