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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36화 (37/497)

Chapter 36 - 36. 화원의 파수꾼 (3)

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

찰박! 찰박! 찰박! 찰박!

그것은 나무 인간 하나를 순식간에 분해하듯 먹어 치우고는 내가 서 있는 1층 중앙문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물웅덩이를 밟을 때는 거미 변종이 내딛는 다리에 의해 안에 잔뜩 고인 물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8개의 다리가 땅을 밟는 소리가 정신없이 번갈아 들려 마치 환청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엉망진창이 된 화원을 보고 분노한 파수꾼이 우리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시발 저게 뭐냐고···.'

나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가진 채 황급히 움직여 중앙문의 잠금장치를 돌려 문을 잠갔다. 비록 유리문이었지만 한번은 버텨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서.

철컥-

입을 길게 찢으며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거미 변종.

콰장창-!

촤르르르륵-

그것은 문이 닫힌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문에 몸을 들이받았다. 유리문은 한차례의 충격도 버텨 내지 못하고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이런 씹!"

벽 뒤에 숨어 있음에도 사방으로 튀는 유리 조각을 맞을 까 봐 나는 몸을 더 움츠리고 도끼를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놈이 이 건물로 몸을 밀어 넣는 순간 도끼로 찍기 위해 놈이 나를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도끼를 높게 쳐들었다.

쿵! 쿵! 쿵!

심장이 크게 박동할 때마다 내 몸도 크게 움찔거렸고,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은 도끼를 더욱 강하게 잡아 더 이상 떨리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걸 전부 막을 수는 없었지만 당장은 이 정도면 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대했던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침묵이 이어지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시야를 아래로 내려 건물을 침범한 놈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끼릭? 끼르르르륽-]

거미 변종의 그림자는 뚫린 문으로 바로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서성이다가 이내 스르륵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

거미 변종이 사라진 것에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킬 무렵.

[끼아아아아아아-!]

각다귀 같은 손이 중앙문으로 불쑥 들어와 이리저리 휘저어대며 그렇지 않아도 난장판인 이곳을 완전히 묵사발을 내놓았다.

촤르르르르륵!

놈의 난동에 바닥에 쏟아진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쿵! 쿵! 쿵!

쾅!

거미 변종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자 그 힘에 바닥이 움푹 들어가 손바닥 자국이 고스란히 바닥에 남았다.

전체적인 손의 모양은 인간의 것과 똑같았지만 그 크기는 결코 같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의 손 3배 정도 되는 비대한 크기.

나는 그 형태를 보며 깨지지 않은 교실 유리창에 간혹 남아 있던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누구의 것인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실 문 앞에 책상과 의자를 쌓아 막은 것이 누구인지 또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학교 복도의 크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거미 변종의 크기.

저 크기로 복도를 자유롭게 이동했다는 말인가?

지금 팔만 넣기만 하는 것도 제 몸을 넣기에는 이 문이 작아서 그런 것이지 않은가?

그때, 예린이 복도에서 튀어나와 내게 다급하게 손짓 했다.

"···오빠! 이제 여기로 와요. 막을 거 찾았어요!"

섣불리 움직이면 지금도 중앙문을 휘젓고 있는 손아귀에 잡힐까 두려웠지만 망설임은 내 숨통만 조일 뿐이기에 고민할 시각은 없었다.

나는 예린의 말을 듣자마자 벽에서 튀어 나가 지수와 예린이 있는 복도로 내달렸다.

타타타탁!

빠득! 빠각! 빠득!

어디선가 주워 온 막대기를 들고 무언가를 내릴 준비하고 있는 지수가 보였고, 코너만 돌면 일행과 합류할 수 있는 순간.

덥석!

와당탕!

드그그극-

나는 발목이 잡히는 느낌과 함께 바닥에 넘어졌고, 내가 들고 있던 도끼는 바닥을 긁으며 날아갔다.

"크으윽!"

"안 돼! 오빠!"

내 발목을 강하게 움켜쥐는 손아귀의 힘에 발목 뼈가 비틀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퍽! 퍽!

나는 이를 악물고 다급하게 한쪽 발로 내 발목을 쥐고 있는 손에 발길질을 해 보았지만 그것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차라리 신발이 잡혔더라면 신발을 벗고 도망갈 수 있었을 텐데, 변종의 손은 내 발목을 정확히 잡고 있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끝?

여기서 끝인가?

내가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인지하고 지수와 예린이라도 살리기 위해 도망가라고 입을 열려고 할 때.

"손 놔! 이 괴물 새끼야!"

내 말보다 먼저 움직인 지수가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쥐고 내 발목을 잡은 거미 변종의 손가락을 향해 내리찍었다.

텅-!

콰직! 콰직! 콰직!

콱!

···쩌억-!

처음에는 손가락마저 두른 나무 껍질에 도끼가 맥없이 퉁겨져 나갔지만, 지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끼로 내려찍었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지수가 내려찍을 때마다 껍질이 부서지고 체액이 튀기 시작하는 변종의 손가락.

[끼이이이이이!]

도끼날이 껍질을 부수고 그 내부에 충격을 가하자 고통을 느낀 듯 거미 변종은 괴성을 지르고 내 발목을 던지듯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 손은 문 너머로 사라져 모습을 감추었다.

"언니!"

어느새 다가온 예린이 지수가 들고 있던 도끼를 대신 들었고, 지수는 나를 강제로 일으켜 세운 후 부축해 좌측 복도 끝까지 걷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륵

복도의 일정 구간을 지날 때마다 지수는 구간마다 설치되어 있는 방화셔터를 내려 길을 봉쇄했다.

