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9화 (30/497)

Chapter 29 - 29. 진실 혹은 거짓 (1)

탓···타탓······

지수의 조용한 뜀박질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최대한 조용하게 뛰는 것일 테지만 학교 전체가 고요한 적막 속에 빠져 있어 자그마한 소리도 크게 퍼지고 있었다.

···아니, 사실 적막하진 않았다.

[크르르르륵!]

[아히이이이···]

우적우적우적우적우적···

까득! 콰직! 아작- 아작- 까각-까가각···

살점 뜯는 소리.

뼈를 씹어먹는 소리.

울대를 긁는 거친 소리.

관절이 서로 비틀리는 소리.

지금 내가 있는 4층에는 나무 인간들이 내는 온갖 소리가 퍼지고 있는데 어떻게 적막하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계단 아래를 힐끔 바라보았다.

어느새 계단 중턱까지 올라온 나무 인간들.

그것들은 대기 중에 떠다니는 습기를 머금었는지 계속 들려왔던 관절 비틀리는 소리를 내지 않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 인간들의 신체가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통해 거세게 고동치는 심장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억제기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더욱 강하게 뛰는 심장에 포기하고, 도끼를 강하게 쥘 뿐이었다.

[끄르르르륵-]

계단을 다 올라와 4층에 발을 들인 나무 인간들은 총 5마리였다.

'분명 여기서 소음을 내면 교실 안에 있는 것들도 반응할 텐데···.'

하필이면 목인들이 올라오는 계단과 시체에서 되살아난 목인들이 있는 교실이 서로 붙어 있었다.

주의가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수를 하나라도 더 줄이는 것.

"생존 수칙 4번···."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상황에 맞지 않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괜히 괴물과 맞서 싸우지마?

생각보다 더 강하다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할 뿐이다.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는 건 질색이다.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려 지수가 어디까지 갔는지 확인하니, 어느덧 일렬로 된 복도 중앙에 도달한 그녀가 보였다.

전력으로 질주하면 얼마 걸리지도 않을 거리이지만, 그녀는 예린을 엎고 있었기에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해 보였다.

나는 부디 지수가 안전하게 구름다리 입구에 먼저 도착해 모든 준비를 끝마쳐 주고 기다릴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도끼를 높게 치켜들고,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쐐애애액!

쩌억-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한 나무 인간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끄륵?]

풀썩-

제일 선두에 있던 나무 인간이 의문을 가진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하지만 죽은 것은 단 한 마리.

그 뒤를 따르던 4마리의 나무 인간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갑작스럽게 명을 달리하자 분노를 발산하며 괴성을 질렀다.

[기에에에엑!]

[가르르르르륵···!]

쿵쿵쿵쿵쿵!

나는 다시 한번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쐐애애액-

콰직!

갈라진 머리 틈에서 체액을 내뿜으며 뒤로 넘어가는 나무 인간 한 마리. 남은 것은 셋.

쾅!쾅!쾅! 콰장창-!

[그아아아아악!!]

[끄르르아아아악-!]

운 좋게 순식간에 두 마리를 해치울 수 있었지만, 요행은 거기까지였다.

교실 안에 있는 나무 인간들이 체액의 냄새와 괴성에 자극 받아 유리창을 두드려 부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것은 교실의 다섯 마리를 더해 여덟 마리.

나는 교실 창문을 완전히 부수고 넘어오기 시작한 나무 인간들을 보며 뒤로 돌아 냅다 달렸다.

쿵쿵쿵쿵쿵쿵!

나를 쫓는 목인들의 발소리인 것인지, 아니면 내 발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고개를 뒤로 돌려 놈들이 어디까지 가까이 붙었나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전부 무시하고 그저 앞을 향해 뛸 뿐이었다.

이윽고, 복도 끝에 있는 지수가 보인다.

"지수야!"

어차피 나무 인간들에게 들켰겠다 지수가 충분히 들을 수 있게 나는 목청껏 소리쳤다.

"아저씨!"

나를 향해 뒤돌아본 지수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뭐야. 왜 안 들어가고 있지?'

지수가 구름다리 문을 열고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는 내 희망 사항과 달리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그녀를 본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왜 안 들어가!"

"자물쇠가 있어!"

캉! 캉! 캉!

지수는 내게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조각난 책상 다리로 문을 내리치고 있었다.

'자물쇠가 있다고?'

···수위가 가지고 있던 열쇠.

나는 내가 그 열쇠를 품속에 챙겼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급하게 다리에 제동을 건 후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 지수에게 던졌다.

"지수야! 여기 열쇠!"

휙!

쩔그럭-

자기들끼리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열쇠.

텅- 터텅!

그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열쇠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책상 다리를 집어던진 후 열쇠를 낚아챘다.

[끼야아아아악!]

쿵쿵쿵쿵쿵!

열쇠에는 이름표가 따로 붙어 있지 않았고, 총 5개였다. 운이 좋다면 한 번에 자물쇠를 열 수도 있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시간을 더 벌어야 한다.

