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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62화 (63/497)

Chapter 62 - 62. 수원역 (2)

"어라···?"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간 한세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아씨, 수원역이 원래 이랬습니까···?"

"아니요···? 적어도 2달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걸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세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을 백번 이해했다.

그도 그럴게, 지금 수원역을 한 단어로 말해보자면 '폐허'라는 것이 딱 어울렸기 때문이다.

원형의 굴이 군데군데 뚫려 있어 흉측하게 변한 도로, 연이은 지진 탓에 아스팔트가 깨지며 드러난 토양, 그것들을 티 나지 않게 숨겨 주는 넝쿨 줄기들, 여기저기 찌그러져 흉한 몰골이 된 폐차들.

그리고.

폭삭 주저앉아 건물의 단면을 보이고 있는 수원역.

지상에 굴이 뚫려 있는 것은 터널에 뚫린 굴을 봤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수원역 자체가 무너져 있을 줄은 몰랐다.

한세아가 심각해진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차린 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현우씨. 지수랑 예린이라고 했던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건물이 무너진 건 역이랑 주차장뿐이고, 옆에 있는 백화점은 무사해 보이니 그 근처에 잘 숨어 있을 거예요···."

"하아. 그렇겠죠? 잘 숨어 있겠죠?"

"그럼요. 그러니까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체력 회복해야죠. 그래야 내일 움직일 수 있으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한세아를 향해 말했다.

"세아씨 말이 맞아요. 현혈 카페라고 했습니까? 어서 가죠."

그녀들은 괜찮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수원역 주변에는 나무 인간들의 수가 매우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또 한세아의 말마따나 무너진 곳은 수원역뿐이고 근처 번화가에 있는 건물들은 무사했다.

그러니 지수와 예린은 안전한 곳에서 잘 숨어 있을 것이다.

터널에서 그랬듯 나는 그녀들을 믿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윽고.

우리는 쓰러진 전봇대를 넘어 구멍이 뚫린 도로를 지나 한세아가 말한 은신처가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을 발견했지만, 내부는 이미 누가 털어간 듯 얻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내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한세아가 나를 달랬다.

"괜찮아요! 제 은신처에 먹을게 좀 있어요! 아니, 있을 거예요! ···은신처가 무사하다면요."

멋쩍게 웃는 한세아.

그래도 결국 지금 믿을 건 그녀의 은신처뿐이기 때문에 한세아를 믿고 갈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건물 내부로 진입한 후 좁은 계단을 통해 3층의 헌혈 카페 입구에 도착한 나는 당혹성을 토해냈다.

바닥에는 유리 조각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눈길을 돌릴 때마다 검붉은 핏자국들이 낭자했으며, 대기실의 소파는 부서지고 찢어져 속살을 전부 드러내고 있기까지 했다.

"세아씨, 여기 맞아요? 진짜로?"

"여기 맞아요~. 오히려 제 계획대로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인데요?"

빠득- 빠드득- 빠각-

한세아는 웃으면서 망설임 없이 헌혈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럭부스럭-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 천 펄럭이는 소리와 어딘가를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씨! 어서 들어와요!"

안쪽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세아가 내게 커다란 천, 아니 커튼으로 추정되는 것을 건넸다.

"젖은 옷 벗으시고, 그걸로 몸 가리고 있어요. 제가 들어와도 된다고 할 때까지 헌혈실에 들어오면 안 돼요? 저도 옷 벗어야 하니까!"

"······."

"뭐, 보고 싶으면 보셔도 되지만!"

그녀는 킥킥 웃더니 이내 커튼 너머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무색하게 한세아는 한쪽 팔을 커튼 밖으로 내밀며 흔들었다. 손끝에 초코바 하나와 생수 한 병을 든 채로.

"먹을게 이런 것뿐이네요. 이거라도 드시고 계세요!"

"아! 감사합니다. 용케 먹을게 남아 있었네요?"

"제 선견지명 덕분이죠! 그거 먹으면서 좀만 기다려요! 아까 말한 대로 안쪽 준비 끝나면 부를테니까."

"···준비? 무슨 준비요?"

나는 서둘러 그녀가 내민 소중한 식량을 받으며 의아함에 되물었다.

부스럭부스럭- 철퍽- 꽈악-

하지만 한세아는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내 물음에 답하지도 못하고, 커튼 너머에서 바삐 움직이는 소리만 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손에 들린 초코바를 보았고,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옷을 벗었다.

여기서 더 얻어갈 게 있나?

이어서 여기서 휴식을 취하기에는 조금 위험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한세아에게 무슨 방도가 있으려니 하며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우물우물-

순식간에 초코바를 다 먹어치우고,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촤르륵-

커튼이 열리면서 한세아가 배시시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나와 같이 커튼 하나만 몸에 두르고 있었다.

"들어와요. 준비 다 끝났어요."

"무슨 준비를 했길래요? 저랑 같이 하시지."

"어떻게 그래요. 오늘 엄청 고생하셨는데."

"아니, 저만 고생했답니까? 세아씨도-."

"아이참! 들어오기나 해요!"

