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7화 (28/497)

Chapter 27 - 27. 시체들의 화원(花園) (6)

지수는 우측 복도 끝에 있는 계단에서 넝쿨을 잡아 뜯고 있었다.

뚝! 트드득- 뚜득

푸쉬이익···

"뭐 해?"

"넝쿨 뜯지 뭐 하긴."

계단 중간에는 부서진 가구들의 잔해가 쌓여 있었고, 넝쿨 줄기가 그 잔해들 사이를 파고들어 얽혀 단단히 묶고 있었다.

"그냥 넘어가면 되지 않아?"

"안 돼. 여기 봐봐."

그녀는 뜯어진 넝쿨 줄기를 내 눈앞으로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넝쿨 줄기에는 새끼손톱만한 가시가 드문드문 나 있었다.

"···가시가 있었구나."

"넝쿨 뜯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나도 그냥 넘어가고 싶었는데. 위험하잖아."

뚝! 트드드득

나도 지수를 도와 넝쿨을 뜯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푸쉬익-

지수는 뜯은 넝쿨에서 체액이 얼굴에 튀자 진저리치면서 말했다.

"왜 넝쿨일까? 다른 식물도 많은데 왜?"

"번식력이 뛰어나잖아. 생명력이 강해서 건물, 골목길, 산 등등 장소 상관없이 자라지. 그리고···무덤에서까지도."

나는 잠시 멈칫한 후에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렸다. 지긋지긋한 넝쿨을 제거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넝쿨.

시골뿐만 아니라 도시의 번화가에서도 건물 틈 사이에 끼어 자라기까지 해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나는 그런 넝쿨이 싫었다.

전부 제거했다고 생각했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꾸역꾸역 줄기를 뻗은 모습을 보면, 어떻게든 살겠다며 발버둥 쳤던 어렸을 때의 내가 떠올라서.

"···무덤?"

"매년 아버지 산소를 갔을 때, 항상 무성하게 넝쿨들이 자라서 뒤덮다시피 했거든. 그걸 치우는 건 항상 내 몫이었지."

"아저씨 혼자서만 했어?"

"응. 누나가 도와주겠다고는 했지만, 나 혼자서 했어. 그래야만 했고."

"누나가 있었어?"

"···있었지. 친누나는 아니지만."

"힘들었겠네."

"······힘들었지."

지수가 무엇에 대해 말한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 혼자서 산소를 정리했다는 것에 대한 위로의 말이었을까.

이런 세상에서 곁에 없는 누나가 살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위로의 말이었을까.

그 뒤로 대화는 잠시 단절되고, 우리는 묵묵히 넝쿨을 뜯을 뿐이었다.

어느덧, 잔해를 뒤덮은 넝쿨은 대부분 제거가 되어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지수가 한쪽 발을 올리고 넘어가려고 할 때,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를 불렀다.

"지수야."

"응?"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린이를 찾고 나서, 너희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뭔데?"

"···찾고 나면 말해 줄게."

"지금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신경 쓰이는데."

"미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말해야지.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말해야지.

내가 말한 누나가 세상을 이 꼴로 만든 주범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야지.

내 소중한 가족 중 하나인 누나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야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역시 나는,

졸린 사 소유의 누나가 일한 남산 연구소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우리는 주위에 널브러진 넝쿨을 밟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잔해를 타넘었다. 그렇게 올라간 5층은 교실이 아닌, 어느 방만이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가 마지막이지?"

"이 건물에서는 마지막이지."

"옥상은···없겠구나."

여기서 더 올라가는 계단은 보이지 않았으니 이 학교는 옥상이 따로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들어오기 전 밖에서 봤을 때도 옥상이 삼각형 형태의 지붕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항상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창문을 통해 내부를 먼저 확인하려고 했으나, 유리창문 안쪽에 먼지가 가득 묻은 건지 손으로 닦아보아도 뿌옇기만 해서 내부를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이 어떤 곳인가 알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내 바닥에 한 팻말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학실>

"···과학실?"

"뭐 좀 찾았어?"

나는 팻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과학실인가 본데? 이 층이 다 과학실이라고?"

"그건 아니야. 문이 닫힌 곳만 과학실이겠지. 다른 곳은 그냥 비어 있는 공간이더라."

"흠. 그래서 어떡할래?"

내 말에 지수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과학실로 추정되는 곳으로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어? 내가 먼저-"

"쉿!"

나는 그런 지수를 보며 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였다.

드르······륵···

달팽이처럼 느리게 문을 여니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내부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보이는 과학실의 풍경에 바싹 얼어붙었다.

각종 실험 기구가 들어 있는 선반들, 실습을 위한 철제 테이블과 의자들, 몸이 세로로 나누어져 내부를 보여주고 있는 인체 모형들, 그리고 포르말린 통에 절여져 있는 개구리, 닭, 뱀, 물고기···.