지척까지 다가온 나무 인간들을 보니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 들었다.

놈들의 눈에 깃든 명백한 살의와 식욕.

'시간···. 시간을 어떻게 더 벌지?'

나는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내 훌륭한 장애물들을 발견했다.

교실 문 앞에 마구잡이로 쌓여 있던 책상과 의자들.

이것들을 복도로 쏟아 내면 나무 인간들의 진로를 조금이나마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손을 바리케이드로 올려 힘을 주었다.

"끄응···!"

끼긱-끼기기긱-덜컹-덜컹-

겉으로 보기에는 엉성하게 쌓인 책상과 의자들이었는데 막상 힘줘서 무너트리려고 하니 어딘가 고정된 것처럼 흔들리기만 할 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왜 안 무너져···!"

콰작- 우직- 틱! 쿵! 와르르-

포기하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내 잡아당기니 바리케이드 중앙 깊숙한 곳에서 실타래 같은 것이 팍 터지며 가구들이 복도로 마구 쏟아졌다.

"됐다!"

장애물도 만들었겠다 얼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나는 다시 뒤로 돌아 지수에게 달려갔다.

[······겕!?]

[가르르륵!]

와당탕! 쿵!

내 뒤에서 나무 인간들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통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지능이 낮은 놈들이라 내가 원하던 대로 일이 풀린 것 같았다.

나무 인간들의 무서운 점은 지능이 아니라 놈들이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괴력과 체력이다. 잡히지만 않으면 살 방법은 있다.

"허억- 허억!"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아직 열쇠로 자물쇠를 따지 못하고 씨름하는 지수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구름다리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단단해 보이는 철문 중앙에 두꺼운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이중으로 코팅된 경고문이 문에 붙어 있었다.

- 구름 다리 자물쇠 부수지 말 것!!

- 이번에 적발 시, 벌점 크게 부여함!!

<구름 다리 개방 시간> - 현재 공사 중 <08:00~09:00, 12:00~14:00>

그 아래에는 학생들이 장난으로 적어둔 낙서가 적혀 있었다.

'자물쇠 그만 좀 따라, 얘들아. 점점 두꺼워지잖아ㅋㅋㅋ.'

'3학년 6반 최현기 → 자물쇠 부시는 범인.'

'ㄴ 뭐래. 네가 봤냐? 헛소리 하지마셈.'

'여기다 낙서하지 마라.'

'ㄴ 너는 왜 함?'

'ㄴ 하지 말라고 했다.'

'ㄴ 흐지믈르그 해따~.'

"후우!"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학생들의 낙서를 봤다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겠으나 내 목숨뿐만 아니라 지수와 예린의 목숨도 위험해진 상황이라서 분통만 터질 뿐이었다.

'이 녀석들이 자물쇠만 안 건드렸어도!'

자물쇠 두께를 보니 도저히 도끼로 해결될 사이즈가 아니라 그저 지수가 열쇠로 자물쇠를 따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버둥버둥-

교실 하나 차이를 두고 넘어진 나무 인간들이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서로 먼저 일어나려는 욕심이 오히려 그것들을 옭아매 자기들끼리 뒤엉키게 만들었고, 그 탓에 아직 누구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내가 지수에게 준 열쇠들 중에 구름다리 출입 열쇠가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없으면 어떡하지?

우리가 완전히 헛짓거리하는 중이라면?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마음을 잠식했다. 나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힐끔 바라보고 1층에서 3층까지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전부 박살 나거나 내부가 텅 비어 있는 각 층들.

내려간다고 해도 확실하게 숨을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저 나무 인간들을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구름 다리뿐.

"이것도 아니고, 아니고, 아니야. 제발···. 제발!"

"아직이야!?"

"거의 다···. 거의 다 됐어!"

나는 몸을 일으킨 나무 인간들을 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지수를 재촉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직이라는 대답이었다.

[그아아아아악!]

"지수야아!"

"···됐다! 열렸어! 아저씨, 들어와!"

한층 더 화가 난 나무 인간들이 우리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하자 나는 지수를 다시 재촉했다.

벌컥!

퍼억-!

탱! 탱구르르-

지수가 드디어 자물쇠를 열었고, 그 자물쇠를 나무 인간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자물쇠는 운 좋게 선두에 있는 나무 인간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그것은 잠시 멈칫했을 뿐 화만 더 돋게 만든 것 같았다.

[끼에에에에에에!]

"예린이부터 챙겨!"

"알고 있어!"

그녀가 예린을 서둘러 품에 안고 열린 구름 다리 문 너머로 몸을 집어넣었다. 나는 무언가 놓치고 간 것이 없도록 한 번 더 주변을 훑어본 후 구름다리 문을 세게 닫았다.

쿵!

그리고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놈들의 괴성과 문 두드리는 소리.

쾅쾅쾅쾅쾅쾅쾅쾅쾅!

[구오오오오오-!]

[아아아아아악!]

[쉬익! 시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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