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 - 28. 시체들의 화원(花園) (7)
'방금···뭐였지?'
창문에 뭐가 있지 않았나?
나는 내 눈이 잘못되었나 싶어 황급히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지만, 애초에 그것은 스쳐 지나가서 사라졌던 터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창문 너머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어떤 여자의 얼굴.
나를 오소소 소름이 돋게 만들었던 것은 그 여자의 입이 귀까지 찢어져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화가 난 표정이었을수도 있다. 확실하지 않았다.
과학실 인체 모형이 밤만 되면 살아 움직인다는 학교 괴담도 아니고, 게다가 아직 밤도 아니다.
'여기는 5층이란 말이다···.'
지수가 느낀 시선의 정체가 저것인가 싶었지만, 워낙 자연스럽게 시야 밖으로 사라져서 내가 정말로 무언가를 보긴 한 건가 하는 의문조차 들었다.
아까부터 피곤함이 몰려오긴 했는데, 그래서 헛것을 본 건가?
어찌 되었든 간에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지수야. 여기서 나가야겠다. 예린이 챙길 수 있겠어? 내가 들까?"
불안함이 점차 커지는 느낌에 나는 속사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예린을 지수 대신 들려는 자세를 취하자 지수가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자기 동생을 내어 줄 수 없다는 것처럼.
"알았어. 예린이는 네가 챙겨. 내가 도끼를 들 테니까. 자, 빨리 일어나."
"크흠, 큼! 알았어. 히끅!"
지수는 우느라 잠긴 목을 풀기 위해 헛기침을 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딸꾹질은 덤이었다.
불안함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예린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기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움찔하던 지수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뒤이은 내 말에 조용히 끄덕였다.
"예린이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정말로."
그녀가 예린을 등에 확실히 업은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도끼를 고쳐 쥐며 과학실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찰박찰박 찰박 빠득 빠드득 빠득-
바닥에 고인 액체가 바지에 스며들어 축축한 느낌에 찜찜한 기분이 되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과학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적······우적·········우···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나는 행동을 멈추고 지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수 역시 소리가 들렸는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들리지?"
지수가 나지막하게 한 말에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그녀의 귀가 이리저리 쫑긋거렸다.
"하나가 아닌데? 적어도 셋 이상. 가까워."
"···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잠깐 가깝다고? ···설마.
나는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 불길한 상상에 침을 꿀꺽 삼키며 속삭였다.
"혹시···그 먹이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시체들. 다시 살아나서 움직일 수 있어?"
"아니, 아닐 거야. 그런 건 본 적이 없어."
"아니라고?"
"하아···. 솔직히 이젠 모르겠어. 불과 며칠 사이에 내가 아는 정보랑 너무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내가 되묻자 지수는 작게 한숨을 폭 내쉬며 한탄했다. 귀까지 축 늘어진 모양새에 나는 당황하며 변명했다.
"너한테 뭐라고 한 게 아닌 거 알지?"
"알아. 난 신경 안 써. 괜찮아."
올라올 때와 달라진 상황이 내려갈 때의 불안 요소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밑에 무엇이 어떻게 변한 것인지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처럼 주변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분석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이내 과학실 문을 나섰고, 바로 우측 복도 끝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에 가까워질수록 소름 끼치는 소리 또한 점점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우적-우적-크르륵-우적-우적-
끼이익···
내가 계단 중간에 쌓인 잔해를 넘어올 때는 별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지수에게 예린의 무게까지 더해지니 잔해가 짓눌리며 소음을 냈다.
"흐응···."
예상치 못한 소음에 바싹 얼어붙은 지수와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예린의 칭얼거림을 더한 2단 콤보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예린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약해진 아이인데 그런 짓을 했다가 어딘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에 우리는 숨만 죽이고 있었다.
다행히 밑에 있던 것들은 소리를 듣지 못한 듯 그저 정신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도 얼어있는 지수에게 천천히 내려오라고 손짓하고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지옥을 연상케 했던 교실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창문으로 내밀어 교실 안을 살펴보았다.
[아긱- 아그그긁-]
[흐으으-아흐으으···]
우적우적우적우적우적우적-
이 교실에 들어 있던 먹이 주머니는 총 7개. 들어 있던 시체 또한 7구. 그리고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시체, 아니 나무 인간의 수는 5마리.
