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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43화 (44/497)

Chapter 43 - 43. 뭐라고요? (1)

혹사당한 머리와 몸이 한 차례 휴식을 취한 후, 천천히 깨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정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자, 처음 느껴지는 것은 솜이 물을 먹은 것처럼 무거워진 몸이었다. 나는 내 몸만큼이나 무거워진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

낯선 천장이다.

처음 보는 천장에 긴장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내가 있는 공간 전체에 맴도는 정갈한 냄새가 나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아니, 사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엉망이 된 전신에서 고통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부는 멍이라도 든 것인지 가만히 있어도 욱신거리는 것이 가라앉지 않았고, 무리한 움직임에 찢어진 근육들은 아직도 피로감을 호소했으며, 뼈는 금이라도 간 것같이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가장 큰 고통이 느껴지는 부위는 녹 슨 쇠꼬챙이가 관통했던 내 복부였다.

지금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어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불로 지지고 있는 듯한 감각이 잔열처럼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흐으······."

힘들게 숨 쉴 때마다 수분없이 바싹 마른 목에서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져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급하게 목이라도 축일 것을 찾기 위해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으나, 마실 것은 찾지 못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은 내가 있는 장소의 풍경.

지금 내가 누워 있는 침대, 낮이라는 걸 증명하듯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전원이 들어오지 않을 TV··· 그리고 원룸이나 가정집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방.

마치 지수와 예린을 처음 만난 모텔과 매우 흡사한···.

순간, 지수와 예린의 생각이 머릿속에 닿자 해냈다는 안도감이 나를 덮쳤다.

거미 변종과의 사투.

그 끝에 나는 살아남았고, 놈은 죽었다.

내가 변종을 죽여-

'···잠깐만.'

분명 내가 거미 변종을 빈사 상태로 만든 것은 맞지만, 마지막 일격을 가한 존재는 따로 있었다.

나를 이곳까지 옮기고, 응급 처치까지 해준 은인.

···아니면 속내 모를 사람.

그때.

끼이익-

내가 알아채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방문이 열렸다.

화들짝 놀란 나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단지 지렁이가 꿈틀거리듯 몸은 움찔거리기만 했다.

"깼나요?"

듣기 좋은 미성이 걱정을 담아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총을 쏴 거미 변종을 마무리하고, 나를 구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단발, 건강해 보이는 피부, 왠지 모르게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것이 아닌 높게 봐야 20대 중반, 얼핏 보면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고 있음에도 그런 분위기가 여성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내 곁으로 다가와 손으로 내 이마를 쓸어 주며 열을 쟀다. 그리고 내 상태를 작게 중얼거렸다.

"열은 이제 없어 보이고··· 상처 덧난 곳도 없고··· 정신도 제대로 차린 것 같고? 흐음."

내가 다친 곳을 꼼꼼히 살펴보던 그녀는 이내 내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어떠신가요? 몸은 이제 얼추 괜찮죠?"

나는 그녀에게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심각한 탈수 증세를 보이는 내 목은 내가 소리를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지 못하고 쇳소리만 내자, 그녀는 작게 손뼉을 쳤다. 그리고 방문을 나서며 내게 말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잠시만 기다려요. 물 좀 갖다드릴게요."

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500ml 생수 한통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는 손수 뚜껑까지 따서 생수를 내 입을 적시듯 조금씩 목을 축이게 해주었다.

"자요. 천천히 마셔요. 천천히···. 모자라면 더 드릴 테니까요. 옳지."

꿀꺽-꿀꺽-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니 잘했다는 듯 내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고는 아직 듣지 못한 내 대답을 얌전히 기다렸다.

혹시 이상한 사람에게 주워졌으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은 그녀가 내게 하는 행동으로 인해 불식되었다.

내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만히 내버려 둬도 자연사였던 내 방심을 유도해서 뭐 한다고?

나는 헛기침을 잠시 한 뒤, 훨씬 나아진 목 상태를 느끼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그 괴물을 죽이고, 절 구해주신 분이죠?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 인사에 그녀는 흐뭇하게 웃었다.

"전 마지막에 숟가락만 올린 것뿐 인걸요? 가만히 나둬도 죽었을 거에요. 그거."

"그래도 절 살려주셨잖아요. 가만히 둬도 죽는 건 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하하···윽!"

작게 웃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한 나는 이내 내 발목의 상태도 심상치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저기···."

"세아."

"네?"

"제 이름이에요. 저기가 아닌 세아. 한세아."

"···아! 그···저는 현우입니다. 이현우."

