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4화 (15/497)

Chapter 14 - 14. 위기

-쿵!

까그극-

단단한 나무 껍질에 검은색 이끼가 가득 나 있는 나무 인간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급하게 일어서려고 하는 지수를 잡으려고 했다.

팍!

촤아아악-

지수가 일어나는 속도보다 목인이 손을 뻗어 잡는 게 더 빨랐고, 완전히 붙잡히기 전에 다행히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내동댕이칠 수 있었다.

"윽!"

타이밍이 살짝 늦었는지 목인의 날카로운 손톱에 지수의 팔뚝이 긁혀 피가 뚝뚝 떨어진다.

[━━━━━!!]

쿵! 쿵!

그것은 먹잇감을 놓쳐서 생기는 분노와 바로 앞에서 퍼지는 피 냄새에 더더욱 발광하며 포효하듯 발을 굴렀다.

쩌적···

그 순간. 불길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목인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던 나무 껍질이 계속해서 괴성을 지르려는 입에 의해 뜯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의 소란도 외부의 목인들을 자극하고 있을 텐데 여기서 저 목인의 입이 열리면 끝장이다.

나는 황망하게 지수를 불렀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이미 도끼를 들고 목인을 내려찍기 전이었다.

"지수야!"

가드드득 퍽-!

지수의 도끼가 목인의 머리를 쪼개려고 할 때 목인의 고개가 비틀리며 움직였고 도끼는 원래의 목표인 머리가 아닌 어깨를 찍고 말았다.

"칫!"

한 번에 숨통을 끊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혀를 찼고 바로 후속타를 날려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한번 도끼를 들었다.

비록 죽이진 못했지만 충격이 컸는지 목인이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나도 지수를 도와 조금이라도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무기도 없고 내부도 그리 큰 공간은 아니라 오히려 도끼를 휘두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언니를 걱정하는 예린을 등 뒤로 숨겨 지켜 주는 것뿐이었다.

지수의 도끼가 다시 한번 목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숨통을 끊기 위해.

쐐애액-

······땅!

"···어? 악!"

퍼억!

목인이 손을 들어 날아오는 도끼를 역으로 막는 걸로도 모자라 도끼를 놓지 않은 지수를 그대로 들어 내던진다.

그것은 나머지 한 손으로 입을 막은 나무 껍질을 붙잡았고, 그대로 뜯어냈다.

쩌저적

···그리고 해방감에 포효했다.

[기에에에엑━━━!]

"안 돼!"

나는 목인을 향해 뛰었다. 달려오던 힘 그대로 옆구리를 붙잡아 땅에 쓰러트렸다.

쿵!

"지수야! 지금!"

목인이 넘어진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일어나지 못하게 꽉 누르고 있는 나에게도 충격이 전해졌다.

퍽! 퍽! 퍽!

"끄으윽! 빨리!"

내 온몸을 강타하는 고통에 정신이 혼미 해지는 게 느껴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최대한 버티는 것뿐이기에 필사적으로 힘을 주었다.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와중 맹렬한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쩌어억!

퍼석!

나는 욱신거리는 몸을 애써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인의 머리는 둘로 나누어져 체액을 뿜어내고 있고, 몸은 축 늘어진 걸 보니 확실히 죽은 것 같았다.

도끼를 늘어트린 채 가뿐 숨을 내쉬고 있는 지수와 고통에 신음하는 나. 그런 우리를 울먹거리며 다가오는 예린.

편의점은 지독한 침묵에 빠져 내 귓가에는 오직 우리의 거친 숨소리와 쿵쿵 뛰는 심장 소리만 들린다.

하악! 후욱! 후우!

두근! 두근! 두근!

"···끝났지?"

"······아니."

나는 상황이 일단락되어 소요사태가 진정된 것 같아 안도의 웃음을 지었으나 지수는 이를 꽉 물면서 도끼를 한층 더 강하게 쥐었다.

그녀의 눈은 날카롭게 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꼬리는 털을 부풀려 제 크기를 키웠다.

"아직 안 끝났어."

뒤이어 화답하는 듯이 사방에서 울리는 끔찍한 울음소리.

[크아아아아아아악!]

[키악! 키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

[그아-아아-아악!]

"아저씨. 셔터━━!"

다급하게 외치는 그녀의 외침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셔터를 내리기 위해 문으로 뛰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전부 문으로 가 셔터를 내리기 위해 움직였다.

