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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40화 (41/497)

Chapter 40 - 40. 화원의 파수꾼 (7)

밖으로 나오니 눈부신 햇볕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우리의 암울한 상황과는 달리 바깥은 그저 한없이 밝기만 했다.

"아저씨! 변종도 없는데 그냥 우리랑 같이 가자! 지금이라면 같이 갈 수 있잖아!"

지수는 주변을 둘러봐도 변종이 보이지 않자 나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안 돼! 계획대로 해! 빨리 교문으로 가! 멈추지 말고!!"

나 또한 거미 변종이 보이지 않아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지수에게 소리쳤다.

[끼아아아아아악!]

다각다각다각다각!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붉은 벽돌로 된 건물에서 거미 변종이 소음을 듣고 우리가 있는 강당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식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채, 괴성을 토해내며.

나는 지금이 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수야. 다음에 볼 때는 웃으면서 보자."

"······흐윽, 응. 끄흑."

"가. 나가서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 ···그리고 수원역에서 만나자."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도끼를 강하게 쥔 채 거미 변종을 향해 달려갔다. 등 뒤에서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교문 쪽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타타탓 타탁-

지수와 예린, 그녀들과 첫 만남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솔직히 누가 처음 보는 사람의 머리를 몽둥이로 깨고 시작하는가?

그때 당시에는 그녀들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런 마음없이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며칠 안 되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수와 예린이 그만큼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는 거겠지.

「아쉬워라. 그 아이들도 하나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지랄하지 마. 악마 새끼야.'

나는 포기하지 않고 헛소리를 속삭이는 목소리에게 일갈한 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거미 변종을 바라보았다.

놈은 내가 길을 막고 서 있어도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변종의 눈에 깃든 것은 오직 예린을 향한 끝없는 갈망뿐.

"멈춰!"

나는 다가오는 거미 변종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깡!

이번에도 단단한 껍질에 맥없이 튕겨 나간 도끼였지만, 나는 놈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분산시키기 위해 도끼를 재차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쐐애애액-

퍼억!

"크헉!"

날파리 쫓듯 변종의 각다귀 같은 손이 휘둘러지고, 나는 그 팔에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스치듯 얻어맞은 것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괴력은 장난이 아니었기에 폐에 들어 있던 공기를 다 토해내고 말았다.

"허억···! 아으윽!"

순간 희미해진 시야에 변종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를 내버려 두고 이제 막 교문을 넘어가고 있는 지수에게 빠르게 다가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압도적인 체격 차이와 괴력에 무력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거미 변종이 예린을 쫓아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피를 탐하는 본능이 더 강할까.

예린을 잡겠다는 이성이 더 강할까.

저 변종도 한낱 짐승에 불과할진데, 확신할 순 없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는 있었다.

짤그락-

나는 변종의 시선을 내게로 끌기 위해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을 하나 들어 떨리는 손으로 내 팔목을 그었다. 약간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도 식욕을 참을 정도의 인내심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바닥을 향해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과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퍼지는 비릿한 혈향.

다각다각다각···다각······ [·········끼릭? 끼르르륵!]

킁킁!

킁킁킁-

나를 본체만체 스쳐 지나간 거미 변종이 혈향을 맡았는지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냄새를 맡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변종이 갈팡질팡하는 틈을 타 지수가 교문을 완전히 넘어간 것이 보였다.

···됐다.

가장 급한 일을 끝냈으니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저것으로부터 살아남는 것.

"끄으응···!"

나는 두려움에 점점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애써 일으키며 거미 변종에게 소리쳤다.

후두두둑-

"여기다! 여기 네가 좋아하는 싱싱한 먹잇감이 있다고!"

피가 뚝뚝 흐르는 팔목을 사방으로 휘둘러 핏방울을 퍼트리고 나는 회색 벽돌로 된 고등학교를 향해 냅다 뛰었다.

[끼아아아아아악-!]

다각다각다각다각!

빠득! 빠각! 빠드드득!

거미 변종이 예린을 포기하고 나를 씹어먹기 위해 달리는 소리와 내가 살기 위해 건물로 항하면서 밟히는 유리 조각 소리가 내는 불협화음이 맑은 하늘 아래에서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허억! 허억!"

나는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계속해서 내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쾅!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

···쾅! ···와장창! ···쿵!

단단한 건물 외벽을 부시는 소리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내 등 뒤에서 잇따라 들려온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멈춰 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에 나는 건물 안의 복도를 끝없이 내달렸다.

케케묵은 나무 인간의 살점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의 살점을 맛볼 수 있다는 본능적인 판단에 눈이 돌아간 거미 변종은 내가 잡히지 않고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괴성을 토해냈다.

