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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0화 (21/497)

Chapter 20 - 20. 실종 (2)

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움직여 어느새 정오가 되었는지 내 머리 위에 우뚝 섰다.

하지만 여전히 지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그런 지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꼬르르륵

"하."

밥 때가 되었다며 울리는 배꼽시계.

마음이 심란한 와중에도 내 몸은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친다.

식량이 들어 있는 가방은 편의점 사장의 집에서 미처 챙기지 못했다. 넝쿨이 우리를 잡으려고 할 때 지수와 예린을 챙기는 것만으로 벅찬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도끼 한 자루뿐.

물론 이 도끼도 내 것이 아니고 지수의 것을 잠시 맡아둔 것에 불과하지만.

식량을 찾기는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일 에너지원이 보충되지 않는다면 위험해지는 건 나 자신이다.

그리고 지수가 깨어났을 때 갈증과 공복을 호소할 수도 있으니 그녀라도 챙기기 위해서는···.

"후우······."

나는 이어지는 내 사고에 한숨을 내뱉었다.

'이래서야 마치 예린이 살아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거 같잖아.'

나는 아직 예린이를 포기하지 않았고, 않을 것이다.

빨리 지수가 정신을 차려야 이 주변을 뒤져 보기라도 할 텐데.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상황을 원망하며 나는 방에 딸린 작은 창문을 통해 바깥을 확인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만 간혹 보일 뿐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예린을 가둔 봉오리도 어딘가로 향하다 멈춘 상황이라고 해도, 거리에 나무 인간이 없으니 당장은 안전할 것이다.

지수가 정신을 잃은 것처럼 예린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니 봉오리를 찾아도 서로 엇갈리지는 않겠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식량을 찾기 위해 아까 봐둔 공동 주방으로 가보기로 했다.

달칵-

저벅- 저벅- 저벅-

방문을 열고 중앙 복도를 향해 걸으니 바로 공동 주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1인용 싱크대, 전기 밥솥, 싱크대 위쪽에 붙어 있는 찬장, 정수기···.

좁은 공간에 있을 건 다 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는 태반이 쓸모없는 물건이다.

내가 확인해야 할 곳은 찬장과 냉장고.

기대감을 가지고 공동 주방에 있는 찬장을 열어 보니 고시원 주식으로 사용되는 봉지 라면이 한가득-

"···없어?"

나는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찬장 내부에는 먼지만 풀풀 날릴 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벌컥! 벌컥!

나는 서랍이란 서랍을 다 열어 보며 먹을 것을 찾아보았지만 역시 수확은 없었다.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도 없고, 고시원에 기본적으로 잔뜩 쌓여 있어야 할 라면도 없었다.

아직 냉장고가 남아 있었지만 이건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냉장고는 넘어진 채 문이 다 열려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고 이 역시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가만히 보관된 라면들을 나무 인간들이 찾아서 먹었을 리가 없으니 이건 분명 살아남은 사람의 소행일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냥 선인이 아니겠지.

나무 인간들이 거리에 없는 것이 생존자들과 관계가 있나?

그들이 예린이를 먼저 발견하면 어떡하지?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으며 예린을 빨리 찾으러 나가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이러나저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빈손으로 공동 주방을 나서니 허탈함이 몸에 가득 몰아쳤다.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빠르게 다른 방도 전부 뒤져 보았으나 이미 누가 싹 쓸어간 듯 식량 부스러기 하나, 쓸 만한 도구 하나 나오지 않았다.

고시원이 숙박과 숙식을 제공하는 곳인 걸 감안 해 망설임 없이 들어온 것인데 가장 중요한 식수와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다니······.

나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다시 312호 안으로 들어갔다.

두 손을 얌전히 배에 올리고 잠들어 있는지수.

처음에는 지수를 안전한 곳에 숨긴 후 쪽지를 남겨 나 혼자서라도 예린이를 찾아 나설까 했지만, 그건 나에게도, 지수에게도 위험 부담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하물며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확연히 커진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아저씨?"

가라앉은 눈으로 지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뚜둑- 둑

내가 대답 없이 입술만 꼭 깨물고 있으니 지수가 굳은 몸을 기지개로 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을 쭉쭉 필 때마다 조금씩 살랑거리는 그녀의 꼬리.

