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1 - 51. 지하 터널 (1)
"···세아씨."
"네?!"
"돌아가실래요?"
나는 모텔에서 나온 뒤부터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는 한세아를 향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거리가 좀 떨어져 있던 나와 가까이 붙었다.
"아니요! 이제 안 볼게요!"
"······."
"와! 저기 봐요! 매교역 출구가 보여요! 아직 아닌가? ···헤헷."
한세아는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녀의 눈이 떨리고 있다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나 또한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으니까 더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내 한쪽 어깨를 차지하는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우리가 모텔에서 나오기 직전 상황을 떠올렸다.
***
"이것도 가져가야 하고, 이것도···. 아, 저것도!"
한세아는 창고 안을 뒤집어 엎듯 정신없이 움직이며 가방 안에 물건을 쓸어담고 있었다.
···쿵! ···쿵! ···쿵!
그녀가 안이 꽉 찬 가방을 내려놓을 때마다 바닥은 그 무게를 알려주듯이 조금 울리는 소리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 가방이 3개를 넘어 4개 째가 되었을 때, 나는 급하게 한세아에게 다가가며 그녀의 행동을 제지했다.
"세아씨! 그만! 너무 많아요! 이거 다 어떻게 들고 가려고 그래요? 한 두개만 더 챙긴다더니 이러다가 창고째로 들고 가겠어요."
"아···."
"세상에, 가방 무거운 것 좀 봐. 3개도 많은데···. 지금 챙긴 것까지만 들고 갑시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빨리 나와요! 안 그러면 저 혼자 갈 거니까."
"으앙! 그건 안 돼요! 아, 안 돼! 같이 가요!!"
나는 내가 창고 안에 있으면 한세아가 눈치를 보며 가방에 어떻게든 하나씩 더 집어넣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바닥에 놓인 가방 2개를 챙기며 뒤돌아보지 않고 창고를 나섰다.
뒤에서 그녀가 다급하게 일어나 내게 따라붙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는 자꾸만 멈칫하는 한세아에 의해 뚝뚝 끊겼다.
조금씩 움직이는 그 소리에 어찌나 많은 미련이 담겨 있는지 그 미련이 나한테까지도 전염되는 기분이었다.
***
그렇게 모텔을 나서고 난 뒤의 상황이 이런 모습이었다.
장성한 아들을 군대라는 곳에 두고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 마냥 모텔에 고이 보관되고 있을 물품들을 애잔함을 뚝뚝 흘리는 눈으로 계속 바라보는 한세아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적어도 몇 개월은 그냥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물품을 버리고, 나를 따라나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물건들은 한세아 본인이 직접 힘들게 모은 것이니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더 힘들었겠지.
···살짝 충동적으로 나를 따라 나선 것 같기는 해도 말이다.
나는 차오르는 한숨을 참으며 우리가 들고 있는 가방을 바라보았다.
챙긴 가방은 총 3개.
2개의 가방에는 식량과 식수가, 나머지 가방에는 손전등이나 휴대용 미니 캠핑 버너 같은 장비들이 담겨 있었다. 덤으로 흰색 천으로 둘러싼 거미 변종의 유해까지.
비록 가방들이 몸을 무겁게 만들긴 해도, 소중한 자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그때.
[으-우으으으···]
전방에서 나는 소리가 나를 상념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세아씨!"
나는 구슬땀을 조금씩 흘리고 있는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한세아는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알아차렸고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몇 마리예요?"
"일단 한 마리만 보여요."
우리는 도로 옆에 나 있는 작은 덤불들 사이에 몸을 숨겨 앞을 주시했다.
바스락- 바스락- 부스스-
이내, 낙엽과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소리를 낸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꾸르르르르···]
검은 나무 껍질과 검은 이끼가 전신을 뒤덮고 있는 인간 형태의 무언가.
"세아씨. 저번에 나무 인간하고 우리랑 같은 감염자라고 하셨잖아요. 비록 추측이었지만."
"···네."
"···그럼 같은 사람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요. 괴물이죠. 애초에 우리는 욕망과 욕구로만 움직이는 걸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망설이지 마세요."
단호하게 말하는 한세아를 보며 마음을 다잡은 나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저것은 괴물이다···. 그러니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되뇌며 사방에 널려 있는 넝쿨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잡힌 넝쿨 줄기를 손으로 짓이겨 체액을 뿜게 만들었다.
꽈악!
푸슈우욱······
이윽고, 넝쿨 체액을 온몸에 골고루 펴바른 우리는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한세아는 내가 건넨 가방을 조용히 받았으며, 나는 도끼를 손에 강하게 쥔 채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럭-바스락-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나무 인간이 고개를 돌려 한눈을 팔고 있을 때, 나는 도끼를 쥐고 덤불에서 뛰쳐나갔다.
부스럭!
···타타탓!
[끄륵······]
내가 지척까지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무 인간은 여전히 멍하게 어기적거리며 몸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부우웅- 콰직-! 데구르르···
나는 나무 인간의 목을 향해 그대로 도끼를 휘둘렀고, 묵직한 도끼날은 놈의 머리와 몸통을 그대로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털썩-
관성에 의해 순간 하늘로 솟구친 머리는 이내 땅으로 떨어지며 수풀 사이로 굴러가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머리를 잃은 몸은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한 채 팔을 조금 휘적이다가 힘을 잃고 쓰러졌다.
