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0 - 60. 지하 터널 (10)
촤르르르르-
뒤에서 밀려오는 물살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
기다란 갱도를 타고 길게 울리고 있는 수면이 박살 나는 소리.
[···!]
[···!]
[···!]
[···!]
[···!]
[···!]
[···!]
[···!]
정도 이상의 소음이 군락지에 울려 퍼지자, 한껏 자극받은 하얀 덩어리들이 금방이라도 막을 찢을 듯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첨벙첨벙!
무엇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뒤따라 들리는 또 다른 물소리에 우리는 그저 죽어라고 앞으로 내달렸다.
"허억! 허억!"
뭐냐.
대체 우리 뒤에 뭐가 있는 거냐.
혹시 나와 한세아가 군락지와 어둠이 주는 두려움에 단순 착각에 불과한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나는 등 뒤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세아씨! 어두워져도 뛰는 거 멈추지 마십쇼! 잠깐 뒤 좀 비쳐볼 테니까!"
"네헥-! 헤윽!"
나는 한세아에게 통보하듯 양해를 구한 후 손전등을 바로 후방으로 비추었다.
그러나 귀신이라도 홀린 듯 우리의 뒤편에는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갱도 바닥에 차오른 포말, 그 포말을 덮는 또 다른 물살.
물살에 앞으로 밀려오는 검은 이끼, 유리 조각, 시멘트 부스러기, 캔 같은 각종 부유물들.
그리고 그 사이에 숨어 길게 늘어진 검은 그림자.
···검은 그림자!
"······!"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무언가 이상한 것 하나가 수면 아래에 있었다.
그것은 물살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츠르르르륵-!
바로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쪽 방향을 향해서 말이다.
"세아씨! 빨리! 더 빨리 뛰어요!"
"헤엑-, 헤엑-. 알았···어요!"
나는 무언가를 확인하자마자 곧장 손전등을 다시 전방으로 돌리며 한세아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녀도 나를 따라 뒤를 확인해봤는지 기겁하며 좀 더 힘차게 발을 놀렸다.
내가 지금 말하는 순간에도 긴 그림자는 물살을 타고 이쪽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첨벙첨벙-!
[···!]
[···!]
[···!]
[···!]
나무 인간 변종들이 빛에 자극받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물소리가 크게 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달리는 우리 앞에 수원역 스크린 도어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제일 가까운 스크린 도어에 도착하자,
퍼-엉!
검은 그림자가 비산하는 물소리와 함께 바닥을 박차 위로 솟아올랐다.
"이런 씹!"
"꺄악!"
철퍽!
그리고 나와 한세아를 앞지른 그것은 눈앞에 바로 떨어지며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었다.
점액질이 떨어지는 회색의 몸체, 4개의 다리에 달린 날카로운 발톱, 기다란 꼬리, 물에 퉁퉁 불어 뿌옇게 변한 동공.
"···도마뱀?"
옆에서 한세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수면을 박살 내며 뛰쳐나온 것은 2m 정도 되는 길이의 도마뱀이었다.
아니, 물이 들어찬 갱도에 사는 걸 보니 도롱뇽이라고 해야 옳겠지.
다만 내가 아는 도롱뇽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끝이 뾰족한 머리를 가진 것이 아닌 인간의 머리가 달려 있다는 점일까.
[······츄릅]
그것은 회색의 몸체에 어울리지 않는 가늘고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더니 예고도 없이 아가리를 벌리며 나와 한세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헉!"
뿌즉- 뿌즈즉-
우리는 깜짝 놀라 뒤로 황급히 물러나며 뒷걸음질 쳤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 있는 검은 이끼가 밟혔고, 그것들이 공기 방울과 물을 토해냈다.
-첨벙!
목표로 하던 나와 한세아를 놓친 도롱뇽 변종은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수면에 처박혔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물세례가 우리를 덮쳤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봐 왔던 변종들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도롱뇽 변종의 모습.
얼핏 보인 피막 속에 있는 나무 인간 변종도 그렇고, 우리 앞에 있는 도롱뇽 변종은 겉피부에 나무 껍질이 아닌 끈적한 점액질을 뿜고 있었다.
이윽고.
푸확!
도롱뇽 변종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솟구쳤고, 점액이 떨어지는 팔을 나를 향해 휘둘렀다.
"현우씨!"
다급하게 외치는 한세아의 목소리를 뒤로 흘리며 나는 도끼를 들어 막았다.
퍼억-!
질퍽!
'무슨 힘이···!'
예상보다 강한 도롱뇽 변종의 힘에 나는 몸이 붕 뜨는 것과 동시에 끈적한 점액질이 내 눈가를 뒤덮는 걸 느꼈다.
풍덩-!
나는 곧바로 물에 떨어졌고, 급하게 눈가를 문질러 시야를 확보했다.
그러나 어느새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놈의 손톱.
"헉!"
나는 헛숨을 들이키며 떨리는 팔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현우씨! 안 돼!"
철컥-
타아앙······! ······!···!
삐이이이이이이-
갱도 전체를 강하게 울리는 총성과 함께 이명이 귀를 괴롭혔다. 나는 흩어지려는 정신과 시야를 애써 붙잡으며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꺼내 든 총을 도롱뇽 변종에게 겨누고 한쪽 귀를 막고 있는 한세아.
버둥버둥-
참방! 참방!
[키에에에엑···!]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아 검은 피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도롱뇽 변종.
······그리고.
데굴- 데굴- 데굴- 데굴- 데굴-
우리를 응시하기 시작한 피막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모든 나무 인간 변종들.
