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39화 (40/497)

Chapter 39 - 39. 화원의 파수꾼 (6)

"무슨 소리야, 그게? 집착이라니?"

지수가 멍한 눈을 하며 물었다.

"우리가 2층에 있을 때, 거미 변종이 예린이를 노린 건 아마 우연이 아닐 거야."

"우연이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면 내가 도끼 들고 달려들었을 때 나부터 공격했겠지."

지수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왜지? 왜 예린이를 노리는 걸까?"

"아마 놈이 원하는 건 예린이 눈일 가능성이 커."

"···눈?"

"우리가 이상한 봉오리에 잡히기 전에 넝쿨들이 예린이 눈가를 계속해서 더듬었었거든.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내가 계속 방해하니까 예린을 따로 잡아갔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예린이 눈이 변한 거 너도 봤잖아.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고."

"···아저씨 말이 맞아. 인간이라기보다는 좀 더 고양이에 가까워진 눈이었지···."

지수는 천천히 예린의 눈가를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린이 눈이 변한 것도 저 괴물이랑 관련이 있는 걸까···?"

"그건 모르겠네."

"괴물이 예린이 눈을 원한다라······."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수가 나와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을 원하는 거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게 아니라면 집요하게 예린이만 노릴 이유가 없으니까. 짐승이 사냥할 때 가장 약한 것부터 노린다고는 하지만 거미 변종에 비하면 우리는 전부 약하게 보일 테니 단순 그 이유는 아니겠지."

······다각···다각다각···

우리가 서로 알아챈 정보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거미 변종이 돌아다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쉿!"

지수는 다급하게 내 입을 막으며 귀를 연신 쫑긋거렸다. 나 또한 주변으로 귀를 기울였다.

다각다각다각!

쿵!

와르르르-

그리고 강당 문이 약하게 들썩이면서 문 너머에서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끼리리리릭···]

···다각다각···다각······

거미 변종은 한 차례 미약한 울음 소리를 토해내고는 다시 멀어졌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변종의 행동에 의문이 생긴 나는 잠시라도 쉴 틈을 주지 않는 놈을 원망하며 몸을 다시 긴장 상태로 만들었다.

꽈악-

내가 손에 도끼를 든 그때, 지수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아저씨. 발목 괜찮아?"

"어. 괜찮아."

"···거짓말 아니지? 셔터도 찢어 버리는 괴물한테 잡혔는데 괜찮다고?"

"괜찮다니까. 왜?"

"여차하면 바로 도망가야 하니까 물어본 거야. 괜찮다니 다행이네."

나는 아까부터 아무런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 발목이 의아하긴 했으나 고통은 지금 방해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발목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지수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 틈을 타서 그녀 몰래 다친 발목 쪽 바지를 살짝 걷어 올렸다.

그리고 확인한 발목 상태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발목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거미 변종의 손자국과 그 손자국을 따라 검게 변한 핏줄이 터질 듯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

···명백한 감염의 징조였다.

나는 조용히 걷은 바지를 내려 발목을 숨겼다. 이 사실을 굳이 지수에게 밝힐 필요는 없기에.

「하나가 되자」

비록 상태가 완화가 아닌 악화가 되었어도, 누군가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속삭이고 있어도.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하나가 되자」 시끄럽다고.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어. 그러니까 좀 다물어.

쿵!

와르르르- 다시 한번 문 앞에서 무언가 쌓이는 소리가 강당 내부에 울려 퍼졌다.

나는 거미 변종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학교 교실 문을 막은 것처럼 강당 문 앞에 잔해를 쌓아 우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겠지.

놈은 우리를 말려 죽이려는 것이거나 제풀에 지친 우리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미 변종은 우리가 무사히 도망치는 것을 원치 않으니 집요하게 쫓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예린을.

그러니까 놈의 시선을 끌어 줄 미끼가 필요해.

한편, 내 생각을 알지 못하는 지수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아저씨. 지금 변종이 하는 행동 그거지? 교실 문 앞 막은 것처럼 여기도 막고 있는 거잖아."

"···그럴 거야."

"그럼 시간이 없네. 저 변종이 최대한 멀어질 때 바로 도망가야겠어. 문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지수의 말에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약간의 침묵이 이어진 뒤.

"한 가지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어."

지수는 불안감과 기대가 공존하는 눈을 하며 이어질 내 말을 기다렸다.

