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49화 (50/497)

Chapter 49 - 49. 뭐라고요? (7)

"유해요? 이게?"

유해(遺骸).

주검을 태우고 남은 뼈, 또는 무덤 속에서 나온 뼈.

나는 한세아의 말에 다시 한번 그녀가 유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것은 아무리 봐도 색만 검정인 나뭇가지였다.

"불타고 남은 것을 유해라고 하잖아요? 아닌가요?"

내가 검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피고 있을 때, 한세아가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불태웠어요? 그 거미 변종을?"

나는 확인 사살을 위해 불태운 것인가 하는 생각에 역시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뭔가 다르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언제 불태우셨대요? 제가 자고 있을 때 갔다 오신 겁니까?"

한세아는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내가 의아한 얼굴을 하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현우씨가 불태웠어요. 기억 안 나시보네요."

"······?"

"제가 총으로 그 거미를 마무리하고 나서 현우씨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갑자기 현우씨가 손을 들어 올리더니 변종을 향해 빵! 하지 뭐예요?"

그녀는 손가락 총을 만들어 쏘는 시늉을 했다. 내 얼굴에는 점점 혼란스러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세아는 이야기를 마저 들으라는 듯 진지한 얼굴을 한 후 말을 이었다.

"그러더니 거미 변종이 푸른 불꽃에 휩싸여 가루가 되기 시작했어요. 변종 시체가 타고 남은 것이 지금 현우씨가 들고 있는 그···나뭇가지구요. 정말 기억 안 나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봤지만, 역시 내 기억은 한세아가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을 끝으로 길이 끊겨 있었다. 결국, 나는 고개를 흔들며 한세아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기억 안납니다. 제가 그랬다고요?"

"뭐, 기억 안 나시면 됐어요. 저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알려주는 것뿐이니까요! 나중에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한세아는 내가 거미 변종을 불태웠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당장 당사자인 나조차도 지금 내가 초능력을 부리듯 손으로 불을 일으켰다는 이야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인데, 그 광경을 직접 본 그녀라면 더 놀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혹시 한세아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장난을 치고 있나 싶은 마음에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아씨는 제가 신기하지 않아요? 세아씨 말대로라면 사람이 초능력을 쓴건데···. 저한테 장난치고 있는 건 아니죠?"

그녀는 피식 웃더니 벽에 기대져 있는 도끼를 주워 내게 건넸다.

"장난 치는 거 아니에요. 그때는 엄청 놀랐다구요? 그리고 초능력보다는 마법이 아닐까요? 신기하기도 했구. 자, 도끼 받아요."

나는 조심히 도끼를 받았다. 손에 묵직한 도끼의 무게가 느껴졌다.

깔끔하게 손질이 된 소방 도끼는 그동안 묻어 있던 넝쿨, 나무 인간, 거미 변종의 각 체액들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나는 한세아를 보며 물었다.

"지금 저한테 도끼 줘도 괜찮은 겁니까? 제가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시려고요?"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괴한이라도 만난 듯 두 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저 해코지 하실 건가요?! 너무해요! 믿었는데!"

"···아뇨.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제가 어떻게 세아씨한테 해코지 하겠습니까. 제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을? 그냥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조심하라 이겁니다."

한세아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점점 커졌다.

"풋-. 푸훕! 아하하하핫!"

"왜 웃어요. 사람이 기껏 걱정해줬구만···. 지금 총도 안 들고 있잖아요."

나는 그녀의 반응에 뚱한 얼굴을 해 보였다. 한세아는 웃음을 그치고 나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합격이에요."

"······?"

"이제 확실히 믿어도 되겠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싱긋 웃으며, 뒤춤에서 총 한 자루를 꺼내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

"전 총이 한 자루라고 말한 적 없는걸요?"

나는 몸이 바싹 굳어 얼어붙고 말았다. 한세아는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문을 나서며 말했다.

"구경 다 하시면 문 닫고 현우씨 방으로 돌아가 있어요. 저는 지금 할 일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워야하거든요. 비도 언제 그칠지 모르고, 곧 점심때가 오니까 방에 가 계시면 제가 밥들고 찾아갈게요. 알았죠? 제 말대로 하리라 믿어요. 착한 아이시니까."

달칵-

한세아가 나가고 방에 나 혼자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방금 뭐였지?

방금 내 머리가 뚫릴 뻔한 상황이었던 건가?

나는 유독 쉽게 다가온 그녀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나를 구해주고, 치료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기까지 한 한세아.

어디서부터 진심이고, 어디까지 연기인지 모르겠다.

그럼 식량이나 각종 도구가 들어 있는 창고도 일부러 보여 준 것인가?

