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6 - 56. 지하 터널 (6)
처음 파도가 나와 한세아를 덮쳤을 때, 우리 몸은 곧장 물의 가장 밑바닥으로 처박혔다.
···퍼억!
바닥에 돌출된 선로에 등을 세게 부딪치자, 나도 모르게 못 참고 입을 열어 공기를 뱉을 뻔했으나 순식간에 우리 몸을 다시 위로 끌어올리는 힘에 어찌할 틈도 없어 강제로 입이 다물렸다.
···철썩!
빠악!
파도의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려 몸 곳곳을 부딪치고 있는 나는 벌써부터 혼미해지는 정신을 애써 다잡았다.
물살을 따라 같이 달리는 바람이 느껴져 급하게 숨을 들이쉬는 것도 잠시, 우리는 다시 파도에 의해 바닥으로 끌어내려졌다.
"푸하! 흡-!"
촤아아아악-!
나와 한세아는 파도에 휩쓸려가면서 어쩔 때는 물에 잠기기도, 수면을 벗어나 잠시 공중에 뜨기도 했다.
다만 물 속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기 때문에 간혹 들이마시는 숨이 있어도 모자랐고, 산소의 부족은 우리의 숨통을 강하게 조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이 우리의 몸을 바싹 긴장하게 만들어 끊임없이 체력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파도가 갱도 전체를 휩쓸어 간다.
···쾅! ···쾅! ···쾅! ···쾅! ···쾅! ···쾅!
···쩌저적- 쿠르르르릉!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귀에 물이 들어갔는지 들리는 모든 소리가 점점 불명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수면 위의 상황이 얼마나 난장판이 되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다시 시작된 뿌리의 폭거는 지하 터널을 아예 무너트릴 기세로 무자비하게 벽을 뚫거나 완전히 허물어 버리고 있었다.
나무뿌리에 의해 부서진 수많은 시멘트 부스러기들이 마치 소나기처럼 수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르르르륵! 풍덩! 풍덩···!
타타타타···!
또다시 파도가 몰아친다.
작은 부스러기들은 피부에 스쳐도 그저 지나갈 뿐이었지만, 간혹 조금 큰 부스러기가 우리 몸을 휘감고 있는 물살에 의해 스쳐 지나갈 때면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 꽉 다물린 눈꺼풀을 건드리는 조각이 느껴질 때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어 눈을 보호했다.
나는 최대한 한세아의 부담을 덜기 위해 그녀에게 가는 피해를 내 몸으로 어떻게든 막아 내며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날 붙잡고 있는 한세아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바심을 느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더 힘주어 안는 것뿐이었다.
그 순간.
콰앙! 쿠구궁! 첨-벙!
풍덩···! 풍덩···! 풍덩···!
지금까지 들린 소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굉음이 물에 잠긴 귓가를 뚫고 들어왔고, 이어서 커다란 조각들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
콰콰콰콰콰콰···
그리고 유속이 급속도로 빨라지며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도가 나와 한세아를 그대로 뱉어냈고, 부유감을 느낀 것과 동시에 우리는 그동안 받은 관성에 따라 바닥을 긁으며 미끄러졌다.
퍼억! 쿵···!
드그그그극-
"아으윽!"
내 등이 울퉁불퉁한 바닥에 긁히는 고통에 나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상황 파악을 하는 것보다 나는 먼저 한세아를 찾기 위해 숨조차 고르지 못한 채 황급히 주변 바닥을 손으로 더듬거렸다.
"허억, 허억-. 세아씨! 괜찮아요?!"
이내 내 손이 그녀를 찾았고,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한세아에게 다가 갔다. 움직일 때마다 가슴 장화 속에 고인 물이 출렁거렸다.
내가 반응이 없는 한세아의 어깨를 흔들며 그녀를 부르자, 한세아는 그동안 먹은 물을 전부 토해내며 정신을 차렸다.
"쿨럭! 쿨럭! 우웩!"
"세아씨! 정신이 들어요? 다친 곳은, 어디 다친 곳은 없죠?"
나는 미약한 숨소리를 내는 한세아가 잘못되었을까 하는 불안감에 그녀의 등을 약하게 두드려주었다. 미처 토해내지 못한 물을 마저 게워낼 수 있도록.
"하아, 하아···. 현우씨? 어딨어요? 저희 죽은 건가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졸려···. 잘래요···."
"어어? 자면 안 돼요! 일어나요!"
물은 더 이상 토하지 않았지만 정신 못 차리고 횡설수설하는 한세아의 반응에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대로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세아씨! 일어나요! 여기서 자면 죽어요!"
짜악! 짜악!
"악! 아파···! 아파요! 흐윽···. 아파···."
불과 2대만에 정신이 번쩍 든 한세아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쓰라린 볼을 급하게 두 손으로 문질러 진정시켰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했으나 바로 앞에 있는 그녀의 옷이 내는 소리와 목소리로 그럴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제 말 들리면 앞으로 손 뻗어봐요."
"현우씨? 우우···. 잘 들려요. 여기 손이요."
한세아가 뻗은 손이 내 손에 닿았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나와 한세아는 각자 품고 있는 온기를 나눠가지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너무 세게 때린 거 아니에요? 아직도 쓰라려요···."
"아니, 그. ···미안합니다. 세아씨가 걱정되는 바람에 힘 조절을 못 했네요."
한세아가 잠들지 못하게 하는 특단의 조치였지만, 내 생각보다 손이 강하게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저 사과만을 입에 담았다.
내 말에 손을 움찔거린 그녀는 목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남아 있는지 한동안 헛기침했다.
"흠흠! 아니에요. 탓한 건 아니구,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해야죠. 절 두 번이나 살려주셨는데."