욱신!

내 어깨를 부축해주고 있는 지수 덕분에 발에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발목을 타고 머리까지 전해졌다.

우리는 좌측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서둘러 올라갔다.

지수는 나를 부축하며 걷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고개를 뒤로 돌려 후방을 경계했고, 예린 또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일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윽고 2층 복도 코너를 돈 지수는 바로 또 다른 셔터를 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드르르르르륵!

"허억···. 허억···."

"아저씨! 괜찮아?!"

지수가 다급히 내 발목을 살펴보며 물었다. 나는 벽에 겨우 기댄 채 애써 웃어 보였다.

"어어. 괜찮아."

"거짓말하지 말고! 진짜 괜찮냐구!"

"···진짜 괜찮아. 아직은."

"어떡해······."

그녀는 내 상태가 멀쩡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니야. 괜찮다니까? 이거 봐. 나 멀쩡히 걸을 수 있어!"

나는 그런 지수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었다.

욱신거리는 고통은 점점 심해졌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가 맞는 말이었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우리를 좀 먹을 것이 분명하기에.

예린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아무 말 없이 지수의 곁으로 가 언니처럼 주저앉았다. 나는 지수가 예린을 달래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 창문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도끼 맛을 본 거미 변종은 지금 당장은 물러나 모습을 감췄고, 상황은 일단락되어 보였다.

"셔터가 있었네?"

나는 일단은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넝쿨에 가려져 있던 걸 예린이 찾았어. 나는 셔터를 내리기만 했을 뿐이야."

"그래도 잘했어. 부축해준 덕분에 살았다."

나는 예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예린의 몸은 여전히 잘게 떨리고 있었지만 내가 쓰다듬을 때마다 차츰 안정되는 모습을 보여 주며 굳은 꼬리가 조금씩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셔터를 내린 것이 무색하게 거미 변종은 모습을 감춰 사라졌지만 나중에 그 셔터들이 우리의 목숨을 구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원래는 그냥 1층에 바로 숨고 싶었는데, 1층은 그 괴물이 바로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아서 2층으로 올라왔어. 더 올라가고 싶어도 그건 아저씨 발목에 무리가 가니까···. 내가 정신만 제대로 차렸다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

"나 발목 괜찮다니까?"

지수의 울적한 얼굴을 보니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갑작스럽게 변한 상황이 여전히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학교 건물이 신축이라 그런지 안전과 관련된 장치들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약 노후화된 안전장치들이 제 역할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을 때 그 변종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뒤쫓아왔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아서는 안 된다.

지금은 바깥과 완전히 격리된 듯해 보이지만, 이런 단단한 셔터조차 나무 인간들의 괴력에 의해 간단히 찢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물며 그런 나무 인간을 종이 구기는 듯 접어서 먹어치워 버린 저 거미 변종이라면 이런 셔터 따위는 효과적인 장애물이 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저 약간의 시간만 벌어 줘도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아아아악!]

[쉬익! 시아아아악!]

[그르르르륵-!]

우리가 복도 벽에 기대 겨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밖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나와 지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너머의 상황을 주시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은 소음에 이끌린 나무 인간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거미 변종과 마주쳤고, 그대로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저것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아저씨. 저 나무 인간들. 어제 그 나무 인간들이지?"

"숫자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물량으로 우위를 점해 싸움이 비등해 보였으나, 그것은 착각이라는 듯 나무 인간들 쪽이 일방적으로 죽어 나갔다.

여덟 마리의 나무 인간들은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하며 달려들었지만 거미 변종의 손아귀 힘에 머리만 터져 나가 죽을 뿐이었다.

"왜 이 근처에 나무 인간들이 없었는지 이제야 알겠어. 저런 게 있으니 다가오지 못했던 거야."

"그렇다는 건 여기 주변이 다 저 괴물의 영역이라는 소리네."

"대체 저게 뭐야······. 저런 건 처음 본다고···. 소리만 들었는데도 몸이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지수가 힘없이 중얼거리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했다.

저 괴물도 나무 인간들처럼 원형이 인간인 것은 분명하다. 하체는 거미의 형태였지만, 상체는 온전히 인간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것의 존재는 이질적이다.

마치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빚어낸 것처럼 매우 기괴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대체 누가 거미와 인간을 붙여 놓을 생각을 했단 말인가?

생각을 아무리해봤자 풀리지 않는 의문만 쌓여 내 머리만 무겁게 만들 뿐이었다.

"훌쩍. ···흑. 히잉."

그때, 밑에서 예린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진정하나 싶었는데 밖에서 들리는 끔찍한 소리에 다시 울음이 터진 것 같았다.

"쉬이-. 괜찮아. 울지마, 예린아."

"언니이···."

지수는 그런 예린을 품에 안고서 달래기 위해 예린의 등을 계속해서 쓸어내렸다. 예린은 밖이 무섭다는 듯 지수의 품에 더욱 달라붙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먹었다.

'역시 남산에는 나 혼자···.'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것도 벅찬 상황이지만, 만약 여기서 살아남아 남산에 가게 된다면 가는 사람은 나 혼자여야만 한다.

어느새 거미 변종과 나무 인간들의 싸움은 막을 내렸고, 밖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뒤이어 변종이 포식하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우적-우적-우적-빠득-아득-우적-까득-우적-우적-아드득-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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