그와 동시에 빛이 닿지 않는 어둠 너머에서 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수도 없이 들려왔다.
부우욱! 부욱! 찌지직-! 뜨득!
부욱! 찌직-!
[쉬익······!]
[끄르르르륽···]
[캬아아아악!!]
[가-아아아악!]
소란을 더 이상 참지 못 하는 나무 인간 변종들이.
점액이 뚝뚝 떨어지는 팔로 막을 찢으며 몸을 일으킨 나무 인간 변종들이.
그들의 단잠을 방해한 주범을 단죄하기 위해 총소리가 난 이곳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첨벙! ···첨벙! ···첨벙! ···첨벙! ···첨벙! ···첨벙! ···첨벙!
기껏 군락지 끝에 다다랐건만.
갑작스러운 도롱뇽 변종의 습격에 나와 한세아는 한순간에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수원역에 도착했다는 것.
그러니 더 생각할 필요 없이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당장!
"크으윽-."
나는 욱신거리는 팔과 강한 현기증이 일어나는 머리를 애써 무시하며 손전등으로 스크린 도어를 쭉 훑었다.
이내, 빨간색 안전바가 눈에 확 들어왔다.
<비상 시 사용하는 문>
"세아씨! 먼저 가서 안전바! 저기 보이는 빨간 안전바 밀어요!"
"알았어요! 조금만 버텨요!"
한세아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고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 스크린 도어로 향했다.
덜컹-! 덜컹! 뜨드득-
"끄응···! 열려라, 좀···! 제발!"
스크린 도어 너머에 자리잡은 넝쿨들 탓에 비상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한세아가 힘쓰고는 있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나는 손전등을 입에 문 채 도끼를 양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이윽고, 전방을 향하는 손전등에 의해 하나씩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손에 물갈퀴가 달린 놈, 등에 팔이 하나 더 달린 놈, 자기 키보다 큰 꼬리를 달고 있는 놈, 입으로 점액질을 토하면서 달리는 놈, 변이가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걷지도 못 하는 놈.
외형과 행동은 각기 달랐으나, 나무 인간 변종들의 회색빛 눈에는 강렬한 살의가 담겨 있다는 것은 똑같았다.
[시━에에에에엑-!]
잔뜩 흥분한 나무 인간 변종들은 몸에서 뿜어지는 점액을 이용해 터널의 위아래 상관없이 기어 다니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한시도 조용히 하지 않으며 쉴 새 없이 괴성을 내질렀다. 괴성이 내 머리에 울릴 때마다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힘겹게 붙잡으며 곧 다가올 상황을 대비했다.
약간.
아주 약간의 시간만 벌면 된다.
[끄르르르르륽!!]
"흡!"
제일 선두에 있던 나무 인간 변종이 내게 손을 쭉 뻗어왔다. 나는 숨을 들이키며 횡으로 도끼를 세게 휘둘렀다.
부우웅-!
퍼석! 풍덩!
내 도끼가 놈의 목을 완전히 뜯어 버렸고, 목을 잃은 몸은 검은 피를 세차게 뿜어냈다.
그리고 휘청거리다가 물에 빠져 변종들의 발걸음을 막는 훌륭한 장애물이 되었다.
수로에 퍼지는 동족의 피 냄새를 맡은 놈들은 더더욱 흥분하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내 자기들끼리 뒤엉키며 수면에 강한 물보라를 만들어내었다.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도롱뇽 변종이 나무 인간 변종들이 만들어 낸 육편의 파도에 깔려 모습이 감춰졌다.
우르르르르-
풍덩!풍덩!풍덩!풍덩!
[아기긱! 아긱!]
[끼엑! 끼에에에엑!]
나는 자칫하면 도롱뇽 변종처럼 놈들의 파도에 압사당할 뻔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우연으로 생긴 이 천운에 감사하며 도끼를 쉬지 않고 휘둘렀다.
파악! 파악! 쩌억!
손전등 빛을 반사시키는 도끼날은 달라붙는 점액질에 의해 그 서늘함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파괴력만큼은 여전했기 때문에 변종들의 머리를 부수는 데는 충분했다.
도끼가 놈들의 머리를 쪼깨거나 부술 때마다 틈이 생긴 곳에서 검은 피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수면에 퍼지는 것이 보였다.
나를 노리던 놈들의 손을 통째로 잘라 냈다.
한세아로 눈길을 돌리려던 놈들의 머리를 쪼갰다.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억지로 휘둘러 어떻게든 놈들의 숨통을 끊어냈다.
나는 우리를 향해 손을 뻗어오는 변종들에게 계속해서 도끼를 휘둘렀다.
내 발치에 물에 가라앉은 변종들의 시체가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끝도 없이 몰려오는 변종들의 파도에 나는 가뿐 숨을 내쉬며 소리쳤다.
"세아씨! 아직이에요?! 저 이제 못 버텨요!"
"거의 다! 됐어요···!"
뜨드득!! 벌컥!
"됐다! 현우씨 들어와요! 열렸어요!"
활짝 열린 스크린도어 비상문을 먼저 넘어간 한세아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불렀다.
퍼석-!
나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그러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내 발이라도 움켜쥐려던 변종의 손이 아작났다.
첨벙! 첨벙!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한세아가 기다리고 있는 스크린 도어 비상문으로 향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에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내가 스크린 도어 너머로 발을 들이밀고 몸을 전부 역 안으로 밀어 넣었을 때.
드르륵!
덜컹!
대기하고 있던 한세아가 비상문을 즉시 닫았고.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기에에에에에엑!]
[쉬이에에에엑!!]
[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수많은 손들이 점액질을 튀기며 유리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