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1 - 61. 수원역 (1)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기에에에에에엑!]
[쉬이에에에엑!!]
[끄-아아아아악!]
나와 한세아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수많은 회색의 손들이 유리문을 짓누르며 점액질을 흘리고 있는 모습은 꿈에서도 보기 힘든 기괴하고 끔찍한 모습이었다.
쾅! 쾅! 쾅!
쩌적- 쩌저적-
나무 인간 변종들의 힘으로 조금씩 금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스크린 도어.
나는 숨을 돌릴 시간조차 주지 않는 현실을 원망했다.
아니, 스크린 도어가 간신히 형체라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나.
나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창백한 얼굴을 하는 한세아를 보았다.
그녀는 거미 변종의 유해와 각종 도구가 들어 있는 가방을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세아씨, 어서 벗어납시다. 쉴 틈이 없네요. 끄응-!"
"괜찮아요, 현우씨? 제가 부축해 줄까요? 팔! 팔은 어때요?"
나는 울상을 지으며 다가오는 한세아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저만 힘든 것도 아니고, 부축은 괜찮습니다. 세아씨는 괜찮아요?"
"저야 현우씨 덕에 괜찮지만···! 제가 괜히 총을 쏴서!"
울기 직전까지 간 한세아.
"괜찮다니 다행입니다. 어떻게든 살아서 수원역에 왔잖아요. 그리고 그때 총 안쐈으면 전 진작 죽었어요, 확실하게."
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만약 그녀가 총 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나는 도롱뇽 변종의 날카로운 발톱에 의해 구멍이 숭숭 뚫렸을 것이다.
한세아의 단호한 행동이 내 목숨을 살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비록 그 뒤에 더 큰 위험이 우리를 덮쳤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도끼를 하도 열심히 휘두른 탓일까.
단순한 손짓만 했을 뿐인데도 한계까지 혹사당한 팔이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는 그저 어깨에 무거운 살덩어리가 붙어 있는 감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피가 돌기 시작하니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팔이 저릿저릿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티 나지 않게 팔을 뒤로 숨기며 한세아에게 턱짓으로 계단을 올라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내 뒤에 바싹 붙어 은근히 나를 부축해주며 걸었다.
자박- 자박-
뚝- 뚝-
···쿵! ···쿵! ······쿵
계단을 한 칸 올라갈 때마다 물에 푹 젖은 옷에서 끊이지 않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계단을 한 칸 올라갈 때마다 뒤에서 들리는 변종들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마도 우리가 눈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흥미를 잃은 놈들이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한세아가 쏜 총알에 맞고 고통스러워하던 도롱뇽 변종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수면 밑에 빠진 도롱뇽 변종을 나무 인간 변종의 파도가 덮쳤을 때.
그 이후로는 본 적이 없었다.
한세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혹시나 역 안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손전등으로 구석구석 비추면서 움직였다.
다행히 딱 터널까지만 지하 변종들의 영역인지 역 내부에는 또 다른 하얀덩어리들이 모여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아래에서 그것들이 우리를 뒤쫓아오지도 않고, 역도 위험해 보이지 않으니 일단 급한 불은 꺼졌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다 올라간 계단 바로 앞에 개찰구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때.
깜빡- 깜빡-
-픽
"엇?"
손전등 불빛이 불안 하게 깜빡이더니 이내 빛이 꺼졌다. 빛이 사라지자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와 우리 주변을 채웠다.
딸깍딸깍!
나는 다급하게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다시 불이 켜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무 인간 변종들과 난전 중에 손전등이 물을 흠뻑 머금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빛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안 켜져요? 그게 마지막이었는데···. 앗!"
옆에서 한세아가 작게 중얼거리다가 놀라는 소리를 내었다. 손전등을 다시 켜보기 위해 버튼과 씨름하던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고, 같은 소리를 내었다.
휘이이이잉-
한 줄기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동시에 미세한 균열이 잔뜩 생긴 천장 사이로 밝은 빛이 비집고 들어와 내부를 약하게나마 밝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가는 곳 ④~⑬↑>
그리고 표지판의 글씨가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한세아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현우씨, 일단 오늘은 쉬는 게 어때요? 여기서 뭔가 더 하기에는 무리같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나는 한세아의 말에 동의하며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가시지 않는 추위에 완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과 새파랗게 변한 입술.
차가운 물에 너무 오랫동안 있던 탓인지 한세아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는 상태이다.
'지수야! 예린아! 미안하다! 내일부터 찾을게···!'
지금 우리에게는 휴식이 절실했다.
실수로라도 바닥에 앉게 된다면, 그대로 기절할만큼 몸에 피로가 가득했다.
"그럼 이제 제가 앞장설게요. 예전에 은신처로 만들어 둔 곳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은신처요? 수원역에다가요?"
