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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3화 (24/497)

Chapter 23 - 23. 시체들의 화원(花園) (2)

"이게···이게 뭐야?"

이게 둥지? 누가 봐도 꽃동산인데?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지수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하며 내 곁으로 붙었다.

"안 들어가고 뭐 해? 빨리 예린이 찾아야지."

그러나 나를 재촉하던 지수도 내가 본 광경을 눈에 담자 마찬가지로 굳어 버렸다.

휘이이잉-

푸스스스스···

세찬 바람이 불어오자 꽃들은 몸을 흔들어대며 꽃잎만큼이나 새하얀 가루를 사방으로 뿜어냈다.

"읍!"

나는 급하게 팔목으로 입가를 가렸다.

아직 지수가 맡았다던 꽃 향기도 맡아지지 않고, 여전히 같은 풀 냄새만 맡아졌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꽃가루가 공기 중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본능적으로 생기는 거부감에 팔을 들어 가루가 들어오지 못하게 입가를 가린 것이었다.

지수도 입가를 약간 느슨하게 막고 있던 천을 강하게 조여 동여맸다.

"지수야. 이게 둥지야?"

"···둥지? 아니. 달라."

그녀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둥지랑 전혀 달라. 이런 형태의 둥지가 있다는 것은 못 들어 봤어···."

"지수, 네가 모든 둥지를 본 건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만···."

지수는 말을 흐렸지만 나는 왠지 그 뒷말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광경이 기존의 둥지에 비해 이질적으로 보인다는 거겠지.

우리는 일단 둥지 혹은 화원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사박-사박-사브작

걸을 때마다 무언가 발에 짓밟혀 잘게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수야. 잠깐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운동장의 토양을 손으로 한 줌 집어 만져 보았다.

까슬까슬한 흙, 자잘자잘한 돌 부스러기 그리고 ······톱밥?

투둑-

내가 흙을 매만지고 있을 때 지수가 바로 앞에 있는 꽃 한 송이를 뽑았다.

투두둑!

힘을 별로 주지도 않아 보였는데 꽃은 뿌리째 뽑혀 나왔고, 그 끝에 무언가 같이 딸려 나왔다.

뿌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동그란 형태의 무언가가.

"으헉!"

지수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꽃을 멀리 던져 버렸다. 나는 지수의 돌발 행동에 크게 놀라며 흙을 내던지고 그녀에게 바싹 붙었다.

"왜, 왜! 뭔데?"

"머리, 머리가···."

나는 그녀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의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사라졌던 동상의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동상이잖아."

"···아. 미안."

지수는 메마른 손으로 얼굴을 훑으며 사과했다.

"···지수야."

"왜, 미안하다고 했잖아···."

내가 나지막하게 부르자, 재차 사과하는 지수였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사과가 아니었다.

나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예린이가 무슨 색 옷을 입었었지?"

"겉 옷? 검은색 마이 입었잖아."

"저기 봐. 보여?"

"······."

지수는 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는 꽃들이 검은색 옷처럼 보이는 것에 뿌리를 내린 모습.

으직! 콰직! 사브작! 끄득-!

내가 지수를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그것을 향해 냅다 뛰었다.

땅을 박차는 발이 꽃들을 짓이기고, 그 밑에 있는 정체 모를 것들을 으깼지만 지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수의 눈에는 단 하나만 보이는 듯했다.

뚝! 투두둑! 찌직-

순식간에 그것의 앞에 도착한 지수는 손을 들어 정신없이 꽃 주변을 파헤쳤다. 그리고 그것을 움켜쥐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들어 올렸다.

잠시 그것을 살피던 지수는 힘이 빠진 듯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지수야!"

"흑-. 흐흑···."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지수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검은 옷을 붙들고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었다.

"···아니지?"

지수가 훌쩍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죄책감을 느꼈지만, 나는 그럼에도 확인해야했다.

나는 티 나지 않게 이를 악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응. 아니야. 예린이 옷이 아니야."

"···뭐?"

내 예상과 달리 아니라는 지수의 대답에 나도 지수처럼 힘이 빠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아니. 근데 왜 우는 거야? 심장 떨어지게."

"아니니까···. 다행이라서 나도 모르게 그만···."

"어휴-."

나는 한숨을 토해내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의 힘이 풀려 후들거렸지만 일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예린이를 찾지 못 하지 않았는가.

"아직 안심하긴 이르잖아. 그게 아니라면 더 찾아봐야지. 빨리 일어나."

"응."

지수는 마지막으로 코를 훌쩍이고 내가 내민 손을 잡아당기며 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기괴한 화원을 각자 구역을 나눠서 제대로 탐색하기로 얘기를 나눴고, 닥치는 대로 헤집기 시작했다.

우득! 으직! 콰득! 후두둑- 파악! 팍! 끄드드···

화원에 있는 꽃들을 파헤치니 심장이 쿵 떨어질 정도로 이상한 것들이 뿌리에 딸려 마구 뽑혀 나왔다.

이끼가 잔뜩 낀 두개골, 어느 부위인지 모를 뼛조각들, 미로처럼 세워진 폐차들로부터 떨어진 차 부품들, 유리 조각, 검은색 머리카락 다발······.