···되살아나지 못한 시체는 목인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이젠 형체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그것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무 인간들이 양분을 섭취할 때마다 그것들의 녹아내렸던 겉 피부에 갈색의 나무 껍질이 생기기 시작해 뒤덮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신물이 올라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러 삼키며 다시 몸을 숙였다.
고개를 뒤로 돌려 보니, 지수가 불안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교실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2구의 시체는 어느새 1구만 남았고, 나무인간들은 이마저도 빠르게 먹어치울 기세였다. 저것마저 다 먹고 나면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그러니 목인들이 오직 먹는 것에만 정신을 쏟고 있을 지금이 기회다.
"생존 수칙 4번······."
나는 작게 되뇌며 긴장감으로 수축된 몸을 풀었다. 그리고 지수에게 조용히 오라는 손짓을 한 후, 상황을 지켜보며 그녀가 곁에 오는 것을 기다렸다.
뚝- 뚝- 뚝-
"아저씨."
어디선가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지수가 작게 속삭이며 나를 불렀다.
정체불명의 액체에 푹 담가져 있던 예린에게서 미처 짜내지 못한 물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예린을 업고 있는 지수의 등과 꼬리도 물기에 푹 젖는 것은 당연한 수순.
나 또한 그 액체에 바지가 젖어 피부에 착 달라붙어 있는 상태이다.
"먼저 가. 난 뒤따라갈 테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선두보다 후열에 있는 것이 더 위험할 것이라 생각하며 지수에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내 말대로 바로 앞으로 움직이다가 멈칫하고 물었다.
"···어디로 가지?"
나는 지수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원래 이곳으로 온 목적은 예린을 찾기 위함이었고, 예린이도 찾았으니 이제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난 것이 아닌가?
나는 이 학교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건물의 양 끝 복도에 각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지금 우리는 우측 복도 끝에 있으니 당연히 이쪽에도 내려가는 계단이 존재했다.
오늘 하루 종일 이 학교를 뒤지며 돌아다녔더니 무의식적으로 4층 복도 끝에 있는 구름다리를 통해 옆 건물로 넘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굳이 위험할 것이 확실한 교실 앞을 지나갈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나는 다시 뒤로 돌아가 우측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통해 이 건물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그리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을 때, 지수가 급하게 나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터벅- 터벅- 터벅-
까득- 까그극- 가각-
우리가 향하려고 했던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관절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킁킁-
킁킁킁!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무 인간들이 코를 킁킁 거리며 이곳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주변에는 나무 인간들이 없는 게 아니었나?'
나는 옆에서도 들리는 킁킁 소리에 지수를 바라보았고, 그녀 또한 얼굴을 찌푸리며 무언가 냄새를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수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밖에 비올 것 같아. 숨을 곳을 찾아야 해!"
"뭐?!"
나는 그 말에 깨진 유리창 너머에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조금씩 사라져서 밤이 오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옅은 먹구름들이 태양을 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도 어둑어둑해지고 있는데 해가 완전히 저버린다면, 시야는 완전히 어두워지고 말 것이다.
부스스스스···
그 순간,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상황이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구나.
언제나 그래 왔지.
언제나 세상이 나를 저주라도 하는 듯, 나를 둘러싼 상황이 쉽게 풀리는 일이 없었어.
하지만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밑에서 나무 인간들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기에.
"구름 다리! 복도 끝에 있는 구름다리로!"
나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러나 지수는 몸을 움직이다 말고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가! 빨리!"
내가 도끼를 고쳐 쥐며 재차 소리치자, 그녀는 예린을 고쳐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을 벌어야지.'
비가 오면 놈들의 삐걱거리는 관절이 유연하게 변해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도, 지수도 쉬지 않고 움직였던 터라 몸에 피로가 가득 쌓였다. 더군다나 지금 지수는 예린을 업고 있기 까지 하니 피로가 쌓인 몸은 속도를 빠르게 낼 수 없겠지.
기껏 예린도 구했는데 여기서 또 다른 사람을 잃을 수는 없다. 그게 예린이 되었든, 지수가 되었든.
많은 시간을 벌 필요는 없었다.
그저 약간, 아주 약간의 시간만 벌 수 있다면 족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뒤에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