"흐으···. 다 얘기해드릴 테니까··· 일단 저 따라오세요. 이제 진짜 쓰러질 것 같아서···. 11번 출입구로 가면 돼요. 어서요."
"아, 네네. 얼른 갑시다."
연신 팔을 쓸어내리며 애원하듯 재촉하는 한세아의 모습에 나는 아차 싶었고,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휘이이이잉···
우리는 바들바들 떨면서 표지판이 가리키는 11번 출입구를 향해 걸었다.
지상과 가까워질수록 바닥을 뒤덮은 넝쿨 줄기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고, 어떤 넝쿨 줄기들은 천장에 뚫린 굴을 통해 길게 늘어져 있기도 했다.
지하터널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굴도 환풍구의 역할을 하는지 공기 통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윽고, 나와 한세아는 지하상가에 도달했다.
빠각- 빠드득-
바스락- 빠직-
바닥에는 휴대폰 케이스 제품들과 함께 진열대 유리가 전부 박살 나면서 생긴 유리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세아씨, 발 조심해요."
"현우씨도요."
<←⑫고등동 도청·역전시장·테마거리⑪↑>
"11번 출구라고 했죠? 쭉 직진하면 되나 봅니다."
"넵. 11번 출구요. 그 근처에 헌혈 카페가 있는데-힉!"
그 순간, 한세아가 말하다 말고 화들짝 놀라면서 내게 보다 더 가깝게 붙었다. 나는 슬슬 풀어지려던 마음을 한순간에 다잡으며 도끼를 힘겹게 위로 들어 올렸다.
"왜요?! 뭐 있어요?!"
"아, 아니. 죄송해요! 잘못 봤어요···. 죄송해요죄송해요."
그녀는 한쪽 구석을 손으로 가리키다가 내게 연신 사과했다.
한세아가 가리킨 곳에는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마네킹들이 있었다.
넝쿨 줄기 사이사이에 마네킹의 머리, 팔, 다리, 몸통 부위들이 흩어진 채로 단단하게 엉켜 있어 마치 불쾌한 인형극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피를 흘리는 듯 속에 품고 있던 내장재를 쏟고 있는 마네킹이 소름 돋기는 했으나.
나는 다른 점에 주목했다.
수원역 지하상가.
수많은 핸드폰 매장과 각종 의류 가게가 즐비한 곳.
'···의류 가게.'
지금 우리는 여분의 옷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옷들을 여기서 미리 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장 가까운 의류 가게로 향했지만, 이내 보이는 가게 내부의 모습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화풀이라도 한 듯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는 옷들.
<재고 정리! 사장님이 미쳤어요!>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미치기는 했나보다. 멀쩡한 옷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
한세아는 포기하지 않고 넝마가 된 옷들을 뒤적거렸지만, 이내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돌아와 다시 내 손을 잡았다.
"······?"
"현우씨, 안 가요? 아, 저거라도 주워갈까요?"
"···아닙니다. 그냥 가죠. 거의 다 왔습니다."
바스락- 바스락-
저벅- 저벅-
이윽고, 지하상가 끝에 있는 11번 출입구로 들어서자 환한 빛이 우리를 맞이했다.
"아."
비록 구름이 많이 끼어서 하늘은 흐렸지만 완연한 빛이 내려앉은 지상의 모습에 한세아가 탄성을 내뱉었다.
"대박. 진짜, 흡! 진짜 살았어···. 흐어어엉···."
"······."
"다시는 지하 안 내려갈 거야···. 흐윽."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는 순간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을 터트렸다. 그마저도 울음소리가 주변에 퍼지자 손으로 입을 콱 들어막은 모습이 매우 처량하게 보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 손으로 막았어도 뚫고 나오는 딸꾹질 소리.
그녀는 충동적으로 나를 따라온 거나 마찬가지고, 위협이 끊이질 않았던 지하 터널에서 마음고생이 매우 심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애써 괜찮은 척, 침착한 태도를 보여주었지만 말이다.
이제 지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생각에 그동안 막고 있던 감정의 둑이 터진 것 같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소리 내면 위험할까 봐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는 한세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세아씨 덕분에 살았습니다. 저 혼자 왔으면 도중에 죽었을 겁니다. 고마워요. 진짜로."
내가 감사를 표하는 말에 한세아는 눈초리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흑. 현우씨 덕분에 제가 살아난 게 몇 번인데요···."
"자자, 뚝 그치시고. 세아씨가 말한 은신처로 가봅시다. 가깝습니까?"
"넵! 여기 바로 앞이에요."
우리는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우리 눈을 자극해 찡그리게 만들었지만, 나와 한세아는 그럴수록 더 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보이는 수원역의 모습에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고, 동시에 당혹성을 내뱉었다.
"뭐야. 이게 수원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