"끄응···!"

나는 셔터를 내리기 위해 무게까지 실어가며 힘을 주었다. 예린이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힘을 보탰지만 역부족이었다.

넝쿨이 셔터 철창 사이사이에 휘감겨 있어서 아무리 힘을 줘도 셔터는 요지부동이었다.

"비켜!"

부우우웅-

콰직! 콱!

퓨쉬이익!

지수가 도끼를 휘둘러 급하게 넝쿨 다발을 잘라 냈다. 잘린 넝쿨은 꿈틀거리며 투명한 체액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문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수풀 사이에, 무너진 건물 아래에, 차 밑에, 쓰러진 나무 틈에, 갈라진 도로 틈 사이에 숨어 있던 목인들이 전부 일어나 동족의 포효가 들린, 우리가 있는 편의점으로 비틀리는 소리를 내며 일제히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속도가 생각보다 느려. 충격이 아예 없지는 않은 건가?'

갈라진 도로 틈 사이에서 솟구친 뿌리가 주변을 휩쓸었어도 멀쩡히 일어났던 목인들.

그것들도 뿌리가 휘두르며 준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오빠!"

예린이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셔터 철창에 얽힌 넝쿨을 지수가 도끼로 대부분 잘라 내 이제는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내릴 수 있어 보였다.

차르르르르륵!

반쯤 걸처있던 방범 셔터가 완전히 내려와 외부의 위협을 차단했다.

금속재 셔터가 입구를 막았지만 나무 인간들의 힘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저씨. 들어와! 어서!"

예린은 셔터가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몸을 바로 빼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고, 지수는 안에서 편의점에 들어오기 전 문에서 떼었던 종을 들고 다시 나왔다.

그녀는 셔터 사이에 난 틈으로 종을 힘껏 던졌다.

땡-!

팅! 팅- 티잉-

문열림 종은 단단한 아스팔트 도로에 이리저리 튕기며 요란한 소리를 퍼트렸다.

그 소리는 편의점으로 달려오던 나무 인간들의 주의를 끄는데 성공해 일부를 대열에서 탈주 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나무 인간들이 오고 있었다.

지수가 내 옷깃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아저씨. 이제 들어와! 문도 닫아야 해!"

기잉-

······철커덕!

서둘러 편의점 내부로 들어온 우리는 유리문 중앙에 달린 잠금장치를 돌려 문을 잠갔다.

처음 유리문을 잠그려고 했을 때 전자식 잠금장치가 보여 당황했지만 전자기기가 작동하지 않는 지금이라도 안쪽에서는 장치를 억지로 돌려 잠글 수는 있었다.

끼기긱-

지수는 그걸로도 모자라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밀어 입구를 더 단단하게 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쿠-웅!

문 앞에 도착한 나무 인간들이 셔터에 달라붙어 난동을 부렸다.

[그아아아아아!!]

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럭-!

쇠창살 틈 사이로 살의로 번들거리는 눈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우리는 기가 죽어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지수야."

"응."

"버틸 수 있을까?"

"···넝쿨 체액이 뿌려졌으니 진정하고 돌아갈지도-."

우직-콰드드득-끼기기긱!

방범 셔터가 파괴되는 소리에 지수는 말하던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셔터의 파이프가 나무 인간들의 손아귀에 잡혀 우그러지며 휘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쿵쿵쿵쿵쿵쿵!

나무 인간들은 틈이 넓어진 셔터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벌써 유리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더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생각해···!'

이 옆에 부동산이 있었지.

하지만 거기는 유리 벽이 전부 깨져 여기보다 위험하다.

이 건물이 단층이었던가?

나는 지금 우리가 있는 건물이 3층짜리 건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계단···!'

분명 외부에서 위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없었다.

그렇다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건물 내부에 있을 것이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지수와 예린을 바라보았다.

지수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예린을 꼭 안아주고 있었고, 예린은 꼭 달라붙어 훌쩍거리고 있었다.

'죽게 내버려 둬선 안 돼.'

나는 예린의 손을 잡아주며 지수와 눈을 마주쳤다.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울지마. 아직 안 끝났어. 아마도 여기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을 거야. 우리는 그 계단을 찾아야 해."

"···계단?"

귀가 축 늘어진 예린이 그렁그렁한눈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지수는 눈물을 손으로 쓸어 주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 계단 같은 건···."