"···지수야. 너는 교문 쪽으로 가."

나는 나지막하게 답을 내놓았다.

"······뭐? 아저씨는?"

"나는 놈의 시선을 끌어볼게. 여기저기 도망다니면 저 변종을 따돌릴 수 있을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같이 가야지!"

"놈이 예린이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도 잘 알고 있네. 여기 도끼 받아. 무거워서 움직일 때 방해만 되고, 이제 주인에게 돌려 줘야지."

지수는 한동안 내가 내민 도끼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저씨. 발목 괜찮다는 거 거짓말이지. 그래서 이러는 거지?"

"내 발목은 멀쩡해."

"그럼 아저씨가 예린이 업어. 내가 변종의 시선을 끌 테니까. 달리기가 더 빠른 사람이 미끼 역할을 해야지. 안 그래?"

"안돼! 너 미쳤어?!"

"그럼 아저씨는 미쳐서 그러는 거야?!"

"정신 차려! 예린이는 살려야 할 거 아냐! 네 목숨보다 소중하다면서!"

나와 지수가 서로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을 때, 우리의 목소리에 자극 받은 거미 변종이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끼르르르륵!]

우리가 알아서 무너지는 것이 즐거운 듯, 변종의 울음소리에는 미약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절대로 네 손에 놀아나진 않을 거다.'

그리 생각한 나는 다급하게 지수에게 말했다.

"지수야. 이제 진짜 시간이 없어.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자, 응?"

"왜···. 왜 나는 항상 도망쳐야 해? 왜···? 또 이것만 남는 거야······? 겨우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았는데···."

그녀가 말을 할 수록 지수의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착잡한 심경이 되었지만, 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야. 누가 죽으러 간데? 너랑 예린이가 무사히 도망칠 때까지만 시선을 끄는 거잖아."

"······."

내가 억지로 웃으며 농담조로 말을 꺼내자 지수는 고집스러운 눈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누구를 바보로 알아? 나는 바보가 아니야, 아저씨. 여기서 미끼를 한다는 건 죽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잖아."

"아니-"

지수는 내 말을 중간에 끊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저씨가 정말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면. 도끼 가져가. 가져가서 우리가 다시 만날 때. 그때 내게 다시 줘."

"······."

"우리 밤새서 남산 가는 계획도 열심히 짰잖아. 흐윽. 그러니까 약속해.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제발···."

"알았어. 약속할게."

나는 기어코 울음이 터진 지수를 달래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지수는 내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약속한 거야. 우리 계획 잊지 마. 반드시 살아서 수원역에서 다시 만나는 거야. 꼭. 아저씨가 올 때까지 거기서 기다릴 테니까."

그렇게 내가 내밀었던 도끼는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그녀와 한 약속의 증표로서.

지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을 짓다가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애써 속으로 꾹 삼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내 얼굴도 그녀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이윽고 우리는 강당 문 앞에 섰고, 나는 문고리에 끼워진 쇠 파이프를 빼냈다.

끼기긱- 텅-터텅···

그 과정에서 작지 않은 소음이 일어났지만, 다행히 거미 변종에게 들리지 않은 듯 밖은 조용했다. 나는 문을 살짝 열어 생긴 틈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문 앞에 잔뜩 쌓인 가구 잔해물들.

지금은 용케 무너지지 않고 있었지만, 문을 이보다 더 크게 열면 위태롭게 쌓인 책상과 의자들이 바로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너지면서 생기는 소음은 거미 변종에게 먹잇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탄이 되겠지.

"문을 열면 앞에 쌓인 것들이 무너지면서 큰 소리를 낼 거야."

"알았어. 그럼 열리자마자 뛰라는 소리지?"

"맞아. 이 근처에 변종이 없는 것 같으니까 내가 하나, 둘, 셋 신호하면 바로 뛰쳐나가. 알겠지?"

나는 지금 바로 나가는 것보다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할 약간의 시간을 가진 채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고, 지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도끼를 꽉 잡았다.

'둘.'

지수는 등에 엎은 예린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고쳐 업었다.

'···셋!'

쿵!

와르르르르르!

내가 문을 뒤로 활짝 여니 앞에 쌓여 있던 모든 것들이 강당 내부를 침범했고, 우리는 잔해물들을 피해 앞을 향해 뛰쳐나갔다.

지수는 예린을, 나는 그녀들을.

각자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