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0화 (31/497)

Chapter 30 - 30. 진실 혹은 거짓 (2)

"허억- 허억-."

"하아, 하아···."

나와 지수는 가쁜 숨을 내쉬며 닫힌 구름 다리 문을 바라보았다.

풀썩-

지수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예린을 품에 꼭 안은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구오오오오오-!]

[아아아아아악!]

[쉬익! 시아아아아아!]

철문 너머에는 단단히 화가 난 나무 인간들이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리고 있었다.

구름 다리 출입문이 철문이 아니라 단순한 유리문이었다면, 문이 아예 없었다면 우리는 나무 인간들의 손에 갈가리 찢겨 목숨을 잃었을 확률이 컸다.

아니, 무조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콰앙! 콰앙! 콰앙!

우지직- 콰직- 끼기긱··· [기에에에에엑!]

그 순간, 철문을 두드리는 강도가 한층 세지며 크게 흔들렸다. 경첩이 휘어지며 죽어 가는 소리를 토해낸다.

보라.

지금도 놈들의 괴력에 단단해 보이는 철문조차 우그러지려고 하지 않는가.

"지수야. 일어나."

나는 지수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맞잡은 지수의 손은 예린이 못지않게 차가웠다.

"윽! 아저씨. 손에 땀 장난 아니네."

"너는 손이 왜 그렇게 차갑냐."

우리는 긴장했다는 티를 벗기 위해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는 식은땀이 흥건한 손을 옷에 문질러 닦았다.

"그러고 보니···."

"······?"

"너는 어떻게 거기서 자물쇠를 놈들한테 던질 생각을 하냐."

"···나도 모르게 그만. 그리고 자물쇠가 워낙 커서 도움이 될 줄 알았지."

"나는 깜짝 놀랐다니까? 갑자기 뭐가 날아가서."

"어차피 버릴 거 아니었어?"

"아니, 나는 챙길 줄 알았는데."

"······."

"······?"

서로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를 몇 초, 내가 한숨을 토해내며 한 말에 지수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긍정했다.

"···살았네."

"살았지."

나는 구름 다리 내부를 둘러보았다.

바닥의 타일이 죄다 벗겨져 모습을 드러낸 시멘트 바닥,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플라스틱 지붕, 군데군데 깨져 있는 추락을 막기 위한 유리 창문들···.

공사 중이라는 경고문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휘이이이잉-

부슬부슬···

깨진 유리창 틈 사이로 비바람이 들어와 구름다리 내부를 휘저었다. 내부의 온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젖은 바지에 체온을 뺏겨 몸이 으슬으슬해지고 있었다. 나조차도 춥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옷이 완전히 젖은 예린과 그런 예린을 계속 안고 있던 지수는 더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직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당장의 숨은 돌릴 수 있었지만 이곳 또한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것이 밝혀진 이상 우리는 새로운 곳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아저씨."

그때, 지수가 내 곁에 바싹 붙으며 작게 속삭였다. 약간의 걱정이 담긴 투로.

"왜?"

"우리가 들어온 문에 자물쇠가 걸려 있었잖아. 그럼 혹시···."

"······어?"

그녀는 말을 흐렸지만 무슨 말하고 싶었는지 나 또한 바로 이해하고 말았다.

공사 중이었던 구름 다리.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는 구름 다리의 양측에 문이 달려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나는 건너편에 있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면서 침음을 흘렸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멈췄지만 아직 우리가 들어온 문 너머에 나무 인간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것들의 숨소리가 작게나마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저 건너편 문의 바깥쪽에 자물쇠가 걸려 있다면, 우리는 이 구름다리에 갇힌 것과 다름이 없다.

앞에는 나무 인간들, 뒤에는 잠긴 문인 상황에 빠지면, 오갈 데가 없어진 우리는 서서히 말라 죽고 말 것이다.

체온도 뺏기고 있는 마당에 죽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저벅저벅

나는 제발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기를 바라며 건너편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힘차게 문고리를 돌렸다.

덜컹-

덜컹덜컹

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며 고개를 돌려 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표정을 보더니 최악의 상황이 왔다는 것을 직감한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안 열려?"

"···어."

"에휴."

지수와 나는 애써 일어난 것이 무색하게 다시 털썩 바닥에 앉았다.

나는 이대로 끝인가하는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수의 눈도 많이 흐릿해진 것을 보아하니 피로가 극에 달한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벽에 기대져 있는 도끼가 내 눈에 들어왔다.

도끼 날 반대편에 달린 피크 부분.

'지수가 저걸로 고치 틈을 열었었지.'

어쩌면.

저걸로 문을 강제로 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 지수가 예린을 벽에 기대어 놓고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도끼를 쥔 채 문으로 향했고, 도끼의 피크 부분을 문틈에 걸어 힘껏 잡아당겼다.

"히얍!"

끼긱···

약간의 틈이 열리는 듯했으나, 힘이 모자란 듯 그 틈은 다시 좁혀져 꽉 다물렸다. 나도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지수에게 다가 갔다.

