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 - 24. 시체들의 화원(花園) (3)
나와 지수는 신관 건물 1층 앞에 도착했다.
운동장 입구 쪽 넝쿨벽과 맞닿아 있는 신관.
총 5층으로 구성된 이 건물은 처음에 봤을 때는 1채 인 줄 알았었는데 다시 보니 2채로 이루어져 있었고, 건물 사이를 구름다리로 연결해 놓았던 것이었다.
구름다리는 각 건물 4층을 연결하고 있었다.
"건물이 또 있네···."
지수는 선택지가 또 늘었다는 사실에 힘없이 중얼거렸다. 나 또한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도 아까워. 들어가자."
그녀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1층을 근처를 서성이며 들어갈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사브작-사박-빠드득-빠드득-
건물 아래에 유리 조각들이 어찌나 많이 흩뿌려져 있는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유리 조각들이 서로 비벼지며 부서져 나갔다.
지금도 얼핏 보이는 1층 내부에는 오히려 유리 조각이 건물 밖에 비해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깨끗해 보인다.
유난히 건물 바깥쪽에 유리 조각이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수야."
"어?"
"좀···이상하지 않아? 유리 조각이 왜 이렇게 많지?"
"음-."
지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저 위 쪽 창문도 많이 깨져 있던데. 그래서 그런 거 아니야? 지진 때문에 깨졌을 수도 있고."
"지진···."
하지만 지진 탓이라고 하기엔 건물 외벽도 멀쩡해 보이고 다른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 여기!"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찾은 듯 지수가 나를 불렀다. 나는 한 치의 짧은 시간도 아까웠기 때문에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 갔다.
"여기 봐봐. 이 정도면 쉽게 들어가겠지?"
"그러네."
지수는 유리가 깨지지 않고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을 찾아냈고, 바로 열고 창틀을 타고 넘어갔다.
드르륵-
나도 그녀를 따라 창틀을 타고 넘어갔고 순간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나왔다.
어찌 보면 수백명이 다녔던 학교 창문을 외부인이 무단으로 넘어간 상황이 아니던가. 비록 지금은 우리를 말릴 경비원도, 교사들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 나를 지수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허허···."
"왜 웃어?"
"아니, 그냥. 자연스럽게 창문을 넘은 게 뭔가 웃기잖아. 문으로 들어와도 됐는데."
"칫. 별게 다···."
"어허. 나 때는 말이야."
"네다틀."
"지수야···."
"쉿!"
냉담한 지수의 반응에 서운함을 토로하려고 할 때 지수가 손을 들어 급하게 내 입을 막았다.
'뭔데?'
내가 눈짓으로 그리 묻자, 그녀가 조용히 귀를 툭툭 치며 가리켰다.
···락······사각······
흠칫!
확실하진 않지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이해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모르니까 조용히, 조심히 찾아보자."
지수는 잠깐 들렸던 소리를 파악하려는 듯 연신 귀를 쫑긋거리며 작게 속삭였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가 들어온 교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지만 교실 내부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제 형체를 간신히 알아보기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박살 나고, 찌그러진 황색 책상과 의자들,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잘린 듯 반 토막 나 있는 교사들이 매 수업 시간마다 필기 내용으로 꽉 채웠을 칠판, 화면이 완전히 깨져 버린 TV······.
누군가 교실에 악의를 가지고 부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들어오면서 이 모습을 눈에 담았을 텐데도 웃음이 나왔다니, 나도 이상해진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지수가 씁쓸하게 웃으며 반 토막난 칠판의 단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글쎄. 핏자국이 없는 걸 보면 사람들끼리 싸운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애초에 사람들끼리 싸웠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박살이 날 수가 있나?"
"으으···. 역시 이곳은 이상해. 빨리 나가고 싶어. 불안 해."
우리끼리 무슨 일이 있었나 추측해 보았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있는 길은 없었기에 빨리 예린을 찾고 이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드르륵-
나와 지수는 문을 열고 교실에서 벗어나 빠르게 1층을 훑어보았으나 다른 교실도 마찬가지로 부서진 잔해만 가득했을 뿐 예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1층에는 교장실을 비롯한 각종 비품 창고들이 있었지만 먼지만 풀풀 휘날릴 뿐 쓸 만한 건 없어 보였다.
우리는 좌측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통해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2층에서도, 3층에서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네."
이 말은 단순히 쓸 만한 게 없다 라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기이할 정도로.
