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55화 (56/497)

Chapter 55 - 55. 지하 터널 (5)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떠도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뿐.

한순간에 지독한 어둠 속에 갇혀 버린 우리는 당황해하며 서로를 찾기 위해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세아씨! 어딨어요?!"

"혀, 현우씨! 쿨럭! 저 여기-! 케흑!"

나는 한세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방으로 팔을 뻗었지만, 거세게 출렁이는 수면이 내 움직임을 자기 입맛대로 휘둘러 나와 그녀의 손이 닿는 것을 한없이 방해했다.

"세아씨! 손! 손 내밀어요! 제가! 크흡! 어푸! 세아씨 잡아볼 테니까!"

풍덩! ···첨벙! 첨벙!

분명 허리춤까지 밖에 오지 않는 수위였건만.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 계속해서 넘어지니 입을 열 때마다 얼음장 같은 물이 내 속을 채웠다. 목을 텁텁하게 만드는 모래 알갱이가 자꾸만 씹혔다.

드드드드드드!!

머리 위의 천장에서 커다란 진동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아니, 천장뿐만 아니라 터널을 지탱하는 벽면에서도, 내가 간신히 발을 딛고 있는 바닥에서도 전해지는 끊임없는 진동이 터널 내부를 진탕시키고 있었다.

···쿵! ···쿵! ···쿵!

···쩌저적!

무언가가 터널을 뚫기 위해 정신없이 두드리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더욱 불길하게 들리는 그 소리는 점차 강해지며 어딘가의 벽면을 부수기 시작했다.

"현우씨!! 머··· 빨리 숙···요! 당장!"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세아가 고함을 내지르듯 크게 외쳤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지진음에 잡아먹혀 메아리도 울리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머리? 숙여?'

한세아가 하는 말을 얼추 알아들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머리를 그대로 수면에 박았다.

첨벙!

열이 오른 얼굴 전체를 순식간에 차갑게 만드는 수온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콰아앙! ···쾅!

후두두둑-

옆에 있던 벽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토사가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스쳐 지나갔다.

"푸하!"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수온만큼이나 서늘해진 나는 고개를 들어 참았던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손을 뻗어보니 바로 앞에 거친 표면을 가진 막대기 같은 것이 만져졌다.

···나무뿌리였다.

터널을 뚫고 들어온 나무뿌리는 멈추지 않고 그 힘 그대로 반대쪽 벽면마저 뚫은 듯했다.

"허억! 허억! 세아씨! 수면 위로 팔을 뻗어보세요! 뿌리가 만져질 겁니다! 그거 붙잡고 계세요!"

"알았어요! 현우씨는 괜찮아요?! 제가 거기로 갈게요!"

첨벙! 첨벙!

꽈악!

단단한 뿌리를 길잡이 삼아 내 곁으로 온 한세아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는 듯 내 손을 강하게 깍지를 끼어 잡았다.

"이제···! 안 놓쳐요!"

"세아씨, 어디 다친 곳은 없죠?!"

"네! 현우씨는요?!"

"저도-!"

나는 불안감에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한세아를 한순간이나마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다며 말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고 했다.

우리를 또다시 얼어붙게 만드는 불길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드드······드드드···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쉴 틈도 없이 여진과 함께 갱도를 부수려는 소리가 수없이 들려왔다. 일부분이 아닌 터널 전체를 둘러싼 소리가.

···쩌적 쩌저저적!

쿠구궁-!

갱도 벽면에 금이 가는 소리가 숨 쉬는 것조차 잊어 버린 우리에게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동시에 사형 선고라도 내리듯 벽면을 허문 수많은 나무뿌리들이 튀어나와 터널 내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쾅! 콰직! 와장창! 끼기긱-! 쨍그랑!

나무뿌리는 마치 강철로 된 채찍마냥 휘둘러져 주변을 파괴했다.

전기가 돌지 않아 작동을 멈춘 비상등, 간신히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객차 유리들, 지하철의 단단한 금속판.

그 모든 것들을 박살 내고, 깨트리고, 우그러트렸다.

부우우웅-!

······쿠웅!

······풍덩···!

휘둘리는 소리가 유독 큰 나무뿌리가 지하철을 밑에서부터 위로 올려쳤고, 그 충격은 무거운 지하철을 한순간이나마 바닥으로부터 들리게 만들었다.

살짝 들린 것도 잠시, 그 무게 그대로 떨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힌 지하철은 거대한 파문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파문은 거센 물살을 만들어내어 완전히 달라붙어 있는 우리를 덮쳤다.

···철썩!

"으아악!"

"꺄악!"

"어푸! 어푸푸!"

"켈록! 콜록! 헤윽!"