"가능성 있어 보여?"

"없어도 해야지. 예린이 옷도 갈아입혀야 하고, 체온도 올려 줘야 해. 할 게 많다고."

도끼가 튼튼해 보이긴 하지만 이 두꺼운 철문을 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수 말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지수에게 바싹 붙으며 도끼 자루에 손을 올렸다.

"나도 도와줄게. 하나둘 셋! 하면 같이 잡아당기는 거야."

"좋아. 아저씨가 신호 줘."

"하나둘 세에엣···!"

"흐읍!"

끼기기긱···

휘오오오오···

문틈이 처음 보다 더 크게 벌어지고 그사이로 바람이 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더!"

"하나둘 셋-!"

끼기기기긱! 텅!

다시 한번 있는 힘껏 도끼 자루를 잡아당기며 문틈을 벌렸고, 이내 피크가 빠지면서 문이 크게 열렸다.

"우왁?!"

"꺄악!"

퍼억!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우리는 주고 있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지수를 뒤에서 안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자세였기 때문에 혹여 내가 힘을 풀면 그녀가 다칠까 싶어 오히려 꽉 끌어안았다.

"아으윽."

바닥에 부딪힌 뒤통수가 얼얼한 것을 느끼며 슬그머니 눈을 뜨니 코앞에 바싹 붙은 지수의 눈과 마주쳤다.

눈을 마주친 사람을 멍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밝게 빛나고 투명한 호박색 눈동자.

휘이이이이···

한 줄기 바람이 우리를 감싸는 것을 느끼며 서로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을 때, 지수가 먼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팔 좀."

"팔? 아. 어어."

나는 여태까지 지수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팔을 풀어 주었다. 지수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주워 내게 건넸다.

"여기 도끼."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건네준 도끼를 받자 지수가 말을 이었다.

"고마워."

"······."

아직 멍한 느낌에 대답은 하지 못했으나, 뒤로 돌아 예린에게 가는 지수의 꼬리가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는 것은 볼 수 있었다.

나는 품 안에 생생히 남아 있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느새 예린을 등에 업고 다가온 지수가 그런 내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어디 다쳤어? 왜 그래?"

"아냐, 괜찮아. 가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활짝 열린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살살 풀어진 마음을 다시 조이며 눈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문을 어찌어찌 연 것은 좋았으나, 옆 건물의 상태가 어떤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미지의 공간.

나와 지수는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해는 이미 저물어 우리가 있는 건물인 학교 또한 어둠에 잠겼다.

빛이 없는 학교는 어둡고 음산하다.

대기 중에 감도는 무거운 습기 때문에 솜이 물을 흡수해서 무거워지는 듯, 내 몸도 한껏 무거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끔벅끔벅

나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천천히 움직였다. 사물의 윤곽이 차츰 또렷하게 잡히기 시작했지만, 이것만 믿을 수는 없기에 지수에게 신신당부했다.

"지수야. 괜찮아 보이는 곳 보이면 바로 말해. 멀리는 못 갈 것 같다."

"알았어. 걱정 하지마."

하긴, 지수가 나보다 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말을 줄였다.

사락···

발에 무언가 하늘거리는 것이 밟히는 느낌에 바닥을 보니 하얀 실 같은 것이 드문드문 흩뿌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넝쿨 줄기에서 나온 섬유질 가닥인가?'

처음 보는 것은 아니라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이곳으로 오고 나서부터 유독 많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신발에 붙은 실을 털어내며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같은 4층, 다른 건물.

비록 다른 건물이지만 학교인 것은 변함없어서 구조상 다른 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구조까지 생소했다면 나는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부스스스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만 들리는 복도를 조용히 걷고 있을 때, 지수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저씨. 저기."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바퀴가 달려 있고, 미약한 빛을 반사시키는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차.

"급식차?"

"···? 그게 뭔데. 그거 말고 옆에."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지수는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옆에는 교실 문과 달리 조금 더 두꺼워 보이는 문이 보였고, 조금 더 가까이 가니 문 위쪽에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눈은 무언가 글씨가 써져 있다는 것만 간신히 인지할 수 있을 뿐 읽을 수는 없었다.

"뭐라고 써져 있는 거야?"

"아. 안 보이는구나. 방송실이라고 써져 있네."

"···방송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예린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상황이었지만 예린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다는 것만은 내 눈에 각인되다시피 뚜렷하게 들어왔다. 지수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를 멈춰 세운 것이겠지.

또 방송실은 기본적으로 방음벽이 설치되있기도 하니 우리의 소리가 빠져나갈 가능성도 적을 것이다. 약간 조잡한 수준의 방음벽이라고 해도 말이다.

'애당초 내가 괜찮아 보이는 곳 보이면 바로 말하라고 했으니까···.'

"후우···. 그래, 가자. 방송실로. 일단 문만 달려 있으면 되니까."

지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리는 방송실 문 앞에 도착했고 문을 열었다.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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