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 13. 지진
끼익- 끼이익-
소리가 단발성으로 끝났다면 우리의 착각이었다고 받아들일 테지만 이 소리는 지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수야. 나만 들리는 거 아니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들려."
"저도요."
소리가 들리는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지수와 예린이 작게 속삭이며 말했다.
"예린아. ···보여?"
예린은 그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지수가 말한 뭐가 보이냐는 말은 아마도 검은 빛을 말하는 거겠지.
"그냥 가는 게 어때? 챙길 건 다 챙겼잖아."
"···좋아. 돌아가자."
지수는 내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고 혹시나 문이 갑자기 열릴 까 봐 계속 주시하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나는 편의점을 나서기 전 외부의 동태를 살폈다.
거리의 상황을 훑어본 나는 이를 악물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지 처음에 <댄드윈 모텔> 안으로 유인했던 나무 인간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지수야."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자 지수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직감했는지 문에 바싹 붙어 밖을 살핀다. 그리고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아. 감당할 수 있어. 다시 유인하면 돼."
"그래? 그나마 다행-."
나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에 숨 쉬는 것도 잊어 버리고 말았다.
고층 아파트를 지지대로 삼은 나무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커지고 있었다가 더 맞는 말이었다.
'저게. 왜. 지금-'
쿠쿠쿠쿠쿠쿵!!
드드드드드드드드-!
또 지진이다.
내가 카운터에 있을 때 내게 두려움을 주었던 지진.
일반적인 지진이 아니었다.
'저 거대한 나무들이 성장하면서 생기는 거였어.'
쿵! 쿠웅━!
콰가가가각!
쩌저저적!
나무가 점점 커지면서 조이기라도 하는지 그 무게를 지탱하는 아파트는 부서지며 파편을 토해내고 있었다.
단단한 아스팔트 도로를 무언가가 헤집는 소리가 들리면서 도로가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꺅!"
"예린아!"
격하게 흔들리는 바닥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예린이 넘어졌고, 그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지수가 덮치듯 감싸 안았다.
"큭!"
나도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지만 문틀을 필사적으로 붙잡아 버텼다. 그러던 와중 또다시 믿지 못할 광경을 보았다.
푸화아아악-!
갈라진 도로 틈에서 짙은 갈색의 줄기. 아니, 뿌리들이 솟구치더니 이리저리 휘둘려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쐐애애애액!
쾅! 콰직! 으직! 콰장창-!
전봇대가 반으로 부러지며 쓰러졌고, 골목에 방치되고 있던 차들은 뒤집어지며 반파가 되거나 금속판이 찢어지기도 했다.
거리를 배회하던 목인들도 뿌리의 폭거를 피하지 못해 뿌리에 맞고 날아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뿌리는 도로 틈으로 다시 들어가서 모습을 감췄다.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 건 단 수십 초에 불과했지만, 그 임팩트만큼은 지금까지 내가 겪은 그 무엇보다 강렬했다.
'이게 대체···.'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경악하며 떨리는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도로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처참하게 부서지고 박살 났지만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나무 인간들.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던 그것들은 천천히 삐걱거리며 일어나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뿌리가 휘두르는 범위에는 우리가 있는 편의점이 포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드······드드드
땅의 흔들림은 점점 멀어지는 느낌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는 괜찮다는 생각에 나는 외부를 보던 시선을 돌려 편의점 내부로 향했다.
"콜록-콜록-."
천장에 붙어 있던 먼지들이 지진에 흔들려 부스스 떨어지고 있고, 바닥에 쌓였던 흙먼지는 공중으로 부상해 기침을 유발했다.
"지수야! 예린아! 괜찮아?"
"케흑! 콜록!"
내부를 가득 채운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져 그녀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지수와 예린을 불렀고, 대답 대신 기침 소리가 들렸지만 일단 무사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서히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바닥에 바싹 엎드리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껴안고 살랑거리던 꼬리는 다리 사이로 말려들어가 있는 모습.
나는 팔로 흙먼지를 휘휘 저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끝났나 봐. 일어나도 될 것 같아."
"으으···. 요 근래 지진이 너무 자주 일어나······. 또 나무들이 커진 건가?"
"언니···. 숨 막혀."
어찌나 꽉 안았던지 숨이 막힌다며 지수의 팔을 톡톡 치는 예린이다.
"아저씨는 괜찮아? 밖의 상황은 어때? 갈 수 있겠어?"
연달아서 묻는 지수의 물음에 나는 조금 전까지 본 광경을 떠올렸다.
"나는 괜찮지만···돌아가는 건 당장은 힘들 것 같아. 완전 난장판이야."
"후우! 역시 그런가."
한창 서로의 안위를 챙기며 상황 파악을 하는데 순간 바람이 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내부에 퍼진다.
휘이이이잉-
끼이익···
나와 예린은 그 즉시 행동을 멈추고 급하게 진열대 틈으로 몸을 숙였다. 지수는 황급하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도끼를 찾았다. 이내 찾은 도끼를 주워 들고 우리 곁에 붙어 섰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었다.