다시 한번 물에 흠뻑 젖은 우리는 입으로 들어간 물을 정신없이 뱉어내며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차가운 물을 지겹게 들이키고, 맞은 우리는 이제 서로가 붙잡은 것이 불분명할 정도로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거친 숨소리가 서로의 귓가에 가까스로 들리고 있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가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일까.

바로 그때.

쿠르르르륵-!

쑤우우우욱-

휘이이이이-!

벽면에 뚫린 구멍에서 배수구 소리가 나며 선로에 가득 차 있던 물이 일순간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공기 방울을 토해내며 곳곳에 난 틈으로 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물이 빠져나가는 길을 따라 그 위를 달리고 있는 날카로운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어느새 수로 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와류가 생겨났다. 나와 한세아를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흐르기 시작하는 물이 만들어 낸 인력이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힘을 더해 가고 있었다.

"현우씨! 물이 빠지나 봐요!"

한세아는 유속이 느껴지자 당혹성을 토해내며 나를 향해 말했지만, 그것도 잠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절망이 가득한 소리를 내었다.

"······아."

콰콰콰콰콰콰-!

터널 끝에서부터 솟아오른 거센 물살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터널이 뚫린 것은 우리가 있는 앞쪽만이 아닌 반대편 끝 터널도 마찬가지로 나무뿌리에 의해 구멍이 뚫린 듯했다.

아니, 갱도 전체에 수많은 구멍이 뚫렸다고 봐야하는게 옳겠지.

물이 빠져나간다면 응당 수위가 낮아져야 하는 게 당연할진대, 오히려 뒤에서 치고 들어오는 물에 의해 수위는 다시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이대로 물살에 휩쓸리면 부상을 입어도 단단히 입을 것이다. 아니면 그대로 죽던가.

비록 지하 터널에 생긴 파도라고 해도 무시할 것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사방이 꽉 막혀 있기에 부상의 위험은 더 클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힘으로는 거세게 밀려오는 물의 힘을 버틸 수 없으며, 그 힘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딱딱한 시멘트에 머리라도 부딪힌다면 다시 눈을 뜨지 못할 가능성이 크겠지.

게다가 지금은 나무뿌리에 의해 벽이 부서져 돌출된 곳도 있지 않은가.

수몰된 지하철 내부에서 버티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무뿌리가 객차의 유리를 모두 박살 낸 지금은 오히려 지하철에서 멀리 떨어져야 할 판이다.

우리의 몸은 객차 내부의 물살에 따라 움직이는 유리 조각들을 버틸 수 있을 만큼 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지하철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안에 고립되고 만다면, 우리는 높아져 가는 수위에 그대로 수장되고 말 것이다.

나는 양 어깨와 두 손을 무겁게 만드는 짐들을 바라보았다. 비닐로 묶은 것이 무색하게 물을 잔뜩 머금어 무게가 배가 된 짐들을.

매우 아깝고, 아쉬웠지만 이대로 모든 짐을 다 챙길 순 없다.

그러니 가장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도끼와 거미 변종의 유해를 챙겼다. 그리고 한세아가 있는 곳을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세아씨! 가방! 가방 하나만 남기고 다 버려요!"

"하지만!"

"시간 없어요. 빨리!"

"으으···! 아까워라!"

한세아는 신음을 내뱉고는 지금까지 힘들게 메고 있던 가방을 그대로 놓았다.

물살에 따라 떠다니는 가방들은 내 몸을 툭치고 지나가며 간신히 품고 있던 공기 방울을 전부 토해냈고, 이내 점차 밑으로 가라앉았다.

보글보글···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눈을 빠르게 감았다 뜨며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점차 가까워지는 매우 거센 물소리만 들릴 뿐.

"세아씨! 가방 버렸으면 남은 가방 저랑 세아씨 사이에 넣고 꽉 안아요!"

"알았어요!"

타악-

첨벙! 첨벙!

나는 마주 안은 한세아의 차갑게 식은 체온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 사람만큼은 살릴 것이다. 반드시.

그리고 후방에서 생긴 파도의 기세가 앞 쪽의 수위를 낮추며 그 크기를 불려 나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촤아아아아악!

파도가 밀려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상과 지하.

나는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 보이는 길을 골랐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까지 잘못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은 내게 언제나 밑바닥보다 더한 현실을 보여 준다.

나는 곧 닥칠 위험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세아에게 말했다.

"세아씨. 미안해요. 이런 일에 끌어들여서."

"···아니에요. 제가 한 선택인 걸요. 현우씨는 잘못 없어요."

그녀는 잠시 흠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녀는 팔을 더 강하게 조이며 어깨와 연결된 가방을 고정시켰다.

나 또한 그녀처럼 바깥쪽으로 내민 도끼를 한층 더 강하게 잡았다.

"······숨 꽉 참아요. 절대 입 열지말고."

"···네."

나와 한세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을 꽉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밀려온 파도가 나와 한세아의 등을 강타했다.

철-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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