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7 - 47. 뭐라고요? (5)
"이거예요. 제가 총과 가스 장비를 쓸 수 있는 이유."
한세아는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파란 조각이 달린 목걸이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히 받아 살펴보았다.
반짝이는 푸른 입자가 내부에 들어 있는 다각 형태의 파란 조각.
"보석? 이거 보석인가요? 사파이어인가···?"
26살의 일반 남성이 보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냐마는 적어도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는 많이 보았다.
나중에 연인이 생기면 사파이어가 박힌 반지를 선물해 줘야겠다는 상상하면서.
물론 내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일은 없었다.
순간 착잡한 심경이 된 나는 가라앉은 눈으로 손에 들린 푸른 조각을 바라보았다.
"보석은 아닐걸요? 안에서 이렇게 푸른빛이 반짝이는 보석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확실히 그렇-. 뭐라고요? 보여요? 푸른빛이?"
나는 한세아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세아는 내 반응에 당황하며 몸을 움찔 떨었다.
"보이죠···? 그걸로 양이 얼마나 남았는지 예상할 수 있었는걸요?"
"양? 예상? ···잠시만요. 그럼 밖을 돌아다니실 때도 푸른빛과 검은빛이 보이셨습니까?"
"검은빛? 그게 뭐예요? 저 조각말고 또 다른 푸르게 빛나는 게 있어요?"
나와 한세아는 서로 대화하고 있음에도 어딘가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지 않았다. 나는 더 말을 꺼내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보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조각 안에 떠다니는 푸른 입자는 보이지만, 밖에서도 볼 수 있었던 푸른 입자와 검은 입자의 존재는 모르고 있는 한세아.
반면에 미지의 힘으로 이 땅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입자와 검은 입자를 본 적 있었던 나.
처음 한세아가 목걸이를 꺼내 들었을 때.
조각 안에 있던 푸른 입자가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그 능력의 여파인 줄 알았는데 그녀도 푸른 입자가 보인다고 하니 그 끝에 다다르는 결론은 하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조각 안에 담겨 있는 푸른 입자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것.
'그 능력이 돌아온 건 아니었구나···.'
내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한세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현우씨, 왜 그래요?"
"아, 잠시 딴생각을 좀. 아무튼 이게 그 방법이라 그거죠?"
끄덕끄덕-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내게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거 주운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이제 겨우 2주···? 정도 됐구요."
"주워요? 이걸? 어디서요?"
"네. 그걸. 땅에서요. 나무 뿌리가 움직여서 지진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에 갈라진 도로 틈 사이에서 주웠네요."
"허어."
불을 다시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조각.
이런 세상에서는 보물이나 마찬가지인 걸 돌멩이 줍듯 그냥 땅에서 주웠다니.
단순 음식을 뜨겁게 조리하는 것뿐이 아닌 화기, 즉 총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지 않은가?
비록 소음은 크지만, 총의 파괴력은 무시할 것이 되지 못한다. 각 상황에 맞춰 쓸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것도 큰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땅에서 주울 정도면 나에게도 그 기회가 닿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한세아에게 물어 봤다.
"그럼 혹시 조각이 이거뿐이던가요? 더 없습니까?"
도리도리-
반짝거리는 눈을 하며 얼굴을 들이댄 내가 부담스러운 듯한세아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쉽지만, 그것뿐이에요. 저도 용도를 알고 나서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주변을 샅샅이 뒤져 봤지만··· 안 보이더라구요."
"···아."
푸른 조각이 고작 한 조각뿐이라는 사실에 나는 안타까움을 느껴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더 아쉬운 점은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제 추측이지만!"
"아. 아까 양이 어쩌고, 예상 어쩌고 하셨죠?"
"네. 제가 쓸 때마다 안에 들어 있는 푸른 빛이 줄어들어요. 양이 점점 주는 걸 보고 생각했죠. 아! 이게 뭔지는 몰라도 빈 깡통처럼 빛이 사라지면 나는 더 이상 이걸 쓸 수 없겠구나!"
나는 내 손에 들린 푸른 조각과 한세아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푸른 입자가 가득 차 있는 조각은 그녀와 말과 달리 그 양이 전혀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충만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꽉 차 있는데요."
한세아는 후후 웃으며 손가락으로 나를 콕 찔렀다.
"그게 당신이 특별한 이유예요."
"제가요? 갑자기?"
"그럼요. 죽을 정도의 상처도 단기간에 나을 만큼 강한 회복력, 남을 위해 희생할 정도의 강한 정신력 그리고···."
나는 뜬금없는 칭찬 세례에 부끄러움이 몰려와 몸부림쳤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조각을 다시 충전···? 시키기 까지 하는데 이 정도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죠."
"···제가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조각은 텅 비기 일보 직전이었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제가 현우씨에게 손대자마자 이 조각에서 다시 푸른 빛이 차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와! 충전! 대박! 무조건 주워가야지!"
