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 - 25. 시체들의 화원(花園) (4)
"후. 좋아."
지수가 이제 다 발랐다는 듯 내 얼굴을 문지르던 손을 떼었다.
점성을 가진 체액을 발라서 그런지 내 얼굴에는 아직도 그녀의 손길이 남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말없이 잠시 바라보다가, 내가 들어가야 할 교실로 눈길을 돌렸다.
몇 학년 몇 반인지 알려주는 팻말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교실 문에 가득 쌓인 책상과 의자들, 교실 안에 서성거리는 나무 인간과 보관되고 있는 먹이 주머니들, 그리고···유리창에 찍힌 손바닥 모양의 수많은 핏자국들뿐이다.
전부 부서지고, 망가지고, 변형되고, 기괴하고, 역겨운 것들.
평일이 되면 학생들의 온기와 떠들썩한 수다 소리가 학교 전체에 퍼졌을 텐데, 이제 이 학교에는 오직 죽음만이 가득하다. 차갑고, 무거운.
평화로운 그 일상은 다신 오지 않겠지.
내가 가라앉은 눈으로 교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지수는 소음없이 조용하게 교실로 들어갈 방법이 있는지 찾고 있었다.
그녀는 문 앞에 마구잡이로 쌓인 책상과 의자를 건드려도 보고, 꽉 닫힌 창문을 열어 보려고도 했으나 방법을 찾지 못한 듯했다.
"음···."
"창문이 안 열려?"
"어. 안에서 잠긴 것 같은데···."
나는 침음성을 애써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 문은?"
"앞 문? 뒷 문?"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데?"
"우리 앞에 있는 게 앞문이지."
"그럼 앞문. 저건 열려?"
"살짝 밀어 봤는데 열리더라. 저기로 들어가게?"
"그래야지. 창문으로 들어가는 게 제일 낫지만 안 열린다면서. 그럼 그다음으로 나아 보이는 앞문이지. 뒷문에 비하면 쌓인 것도 조금 적고."
지수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을 쭉 뻗어 미닫이 형식으로 된 교실 앞문을 천천히 열었다.
드르······륵···
나는 바로 행동으로 옮긴 지수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상황이 급하다는 것을 떠올렸기에 이해하고 도끼를 벽에 기대어 놓았다.
"내가 넘어가면 건네줘. 오케이?"
지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끼기······긱···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무게를 실었지만, 녹슨 책상과 의자의 틀이 서로 비벼지며 작은 소음을 토해냈다.
쿵! 쿵! 쿵!
심장이 거세게 고동치고, 나는 혹시 이 소리를 저 나무 인간이 인지했을까 두려운 마음에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숨을 죽여 그것을 바라보았다.
[살······줘·········]
서성거리던 것도 멈춘 목인은 다행스럽게도, 그저 가만히 서서 핏자국이 낭자한 바깥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지수를 뒤로한 채, 나는 다시 천천히 움직여 교실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끼긱-
작은 소음이 일었지만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다리를 최대한 벌려 발을 바닥에 대었다.
-툭
처음 발을 내딛는 게 어렵지, 그 뒤는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수월하게 나머지 몸도 교실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내가 완전히 들어간 것을 확인한 지수는 내게 말없이 도끼를 건넸다.
나는 건네받은 도끼 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 목표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다 해진 경비원 복장을 입고 있는 나무 인간.
주변 아파트 단지는 아직 완공되기 전이니 아파트 경비원은 아닐 것이다. 아마 이 학교의 수위였겠지.
[죽···고 싶·········]
'사람은 아닐 거야.'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정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나는 위로 치켜든 도끼를 나무 인간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순간 눈을 감을 뻔했지만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눈을 억지로 부릅뜨면서.
단단한 자루에 끼워진 묵직한 도끼 날.
도끼 날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가만히 서 있는 나무 인간의 머리를 정확히 쪼갰다. 그것은 쪼개지는 와중에도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굳이 듣고 싶지는 않았다.
[살······고···어···무서···싶···]
쩌억-!
···퍼석
풀썩-
장작 패는 소리와 소름 끼치는 느낌이 도끼를 타고 흘러 내 손에 전해졌다.
도끼는 나무 인간의 겉 피부에 나 있는 딱딱한 나무 껍질을 가르며 그 뒤에 숨어 있는 속살까지 갈라버렸다.
딱딱한 나무 껍질과 달리 그 내부의 속살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이현우. 26세. 일반인. 남성.
대한민국의 평범한 전역자는 오늘 첫 살인을 했다.
"허억! 허억-."
나는 가뿐 숨을 내쉬며 아직도 나무 인간을 쪼갠 감촉이 남아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생소한 느낌을 받은 손은 속절없이 떨리고 있었다.