"2번이요? 왜-."
내가 의문을 가지고 한세아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그녀가 내 말을 중간에 끊고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잠깐! 대화는 좀 이따가! 지금은 불을 키는 게 먼저일 것 같네요. 지금 당장 젖은 몸을 말리지 않으면 얼어 죽을지도 몰라요."
한세아의 말이 맞다.
처음에야 어안이 벙벙한 정신을 가누지 못해 그저 서로의 안위만 물었지만, 둘 다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지금은 대화보다는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불을 키는 것.
불을 켜서 어둠을 몰아내는 것.
졸졸졸-
지금 우리 주변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빈 공간을 모두 채운 어둠, 바닥에 느껴지는 선로의 한기, 집중해야 겨우 들리는 작은 물소리.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보니 적어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아직 지하 터널에 있고, 이유는 몰라도 물이 전부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휘이이잉···
어딘가에서 불어온 비린내나는 바람이 그렇지 않아도 차가워진 체온을 한계까지 앗아가는 것을 느낀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한세아는 추위를 달래기 위해 좀 더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아! 으아! 추워! 조금만 기다려요! 제가 가방 하나는 정말 필사적으로 챙겼거든요? 어때요. 현우씨. 저 잘했죠?"
"네네. 정말 잘하셨고 감사하니까 빨리 불 좀···."
한번 추위를 인식하기 시작하니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특히 완전히 젖은 옷은 그 무게도 무게지만, 지속해서 체온을 뺏는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탁! 탁!
푸화악···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가스 불이 켜졌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자 그제야 살았다는 실감에 한세아가 안도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살았네요."
"네. 진짜 살았습니다."
"살았어···. 살았다구···."
철퍽! 철퍽!
나는 불을 조금 더 가까이 쬐기 위해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한세아에게 다가갔다. 손을 태울 듯 가스 불에 가까이 댄 그녀는 자기 바로 옆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흐으···. 혀, 현우씨. 여기 앉아요."
내가 고개를 겨우 끄덕이고 그녀의 옆에 앉으려는 순간, 한세아가 내 행동을 급하게 제지하며 말했다.
"자, 잠깐만요! 앉기 전에 저 좀 일으켜 주세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요···."
"알았어요. 자, 제 손 잡아요."
내 손에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벗을 생각도 못 했던 가슴 장화를 낑낑거리며 탈의했다.
촤르륵-
후두둑- 후둑-
가슴 장화에서 한세아의 다리가 빠져나올 때마다 안에 고여 있던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불에 일렁거리는 그녀의 그림자를 멍하니 보고 있자, 한세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말했다.
"현우씨, 뭐 해요? 현우씨도 벗어야죠. 가슴 장화."
"아. 네네."
"빨리 벗어야 옷도 빨리 마를 거 아니예요. 빨리 벗어요, 빨리!"
무엇이 그리 급한지 나를 강하게 재촉하는 한세아.
아니, 사실 나도 그녀를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닌 한세아를 따라 가슴 장화를 벗는 것이 맞는 행동이었다.
다만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 때문일까.
전신에 탈력감이 돌고, 사고 회로가 뚝뚝 끊겨 원활하지 않았다.
나는 애꿎은 머리를 퍽퍽 치고는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알싸한 고통이 정신을 좀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괜히 더 생각하는 시간도 아까웠기에 나는 한세아가 시키는 대로 가슴장화를 빠르게 탈의했다.
"어후-."
옷이 한 꺼풀 벗겨지자마자 주변의 싸늘한 공기가 내 바지에 질척질척하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덜덜 떨면서 가슴 장화를 뒤집어 안에 고인 물을 전부 빼냈다.
촤륵···
후두둑- 후둑-
생각보다 적은 양의 물이 바닥에 쏟아졌기에, 의아함을 느낀 나는 가슴 장화를 불에 비춰 보자 군데군데 찢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파도에 휩쓸리고 있을 때, 시멘트벽과 날카로운 돌 부스러기에 당한 흔적이었다.
한세아도 그 모습을 보았는지 내게 불쑥 말을 걸었다.
"···이제 그건 못 쓰겠네요. 자잘하게 너무 많은 곳이 찢어졌어요. 제건 생각보다 멀쩡하던데···. 그···고마워요, 현우씨."
"뭐가요?"
나는 옷의 물기를 짜내는 행동을 잠시 멈추고, 추위에 창백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최대한 안 다치게 감싸느라 가슴 장화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 아주 그냥 절 잡아먹을 기세시던데요? 그래서 그냥···. 고맙다구요."
한세아는 히히 웃고는 서둘러 자리에 앉아 불을 쬐기 시작했다.
나는 별거 아니었다는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한마디를 내뱉는 게 너무 어려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물에 휩쓸린 것도 처음, 물에 질식할 뻔한 경험도 처음이었고 원인을 따지자면 그녀를 위험한 여정으로 끌어들인 내 탓이 아닌가.
오히려 내가 한세아에게 백번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장난식으로라도 내가 생색을 내는 행위에 강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저 한마디.
별것 없는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그 한마디를 말하는 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말없이 한세아의 옆에 앉았다. 그렇게 가슴 장화를 벗은 우리는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거침없이 온기를 탐했다.
은은한 열기가 차갑게 굳은 손을 천천히 녹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자랐다. 온기가 모자라도 너무 모자랐다.
불과 가까이 있는 손과 발은 괜찮았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이 젖은 옷에 의해 체온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기를 아무리 짜냈어도 남아 있는 수분이 우리 몸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은 한세아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내가 일단 말이라도 꺼내 봐야 하나 속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현우씨."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나를 나지막하게 부른 한세아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옷도 벗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