[끼이이이이이!!]

어느덧 복도 끝자락에 도착한 나는 다시 한번 선택지 앞에 섰다.

이대로 위로 올라가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아니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 새로운 살길을 도모할 것인가?

위 층으로 올라간다면 거미 변종은 더 이상 날 쫓지 못할 것이다. 그 거대한 크기로는 좁은 복도를 지날 수 없으므로.

하지만 문제는 더 이상 날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 이후의 변종의 행동이다.

나를 포기하고 아직 이 근처에 숨어있을 지수를 찾아 움직인다면, 겨우 숨을 고르고 있을 지수와 예린을 거미 변종이 습격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건물 밖으로 나가면 내가 살 방법이 있는가?

거미 변종에 붙어 있는 나무 껍질은 내가 전력을 다해 휘두른 도끼를 피해 없이 막을 정도로 단단하다.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상처조차 내기 힘든 강도를 가진 나무 껍질.

그렇다면 단순 인간의 힘이 아닌 그보다 무겁고 강한 힘이 거미 변종을 짓누른다면?

나는 화원에 높게 쌓인 폐차들을 떠올렸다.

만약 거미 변종에게 그것들을 무너트려 압사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움직임을 확실하게 봉쇄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그리고 꼼짝도 못 하는 변종을 죽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각은 고작 몇 초 정도로 한정되어 있기에 더 이상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거미 변종의 기괴한 외형과 나무인간들보다 더 위협적인 괴력을 떠올리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가능성 놀음이 아닌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약속했으니까.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살아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순적이지만.

···저 거미 변종을 죽여야만 했다. 반드시.

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거미 변종을 화나게 만든 원인인 불길한 화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휘이이이이이-

푸스스스스···

화원에 가까워질 수록 부유하는 꽃가루에 의해 주변 공기가 뿌옇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와 지수가 화원에 있던 꽃을 전부 뽑다시피 했어도 그 꽃들은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남아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짙은 꽃가루를 내뱉고 있었던 것 같았다.

"켈록! 콜록!"

꽃가루가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에 달라붙어 텁텁하게 만들었고, 기침을 유발했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부스럭부스럭-

비가 왔음에도 아직 복구되지 않은 나와 지수가 만든 넝쿨벽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 나는 시체들의 화원으로 다시 진입할 수 있었다.

꽃가루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화원.

새벽에 내린 비로 인해 꽃에 붙은 자잘한 먼지들이 씻겨 나가서 각 꽃들이 가진 색채가 안개 속에서도 그 빛을 더욱 선명하게 발하고 있었다. 매우 하얗고, 매우 붉은 색채를.

그리고 화원은 어젯밤의 지진의 영향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는지 화원에 여기저기 세워진 폐차들의 탑이 처음 봤을 때보다 크게 비틀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그 광경을 보니 내가 세운 계획의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후우···."

아득-빠드득-까극-까각-

내가 화원의 중앙을 향해 걸을 때마다 우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발밑에는 유리 조각, 차 부품, 변색된 뼈들 같은 부스러기들이 밟혀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 거미 변종이 나를 바싹 뒤쫓지 않았지만, 놈이 아직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긴장으로 한껏 예민해진 몸의 감각이 놈의 시선을 포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앙에 도착한 나는 옆에 있는 폐차를 도끼로 연신 내려찍어 소음을 냈다. 이 소음과 내가 바닥으로 흘리고 있는 피로 거미 변종을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네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 화원을!'

-네 무덤으로 만들어주마.

캉!

도끼날과 금속판의 차 뼈대가 서로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냈다.

인간은 지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언제나 약자에 가까웠다.

우리가 다른 생물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전체 역사에서 보면 한 톨도 되지 않는 시간에 불과하다.

우리를 우월하게,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할 정도로 오만하게 만들어 준 것은 도구, 지능, 그리고 축적되는 지식.

캉!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을 보라.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도구는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를 위대하게, 우월하게 만들어준 도구는 한순간에 무력화되어 넝쿨에 의해 부식되거나 부서져만 가고 있었다.

우리를 인간으로서 남아 있게 해준 지능과 경험에 의해 새롭게 쌓이는 지식은 그나마 이런 세상에서도 우리가 생존할 수 있게끔 만들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캉!

지금 세상은 다시 한번 급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겨우 쌓아온 지식이 또다시 소용이 없어지고 있단 말이다.

캉!

우리는 이제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역사는 거꾸로 돌아 우리를 최상위 포식자에서 한낱 피식자로 강등시켰다.

나는 지금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캉!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손에 들고 있는 도끼 한 자루뿐.

하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까.

캉!

"와라. 이 괴물 새끼야."

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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