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 21. 실종 (3)
서로의 의중을 확인한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예린을 찾아보기로 했다.
지금은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지만 그동안 묘하게 해가 빨리 졌다는 걸 생각하니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바로 내려가자. 자세한 건 가면서 설명해 줘."
어차피 다른 물건 챙길 것도 없이 몸만 내려가면 되기 때문에 준비할 것도 없었다.
나는 지수와 함께 고시원을 나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던 중 지수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여기 뭐 다른 건 없었어?"
그녀의 물음에 순간 멈칫해 발걸음을 멈춘 반응을 보여주니 지수도 덩달아서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생존자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지수에게 하지 않았었다.
"뭐야. 왜."
"아까 말 안한 게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 생존자들이 있는 것 같다."
"생존자들···?"
"몇 명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시원 내부가 다 털려 있었어. 아마 이 근방도 마찬가지로 털려 있을 가능성이 커."
"그럼 더 서둘러야겠네."
지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다시 몸을 휙 돌려 마저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꼬리가 빳빳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1층에 도착했다.
"진짜 없네? 나무 인간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나무 인간이 없는 거리가 신기한 지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기껏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과 나이 정도.
그녀가 어디 살았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나는 모른다.
처음에는 지수가 마냥 강한 사람인 줄 알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좀 더 알아보니 속이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저씨. 무슨 봉오리에서 나왔다고 했지? 일단 거기로 가 보자."
"그래. 여기 바로 앞이야."
"우욱···. 여기에 우리가 가둬졌다고? 소름 돋아···."
이제는 지수를 좀 더 알 것 같다. 내가 예린이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기만 할 때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봉오리에 코를 가져다 대서 연신 킁킁 거리는 지수에게 다가 갔다.
"처음에는 이거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어.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된 거고."
"흐음. 이게 움직였다는 거지···."
"근데 냄새는 왜 맡는 거야? 뭐가 느껴져?"
"개의 후각을 무시하지 마시라-! 같은 종류의 봉오리라면 이거랑 비슷한 냄새를 풍기고 있을 거야. 그럼 그걸 찾는 게 우선이겠지."
···개.
역시 지수는 개였구나.
예전부터 귀와 꼬리는 왜 난 건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런 사소한 걸 물어볼 여유 있는 상황이 오지 않다 보니 계속 미뤄지기만 하고 있었다.
'언젠가.'
언젠가. 상황이 된다면 지수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
도로 위에 놓인 봉오리의 냄새를 충분히 맡았는지 지수는 고개를 들었다.
킁킁
코를 움찔거리며 주변 공기의 냄새를 맡는 지수.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귀가 계속 쫑긋거린다는 것일까.
나도 그녀를 따라 냄새를 맡아보았으나 내 코에 느껴지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 풀 냄새뿐이다.
"아저씨. 이리 와."
"어어."
"도끼 받아."
"내가?"
내가 반문하자 지수는 말없이 다친 팔을 들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그녀의 곁으로 가 도끼를 건네받았다.
"따라와. 냄새는 이쪽 방향에서 나고 있어."
"벌써 찾았어?"
"일단 가보는 거지. 빨리!"
지수는 큰 걸음으로 나를 앞서나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혹시나 예린이 보일까 하는 마음에 평소보다 더 주위를 살피는 것 같았다.
부스럭- 부스럭-
수풀을 헤치면서 지나가는데 새벽에 내린 비를 아직 머금고 있었는지 한번 헤칠 때마다 바지가 물기에 축축해졌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물기가 남아 있다고?
나는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려 아직 보이는 봉오리를 눈에 담았다. 저 봉오리 주변에는 물기가 바싹 마르다 못해 수풀이 바스라질 정도인데.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그런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바닥에서 물컹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화들짝 놀라 급하게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보니 두꺼운 넝쿨 줄기가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물기를 가득 머금어 통통해 보이는 넝쿨 줄기.
'그러고 보니···.'
다르다.
건물에 붙어 있는 넝쿨과 다른 느낌이다.
같은 종류의 넝쿨은 맞는 것 같지만 뭐랄까.
'원줄기와 곁줄기의 차이?'
곁줄기는 특정한 방향없이 중구난방으로 뻗어 있지만 바닥에 있는 원줄기 같은 경우는 일정한 방향에서 뻗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아저씨! 뭐 해!"
앞서나가던 지수가 내가 점점 뒤처지자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미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또? 지금은 예린이 찾는데만 신경 써 줘···."
"진짜 미안."
나는 그렇게 말하며 지수를 따라 3차선 도로를 계속해서 이동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저번에 들었던 의문 또한 심해지고 있었기에.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들.
백번 양보해서 사태가 벌어진 날이 세계 차 없는 날이었다고 해도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9월도 아니잖아.'
사람들이 타지 말라고 해도 타지 않을 사람들도 아니고. 오히려 더 타면 더 탔지.
"아흑!"
갑자기 지수가 코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나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후다닥 뛰어 지수에게 다가 갔다.
"왜, 왜 그래?"
"······코."
"코?"
"코가······. 코가 너무 아려···."
"코가? 갑자기?"