처음 사람의 두개골이 뽑혔을 때, 나는 기겁을 하며 멀리 던졌지만 다음부터는 그 자리에 다시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던져진 두개골이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텅 빈 안구 구멍으로 마치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가만히 내려놓는다면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적어도 꺼림칙한 느낌은 덜 하기 때문이었다.

운동장에 깔린 토양을 파면 팔수록 누렇게 변색된 뼛조각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양을 토해냈다. 쿰쿰한 냄새와 함께.

"후우···. 이것들 뼈까지도 비료로 써먹고 있잖아."

그저 이런 혼잣말만 나올만큼 나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작 며칠 사이에 적응을 해버린 건지, 아니면 아직도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넝쿨이 끌고 온 시체들을 남김없이 양분으로 삼아 하얀 꽃잎과 붉은 수술을 가진 꽃이 피어나는 곳.

말 그대로 시체들의 화원이었다.

나는 내가 맡은 구역의 화원을 죄다 헤집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린이와 관련된 물건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 없는 건가?

시간이 꽤 흘러 해가 처음 보다 더 기울어졌다.

아직 단서조차 찾지 못했건만,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완전히 난장판으로 변해 버린 화원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있을 때.

"아저씨."

좀 떨어진 곳에서 나를 부르며 지수가 다가왔다. 그녀도 빈손인 것을 보니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찾지 못한 듯했다.

"뭐 좀 찾았어?"

나는 지수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힘없이 고개를 좌우로 젓는 지수.

지수가 내 손을 흘깃 바라보았다. 말없이 물어보는 모양새에 나는 내 빈손을 보여 주며 말했다.

"나도 찾은 게 없어. 그러니까 빨리 정하자. 아직 건물 남았잖아. 어디부터 갈래? 붉은색? 회색?"

나는 지수에게 어느 건물을 먼저 탐색할 것인지 선택지를 내주었다.

구관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냐.

신관으로 보이는 회색 벽돌 건물이냐.

지수는 잠시 고심하더니 이내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신관?"

"어."

"이유가 있어?"

"여기서 가장 가깝잖아. 괜히 다른 곳부터 가면 동선이 꼬일 거야."

"좋아. 난 네 말을 따를게. 빨리 가자."

"···괜찮을까?"

지수는 머뭇거리더니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확인용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담담하게 내 생각을 지수에게 말해주었다.

"처음이 신관인 것뿐이지. 어차피 다 둘러보긴 할 거잖아. 학교에 쓸 만한 물건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이런 말할 시간도 아껴야 빨리 찾지. 가자."

"응!"

지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도끼를 고쳐 쥐었다.

회색의 외벽을 가진 신관 건물.

우리의 다음 목적지였다.

부스럭-부스스-사브작-사박!

나는 우리가 들어왔던 넝쿨벽 틈으로 되돌아가며 생각했다.

이곳은 둥지가 맞긴 한가?

온갖 유골들이 묻혀 있는 것을 보면 지수가 말한 둥지의 특성이 맞긴 한데···.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서 양분을 모아두는 거야?

"지수야. 뭐 좀 물어봐도 돼?"

"뭔데?"

내가 작게 입을 열자 지수도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저번에 넝쿨이 둥지로 끌고 간다고 했잖아."

"그렇지."

"그럼 단순히 모아두기만 해? 그러니까 그···사체들 말이야. 모아서 뭘 하는데?"

"···그건 확실하게 그건 이렇다라고 해 줄 수가 없네. 둥지라는 말도 그냥 내가 붙인 말이기도하고. 사태 초기에는 저게 뭐냐- 창고냐- 본체냐-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고 의견이 분분했거든."

창고랑 본체?

"응? 네가 말한 둥지랑은 거리가 먼 단어들인데? 왜 둥지라는 이름을 붙인 거야?"

"원래-, 아니 내가 사태 초기에 본 둥지 주변에는 나무 인간들이 득실거렸고, 무언가를 지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거든. 꼭 집을 지키는 것처럼. 그리고 저 이상한 폐차들도 없었고."

"하지만 여긴···."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아저씨가 말했던 대로 내가 모든 둥지를 본 건 아니지만 그동안 봐온 둥지랑은 양상이 너무 다르니까."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나무 인간들이 없는 건 둘째치고, 지수가 느꼈던 대로 둥지가 무언가의 집이라면 폐차장 마냥 높게 쌓여 있는 폐차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집에 누가 저런 쓰레기들을 가득 들여놓는다고?

'아.'

생각해 보니 내 자취방도 쓰레기가 있긴 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실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빠드득-

빠드득- 빠드득-

신관 건물로 가까이 갈수록 발에 밟히는 유리 조각들이 점차 늘어났다.

지수는 유리 조각 밟히는 소리에 아차 하는 심정이 들었는지 급하게 내 발치를 바라보았다가 안도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신발 신고 있어서 다행이네."

"예린이가 챙겨 줬었어."

나는 다시 한번 예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예린이가 신발을 챙겨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발은 파고든 유리 조각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다 못해 걸레짝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예린이를 반드시 찾아야겠지.

나는 고개를 들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신관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새 건물에 가까웠을 신관은 뒤덮은 넝쿨과 군데군데 깨져 있는 유리창으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폐교로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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