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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35화 (36/497)

Chapter 35 - 35. 화원의 파수꾼 (2)

예린도 무사히 구출했고, 오늘 밤도 무사히 보냈다.

아침 해가 떠 주위를 환하게 비추는 것을 본 우리는 이제 이 방송실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상황이 매우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문제는 식량도, 다른 장비도 없이 몸만 달랑 있다고 할 수 있는 우리였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나가기 전 내부를 한 번 더 훑어보고 있는 내 시야에 우리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배를 만지고 있는 예린이 들어왔다.

배가 고프다고 편하게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눈치만 보는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배가 고픈 것은 나와 지수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른의 배고픔과 아이의 배고픔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어제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을 같이 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 학교에서 본 것이라고는 먹을 수 없는 것들 뿐이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꼬르르륵···

때마침 울리는 예린의 배꼽시계에 지수도 고개를 돌려 예린을 바라보았다. 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니에요."

"내 배에서 난 소리야. 미안, 소리가 컸지? 배고프긴 하네. 하하."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예린의 부끄러움을 감춰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예린의 얼굴은 이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붉어졌으니.

지수가 잠시 쓴웃음을 짓더니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예린아. 준비 다 했지?"

"네에."

"좋아. 그럼 나가자."

더 이상 예린이 무안하지 않게 능숙하게 상황을 전환하는 지수를 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지수가 내게 눈을 부라렸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런 지수에게 기가 죽었지만 이내 풀어진 마음을 다잡고 방송실 문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안전한 내부에서 벗어나 위험한 바깥으로 나가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달칵-

어젯밤과 전혀 달라지지 않는 복도의 모습.

다만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밝은 햇빛에 의해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밖은 어때?"

지수가 조용히 밖을 살피고 있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여전히 조용해. 나가도 될 것 같은데."

"다행이네. 빨리 나가자 그럼."

그녀는 예린의 손을 붙잡고 바로 문을 나서려고 했지만 내가 잠시 불러 멈춰 세웠다.

"여기 더 안 뒤져 봐도 되겠어? 식량이라던가, 쓸 만한 물건들 같은 거."

"···배부른 소리지만 그런 건 굳이 여기가 아니어도 돼. 그리고 여기 뭔가 이상하니까 그냥 바로 나가자."

지수는 잠시 고심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불길함에 소름 끼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말을 꺼낸 이유는 배고파하는 예린에게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한눈 팔지 말고, 바로 내려가자."

예린과 지수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계단만 타고 내려가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있던 4층이 1층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우리는 1층에 도착했다.

1층에 있는 중앙문을 열기 전, 나는 빠르게 밖을 훑어보았다.

새벽에 내린 비에 의해 형성된 물웅덩이들, 그 비를 맞고 좀 더 무성해진 넝쿨들.

까드득···까득···까그극-

찰박-찰박-찰박-

···그리고 눈치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 1마리.

멀지않은 곳에서 무언가 비틀리는 소리와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우리는 황급히 벽 뒤로 숨었다.

나무껍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이끼를 몸에 붙이고 있는 나무 인간은 어긋난 관절을 억지로 움직이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보는 사람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모든 관절을 비틀어 꺾고 있었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다행인 것은 저 목인은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지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별다른 소음없이 한 번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지수야. 저거 어제 봤던 놈이지?"

"어. 어제 문 두드리던 놈들 중 하나야."

"아직 우리 있는 거 모르는 것 같으니까 좀 더 가까이 오면 내가 해치울게."

지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예린을 붙잡고 좀 더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소음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나무 인간과 싸우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지만, 나무 인간이 생각보다 더 가깝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서 여기서 끝장을 봐야 했다.

나는 나무 인간이 머리를 부숴야 완전히 멈춘다는 것을 떠올리며 몸을 풀었다.

'한 방···. 무조건 한 방에···.'

[···끄···으···으으······]

낮은 신음을 흘리며 다가오는 나무 인간의 머리를 한 번에 쪼개기 위해 나는 도끼를 강하게 쥐고 높게 쳐들었다.

그때.

우리를 향해 다가오던 나무 인간도, 그 나무 인간을 죽이기 위해 대비하던 우리도 모든 행동을 멈추고 몸을 바싹 엎드릴 만큼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로 우리가 그토록 불길하다 생각했던 화원 쪽에서.

단순 소리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그 소리에 분노가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히익!"

"아악!"