그녀의 말에 나도 코를 부여잡고 막아야 하나 싶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킁킁
"괜찮은데···?"
"흐윽. 아니잖아-!"
괜찮다는 내 말에 지수는 손으로 꽉 막은 코를 살짝 풀었다가 신음을 토해내며 다시 코를 꽉 막았다.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나는 지수의 상태가 걱정되어서 그녀에 어깨에 손을 올렸고 지수가 고개를 들었다.
코가 아리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는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버린 지수의 얼굴.
"풋-. 미안."
바로 사과했음에도 사나운 표정을 지은 지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서둘러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잠시 눈을 흘기더니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꽃 향기가 나."
"꽃 향기?"
"그것도 아주 강하게."
나는 재차 주변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했다. 사라지지 않는 풀 냄새를 제외하고.
"이게 안 느껴진다고?"
지수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도 같은 표정을 한 채 지수를 바라볼 뿐이다.
"이제 어떡해? 지금까지 냄새로 움직였잖아."
"······."
잠시 침묵이 이어졌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내려 다시 바닥을 바라보았다.
일자로 뻗어있는 거로 보일 정도로 반듯한 두꺼운 넝쿨 줄기.
이번에는 고개를 뒤로 돌려 우리가 왔던 길의 바닥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앞.
지수가 알고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왔던 길, 우리 앞으로 이어진 길바닥에 전부 원줄기로 보이는 넝쿨 줄기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어딘가로 향했던 우리를, 예린이를 가둔 봉오리.
나는 손으로 넝쿨 줄기를 더듬었다. 그러자 진득하게 묻어나오는 물기.
나와 지수를 가둔 봉오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말라비틀어져 갔었다.
움직이는데 일정량이 수분이 필요하고 그 수분을 바닥에 깔린 넝쿨이 공급해주는 것이라면?
그럼 이건 이동 경로일 것이고 넝쿨들의 목적지라면···.
'···둥지?'
나는 그 끝에 예전에 지수가 지나가듯 말한 넝쿨들의 둥지가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혹은 그 무언가.
"지수야."
코를 새빨개질 때까지 문지르고 있던 지수가 나를 돌아봤다.
"저번에 나한테 둥지 얘기한 거 기억나? 넝쿨이 둥지로 끌고 간다고 했었잖아."
"···그게 왜?"
"그럼 혹시-"
"아니야."
지수는 내가 할 말이 뭔지 안다는 듯 중간에 말을 끊었다.
"아닐 거야···."
"확신해?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겠지만···."
"하지만 둥지라기에는 거리도 너무 멀고···."
수색할 때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놓아야 하는데 지금 지수의 태도는 좀 이상하다.
이런 세상을 며칠 겪지 않은 나조차도 간단하게 둥지를 떠올렸는데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지수가 이걸 못 떠올렸다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횡설수설하는 지수의 모습에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불덩이 같잖아······.'
지수는 눈이 풀리며 이제 비틀거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왜 이러는지 생각해봤다. 문제라면 그녀가 맡았다는 꽃 향기겠지.
찌지지지이이익-
나는 내 상의를 길게 찢어 급한 대로 그녀의 입과 코에 둘둘 감아 마스크 대용으로 쓸 수 있게 해 두었다.
조잡한 처치였지만 이 정도만 해도 꽃향기가 한 차례 걸러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한 행동이었다.
쓰읍-후읍-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더니 서서히 그녀의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땀 냄새나."
"정신이 들어? 냄새는 미안."
"······됐어."
나는 냄새가 난다는 그녀의 말에 창피함을 느끼며 그나마 깨끗한 것으로 갈아주려고 했으나 지수는 됐다며 손사래 쳤다.
"꽃 향기가 난다고 할 때부터 네 상태가 이상해져서 일단 막아본 건데 효과가 있나 보네. 다행이야."
"크흠!"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
"어. 예린을 잡아간 봉오리가 둥지로 향하지 않았겠냐- 이 말 했었잖아."
"···그렇지."
"그럼 더 서둘러야 해. 뭔가 알아냈으니까 그런 말 한 거지? 이번엔 아저씨가 앞장서."
지수는 내 등 뒤로 와 나를 꾹꾹 밀었다.
그녀의 정신은 돌아왔으나 아직 그녀의 얼굴은 붉었기에 나는 지수를 걱정스레 보며 말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너 아까 열도-"
"아, 쫌! 괜찮다니까. 빨리 가자구."
"알았어. 알았다고. 밀지 좀 마."
나는 지수의 반응을 뒤로하며 내가 찾은 것을 지수에게 알려주었다. 그녀가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바닥 보니까 두꺼운 넝쿨이 길게 뻗어 있더라. 대충 이걸 따라가면 둥지인지 하는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그게 끝?"
"그리고 거리에 차가 한 대도 없는 것도 이상하고. 제일 이상한 건 나무 인간이 없다는 거지만."
"그러네. 차도 없었네···."
나는 작게 중얼거리는 지수의 말에 어이없음을 느끼며 툭 내뱉었다.
"아니. 앞장서고 있었으면서 뭘 보고 다닌 거야?"
"미안···. 예린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어서···."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지.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린 후 가자며 손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