"어어?"

한세아는 헌혈실 입구에서 들어오지 않고 서성거리는 내가 답답했는지 내 손을 확 잡아당겨 안쪽으로 이끌었다.

"자, 여기 누워요! 피곤하죠? 잘했으니까 상 주는 거예요."

그녀는 헌혈 침대를 두드리면서 얼른 오라고 손짓했다.

"하아. 이거 진짜, 헤으, 기가 막히거든요?"

한세아는 급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살짝 들뜬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녀가 가리킨 침대로 바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이내 나는 당황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피곤함이 매우 쌓였다는 것도 맞다.

깔끔하게 정돈된 헌혈 침대가 기가 막히게 편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도 맞다.

다만.

멀쩡한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내 움직임을 막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무 얘기나 꺼내보았다. 무슨 시간을 버는지도 모르는 채.

"참! 세아씨는 뭐 좀 먹었어요? 저만 먹은 건 아니죠?"

"먹었어요. 현우씨랑 똑같이 초코바 하나, 생수 한 병이요."

과연, 그녀의 입가에는 확실하게 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허겁지겁 먹었는지 녹은 초콜렛이 입술 끝에 묻어 있었다.

"옷은요? 물기 잘 짜셨죠? 덜 짰으면 제가 짜드릴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물 잘 짜내서 지금 말리는 중이니까요. 이왕 말 나온 김에 현우씨 옷도 주세요. 제가 저기 가서 널고 올 테니까요."

팡! 팡!

한세아는 허공에 내 옷을 몇 번 털었고, 틀만 겨우 남아 있는 침대에 옷을 널어놓았다. 이제 내 손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아니,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아 있다.

"세아씨."

"또 뭔데요?"

"여기 문은 어떻게 막습니까? 저희가 쉴 때 습격 받을 수도 있잖아요. 문을 막지 않으면."

"그것도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끄응!"

드르륵!

그녀는 헌혈실 입구 옆에 있는 바퀴 달린 옷장을 밀더니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바퀴를 고정시켜 옷장이 미끄러지지 않게끔 만들었다.

"됐죠? 입구도 막았고, 밖에는 유리 조각이 깔려 있으니까 그 소리 듣고 반응해도 안 늦어요."

"아···."

"오늘만큼은 저만 믿고 푹 쉬어요. 저 믿죠?"

"당연히 믿죠···."

그녀를 믿지 않을 리가 있는가.

그녀가 나를 살린 것이 몇 번이고, 이것저것 챙겨 준 게 몇 번이던가.

한세아는 확실한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세아씨."

"그만."

"···네?"

"그만하고 누우시라고요."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는 한세아였는데, 지금은 차갑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한세아였다.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입을 열었다.

"세아씨···. 침대가 하나잖아요. 제가 거기 누우면 세아씨는 어디서 쉽니까."

"당연히 같이 눕는 거죠."

"예?"

"현우씨가 먼저 누워야 제가 남은 자리에 누울 꺼 아니에요! 빨리 누워요. 네? 저 진짜 피곤하니까. 제가 해준다는 이야기도 한 숨 자고 나서 해줄게요."

한세아가 나를 재촉하며 내 손을 잡아당겼다. 가까이서보니 그녀의 눈이 거듭된 피로감에 살짝 붉게 충혈된 것이 보였다.

그리고 피곤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더 뭐라고 하지 못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는데···."

"쓰읍!"

마지막으로 작게 중얼거린 말에 오히려 어린아이 혼내듯 한세아에게 혼나고 말았을 뿐.

마지못한 내가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눕는 것을 망설였나 순간 후회할 정도로 푹신함이 나를 감쌌기 때문이다. 피로에 찌든 몸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매트에 앓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허어···."

"풋! 그렇게 좋아할 거면서."

한세아는 나의 늙은이 같은 반응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러나 그녀도 내가 최대한 만든 빈자리에 낑겨 눕자,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녹아내리는 소리를 냈다.

"하으응···."

"킥. -악!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웃을 차례다 싶어서 웃었건만, 옆구리를 꼬집는 그녀의 응징에 나는 바로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

"······."

한세아는 내 옆에 바싹 달라붙어 몸을 완전히 기댔고, 나는 그녀를 단단하게 받쳐 주었다.

헌혈 침대는 2명이 눕기에는 비좁았지만,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일정 간격으로 울리는 심장 박동에 엄청난 안도감이 몸을 휩쓸었고, 그렇게 얻은 안정감에 의해 몸은 순식간에 노곤노곤해졌다.

덤으로 부드러운 커튼을 이불 대용으로 삼아 덮으니 포근함까지 느껴졌다.

이렇게 편한 느낌을 받은 적이 마지막으로 대체 언제인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정말로 오랜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사실, 당장 어제만 해도 모텔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그만큼 오늘 하루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진 탓이었다.

"세아씨.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현우씨도요. 힛. 잘 자요."

아직 완전히 해가 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나와 한세아는 오히려 빛이 주는 안도감에 취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의식이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시야가 완전히 암전했다.

빠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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