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 - 26. 시체들의 화원(花園) (5)
정신 못 차리고 구토하는 나를 이해한다는 눈초리로 잠시 바라보던 지수는, 어디선가 구해 온 나무 막대기로 바닥에 쏟아진 내용물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원하지는 않았지만 산뜻한 풀 냄새를 주로 맡아왔던 터라, 갑작스러운 악취가 코를 강타하니 머리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러웠다. 이런 게 역체감이라는 걸까.
나는 두통까지 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고개를 들어 지수를 바라보았다.
"우욱!"
그녀는 헛구역질하면서 계속해서 막대기로 곤죽이 된 사체를 뒤적거리다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듯 다음 먹이 주머니로 눈길을 돌렸다.
지수는 내가 놓친 도끼를 주워들고, 망설임 없이 다른 먹이 주머니의 윗부분을 뜯어내 버렸다.
뜨득-뜨드드득!
콰르르르르- 철퍽! 철퍽! 철퍼덕-!
마찬가지로, 꽉 찬 내용물이 바닥에 인정사정 없이 쏟아지며 그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다시 구역질이 밀려온다.
"아저씨. 아직 많이 남았어. 전부 다 까야 해. 뚜껑 여는 것처럼 윗부분만 떼어내려고 했는데, 내용물이 워낙 가득 차서 그게 안 되네."
지수는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떨리는 손끝과 괴로운 듯 찡그린 눈을 보니 그저 괜찮은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신물이 가득 섞인 침을 모아 퉤 하고 바닥에 뱉었다.
"···이제, 이제 괜찮아. 도끼 줘. 내가 할게."
사실 괜찮지 않았다.
"할 수 있겠어? 힘든 거 아니까 조금 쉬어도-"
"아니. 시간··· 시간 아껴야지. 응, 그래야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좋아. 다음은 이거야."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지금 이 녹색의 액체로 변해가고 있는 사체를 보는 것보다.
생소하고 끔찍한 광경을 보는 내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보다.
내가 한 행동의 결과에 예린이 이렇게 변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든 것을.
그럼 답은 하나뿐이지 않은가?
나는 도끼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지금 이 교실에 남아 있는 먹이주머니는 3개.
4층의 다른 교실에도 이런 먹이주머니들이 있을 것이다.
전부, 모조리 뜯어서 확인해야 한다.
나는 도끼를 강하게 잡았다.
득- 드득- 드득
도끼의 끝이 먹이 주머니의 윗부분을 가르자, 안에 담긴 것들이 쏟아졌다.
철퍽-철퍽!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들이 몸에 닿지 않게 물러났을 뿐, 나는 연이어서 남아 있는 먹이주머니들을 개봉했다.
쏟아지고, 쏟아지고, 또 쏟아지고···.
불행 중 다행일까.
적어도 이 교실에 있는 먹이 주머니에는 예린이 들어 있지 않았다.
"···없네."
"다른 교실로 가자."
나와 지수는 교실에서 나와 복도로 이동했다.
4층에는 6개의 교실이 있었고, 하나를 탐색했으니 이제 5개가 남았다.
일렬로 된 복도에 차례대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교실들.
우리가 좌측 복도 끝에 있는 교실에서 나왔으니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교실들을 보면 된다.
이 층의 교실도 다 확인하면 우측 끝 복도에 있는 계단을 통해 다음 층으로 이동하면 될 것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다른 교실에도 먹이주머니가 쌓여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우측 끝 교실에 다다를 때까지 다른 먹이주머니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지나가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1층처럼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버린 교실 내부의 모습뿐이었다.
산산조각이 난 유리창들, 쪼개지고 휘어진 책상과 의자들, 내부를 뒤덮은 넝쿨들······.
뭔가 혼자서 엄청난 다짐한 것이 무색하게 무난한 상황이 이어지자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겠지.
여전히 교실 문 앞에 쌓여 있는 책상과 의자들을 보니 <월드 모텔>에서 지수가 안에 있는 것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 먹이주머니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문을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
지수는 일종의 감옥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 했지만, 이것들은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무엇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어차피 안에 있는 것은 먹이주머니뿐이지 않은가?
그저 창고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누가 이렇게 막은 거지?
대체 누가?
생존자는 아닐 것이다. 인간이 썩은 사체를 먹을 리도 없거니와 이런 행동을 할 이유도 없지 않나?
마찬가지로 목인도 아니겠지. 그것들은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면 모를까, 지킨다는 행위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았으니.
이런 식의 행동도 할 수 있는 넝쿨이 있나?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특이한 형태의 넝쿨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어느새 4층의 마지막 교실에 먼저 도착한 지수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있어?"
"어."
"목인? 주머니?"
"주머니만."
나도 안을 확인하기 위해 지수 옆에 붙어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처음 발견한 먹이 주머니 교실보다 조금 더 무성한 넝쿨들, 좀 더 밝은 색을 띠고 있는 먹이 주머니들, 그 외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들어갈게."