애초에 우리가 급하게 돌아가려고 한 이유도 저 문 너머의 소리 때문이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지진 때문에 잊고 말았던 것이다.
끼익-
끼이익···
문이 서서히 열리며 내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손으로 급하게 입을 틀어막으며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흡!"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 창고 안에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아니, 구멍 난 천장을 비집고 들어온 넝쿨에 목이 조여진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간혹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는 충격적인 광경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문 너머 들리는 소리는 넝쿨의 줄기가 천장과 비벼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끼이익-
- 그래서 저 애는 누가 키울 거예요?
- 애는 괜찮대요? 사람이 그렇게 죽어 있는 걸 본 건데···.
끼익-
- 아, 이 사람아. 그게 문제야? 지금 우리가 짐 덩이 하나 챙기게 생겼는데!
- 쉿! 소리 낮춰요.
- 하여튼. 그놈은 왜 그렇게 간 건지. 쯧!
애써 잊은 과거의 기억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기껏 채운 배가 아깝게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다시는 보지 않을 모습인 줄 알았는데.
지수와 예린도 자주 보는 모습은 아닌가 보다.
지수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는지 예린의 눈가를 손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정작 자기는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나는 신물을 겨우 삼키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천장에 매달린 남성은 편의점 조끼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여기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일 것이다.
식량이 풍부한 이곳에서 왜 자살을 했을까?
밖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편의점 문을 닫고 구조를 기다리는 게 맞는 선택이 아닌가?
혼자 남은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사람처럼 빚이 많아서?
"···아저씨. 괜찮아?"
지수가 내 어깨를 약하게 툭툭 치며 내 안색을 살폈다. 나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아. 괜찮아. 그냥 ···좀 놀라서."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는 남성을 다시 눈에 담았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눈을 찌푸렸다.
남성의 몸이 흔들릴수록 목을 두른 넝쿨의 줄기도 얇아져 끊어질 듯해 보였다.
우리가 손대지 않으면 줄이 끊어질 것이고 그것은 곧 소음으로 이어지겠지.
그 소음은 밖에 돌아다니는 목인들을 자극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저 시체로 보이는 것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위험하다.
그렇다면···.
"지수야."
"응."
"밖은 어때? 지금도 나갈 수 있겠어?"
지수는 내 말에 밖을 살펴보고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돌아왔다.
"···지금은 안 돼. 수가 더 많아졌어. 시간이 필요해."
나는 침음을 흘리며 손을 들어 창고를 가리켰다.
"저거. 곧 떨어질 것 같은데. 그럼 위험 하잖아."
"뭐?!"
그녀는 다급하게 내 손이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예린아."
"응. 언니."
"···보여?"
3번째 묻는 질문. 하지만 이번에도 예린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수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지고 귀가 축 늘어졌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갔다 올게."
한동안 망설이던 그녀는 우리를 보며 비장하게 말하더니 도끼를 추켜든 채 한 걸음씩 내디뎠다.
긴장을 많이 했는지 지수의 꼬리가 빳빳하게 서 있는 게 보였다.
'내가 간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뒤늦게 후회가 들었지만 지금 불러 멈춰 세우기에는 이미 지수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가서 늦은 상황이다.
'아니. 잠깐만.'
뭔가 이상하다.
저게 시체가 맞다면 왜 냄새가 나지 않지?
시체 특유의 쿰쿰하고 썩어가는 듯한 악취가 나지 않는다. 주변 냄새를 아무리 맡아봐도 느껴지는 건 짙은 풀 냄새뿐이다.
그리고 저게 시체가 맞다면.
왜 지금까지 넝쿨이나 목인에게 먹히지 않았지?
"지수야!"
나는 급하게 지수를 불러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늦고 말았다.
어느새 그것의 코앞까지 간 그녀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떨어질 때 천천히 내려놓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그것의 허리춤을 잡았다.
데굴-
그리고 외부자극에 의해 목인이 눈을 떴다.
"왜?"
"그거 시체 아니야!"
하필이면 내가 부르는 소리에 지수가 뒤를 돌아봐서 아직 목인이 눈을 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타이밍이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다니.
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다급하게 한 말을 들은 그녀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과 목인의 뿌옇고 탁한 이끼 낀 눈알이 서로 마주쳤다.
"···어?"
"언니!"
지수는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예린은 언니를 불렀고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향해 뛰었다.
까가각!
목인은 눈을 뜨기 전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처음에는 그 모습이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든 지금 나는 목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넝쿨이 묶여 있던 목에서부터 나무껍질이 얼굴로 퍼져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모습에 큰 소리는 낼 수 없어 보였다.
[━! ━━━!]
먹잇감을 발견한 목인의 눈에는 강렬한 살의와 식욕이 가득해 보였다.
마치 올가미에 걸린 짐승이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나무 인간도 자기를 붙잡은 넝쿨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까각! 까드드득!
올가미는 움직일수록 더 조여들어 사냥감의 숨통을 끊지만 나무 인간의 목을 조이고 있는 넝쿨은 애초에 곧 끊어지려고 했기 때문에 나무 인간의 움직임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툭 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나무 인간이 지수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