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 - 41. 화원의 파수꾼 (8)
캉!
캉!
캉!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화원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끼르르르륽···]
화원을 감싸는 넝쿨벽 뒤에 숨어있던 거미 변종은 점점 그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기에 계획을 바꿔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를 뚝뚝 흘리는 먹잇감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에서 짜증을 유발하는 소리를 내는 먹잇감을 단박에 먹어 치우는 것으로.
먹잇감이 움직이는 게 신기해서 그동안 내버려 두었으나 이 짜증을 버틸 정도의 신기함은 아니었다.
캉!
캉!
다각다각다각다각
부스럭부스럭-부스스-
철제와 철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거미 변종이 넝쿨벽을 헤치는 소리가 서로 겹쳤다.
화원으로 들어온 거미 변종은 점점 짙어지는 혈향을 맡았다. 그것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다각다각다각···
이윽고, 거미 변종은 폐차들의 탑 앞에 도착했다.
휘이이이이-
푸스스스···
한 줄기 바람이 불자 화원의 꽃들이 꽃가루를 힘차게 뿜어내 주변을 더욱 뿌옇게 만들었다.
거미 변종은 갑작스러운 짜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주변을 자욱하게 만든 꽃가루 때문이 아닌 자신이 힘들게 가꾼 화원이 아직 망가진 채라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거미 변종이 화원을 스스로 만들어내지도, 가꾸지도 않았고 처음 눈 뜬 순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사실은 놈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끼아아아아아아!]
사라지지 않은 짜증에 괴성을 토해내며 팔을 이리저리 휘적여보지만, 그 행동은 꽃가루 입자를 더욱 정신없이 휘날리게 할 뿐이었다.
꽃가루 입자는 거미 변종의 나무 껍질에 달라붙어 그 색을 갈색에서 하얀색으로 변색시켰다. 거미 변종은 하얗게 변한 자기 색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아히이이이···]
화원에 들어온 이유조차 잊고 한차례 웃고 있는 거미 변종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냄새가 맡아졌다.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먹잇감 냄새.
긴장에 땀을 흘리는 먹잇감 냄새.
그리고 입맛을 돋우는 비릿한 혈향을 풍기는 먹잇감 냄새.
캉!
캉!
그 순간. 귀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다각다각다각다각!
거미 변종은 이곳에 들어온 이유를 떠올렸고, 소음의 근원지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장소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뿌연 공기탓일까.
킁킁!
맡아지는 냄새에는 거미 변종이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섞였는데 정작 잡히는 것이 없자 변종은 각다귀같은 손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화풀이했다.
쾅! 콰쾅! 쿵! 콰직!
기우뚱-
···타탓······
그때, 거미 변종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아닌 무게가 가벼운 생물의 발걸음 소리가.
휙!
거미 변종은 머리를 휙 돌려 뿌연 공기 너머를 응시했다.
또 다른 폐차의 탑 아래에 숨는 미약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동시에 입가에 침이 잔뜩 고이기 시작했다.
먹을 것. 싱싱한. 그것도 매우. 맛있는.
나무 인간, 변종, 인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생물들이 기본적으로 강하게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
식욕(食慾)이 거미 변종의 머리를 잠식했다.
그리고 주변의 대기가 웅웅 울릴 정도의 포효를 내뱉었다.
[내···꺼━━━!]
***
거미 변종이 꽃가루 안개를 헤치고 화원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 계획대로 일이 풀리는 듯했으나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지 않았다.
폐차들의 탑에 피를 잔뜩 묻혀 거미 변종을 유인하고, 놈이 주변에 화풀이하면서 탑을 가격한 것까지는 좋았다.
다만, 문제는 내 예상보다 더 탑이 견고했고.
[내···꺼━━━!]
다각다각다각다각!
탑이 무너지지 않자 자리를 급하게 이동한 내 움직임을 거미 변종이 감지했다는 것이다.
"······!"
나는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다른 폐차의 탑 뒤로 숨었다.
콰앙!!
후두두둑!
방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자리에 변종의 손이 내리쳐졌고, 그 손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데구르르-
우연일까.
지수를 화들짝 놀라게 했던 조각상의 머리가 내 발치로 굴러왔다. 목 부분의 잘린 단면은 녹이 잔뜩 쓸어 마치 단두대에서 막 처형된 머리처럼 피를 흘리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조각상의 텅 빈 동공이 나를 응시했다.
「너도 곧 나처럼 될 거야」
아니야. 나는 살아남을 거야.
「하나가 되자」
나는 머리를 거세게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지금은 헛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아니다.
「꺄하하하하하하」
나는 조각상의 머리가 내뱉은 폭소를 뒤로하고, 거미 변종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내달렸다.
[끼아아아아아!]
뚝
뚝
겨우 멎은 피가 내 격렬한 움직임에 벌어진 상처에서 다시금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 냄새를 맡은 거미 변종은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꽃가루 안개 속에서도 선명하게 발하는 변종의 눈.
흰자위없이 검은 동공만 있는 그 눈은 식욕, 즐거움, 기쁨, 짜증, 갈망 같은 상반되는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내가 도끼를 꼬나쥐고 있는 모습이 그 눈에 비쳐졌다.
다각다각다각!
쾅!
쾅!
쾅!
