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 - 37. 화원의 파수꾼 (4)
쩝쩝-
거미 변종은 나무 인간 여덟 마리를 해치우고도 양이 부족한 듯 제자리에 멈춰 서 한동안 입맛을 다셨다.
이내 아직 먹을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것은 우리가 숨어 있는 건물을 보고 히죽 웃었다.
[아히이이이···]
그것이 웃는 모습을 본 나는 창문을 보던 고개를 푹 숙여 숨었다.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서.
나는 저 변종이 웃은 것이 착각이길,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저 괴물이 우리에게 관심을 거두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
그것이 다시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수야. 도망갈 준비해."
"어디로···? 여기 2층이잖아. 그리고 저것도 밑에 셔터를 다 뚫고 들어오진 못할걸? 아마 제 풀에 지쳐서-"
지수는 현실을 부정하는 듯 이리저리 말을 늘어놓았지만 거미 변종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니 입을 꾹 다물었다.
꾸득- 꾸드드득-
1층에서 거미 변종이 억지로 몸을 복도로 집어넣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르르르르륵!]
좁은 복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한차례 짜증이 가득 담긴 괴성을 토해낸 그것.
다각-다각-
···쿵!
우지직!
다각- 다각- 철그럭! 철그럭! 철그럭! 철그럭!
천천히 걷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 소리는 셔터를 두드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우리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서로 달라붙어 그저 들려오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쾅! ···우지직! ···콰득! ···콰가가각! ··· 콰쾅! ··· 아드득! ···까기기기기긱! ···쿵! ···끼긱! ···와지지직!
거미 변종은 끊임없이 셔터를 부수며 복도를 지나 2층으로 올라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1층의 상황이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셔터가 완전히 아작나는 소리에 굳이 보지 않아도 1층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셔터를 부수는 놈의 행동을 보니 건물 외벽을 타서 2층으로 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니면 육중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외벽을 탈 수 없다던가.
'어떻게 하지?'
만약 저것이 1층 셔터를 뚫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틈에 놈의 눈을 피해 교문으로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교문과 가까운 우측 복도로 달려서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바로 그때.
방화 셔터가 연이어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다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두근! 두근! 두근!
"뚫다가 포기하고 다른 데로 갔나···?"
"거 봐. 내가 제풀에 지쳐서 갈···거라고······."
안도의 한숨을 쉰 지수가 말을 점점 늘리다가 이내 입을 조금 벌린 상태로 멍하니 굳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함 마음에 지수가 바라보는 방향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곧 지수와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더듬더듬더듬···
건물 유리창문을 여기저기 짚고 있는 거미 변종의 각다귀 같은 손.
1층에 있는 놈이 어떻게 2층 바깥쪽 창문을 만지고 있는지 드는 의문은 둘째치고 우리는 숨기에 급급했다.
"······!"
나와 지수는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억누르고 몸을 더더욱 웅크렸다. 더 이상 숨을 곳도 없기에 그저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이윽고.
와장창!
휘이이이이-
놈의 손이 유리창을 산산조각 내자 바깥 공기가 내부로 들어왔다.
평소라면 바람이 우리가 흘리고 있는 땀을 식혀 시원한 느낌을 받았겠지만, 지금은 긴장으로 굳은 우리의 몸을 차갑게 만들 뿐이었다.
파각!
파각!
파각!
나는 건물 외벽을 파고드는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곧 거미 변종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따각! 따각!
날카로운 손톱이 창문 난간을 붙잡으며 딱딱한 소리를 내었다.
활짝 벌린 손가락 사이로 올라오는 흉측한 놈의 얼굴.
[키히히히히이이-]
찢어진 입은 한껏 벌어져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었고,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변종의 눈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기대감을 잔뜩 품은 기쁨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깨달았다.
저것은.
처음부터 건물 내부로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저 밖에서 손만 집어넣어 셔터를 부수기만 했겠지.
우리가 공포에 떠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며 장난감처럼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공포에 질린 우리가 제 발로 건물에서 뛰쳐나오길 기다리고 있었거나.
또 다른 문제는 그것과 패닉에 빠진 예린이 눈을 마주치면서 일어났다.
[내······꺼━━━━!]
"헤윽."
"예린아!"
욕망으로 가득한 괴성을 정면으로 맞닥트린 예린은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고, 지수는 그런 예린을 다급히 품에 안아 보호했다.
쑤욱!
거미 변종은 깨진 유리창 너머로 손을 집어넣어 예린을 향해 뻗었다. 지수는 그 손을 피하고자 계속해서 뒷걸음질 쳤으나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공간이 없었다.
"안 돼!"
