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6 - 46. 뭐라고요? (4)
"······."
"······헤헷."
왠지 모르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
왠지 모르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는 한세아.
나는 지금 내 손에 들린 따끈따끈한 계란 1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한세아는 지금, 이 상황이 부끄러운 듯 몸을 가만두지 못하며 배배 꼬고 있었다.
간밤에 내리던 비도 그치고,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분명 화목하게 아침 식사하고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현우씨! 잘 주무셨어요? 아침 식사 가져 왔는데 저랑 같이 먹어요!"
"아, 감사합니다."
저번과 같이 한세아는 뜨거운 계란죽을 만들어 방에 들어왔고, 나는 그것을 감사히 받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한 그릇이 아닌 두 그릇이라는 점일까.
"오늘도 계란죽이에요."
"와! 계란죽! 그거 맛있더라구요."
"···정말요?"
내 말에 한세아는 살짝 망설이다가 내게 물었다. 나는 후각을 자극하는 계란죽의 고소한 향기를 맡으며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힛.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에요. 그럼 우리 식기 전에 얼른 먹어요~!"
그렇게 우리는 각자 한 그릇씩 손에 든 채 기분 좋은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우물우물-
어느새 몸을 거의 다 회복한 나는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행복한 얼굴로 죽을 떠먹고 있는 한세아를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문득 어제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맛있게 싹 비운 계란죽.
'세아씨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었지···.'
나는 이참에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한세아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세아씨."
"넹?"
우물우물
죽을 입에 한가득 넣고 오물거리던 한세아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 있잖아요···."
"······?"
"이거 계란죽 직접 만들었다고 했잖-."
"푸훕!"
후두둑···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반응한 그녀는 입에 들어 있던 내용물을 전부 내게 쏟아 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순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을 바싹 굳혔다.
"어머! 어떡해! 죄송해요! 이, 이걸로 닦아요! 아니다, 제가 닦아드릴게요!"
서로 굳은 상태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한세아였다. 그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서 꺼낸 천 조각으로 내 얼굴에 튄 죽 알맹이들을 서둘러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 얼굴과 방은 다시 본래대로 말끔해졌고,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화났어요? 그러게 밥 먹는 도중에 그런 질문하면 어떡해요."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 한세아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타박으로 끝을 맺었다. 나는 황당함을 느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못 할 말 했습니까? 그렇다면 죄송하구요."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너무 이르잖아요···."
"······?"
한세아는 부끄러움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우리 사이?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게다가 너무 일러?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영문 모를 소리와 오해 가득한 소리에 나는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이상한 걸 물어 봤나?'
나는 내가 실례되는 말을 꺼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말은 하지 않았다.
"···정말 알고 싶어요?"
그때, 한세아가 무언가 결심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녀의 진지한 얼굴에 덩달아 나도 진지해졌다.
"알면 큰일 나는 이야기입니까?"
"흐읏!"
한세아는 내 눈과 마주치기가 무섭게 황급히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어제도 말했지만,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알고 싶어요?"
"그 정도로 큰일이에요?
"그런 건 아니지만···."
또 다.
또 한세아가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나는 오기가 생겨 꼭 알아내고 말겠다는 쓸모없는 고집이 생기고 말았다.
"꼭 알아야겠습니다. 저도 제가 먹는 게 뭔지 알아야 안심하고 먹지 않겠습니까?"
아니었다.
나는 그냥 주는 대로 잘 먹을 수 있었다. 단지 이렇게 말을 해야 한세아가 내 뜻대로 움직일 거란 생각에 그런 말을 한 것일 뿐이지.
한세아는 내 말에 단박에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순간 느껴지는 죄책감에 사과하며 말을 바로 취소할 뻔했지만 나는 꾹 참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알았어요. 알려드리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말만 하세요. 들어드릴 테니."
"저를···. 빤히 바라봐주세요. 제가 됐다고 할 때까지."
"······? 그거야 쉽죠. 바로 합시다."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려운 부탁도 아니기에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한세아의 얼굴을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턱선부터 시작해서 입가, 코 그리고 눈.
내 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그녀의 얼굴은 점점 붉게 물들었고, 마침내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
"헤으응. 이제 됐어요!"
벌컥!
타타탓-
한세아가 배를 감싸 쥐며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방문을 거세게 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혼자 남은 내가 알 수 없는 초조함에 발을 요란하게 떨고 있을 때, 한세아가 손에 계란 1알을 들고 방 안으로 살며시 들어왔다.
