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50화 (51/497)

Chapter 50 - 50. 뭐라고요? (8)

"에? ···남산?"

"네. 남산이요."

한세아는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차 되물었다. 내가 확답을 내려주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로 돌아오는 게 아니구? 제 부탁 들어 주기로 했으면서···!"

"그 부탁은 나중에 제가 다시 돌아오면···."

"거기는 왜요? 위험하잖아요."

나는 잠시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한 기색을 눈치챈 한세아는 쌍심지를 키며 내게 다가왔다.

"현우씨. 지금 거짓말하려고 한 거예요? 저한테? 그럼 착한 아이가 아닌데···."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몸을 움찔 떨었다. 체구로 보나 힘으로 보나 싸운다면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지만 한세아에게는 무언가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가 흘렀다. 분명 동갑이건만···.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냥 다 털어놓기로 했다.

"남산에 있는 연구소로 가야 하거든요. 거기서 제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한세아는 얼굴에 의아함을 한껏 담으며 물었다.

"남산 연구소? 그 졸린 사가 세운 거기요? 뭘 하셔야 하는데요?"

"어?! 졸린 사를 아세요?"

"그럼요···? 제가 저번에 저 천식 앓고 있었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이제 다 나았지만."

"아···."

"그래서 졸린 사에서 공기정화기술을 발명했다고 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거긴 왜 가냐니까요?"

내가 살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자, 한세아가 내 대답을 재촉했다.

"그럼 졸린 사에서 나무에 적용한 기술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된 것도 아시겠네요···?"

"···무슨 소리예요, 그게. 그건 처음 듣는데. 확실해요?"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제 추측에 불과하지만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여기서 더 숨길 것도 없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천히 내가 아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아는 사람이 졸린 사의 남산 연구소에서 일했던 이야기.

그 사람이 자신이 일하는 연구소가 이상하다고 했던 이야기.

그리고 사태의 근원지인 남산 연구소로 가면 이 세상을 다시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내가 푸른 입자와 검은 입자를 볼 수 있었다는 것과 거미 변종과 싸울 때 순간 남산 일대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전부 말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특히 남산의 거목을 본 이야기는 바로 믿기에는 허무맹랑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 나를 붙들고 있는 한세아가 약간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저도 압니다. 믿기 힘들다는 것쯤은. 그래도-."

"아뇨아뇨! 못 믿겠다가 아니라 그만큼 놀라운 내용이라서 그렇게 말한 거예요! 저는 현우씨 믿어요!"

한세아는 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급하게 손사래 치며 변명했고, 말을 돌렸다.

"현우씨. 그럼 그 아이들도 알고 있어요? 방금 현우씨가 저한테 해준 이야기요."

"네. 당연하죠. 처음으로 제가 아는 걸 말한 게 지수였거든요."

"당연? 처음? 흐응······."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이 사람이 왜 그러나 싶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기에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세아씨. 보답은 나중에 돌아와서 꼭 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도끼를 손에 들고 나가려는 순간, 한세아가 나를 붙잡아 세웠다.

"자, 잠시만요! 짐 챙기셔야죠! 제가 힘들게 담았는데!"

"아."

"여기서 기다려요! 금방 가져올 테니까!"

그녀는 쏜살같이 움직여 방을 나섰다. 그리고 방 너머에서 들리는 넘어지고, 부서지는 소리.

우당탕탕-!

콰당! 쿵! 악!

한세아는 금방 오겠다는 자기 말을 지켰다. 비록 단정하던 머리가 산발이 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어도.

"헥···. 헤윽-. 준비···끝났어요! 같이 가요!"

"감사-. 뭐라고요?"

나는 그녀가 건넨 가방을 받다가 멈칫하고 물었다. 한세아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현우씨. 저번에 제 부탁하나 들어 준다고 한 거 기억하죠?"

"그럼요."

"남산까지 가는 길은 엄청 위험하겠죠?"

"그렇죠. 아니, 지금 그게 아니라-."

"현우씨 일행에는 어린아이도 있었죠?"

한세아는 내 말을 중간에 끊고는 할 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나는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입이 조금씩 벌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는 현우씨가 수원역가서 일행을 여기로 데려올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모여서 오순도순- 아니, 다 같이 으쌰으쌰하면서 살 줄 알았단 말이에요. 겸사겸사 제 부탁도 들어 주시고! 그런데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모르는 채 절 두고 간다구요?"

"그러니까-."

"쓰읍! 계속 들어요. 현우씨랑 같이 지내보니까 알겠어요. 저는 이제 혼자 못 살아요. 이렇게 줬다 뺏는 게 어딨어요? 저 두고가면 외로워서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

"그리고 어린아이 돌보는 건 여자 한 명으로는 모자랄 거예요. 저 아이 잘 볼 자신 있어요. 그 아이도 여자아이잖아요? 어찌 보면 제가 그 여자보다 더 잘 돌볼지도 모르죠!"