"현우···. 현우씨라고 부를 게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내 이름을 잠시 곱씹던 한세아는 내가 다시 입을 여는 것을 내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세아씨. 혹시 제 발목도 보셨습니까?"

"발목이요? 그럼요. 옷도 새옷으로 갈아입힐 겸 전신을 꼼꼼히 살펴봤죠. 후훗."

한세아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 말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지만 나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제 발목이 이상하지 않던가요? 상처라던가, 감염이라던가."

"으응?"

그녀는 영문 모를 소리를 듣는 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염이요? 혹시 제가 모르는 감염이 또 있나요? 곪은 상처는 없었는데···?"

"···모르는 감염이라뇨?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이번에는 내가 영문 모를 소리를 듣는 표정했다. 한세아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가 감염자잖아요. 정도의 차이일뿐, 밖에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과 우리는 별반 차이가 없는데. 모르셨나 봐요?"

"···예?"

나는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정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괴물 같은 나무 인간들하고, 우리가 같은 감염자라고?

아니, 그 말은 이미 우리가 무언가에 감염되었다는 소리잖아.

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부터?

딱딱하게 굳은 내 얼굴을 보던 한세아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제가 이상한 말을 했던가요? 멀쩡한 사람을 만난 건 너무 오랜만이라······."

"아뇨. 아뇨. 그보다 방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전신의 고통조차 잊을 정도로 흥분한 기색을 드러내며 몸을 들었다. 그러자 한세아는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나를 도로 눕혔다.

"쉬이···. 진정해요. 그러다가 상처 다시 터질라.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해줄 테니까요. 네?"

"아······. 미안합니다."

고집 부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나를 달래는 한세아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사과는 됐어요. 어, 음···. 일단 그렇게 흥분하실 줄은 몰랐네요. 같이 다니던 여자아이가 말 안 해주던가요?"

"···예?"

나랑 같이 있던 여자라고 하면 지수나 예린 밖에 없는데, 그걸 이 사람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뭘 하나 제대로 알기도 전에 자꾸만 이상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정보에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이내 눈을 날카롭게 만들며 한세아에게 물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에 한세아는 몸을 움찔 떨더니 이실직고하듯 침대 옆 서랍장에서 망원경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걸로 현우씨 일행을 지켜봤었어요···. 여기서 학교까지는 망원경으로 보면 잘 보이거든요. 하지만 보기만 했을 뿐 아무 짓도 안 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이에요!"

"···그렇군요."

"정말인데! 전 그저 위험한 사람들인가 알고 싶어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화내서 미안합니다. 애초에 저희에게 뭘 하려고 했다면 절 구해주시지도 않으셨겠죠. 다시 한번 화내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가 어딥니까? 학교가 보인다고 하면 그 근처는 맞는 것 같은데."

"여기는 수원고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천호 모텔이에요. 그동안 제가 숨어 있던 장소이기도 하구요."

울상을 짓는 한세아를 보던 나는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판단했다.

지수가 학교에 있을 묘하게 느껴진다던 시선이 한세아가 보던 망원경을 느낀 것이었구나.

예린을 찾기 위해 먹이주머니를 한창 뜯고 있을 때, 예민하게 반응했던 지수가 떠올랐다.

거미 변종을 만나고 나서는 놈이 우리를 지켜본 줄로만 알았고, 왜 우리를 바로 덮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서야 의문이 해소되어 살짝 후련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막말로 내가 여기서 한세아에게 화를 내면 뭐가 달라지는가?

어차피 지금 내 목숨줄은 그녀가 가지고 있고, 나는 아직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세아가 우리를 한동안 지켜봤다면, 지수가 교문을 넘어서 어느 경로를 통해 수원역으로 갔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세아가 먼저 사과하기도 했고, 그녀와 굳이 마찰을 일으켜 겨우 얻은 살길을 스스로 걷어찰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은 그녀의 호의에 기대 몸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세아에게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세아씨."

"세아씨?!"

"······?"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무슨 생각하는지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왜 그러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한세아가 손을 들어내가 입을 여는 것을 저지했다.

"흐읏! 자, 잠시만요! 우리 나중에 얘기해요! 여기서 쉬고 있어요! 푹 쉬어요! 그럼 이만!"

얼굴이 잔뜩 붉어진 한세아는 그 말을 끝으로 방에서 서둘러 나갔다. 급한 몸짓과는 달리 방문은 살며시 닫혔다.

달칵-

아직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은 상황이건만, 갑작스럽게 방에서 혼자 남겨지게 된 나는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부르기만 하고 미처 말도 다 꺼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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