나는 술래잡기를 하듯 폐차의 탑 주위만 죽어라고 내달리며 빙빙 돌았다. 내가 코너를 돌 때마다 1박자 늦은 타이밍에 거미 변종의 손이 바닥을 내려쳤다.
간발의 차이로 나를 계속해서 놓친 것에 짜증이 난 거미 변종은 잠시 제자리에서 멈춘 채 입을 오물거렸다.
부웨에에엑!
푸화악-
변종의 입에서 뭉친 실타래같은 것이 튀어나왔고, 이내 그물처럼 펼쳐져 이제 막 코너를 돌고 있는 내 움직임을 봉쇄했다.
"······!"
나는 폐차와 내 손을 떨어지지 않게 꽉 붙들고 있는 끈적이는 거미줄을 떼어내기 위해 다급하게 몸부림 쳤으나, 동시에 나를 향해 끝없는 식탐과 집념을 표출하는 거미 변종이 손을 휘둘렀다.
꼼짝도 못하는 먹잇감을 이제서야 잡는다는 기쁨을 드러내면서.
"이런 씹!"
터어엉-!
기우뚱······
그때.
놈의 손과 부딪힌 폐차 중 하나가 종이 울리는 듯 공명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탑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폐차들의 탑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도미노처럼 옆에 세워진 탑 또한 무너트리며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쾅! 쿠르르릉! 끼드드득! 콰쾅-!
후두두둑-
높게 쌓인 폐차들이 화원이 있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압착시켰다.
[끼-르아아아악!]
우직! 콰지직! 우드득!
그리고 거미 변종도 밀려오는 폐차들의 파도를 피할 수 없었다. 1파가 몰려올 때는 변종의 체격과 힘으로 버티는 듯했으나 이어서 2파, 3파가 쏟아지자 놈은 맥없이 주저앉았다.
처음에는 차들의 무게가 놈을 덮쳤다.
거미 변종의 단단한 나무 껍질이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서서히 깨지며 체액이 튀기 시작했다.
다음은 무너지면서 서로 부딪힌 폐차들에게 금속판의 날카롭게 찢어진 듯한 부분이 생겼고, 거미 변종의 연약한 내부 살점에 꼬챙이 꿰 듯 푹푹 박혀 놈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폐차들의 무게가 변종의 몸에 더해질 때마다.
날카롭게 파손된 부분이 변종을 찢어발길 때마다.
거미 변종은 고막을 찢어버릴 기세로 고통스러워하는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여기까지는 전부 내 계획대로 일이 잘 풀렸다. 폐차들의 탑을 무너트려 거미 변종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죽을 정도의 타격도 주었다.
엄청나게 무모하고 성공 가능성이 작은 위험한 계획이었지만 어떻게든 성공 했단 말이다.
다만.
···다만 문제는.
"케흑···. 커헉-!"
나 또한 탑이 무너지는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
내 손은 아직도 폐차의 탑 아래쪽에 있던 차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차 때문에 자리를 이탈하지 못해 나도 화를 피할 수 없었지만.
이 차 덕분에 목숨을 겨우 건진 것이기도 했다.
나를 놓아주지 않는 폐차를 방파제 삼아 밀려오는 파도로부터 버틸 수 있었다.
장기가 상했는지 기침을 내뱉을 때마다 정체불명의 고깃덩어리가 내 입에서 튀어 나갔다. 나는 겨우 숨을 내쉬며 흐릿해진 시야로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내 복부 한가운데를 녹이 잔뜩 쓴 쇠꼬챙이가 꿰뚫고 있었다.
이걸 뽑으면 죽겠지.
아니, 어차피 녹 때문에 파상풍 걸려서 죽으려나.
"흐흐···. 쿨럭쿨럭!!"
순간 느껴지는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으나 웃을 때마다 강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힘겹게 들어 올려 무너진 폐차들에게 깔려 있는 거미 변종을 바라보았다.
각다귀 같은 손만 겨우 빠져나온 채 나머지 부분은 전부 폐차들에게 가려 보이지 않는 거미 변종.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놈은 죽은 것 같았다. 나는 그 느낌에 안도하며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같잖은 영웅 심리라고 할 수 있었다.
어이없는 희생정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그래 왔다. 지수와 예린을 살릴 수 있었으니 난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피가 점점 빠지면서 내 몸이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삶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내 본심이 내면에서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그것은 내 속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살고 싶다. 살고 싶어. 죽기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웃으면서 보기로 했는데. 내가 왜 죽어야 해? 누구는 죽고 싶은 줄 알아? 내가 왜 희생해야 해? 내가 왜? 억울하다.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 억울해. 살고 싶다고. 저것도 죽였잖아. 그럼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살아서 돌아가기로······약속···했는데.
바로 그때.
꿈틀!
끼기기긱-
까드드드드드드득!
[끄르르르르르르···]
거미 변종이 가래가 들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서서히 일으키기 시작했다. 억지로 들어 올려지는 폐차들이 자기들끼리 조금씩 비벼지며 죽는 소리를 냈다.
쿠-웅!
쾅! 꾸드드드득!
엉망진창으로 쌓인 폐차들이 한차례 위로 크게 들썩였다. 폐차들 아래에 묻혀있던 거미변종의 각다귀 같은 손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거미 변종이 지독한 증오를 검은 동공에서 줄줄 흘리며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