여기에 넝쿨까지 더해지니 세기말 감성을 물씬 풍겨 매우 살풍경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아니었다.

과학실 중앙을 차지하는 거대한 먹이주머니.

아니, 먹이 주머니와 상당히 비슷했지만, 이것은 고치였다. 성충이 되기 전 유충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집.

확실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도 그럴게 단순 먹이를 담고 있는 주머니가 살아있는 것 마냥 꿈틀거릴 리가 없지 않은가?

꿀꺽

목구멍에서 침 넘기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적막에 빠져 있던 과학실로, 나는 한 발자국 내디뎠다.

빠득!

나는 발에 무언가 밟혀 부서지는 소리에 시야를 아래로 내렸다. 바닥에 유리로 만들어진 비커 따위가 깨져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창문이 뿌옇게 보인 이유도 알게 되었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하늘거리는 실타래, 아니 거미줄.

그것들이 유리 전체에 달라붙어 시야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유리조각을 하나 집어 고치를 향해 던져 보았다.

···툭!

유리조각은 고치를 부딪히더니 그저 툭 하고 떨어졌다. 잠시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빠득-! 빠드득 빠득 빠각!

지수가 커다란 고치로 걸어가니 바닥에 깔린 유리가 죽어 가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아저씨. 준비해."

날카로운 눈으로 고치를 노려보는 지수가 내가 들고 있던 도끼를 낚아채가며 높게 쳐들었다.

"자, 잠깐만."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도끼로 고치를 내려찍었다.

퍽! 퍼억- 퍽!

사락

말랑해 보이는 외견과 달리 상당한 내구도를 가졌는지 지수의 도끼질에도 고치는 한 번에 쪼개지지 않았다.

퍽-

틱!

횟수가 7번을 넘어갔을 즈음,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며 틈이 확 벌어졌다.

콰르르르르르르!

투명한 액체가 열린 틈으로 마구 쏟아지며 바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나는 유독성 액체일까 싶은 마음에 지수를 데리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졸졸졸-

그 크기만큼이나 엄청난 양의 액체를 한순간에 쏟아 낸 고치는 액체를 다 토해냈는지, 처음의 그 기세를 잃고 간혹 잔여물을 뱉어낼 뿐이었다.

콱!

뜨드드드득-!

지수는 소방 도끼의 날이 아닌 뒷 부분의 피크를 고치의 틈에 걸어 확 잡아당겼다. 고치는 강제로 열려는 힘에 결대로 찢어지며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안 돼······."

그리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걸 느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고치의 내부에는 예린이 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채로.

-텅

찰박!찰박!찰박!찰박!

"예린아!!"

그녀는 도끼를 바닥에 떨구고 다급하게 예린이를 향해 뛰었다.

스르륵

지수는 고치로 팔을 집어넣어 예린이를 꺼냈다. 하지만 예린이는 힘없이 축 늘어질 뿐이었다.

"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흑. 안 돼. 안 된다고. 흐윽."

그녀는 터진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예린에게 묻은 액체를 정성스레 닦아냈다.

찰박- 찰박- 찰박

털썩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예린을 끌어안고 있는 지수의 곁에 주저앉았다. 바지가 정체 모를 액체에 젖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예린의 상태.

'아직···. 아직 안 늦었을 수도 있어.'

애써 그리 생각하며 나는 예린의 목에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대었다.

'차갑다.'

처음 느껴지는 것은 차갑게 식은 피부의 온도.

절망감이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뒤이어 느껴지는 것에 안도감이 파도처럼 몰려와 입을 틀어막았다.

"아."

뛰고 있었다.

약하지만 맥박이 확실히 뛰고 있었다.

비록 언제 끊어질지 모르게 약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맥박이 박동하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고개를 들어 예린을 품에서 놓지 않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투명하게 빛나던 호박색 눈동자는 탁해져 죽은 눈을 하고 있었다.

"지수야."

"······."

"김지수!"

내가 재차 불러서야 반응을 보이는 지수의 어깨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직 안 끝났어. 예린이 아직 살아 있다고! 정신 좀 차려 봐!"

"···뭐?"

"살아 있다고!"

지수의 눈에 조금씩 빛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눈을 깜빡이자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렀다. 동정심이 절로 드는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케흑!"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예린이 기침을 토해내며 속에 머금고 있던 액체를 뱉어냈다. 숨소리도 조금 더 고르게 변했다.

"예린아! 정신이 들어? 일어나 봐, 응?"

사락

지수는 화들짝 놀라며 예린을 더욱 더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예린은 물을 토해내기 위해 남은 힘을 모아 기침을 했는지 처음보다 더 축 늘어졌다.

시간이 없다. 안전한 곳을 찾아 예린을 편하게 쉬게 해 줄 공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제 예린도 찾았겠다 과학실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때, 소름 끼치는 형상을 보고 말았다.

사락

스르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