몸이 다 나은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보려고?

내가 그 물건들을 욕심내서 한세아를 위협하거나 여체를 탐하기 위해 그녀를 덮쳤다면, 내 몸에 구멍이 송송 뚫렸을 것이다.

기껏 식량 창고에서 벗어나서 도끼를 돌려받았을 때도 내가 그녀를 해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면 마찬가지로 내 몸에 구멍이 뚫리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리고 한세아가 합격이라고 말한 직후에도 내가 섣부른 행동했다면····죽었겠지.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등에 소름이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게, 그녀 말대로 총이 한 자루라고 하지 않았으니 두 자루를 넘어서 또 한 자루가 더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지수야····. 어떡해. 나 잘못 걸렸나 봐···.'

털썩- 팅- 쿵-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손에 들고 있던 도끼와 검은 나뭇가지가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그쪽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분명 검은 나뭇가지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가득했건만.

내가 손짓으로 불을 만들어냈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의문이 가득했건만!

이제는 내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 뒤로 며칠이 더 흘렀다.

금방 그칠 줄 알았던 비는 생각보다 쉽게 그치지 않았고, 나는 계속 내리는 비에 발이 묶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요 며칠 사이에 한세아가 내 목숨을 위협하는 일은 없었다. 내 운신을 제한하는 일도, 밥을 주지 않는 일 또한 없었다.

다만 그 밥이 여전히 계란죽이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

'창고에 다른 식량도 많던데····.'

한세아는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짐가방을 비우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했다.

나는 잘 때도 도끼를 옆에 두고 수면을 취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지만, 딱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비가 내렸으며, 그녀는 간혹 옥상을 갔다 오는지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내 눈앞에 나타나고는 했다.

나는 밥값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그녀에게 도울 것이 있냐고 매번 물었지만, 그녀는 나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한세아는 수시로 내 방에 들어와 가슴 장화따위의 장비를 내 몸에 대보곤 했다. 나는 여러 안전 장비들을 어디서 획득했는지 궁금증이 생겨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세아씨. 이런 장비는 어디서 주웠습니까? 이 근처가 다 공사 현장이던데 거기서?"

"아뇨. 그····어디더라? 아, 무슨 고시원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그 건물 1층에 있는 안전용품 가게에서 주웠네요."

"혹시 매교 고시원?"

"맞아요! 거기!"

그 뒤로 여러 대화를 나눴으며, 나와 한세아가 같은 나이, 즉 동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여기 있는 동안 서로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지만, 그녀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거절했다.

한세아는 나를 볼 때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어쩔 때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민 가득한 신음을 내뱉으며 머리를 붙잡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입을 열지는 않았다.

***

그렇게 내가 이곳에서 눈을 뜬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의 아침.

비가 그쳤다.

우리는 평소와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다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조용히 죽을 떠먹는 소리만 들릴 뿐.

그리고 그 침묵은 내가 한숨을 내쉬며 한세아를 부르는 말에 깨졌다.

"세아씨."

"····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요."

그녀는 아무 말없이 손으로 그릇을 매만질 뿐이었다. 하지만 한세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는 것을.

"이제 비도 그쳤으니 일행과 합류하려고 합니다.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내 말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그녀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일주일.

누군가는 고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이들은 벌써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나는 지수와 예린이 걱정되어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그친 지금이 나갈 수 있는 기회다.

그때.

한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향해 걸으며 입을 열었다.

"현우씨. 수원역에는 어떻게 가시게요?"

"····얼추 표지판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요····?"

내가 자신감없이 한 말에 그녀는 코웃음 치며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지금 밖에 나무 인간들 돌아다니는 건 알고 말씀하시는 거죠?"

한세아의 말대로였다. 지금 밖에는 나무 인간들이 길거리를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 일대는 거미 변종의 영역이라 나무 인간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지만, 변종이 죽자마자 어떻게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한 놈씩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적다고 할 수 없는 숫자가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면 계속 비가 내린 탓일까.

그녀의 뼈 아픈 지적에 내가 어깨를 움츠리자, 한세아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현우씨. 만약 수원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쳐요. 그럼 그 뒤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금까지는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제는 알고 싶어요. 저희 이제 좀 친해졌잖아요?"

나는 아직 그녀에게 내 목적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게 말한다고 해서 믿어 줄지도 의문이고, 미친놈 취급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않은가?

지수는 별다른 의심 없이 내 말을 믿어 주었지만 말이다. 그 생각하니 그녀가 빨리 보고 싶어졌다.

나는 잡생각을 털어내며 한세아가 믿든 믿지 않든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남산을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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