혹시나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넌지시 말했다. 지수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약간의 주저함 끝에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 마."
"무리하는 거 아니야."
"······."
"진짜로."
내가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폭 내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믿을게. 다행히 여기 창문은 열리는 것 같더라. 굳이 힘들게 문을 넘어갈 필요는 없겠어."
"다행이네."
드르륵-
내가 창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조심해."
뒤에서 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묵묵히 도끼를 들고 움직일 뿐이었다.
타탁-
창문을 넘어온 나는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며 교실 전체를 돌았다.
애초에 엄청 넓은 크기의 교실은 아니었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밖에 있는 지수에게 손짓으로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탓···
나보다 무게가 가벼워서 그런지 내가 넘어온 소리보다 훨씬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아니면 유연성이라던가.
"후우-."
지수도 넘어왔으니 이제 또 끔찍한 것들을 볼 시간이다. 나는 작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교실에 있는 먹이 주머니들은 총 7개.
개수가 좀 많았지만 이번에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먹이 주머니부터 차례대로 열기 위해 앞에 섰다.
"이것들은 색이 좀 다르네?"
"···숙성도가 달라서 그래."
"······숙성도?"
"아까 우리가 봤던 건 시간이 오래 지난 거였고, 이건 그것들보다 좀 덜 지난 거."
먹이주머니 윗부분을 잡은 지수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니까 이건 더 못 볼 꼴 일수도 있어."
한마디로 사체가 덜 녹았을 것이다 이런 말인가?
나는 지수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말을 계속 이었다.
"그때 처음 깐 먹이 주머니 상태보고 나머지 것들이 어떤 상태인지 예상을 할 수 있었지만, 혹시 몰라서 다 깐거야. 미안."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그 얘기는 됐고, 이제 깐다."
뜨둑! 드드드득- 스르륵- 퍽!
도끼 날로 먹이 주머니 윗부분을 자르니, 액화된 내용물이 막 쏟아진 처음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그저 미끄러지다가 바닥에 부딪힐 뿐이었다.
점성을 가진 투명한 액체가 사체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옷을 녹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에 들어 있던 사체는 반쯤 녹은 옷과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살점, 절규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 모습과 함께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큭···."
시체 썩는 냄새와 톡 쏘는 시큼한 소화액의 냄새가 다시금 코를 강타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나조차 이런 느낌인데 후각이 예민한 지수의 경우에는 더 심하게 느껴지겠지. 나는 고개를 들어 지수를 바라보았다.
내가 둘러준 천을 아직 하고 있는 지수의 눈초리에는 방울방울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내 시선을 눈치챈 지수가 잽싸게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다음!"
아무렇지 않은 척 다음 먹이 주머니로 가는 지수. 나는 한숨을 애써 삼키고 도끼를 재차 들었다.
뜨드둑-
철퍽!
뜨드둑- 철퍽-
아무 말 없이 먹이주머니를 까고, 찾던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한 후에 다른 먹이주머니를 바로 까고 있을 때.
흠칫!
지수가 꼬리를 곤두세우고, 몸을 발작하는 듯 들썩이며 주위를 급하게 둘러보았다.
나는 멍하니 도끼로 먹이 주머니를 찢는 행동만 반복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지수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왜 그래, 또?"
드르륵!
지수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리 창문을 열어 건물 바깥을 급하게 훑어보았다. 무언가를 찾는 듯이.
"왜 그러냐니까?"
심상치 않은 지수의 모습에 나는 숨조차 죽이며 작게 속삭였다.
드르륵- 탁!
철컥
그녀는 창문을 다시 닫고는 잠금장치 걸었다. 그리고 손에 무언가 묻었는지 손을 벽면에 문대서 닦아냈다. 벽면에 주욱하고 묻은 하얀 점액질.
"또 누가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어."
"뭐?"
"이상하네···. 느껴지자마자 바로 확인한 건데도 안 보이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지수도 못 찾은 걸 내가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불안하면 그 시선에 대해 좀 더 찾아볼 것은 제안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번에도 내 착각일 거야. 악취 때문에 괜히 다른 게 신경에 거슬렸나 봐. 2개 남았네. 빨리 확인하고 다음 층 가자."
그리 말하는 지수의 귀는 연신 쫑긋거려 무언가를 탐지해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걱정이 되었으나 더 권하지 않고 마저 먹이 주머니를 개봉하기로 했다.
사락
남은 2개의 먹이주머니도 개봉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예린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사락
지수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드니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소리를 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던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창문을 휙 하고 넘어갔다.
"바로 가? 이것들 그냥 두고?"
시체를 유기하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으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
나는 마지막 교실을 벗어나기 전, 고개를 뒤로 돌려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절규하고, 몸부림치고, 애원하고, 통곡하는 듯한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체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저들이 죄를 지었는지 짓지 않았는지 알 방법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곳이 죄를 지은 자들에게 벌을 주는 지옥이라면.
정말로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