분노와 살의로 점철된 그 소리가 우리 몸을 거칠게 휘젓고 지나가니, 몸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지수는 예린을 감싸며 자기 꼬리를 다리 사이로 말아 넣었고, 예린은 귀를 뒤로 크게 젖히며 몸을 바싹 엎드렸다.

나는 시야가 약간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도끼를 지지대 삼아 겨우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고개를 겨우 든 우리는 혼란, 의문, 공포, 두려움, 불안이 한데 섞인 눈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돌변한 상황이 도저히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 소리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몸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손이 사정 없이 떨리며 끝없는 공포가 머리를 잠식했다.

예린이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몸을 떠는 것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니···, 오빠···. 당장 도망쳐야 해요."

"···어?"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예린의 눈을 보며 당혹성을 토해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예린의 동공.

아침에 봤을 때만 해도 인간의 동공이었는데, 지금 보니 이건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때, 예린이 다시 한번 발작하듯 외쳤다.

"도망쳐야 한다고요! 빨리! 거, 검은 덩어리가 와요-! 괴물이 온단 말이야!"

검은 덩어리?

아니, 한가하게 생각이나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예린이 말대로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가오는 게 무엇이 됐든 간에 빨리!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몸을 떠는 지수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하지만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여기서 교문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불과하지만 밖에 있는 저 정체 모를 것이 우리를 순순히 보내줄 것으로 생각되진 않았다.

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

[······끄륵?]

내가 지수를 부축해 일단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고 있을 때, 나무 인간이 의문을 가진 울음소리를 내서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있는 건물로 다가오고 있던 나무 인간은 멍하니 서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퍼석-!

각다귀 같은 손이 멍청하게 서 있던 나무 인간의 머리를 두부처럼 으깨버렸다.

"······거미?"

나는 불길한 소리의 주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거미가 아니었다.

나무 인간들이 여럿 섞이면 이런 모습일까?

상체는 인간의 것이 분명하지만 그 상체에 달린 팔은 유독 길고 가늘었고, 하체는 8개의 두터운 역관절 다리가 살이 가득 오른 육중한 몸통을 받치고 있었다.

역관절 다리에는 자신이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광택이 나는 껍질이 잔뜩 붙어 있었다.

얼굴에는 길게 찢어진 입이 있었다. 복부까지 세로로 길게 찢어진 입이.

그리고 입이 쩌억 벌어지며 드러난 모습에 나는 순간 정신을 잃고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뻘건 속살이 드러나며 잡은 먹잇감을 분쇄하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그 안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덩어리.

재앙.

괴물.

포식자.

···변종.

지금까지 본 나무 인간들의 외양도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저것의 모습은 도를 넘어선 모습이었다.

저런 생명체가 존재해도 되는지,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만큼 기괴했다.

「하나가 되자. 키킥-. 가만히 있으렴.」

역시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실에 저런 것이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오빠! 정신 차려요. 제발!! 도망쳐야 한다고요!"

예린이 바싹 굳은 채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있는 나를 잡아 안으로 이끌었다.

그 순간, 나는 멍한 정신을 일깨우며 이를 악물었다.

'정신 차려. 이 병신아! 아이들을 죽일 셈이냐?'

"미안. 가자, 빨리!"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한 걸음씩 내딛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강하게 움켜쥐어 한 손에는 도끼를 쥐었고, 나머지 한 손은 지수를 부축했다.

도망칠 기회는 지금뿐이다.

변종 자신이 죽인 나무 인간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는 지금뿐.

우적- 우적- 우적- 우득- 빠드득! 우적- 우드득- 빠각-!

뒤에서 역겨운 소리가 들리는 것은 무시하고, 나는 무서움에 줄줄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예린에게 소리쳤다.

"예린아. 입구 막을 수 있는 것 좀 찾아줘! 어떤 것이든 좋아. 막기만 하면 돼!"

"알았어요!"

예린은 내 말대로 바리케이드로 삼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섰고, 나는 지수의 어깨를 흔들었다.

"야, 김지수! 정신 차려!"

내가 탈탈 몸을 흔들자, 그제야 지수의 눈에 빛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정신 차렸어? 그럼 너도 예린이 도와서 입구 막을 거 찾아!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볼 테니."

아직 공포에 질린 눈을 하는 지수였지만, 그녀는 바로 내 말을 알아듣고 예린에게 달려갔다.

[끄르아아아아아아악!]

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

괴물, 아니 변종은 벌써 나무 인간을 다 먹어 치운 것인지 다시 한번 소름 끼치는 포효를 토해내더니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쿵! 쿵! 쿵! 쿵! 쿵!

나는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끼며 도끼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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