나는 신나서 말을 다다다 내뱉은 한세아를 멍하니 보다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언제는 본능이 시켜서 구했다면서요."
그녀는 팔을 붕붕 휘두르는 상태 그대로 굳었다. 멈춘 것도 잠시 한세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이참~. 결국 구한 건 맞잖아요! 그리고 제 본능이 시킨 것도 맞거든요?!"
"세아씨 마음 잘 알았습니다. 저는 그저 움직이는 충전기에 불과했군요."
"에이. 말이 왜 그렇게 되나요! 삐졌어요? 배 안 고프세요? 우리 점심이나 먹을까요?"
내가 툴툴거리자 한세아는 땀을 삐질 흘리며 나를 달랬다. 나는 애쓰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됐어요.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아무튼 더 구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거죠?"
"네."
결국, 내 기대를 배신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뺏을 수도 없기에 그저 속으로 한숨만 삼켰다.
한낱 짐승도 자신을 구한 은인을 알아보는 법인데 인간인 내가 은혜를 잊을 수는 없는 법이니.
나는 기지개를 쭉 펴서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어디 결리는 부분은 없는지, 상처가 덧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이상 없이 몸이 멀쩡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 안전한 곳에서 벗어나 지수와 예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위험한 수원역을 향해서 나갈 때가 되었다.
나는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한세아를 나지막한목소리로 불렀다.
"세아씨."
"헤윽! 아, 아니. 네? 왜요?"
감전이라도 당한 듯이 몸을 움찔거렸던 한세아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제 몸도 다 나은 것 같으니 이제 나갈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아."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 은혜는 나중에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탄식을 내뱉고 아쉬운 얼굴을 했다.
"아직···못······데."
그리고 배를 어루만지며 뭐라 중얼거렸지만 소리가 워낙 작아 제대로 들리진 않았다. 한세아는 고개를 휙 들고 나를 응시했다. 왠지 모르게 오한이 드는 기분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후두둑!
쏴아아아아아-
그때, 간밤에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소나기일지, 하루 종일 내리는 호우일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당장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직 점심때가 되기 전이라 한세아와 작별 인사하고 바로 떠나면 저녁이 되기 전에 수원역에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속으로 혀를 찼다.
"현우씨."
"네."
"비가 오네요."
"그러네요."
"그럼 오늘 못 가시겠네요."
"···그러네요."
"후후. 후후후후···."
"······세아씨?"
"······."
나는 음침하게 웃는 한세아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녀는 언제 웃었냐는 듯 갑자기 웃은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웃음을 멈췄다. 한세아가 나를 다시 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현우씨가 오늘 나가겠다고 했어도 말릴 생각이었어요. 짐도 아직 안챙겼잖아요."
"짐이요? 저는 짐이라고 해 봐야 도끼밖에 없는데요? 그러고 보니 제 도끼 가지고 계시죠?"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보관하고 있었어요."
그동안 내가 도끼의 행방을 섣불리 물어보면 경계심을 살까 싶어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짐에 대한 화제가 나오자 나는 자연스럽게 도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사실 그 도끼는 제 것이 아니고 원래 주인에게서 잠시 맡아 두고 있는 것이거든요."
"···소중한가 봐요?"
"당연히 소중하죠."
"흐응······."
한세아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손을 꽉 잡고 방문으로 향했다.
"아무튼 짐 챙겨야죠. 제가 어떻게 맨손으로 보내겠어요? 몸 확실히 다 나으셨죠? 그럼 따라오세요. 제가 그동안 모아둔 것들 좀 챙겨드릴게요."
"엇. 정말요? 감사합니다!"
벌컥-
나는 한세아가 열어 준 문을 지나 방 밖으로 나서면서 생각했다.
이곳에 온 지 4일 만에 방 밖을 구경해 본다고.
처음 3일은 기절해서 나가지 못했다고 쳐도, 몸이 얼추 회복되었던 어제도 한세아가 나는 아직 환자라며 문을 나가는 것을 막아섰었다.
내가 있는 곳이 모텔 건물이라 그런지 방 안에 화장실이 딸려 있어서 굳이 방 밖을 나설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신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을 느끼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지나 복도로 들어서자 굴러다니는 쓰레기조차 없는 깔끔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머물던 방에서도 정갈한 냄새가 났으니 한세아가 얼마나 깔끔한 성격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허름한 모텔과 정갈한 냄새.
이것만큼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도 몇 없을 것이다. 마치 민트와 초코처럼.
개인적으로는 따로 먹는 걸 선호하지만, 이제와서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시는 혹은 오래도록 먹지 못할 음식들일텐데.
한세아와 같이 일자로 된 복도를 걸으며 나는 문득 생긴 궁금증을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왜 하필 모텔이고, 학교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을 거점으로 삼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