"현우씨."
약간 후련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입을 연 한세아.
"제가 어제 저도 동물과 결합했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닭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닭?
닭하면 역시···.
"총배-"
"알-"
나와 한세아의 말이 겹쳤고, 서로 내뱉은 말이 다르다는 걸 느낀 순간, 나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한세아가 팔짱을 끼며 눈에 쌍심지를 키고 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알이요."
"거짓말치지 마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죄송합니다."
나는 완전히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한세아를 달래기 위해 사과했다. 뒤이어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다 달려 있거든요? 하나가 아니라?!"
"······."
이건 또 무슨······.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문이 막힌 채 눈만 끔뻑끔뻑 뜨자, 한세아는 화들짝 놀라더니 손을 흔들며 변명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 이게 계란죽 재료예요! 이제 알겠죠?!"
취소.
변명이 아니라 내 정신을 완전히 날려 버리는 기습 공격이었다. 나는 턱을 괸 채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그야 사람이 알을 낳는다니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그건 신화에 불과하고.
세상이 미쳐 버리다 못해 이 지경까지 온 것인가?
아니, 그보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아? 사람이 낳은 건데?
"역시 이상한가요? 역시 그런 거겠죠···?"
그렇게 말하는 한세아는 약간 불안해 보였다. 그제야 정신이 확 든 나는 당사자를 앞에 두고 사색에 빠지는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아씨."
"···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일단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이상했다.
내가 이상한 건지 세상이 이상한 건지 판단할 수 없지만, 아무튼 이상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습니까? 그러니까 그··· 직접 낳으신 거잖아요?"
"되지 않을까요···? 무정란이기도 하고, 저희 지금까지 잘 먹었잖아요."
오, 이런. 맙소사.
무정란? 무정란이라서 괜찮다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무정란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어색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빠르게 훑었다. 손이 차갑게 식은 것이 느껴졌다.
"좋아요. 좋습니다. 무정란이라서 먹을 수 있다고 치고! 그럼 유정란이면 먹을 수 없는 건가요?"
"그렇지 않을까요? 유정란이면 그냥 알에서 애기가 되는 거잖아요."
"······."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씨앗을 품어본 적이 없어서. 히힛."
충격받은 내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은 한세아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웃고 있었다.
나는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를 타박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는 생각에 그저 손에 들린 계란을 굴릴 뿐이었다.
차갑게 식은 손과 반대로 묘하게 따끈따끈한 계란의 온기가 지금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시켜 주었다.
그렇게 나는 심각한 얼굴을 하며 계란을 보고 있었고, 한세아는 그 모습을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
"······헤헷. 에잇!"
그 순간, 한세아가 내게 달려들어 내 손에 들린 계란을 낚아채갔다.
탁!
쩌적-
그러고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단숨에 계란을 그릇에 부딪혀 껍질을 깨부쉈고, 그녀의 그릇에 내용물을 부었다.
노른자와 흰 자가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상태가 아주 좋아 보이는.
"어?!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뭔가 죄짓는 기분에 내가 당황하며 묻자, 한세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어차피 먹을 건데요, 뭘. 한 입 하실래요? 날계란이 목에 좋대요."
이제 그만해···.
제발···.
혼돈으로 가득했던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나는 한세아에게 정말로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진지한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세아씨. 제가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후아. 뭔데요?"
"거미 변종을 마무리하실 때, 총 쏘셨잖아요. 어떻게 쓰신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일정 이상의 열을 내는 물건은 못 쓴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아···."
어딘가 곤란함이 담긴 그녀의 표정에 나는 급하게 손사래 치며 말했다.
"말하기 곤란하시면 괜찮습니다. 그냥 나중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라도 해 본 겁니다."
"나중이라면 역시 그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겠죠?"
"예. 몸이 다 낫는다면 바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약속했거든요. 다시 만나기로."
"흐음···. 약속···."
한세아는 신음을 흘리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알려드릴 테니 나중에 제 부탁하나 들어 주는 것 잊지 마세요!"
"아, 감사합니다!"
"아니예요. 언제까지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보여드릴게요."
'보여 준다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인가?'
내가 속으로 추측하고 있을 때.
한세아는 입고 있는 옷의 목깃을 살짝 옆으로 젖히더니 무언가 중앙에 묶여 있는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이거예요. 제가 총과 가스 장비를 쓸 수 있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