차라리 속살마저 껍질처럼 단단했다면, 이런 느낌은 받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도끼로 찍었던 넝쿨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나무 인간들은 연한 살점을 가지고 있어 그것들이 예전에 인간이었다는 것을 강제로 상기시켜 주는 듯했다.
내가 목인을 죽이자 마자 빠르게 교실로 들어온 지수는 진정되지 않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아 왔다.
"아저씨. 괜찮아···?"
나는 고개를 들어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무심코 그녀의 손을 눈에 담았다.
'이런 걸 지수는 계속 반복했겠지.'
미쳐 버린 세상에서 지수는 예린이를 지키기 위해 다가오는 괴물들을 도끼를 휘둘러서 죽이고, 내려찍어서 죽이고, 베서 죽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를 죽이는 것에 무뎌지면, 우리도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후우!"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 식은땀을 훑어냈다. 이제 괜찮다고 말하려고 할 때.
"이제 괜찮-"
"꼬리 만-"
서로의 말이 겹쳐서 지수가 뭐라고 했는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뭐?"
"아니야!"
"못 들었어. 뭔데?"
"정신 차렸으면 빨리 예린이 찾자고!"
붉게 달아오른 지수의 얼굴과 정신없이 붕붕 흔들리는 그녀의 꼬리.
그게 아닌 것 같았지만 지수가 그냥 넘어가고 싶어 하는 눈치를 강하게 보내서 얌전히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바닥에 대자로 엎어진 나무 인간을 바라보았다.
죽고 다시 살아났지만 또다시 죽음을 겪은 나무 인간.
이제는 완전히 움직임을 멈춰버린 그것을 위해 짧게나마 묵념을 통해 명복을 빌어 주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이런 이상한 세상이 아닌 안전한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짧은 묵념이 끝나고 눈을 뜨니 은색의 뭉치가 나무 인간의 허리춤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짤그랑-
허리를 숙여 그것을 뜯어서 들어 보니, 총 5개의 열쇠가 달린 뭉치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일단 그것을 챙겨서 품속에 넣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의미 없어 보이는 열쇠가 우리 목숨을 구해 줄지도.
내가 죽인 나무 인간이 학교 수위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던 것만큼, 들고 다니는 열쇠 뭉치 또한 학교와 관련된 열쇠일 가능성이 크겠지.
"아저씨."
지수가 한 먹이 주머니 앞에서 나에게 손짓하며 불렀다.
"내가 이 윗부분 잡고 있을 테니까 도끼 날로 비벼서 살짝만 찢어봐."
"손으로는 안 돼?"
그녀는 내 말에 잠시 자기 손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보다 억세서 손으로는 안 돼. 그리고 마음 단단히 먹고, 힘 조절 잘해."
신신당부하는 지수에게 나는 그저 수긍하며 도끼를 들었다.
안에 무엇이 어떻게 들어 있는지 그녀가 말해 줘서 알고는 있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불안한 마음은 들긴 했어도.
"살살···. 살살-"
뜨둑- 트드득
조금씩 왕복하는 도끼 날에 의해 먹이 주머니는 실타래가 풀리는 듯 풀어헤쳐지며 그 안을 조금씩 내보이는듯했다.
뚜두둑!
"어!?"
하지만 도끼에 힘이 더 들어가서인지, 지수가 먹이주머니 윗부분을 손으로 강하게 잡아서인지 조금씩 생기던 틈은 순간 확 벌어졌다.
콰르르르르르- 철퍽! 철퍽-! 철퍼덕!
철퍽! 철퍼덕!
먹이 주머니 안에 고여 있던 것들이 멈출 줄 모르고 막 쏟아져 내린다.
톡 쏘는 시큼한 냄새와 함께 숙성된 내용물들이 바닥에 확 튀어 나는 급하게 구역질이 올라오는 입을 막으며 뒤로 황급하게 물러났다.
'완전 곤죽이잖아.'
흐물흐물해진 나무 껍질, 자기들끼리 엉킨 머리카락, 아직 원형을 갖추고 있는 뼈들, 완전히 녹아버린 살점······.
한 사람을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이 천천히 녹아내려 양분이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우웨엑!"
그동안 별의별 것들을 보면서 비위가 강해졌다고 생각했건만, 그 생각은 먹이주머니에 담긴 내용물을 보자마자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속을 비워내기 위해 올라오는 구역질과 숨을 쉴 때마다 맡아지는 녹아내린 사체의 냄새가 그 속을 채우면서 또다시 구역질이 나오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예린이가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최악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보니 그렇지 않아도 나락이었던 기분은 끝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