1층은 부서진 잔해라도 있었지 2층과 3층은 1층과 다르게 텅 비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착했을 때, 조용히 걷고 있던 지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사방으로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나는 지수의 이상 행동에 몸을 바싹 굳히며 작게 입을 열었다.
"···착각인가?"
"왜? 뭔데?"
"갑자기 누가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
"······."
"내 착각···이겠지. 미안. 좀 예민해져서 그런가 봐."
지수는 얼버무리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지만, 나는 지수의 귀와 꼬리가 완전히 곤두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후우···."
긴장감이 조금씩 차오르며 심장이 그것에 반응하는 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4층도 다른 층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을 가능성이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므로 나는 심호흡하며 긴장으로 수축된 몸을 억지로 움직여 강제로 이완시켰다.
저벅저벅
우리는 한층 더 조심하게 움직이며 4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4층 복도를 보고 벙찔 수밖에 없었다.
긴 복도에 수많은 의자와 책상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2층과 3층이 비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나?'
복도에 줄지어 널브러진 각종 가구들은 일종의 바리케이드처럼 보였다.
"···바리케이드?"
지수도 나와 같은 생각한 듯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수는 이내 그것이 아닐 것 같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닌가?"
"왜?"
"너무···엉성하잖아."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책상과 의자따위들은 무질서하게 그저 쌓여져만 있었다. 효율은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 마구잡이로.
"급하게 쌓아서 그런 거 아닐까?"
"···2층과 3층을 다 털어서 여기 쌓을 시간은 있고?"
"······."
"그리고 또 하나. 왜 안이 아니라 밖에 쌓여져 있지?"
지수가 하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4층에 만들어진 바리케이드에 대한 의문점이 늘어만 갔다.
건물 안쪽보다 바깥에 더 많은 유리 조각들.
4층의 각 교실 문을 막은 책상과 의자들.
대체 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아저씨."
지수가 계단 앞에 있는 교실을 들여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작게 불렀다.
나는 머릿속을 떠도는 잡생각을 지우고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 안에 뭐가 있길래 그러나 싶어 의아했지만.
[무···서······무서···워······무···]
뭐라고 중얼거리며 교실 안을 서성이는 한 형체가 눈에 들어오자 지수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긴장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저거 나무 인간이겠지?"
"······그렇겠지. 그리고 저 옆에 있는 것도 봐봐."
그녀는 그게 다가 아니라며 손가락으로 교실 내부를 가리켰다.
갑자기 나타난 나무 인간을 눈에 담느라 그 주변은 미처 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교실 내부에는 나무 인간뿐 아니라 이상한 것도 같이 있었다.
사람 크기보다 크고, 하얗고 동그란 것.
"···알?"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지수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좀 달라. 저건 주머니야. 먹이 주머니."
"먹이 주머니?"
"응. 넝쿨이 잡아 온 것들을 원리는 모르지만 실타래로 둘둘 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물이 흐물흐물해지면서 녹아."
"···아."
"둥지가 아닌 줄 알았는데···. 왜 먹이 주머니가······. 이러면···."
지수는 불안한 표정을 하며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시간이 없어. 만약 저 안에 예린이가 들어 있다면 빨리 꺼내야 해. 빨리."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가 들고 있는 도끼를 달라며 성화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뭐?"
"너 아직 팔 다 낫지도 않았잖아. 그러니까···."
꿀꺽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내가 할게. 언제까지 지수, 너한테만 부담을 지게 할 순 없어."
"······알았어. 그럼,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지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유리창이 깨진 복도 창문으로 움직였다.
찌지직! 트둑- 뚜둑!
푸쉬이익···
그러더니 창문밖으로 손을 뻗어 건물 외벽에 붙은 넝쿨 줄기를 잡아당겨 뜯은 후에 뿜어진 넝쿨 체액을 손에 담아왔다.
치덕치덕-
그녀는 체액을 내 피부에 펴 바르는 듯이 정성스레 덧칠해주었다.
손으로 뜯길 만큼 가느다란 넝쿨 줄기였기에 많은 양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지수의 행동에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끼로 두꺼운 줄기를 잘라 냈으면 더 많이 나왔겠지만 큰 소리 내면 안 되니까···. 일단 이거라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들고 있던 소방 도끼를 고쳐 쥐었다.
지수에게 말했듯 나는 변해 버린 이 세상에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무기가 없어서, 공간이 좁아서, 그리고······두려워서. 여러 변명을 하며 애써 내 행동을 정당화했지만, 이젠 그래서는 안 된다.
지수가 친구로서 내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은연중에 드러냈으니 나는 그걸 위해서라도 행동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