이미 내부를 둘러본 그녀는 힘없이 중얼거리다가 말을 멈췄다.

나와 잠깐 눈을 마주친 그녀는 동시에 한쪽을 바라보았다.

편의점 창고.

쓰러진 목인이 있는 탓에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왔던 장소.

거기에 남은 희망이 있다.

다시 눈을 마주친 지수는 나와 같은 생각한 듯하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했어. 조금이라도 빨리 올라가야 해."

"좋아. 예린아. 뚝 그치고 가자. 우린 안 죽어."

지수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자 예린은 팔뚝으로 눈가를 벅벅 문지르더니 이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내부 창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본디 선반에 쌓여 있어야 할 각종 재고가 들어 있는 상자들과 음료수 캔 묶음은 바닥에 엎어져 내부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죽은 목인도 보였는데 이미 죽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두려움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철그럭철그럭철그럭철그···철그···럭 달칵-

셔터의 계속 흔들리는 소리가 신경이 거슬렸는지 지수가 창고 문을 닫았고 그 소리는 조금 작게 들려왔다.

나는 급한 마음에 빠르게 눈을 돌리며 창고 내부를 보았지만 계단은커녕 다른 문조차 보이지 않는다.

좀 더 자세히 보니 구석에 있는 선반 뒤에 빈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시야에 전자 잠금장치가 달린 문이 들어왔다.

찾았다.

"지수야!"

"하아. 하아···."

전자 잠금장치여도 도끼로 부수면 된다는 생각에 지수를 부르며 뒤돌아봤지만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점점 붉게 물들고 있는 그녀의 팔뚝.

지금은 죽은 저 목인에게 긁힌 상처다.

예린은 안절부절못하며 지혈을 하려고 했는지 상처 부위를 꾹 누르고 있었다.

벽에 기대고 있던 지수는 내 부름에 눈을 뜨고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예린은 그런 지수를 지켜보다가 낑낑거리며 식량이 담긴 크로스백을 어깨에 멨다. 안이 꽉 차서 무거운 가방이 아이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언제까지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기댈 거냐!'

나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지수야. 도끼 줘. 빨리 올라가야겠다. 예린아. 언니 부축 좀 해주고 있어. 문 금방 열 테니까."

"···네!"

안 그래도 무거운 가방을 챙기느라 힘든 아이한테 부담을 더 지게 해서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니 예린은 괜찮다는 듯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지수는 바닥에 질질 끌리는 도끼와 나를 번갈아 가면서 보았다. 망설이는 태도에 답답함이 들어 입을 열려는 순간.

콰장창-!!

[쉬익! 게에에엑!]

유리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놈들의 소리가 들렸다.

지수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더 기다려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지수의 손에 들린 도끼를 빼앗아 들고 잠금장치를 향해 내리쳤다.

부우우웅-

쾅! 쾅!

콰직!

"들어와! 문 열었어!"

문이 열리고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나는 힘이 없어 축 늘어진 지수를 예린에게서 넘겨받으며 서둘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구아아아아악!]

쾅! 콰직!

쿵! 쿵! 쿵!

문고리를 부수면서 나는 소음에 그것들이 창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끄응-!"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가니 어느새 2층에 도달해 있었다.

나는 선택해야했다. 3층으로 올라갈지 2층에서 숨을 곳을 찾을지.

2층에서 숨을 곳이라고 해 봐야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3층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

2층에 있는 문은 살짝 열려 있어서 잠금장치를 부수지 않아도 되어 보이지만 저 문 뒤의 공간이 안전할 거라는 보장은?

3층에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닫힌 공간이라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끼아아아아아!]

시간이 없다.

"예린아. 보여?"

제발 보인다고 해.

푸른 빛이든 검은 빛이든 보인다고 해 줘. 제발.

"···안 보여요. 죄송해요."

나는 예린의 말에 맥이 탁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애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가다듬었다.

그리고 어디로 갈지 정했다.

생각해 보니 이 건물의 3층에는 테라스가 있었다.

테라스가 있는 층에 우리가 숨을 곳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봐야겠지.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마음만 앞선 나머지 이런 간단한 답도 너무 늦게 떠올렸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저 문으로 들어가자."

"네···."

우리는 2층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더 버티지 못한 1층 편의점 창고 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끝으로.

콰지직!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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