나는 한숨을 쉬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세아는 그 모습을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기 진심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지 말을 덧붙였다.

"남산으로 가면 다시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요? 저도 도울게요! 저 총도 쏠 줄 안다구요? 제가 가면 불도 쓸 수 있어요. 어때요? 대단하죠?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 무럭무럭 들죠?"

한세아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멋쩍게 웃었다.

"···비록 총알도 많지 않고, 불도 이 푸른 조각 때문에 쓸 수 있는 거지만요. 헤헷. 그렇다고 이거 뺏어갈 건 아니죠? 저 현우씨 믿고 있어요?"

나는 속이 답답한 느낌을 받으며 말했다.

"세아씨."

"넵!"

그동안 조곤조곤하게 내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우렁찬 목소리를 내뱉는 한세아.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세아씨가 일행에 합류하면 큰 도움이 되는 건 맞아요.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늘어나니 정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그녀는 내가 승낙했다고 생각한 듯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하지만."

"······?"

"그 말은요. 여기를 내버려두고 가야 한다는 말이잖습니까. 힘들게 만든 보금자리라면서요. 세아씨만을 위한 공간! 가는 길은 정말로 위험할 겁니다. 세아씨가 여기서 버티는 동안 제가 문제를 해결할게요. 저 믿는다고 하셨잖아요."

한세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을 본 나는 한세아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우씨 말이 일부분 맞긴 해요. 하지만요, 현우씨. 그건 현우씨가 연구소에 도착하고, 그 연구소에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때만 맞는 말이에요. 현우씨 자신도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확신할 순 없으시잖아요?"

한세아의 말이 맞다.

나는 여전히 그럴 것이다 라고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지, 그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남자 1명, 여자 1명, 아이 1명으로 이루어진 일행이 남산까지 도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 거로 생각해요?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작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합류한다면, 그 가능성은 조금이나마 올라가겠죠."

"하아···.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뭐가요?"

한세아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해요? 저 같으면 어디 한 곳에 박혀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텼을 걸요. 밖이 무섭지도 않아요?"

"무서워요. 어떻게 무섭지 않겠어요? 그럼 제가 역으로 물어볼게요. 현우씨, 그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미끼 역할을 자처했을 때,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죠."

그녀는 그거 보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힘든 길을 돌아갔어요? 무서웠다면서요."

"······모두가 살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니까요···."

"저도 현우씨와 같아요.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기도 했죠?"

"후우. 네."

"여기서 저 혼자 꾸역꾸역 살아남는 것보다 다시 예전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제가 그걸 도울게요. 저는 의미없이 살고 싶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같이 가요."

나는 한세아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행이 한 명씩 늘수록 내 마음의 짐 또한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목숨이 내 행동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세아를 기절시켜서 똑 떼놓고 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내 몸에 구멍이 뚫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아무리 반대해봤자, 지수처럼 자기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난리 치면 그걸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오히려 한세아가 내게 총을 겨눠 남산으로 안내나 하라고 협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판이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그녀들이 문제인 것인지, 믿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마음에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내 입이 방정인 것인지···.

말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면, 지수와 한세아는 사기 당하기 십상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쩌겠는가.

착한 내가 사기 당하지 않게 막아줘야지.

그때, 한세아는 눈에 띄게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실은요."

무척이나 심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배를 어루만지며.

"세상이 안전해져야 현우씨가 제 부탁을 들어줄 수 있거든요···."

나는 그 부탁이 무엇인지나 들어 보기 위해 말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한세아는 고개를 흔들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비밀이에요. 나중에 알려줄게요. 그렇다고 제 부탁 잊어버리면 안 돼요? 그럼 평생 저주할 테니까."

진지함을 한껏 담아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그저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뭐 남산 가는 것보다 어려운 부탁이겠어?'

이제 더 이상 말싸움도 할 기력도 없었기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상황을 넘겼다.

결국 같이 가게 될 것을 괜히 시간만 잡아먹었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지금은 후회하는 시간조차 아까웠기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오케이. 그 부탁 뭔지는 몰라도 무조건 들어줄 테니까 걱정 하지마시고, 이제 정말로 나갑시다. 이러다 해 지겠어요."

"후후. 좋아요. 짐은 다 챙겼으니까 나가기만 하면 된다구요~."

그렇게 우리는 준비를 끝마쳤고, 수원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세아의 미련 가득한 소리가 바닥에 길게 늘어져 나와 한세아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세아의 발걸음만.

"어허엉-.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으면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다 물어볼 걸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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