"왜 말이 없-"

지수는 그제야 주위가 눈에 들어왔는지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운 눈을 하며 나를 불렀다.

"뭐야. 여기 어디야? 예린이는?"

"···미안."

잠든 곳과 전혀 다른 곳에서 눈을 뜬 탓일까.

예린이의 행방을 묻는 지수였지만 나는 사과만을 겨우 입에 올렸다.

"왜, 왜 그래. 장난치지 말고···. 응?"

그녀는 자신이 납득을 할 수 있는 자세한 설명을 원하겠지만 모든 걸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지수도 정신을 차렸으니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주변 어딘가에 있을 예린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그녀를 안심시키고 빠르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지수야. 시간이 없으니까 잘 들어."

"······."

나는 새벽에 우리를 노린 넝쿨을 떠올렸다.

죽이려면 죽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산 채로 포획하려는 움직임을 드러낸 넝쿨.

단순히 널리 퍼지려는 확장성을 가진 넝쿨에서 확장이 포획성으로만 바뀐 넝쿨인 것인가, 실제로 지성을 가진 것인가 에 대한 여부는 지금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지성을 가진 넝쿨 본 적 있었어?"

지수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는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제 그것이 우리를 노리고 집에 쳐들어왔어."

"뭐?! 근데 왜 안 깨웠어!"

지수는 경악하며 내게 소리쳤지만 나는 이것만큼은 진실이라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깨웠어. 너희가 일어나지 못했을 뿐."

"뭐?"

"나는 처음에 너희가 피곤해서 잠이 든 줄 알았는데, 변종이 뿜는 연기를 들이마신 탓인지 아무리 흔들어도 깨질 않더라. 나 혼자서라도 막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어."

"우리가 정신을 잃은 거였다고? 하지만 아저씨는···."

"그래. 나는 정신을 잃지 않았어. 왜 나만 예외였는지는 몰라.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우리가 결국 그 넝쿨의 봉오리에게 붙잡혔다는 거지."

지수는 내 말에 주위를 둘러보더니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눈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를 잡은 넝쿨이 어딘가로 향하다가 다행히 도중에 멈췄고, 덕분에 너와 나는 빠져나올 수 있었어."

"그래서 예린이는 어디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한 얘기들을 들은 지수는 현실을 부정하는 듯이 예린의 행방을 재차 물어왔다.

"문제는 봉오리가 한 개가 아닌 두 개였다는 거고."

"예린이는 어디 있냐고-!"

"···아마도 이 주변 어딘가."

"······혼자 있다는 소리야?"

"살아 있다면."

"아."

내가 나지막하게 한 말에 지수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는지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허물어졌다. 나는 그런 지수의 반응에 죄책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넌 여기 남아."

"무슨 소리야. 또."

지수는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나 혼자 예린이를 찾아서 이 주변을 둘러볼 테니까. 넌 여기 남으라고."

내 말에 다시 고개를 든 지수가 나를 으르렁거리며 사납게 노려봤다.

"혼자서 괴물들 사이를 지나가겠다고? 나도 같이 가."

"······."

"아흑-!"

나는 지수의 고집에 말없이 아직 낫지 않은 지수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너 아직 다 안 나았어.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 근처는 나무 인간이 없어. 단 하나도."

나는 나무 인간이 없는 만큼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애써 삼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지수를 안심시키고 싶었기에.

"자, 여기 도끼. 잘 썼다."

"···도끼도 없이 나가게?"

"주인한테 돌려 줘야지."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도중에 지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붙잡지만 않았다면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갔을 것이다.

"···아저씨. 아직 살아 있다고 믿어? 난 믿어. 그렇게 생각할래."

"···나도 믿어."

"노력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내 성미에 안 맞아.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

"설령···.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시체라도 찾을 거야. 그러니까!"

"······."

"같이 가. 혼자 못 보내."

그 말과 동시에 지수가 내 옷깃을 덥석 잡아 허락할 때까지 놓지 않겠다는 듯 힘을 주어 버텼다.

내 허락이 없어도 나를 따라오려면 따라올 수 있는데 굳이 허락을 구한다는 건 아직 나를 믿고 있다고 봐도 좋은 걸까.

나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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