"후우! 후우-!"
나는 나무 인간이 완전히 쓰러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내 손을 바라보았다.
무의식적으로 넝쿨을 짓이길 때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으나, 이번 도끼질 한 번으로 내 힘이 더 강해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무 인간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을 때.
나는 그저 놈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기 위해 목을 노린 것일 뿐이지, 머리를 참수시킬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우씨!"
조용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세아는 상황이 끝난 것 같자, 내게 다급하게 뛰어왔다.
그녀는 머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진 나무 인간을 보더니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나를 멍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현우씨가 한 거예요? 와···. 힘이 진짜 세시네?"
"그런가 봐요."
나조차도 지금 상황이 얼떨떨하기에 살짝 멍한 목소리로 답했다.
"풋! 그런가 봐요는 또 뭐예요? 아무튼 이제 다시 앞으로 가요. 매교역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한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한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어 갈무리했다. 나는 잠시 그녀의 허리춤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나무 인간 하나가 있긴 했지만, 안전하게 갈 수 있어서."
한세아는 내 말에 약간 어색하게 웃어 보였고, 나는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아 표정이 어색한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리고 나는 불과 몇 걸음 걷지도 못한 채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전방과 한세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세아씨."
"···넵."
"이런 말은 없었잖아요."
"그래도 이쪽 길이 제일 안전한 건 맞는 걸요···."
나는 한숨을 애써 참고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로 위를 뒤덮은 넝쿨과 수풀들, 이리저리 꺾여 부러진 전봇대들, 무언가에 움푹 패인 외벽을 가진 건물들.
···그리고 수풀 너머에 몸을 숨기고 있던 크레바스(Crevasse).
내가 편의점에서 보았던 항거할 수 없는 뿌리의 폭거가 지나간 흔적이 분명했다.
'어쩐지 세아씨가 눈치를 보며 나를 멈춰 세우더라니.'
만약 그녀가 내 걸음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나는 속절없이 수풀에 숨어 있는 저 어둡고 깊은 틈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추락하는 상상을 하니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한세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현우씨, 푸른 조각을 여기서 주운 거예요. 저기 갈라진 틈 바로 옆에서요."
"그냥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고 하셨죠? 흠."
나는 그녀의 말에 도로가 갈라진 틈으로 가까이 다가 갔다. 위에서부터 내리쬐는 햇빛이 틈의 밑바닥까지 비출 기세였지만, 틈은 그 속살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는 볼 수 있었기에 나는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단순히 땅이 갈라진 것만이 아닌 이 틈 사이에는 나무뿌리들이 단단하게 서로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땅이 서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고 있는 것 같기도, 땅을 모조리 헤집어 공간을 모두 뿌리로 채우려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휘오오오오-
순간 밑바닥으로 바람이 빨려 들어가 내 몸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한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 좀 보여요? 전 아무것도 못 찾았었는데."
"그냥 나무뿌리만 보이고, 다른 건 안 보이네요."
"그럼 빨리 넘어가요. 여기만 넘으면 지하철 입구는 바로 코 앞이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폭은 1.5미터 정도로 심하게 크진 않았으나 한순간의 실수로 빠지게 되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는 몸은 건너가기에 앞서, 가방을 도로 틈 너머로 던지기로 했다.
"세아씨, 가방 이리 주세요. 제가 가방 빠지지 않게 저기로 잘 던질 테니까."
"여기요."
무사히 건너편 도로로 안착시킨 3개의 가방에 이어, 나와 한세아도 갈라진 도로를 훌쩍 뛰어 넘어 잃어 버린 것 없이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먼저 건너온 내가 한세아가 뛰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때.
손쉽게 바닥에 착지한 그녀가 순간 균형을 잃어 날개를 파닥거리는 듯 두 팔을 파닥거리다가 내게 넘어진 일이라던지 하는 가벼운 헤프닝이 있었지만, 그닥 중요하진 않았다.
드디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파란색 배경과 흰색 글씨가 써있는 간판.
<매교역 6번 출구>
그 밑에는 사람 2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계단이 밑으로 쭉 이어져 있었고, 그 끝은 어둠에 잠겨 희미한 윤곽만 보였다.
꿀꺽-
나는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끼며, 한세아에게 물었다.
"정말 여기밖에 없겠죠? 그나마 안전한 길이···?"
"그렇다니까요. 여기서 수원역까지 한 정거장이면 가요. 길도 그게 제일 가깝구요. 그리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들을 전부 죽이면서 갈 순 없잖아요. 걸리는 시간도 한 세월일 텐데. 그 아이들도 여기로 갔을걸요?"
단호하게 내뱉은 그녀의 말에 나는 한숨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다.
한세아는 내가 제일 빠른 길을 묻자 그녀가 아는 선에서 최단 루트를 알려 준 것뿐이고, 시가지로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나무 인간들을 피해서 이동할 수도 없는 것도 맞다.
지하 철도가 어떤 상태인지, 무슨 위험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다른 방법보다 이 길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빠를 것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알면서도 확인차 물어본 이유는 미지의 공간으로 향한다는 것에서 발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잠시 바라보다가 동시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지하로 한걸음 내디뎠다.
깊고 어두운 저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