나는 도끼를 들고 절뚝거리며 그 손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달려 나가는 속도를 도끼에 실어 그대로 내리찍었다.
터엉-!
"크으윽!"
온 힘을 담아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준 힘보다 강한 반동이 도끼날을 밀어내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도끼를 들었다.
텅-! 터엉! 텅!
도끼로 수차례 가격했지만 맥없이 팅겨져 나가는 도끼날.
[아히이이······]
1층에서 도끼날로 고통을 느꼈던 거미 변종은 처음에 내가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을 때 잠시 움찔거렸으나 그때와 달리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 하는 도끼를 보고 비웃는 소리를 내었다.
놈은 이제 도끼가 휘둘러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요하게 예린에게 손을 뻗었다. 내가 도끼를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일 텐데도 그것은 오직 예린만을 노렸다.
'대체 왜 예린을 노리는 거냐···!'
아직까지는 지수가 유연한 몸놀림으로 손을 어떻게든 피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인 것 같았다.
"하아! 하아!"
어제의 피로를 풀지도 못한 채 오늘도 이어지는 무리에 남아 있는 체력도 없어 보이는 지수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끄르르르아아악!]
좀처럼 잡히지 않는 먹잇감에게 짜증스러운 소리를 토해낸 거미 변종은 얼굴을 좀 더 2층 내부로 가까이 들이밀며 손을 더 길게 뻗었다.
'지금이라면!'
2층 내부로 살짝 들어온 놈의 얼굴은 도끼로도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 덕분에 변종의 얼굴에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는 예린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고 있는 거미 변종의 눈을 도끼 피크 부분으로 내리찍었다.
파악-!
[끼에에에에에!!]
쿠웅-!
껍질을 두르고 있지 않은 유일한 부위.
뾰족한 피크는 그 부위를 깊숙하게 파고들었고, 고통에 울부짖는 거미 변종은 균형을 잃고 1층으로 떨어져 뒤집어졌다.
버둥버둥버둥버둥-
비교적 연해 보이는 껍질 부분을 훤하게 드러낸 채 다시 일어나기 위해 2개의 팔과 8개의 다리를 이리저리 휘젓고 있는 거미 변종의 모습.
여러 개의 다리가 꺾이며 어지러운 선을 그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2개의 기로 앞에 섰다.
도망갈 것인가?
싸울 것인가?
지금 저 거미 변종이 뒤집어져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우리가 힘을 합쳐 저것과 싸운다면 변종을 상대로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여기서 저 괴물을 죽일 수만 있다면 한동안은 매우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이길 확률은 낮겠지.
아니, 그럴 확률은 낮다 못해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미 변종이 8마리의 나무 인간들을 개미처럼 손쉽게 터트려 죽인 것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고작 도끼 한 자루로는 저것을 죽이기에 택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놈이 지금 일어나지 못 하는 것처럼 버둥거리고 있어도 그것마저 우리를 가지고 놀기 위한 장난 일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거미 변종이 우리의 숨통을 조이다가 풀어 주고 그것을 질릴 때까지 반복하는 장난.
그렇다면.
만약 도망친다면 무사히 변종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저것의 영역은 이 학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와 지수가 잠깐 몸을 숨겼던 고시원에서부터 이곳까지의 거리만큼 반경이 클 것이 분명하다.
나는 끝없이 망설이며 고개를 들어 지수를 바라보았다. 기절한 예린을 등에 엎고 안절부절 못하는 지수를 보니 맥이 탁 풀려 헛웃음이 나왔다.
싸움?
지금 저 모습을 보고도 어떻게 그런 생각할 수 있는 거냐.
애초에 선택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오직 도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외길만 있을 뿐이었는데.
「키킥」 누군가가 날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꺄하하하하하하하!」
그 소리는 이내 폭소로 변해 내 머릿속에서 웅웅 울려 현기증을 일게 만들었다.
시끄러워.
"지금 도망쳐야 해!"
나는 지수의 팔목을 잡아끌며 우측 복도 끝을 향해 내달렸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발목의 고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지만 절대 멈춰 서는 안 된다.
어차피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타탓- 타타탁-
"허억! 허억!"
"아저씨! 어디로 가는 거야?!"
"일단 밖으로! 교문 쪽으로 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온 우리가 다시 한번 건물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때.
[━━! ━━━━!]
자신의 눈을 망가트린 존재에게 지독한 증오를 토해내듯 내뱉어진 소리가 우리의 고막을 강타했다.
그리고.
교문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 우리들의 귓가로 거미 변종의 발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새 일어난 거미 변종이 우리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다각!
신이시여.
만약 존재한다면, 우리를 살려주세요.
제발.
하다못해 저 아이들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