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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63화 (64/497)

Chapter 63 - 63. 수원역 (3)

커튼 무더기에 파묻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헌혈실 침대에 누워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다.

도롱도롱 숨소리와 새근새근 숨소리만이 작게 퍼지는 어두운 방 안.

한밤중의 싸늘한 공기가 두 사람의 주변을 채웠지만, 혹여 떨어질 새라 꼭 붙어 있는 두 사람에게는 침범하지 못했다.

그때.

후둑- 후두둑-

쏴아아아아···

무언가 카페 통유리를 몇 번 두들기더니 이내 끊이지 않는 소리로 변했다.

세차게 내리는 새벽 빗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여자의 단잠을 깨웠다.

부스럭부스럭-

여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이내 흐릿한 눈이 드러났다. 시간이 갈수록 흐릿한 눈은 점점 선명해졌고, 여자는 누워 있는 채로 팔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폈다.

"흐응···."

자기 바로 옆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던 여자는 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옆에 있던 온기가 사라진 것을 느낀 남자는 손으로 옆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힛."

여자는 그 반응에 작게 웃고는 커튼을 들어 올려 남자에게 덮어 주었다.

잠잠해진 남자를 다시 멍하니 지켜보던 여자는 배가 아픈지 갑작스레 허리를 푹 숙였다.

"아흣!"

빠득- 빠드득-

여자가 바닥에 발을 딛자, 조용한 방 안에 유리 깨지는 소리가 퍼졌다.

무언가 떨어지기라도 하는 듯 여자는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디디며 남자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멀리 간다고 해봤자, 좁은 헌혈실의 구석일 뿐이었지만.

촤르륵-

이윽고, 구석에 도달한 여자는 발로 바닥에 있는 유리 조각들을 밀어내고는 벽에 기댄 채로 쪼그려앉았다.

"흐으응···. 흐읏!"

여자는 혹여 자기 소리가 남자에게 들릴까 싶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툭- 툭- 툭-

데구르르···

"하아···."

여자가 신음을 낼 때마다 바닥에 무언가 떨어졌고, 달뜬 숨을 내뱉던 여자는 그것들을 천으로 소중히 감싸 품에 안았다.

"···3개나 나왔네."

위기에서 벗어난 직후라 평소보다 많이 나온 그것들.

다시 침대 옆으로 돌아온 여자는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여유공간이 생겼다는 걸 느낀 남자가 무의식적으로 침대를 전부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현우씨가 잘못한 거예요···."

부스럭부스럭-

여자는 무슨 생각인지 품에 안은 3개 중에 2개는 간이 책상에 올려놓았고, 나머지 하나는 천으로 조금 더 감싼 후 남자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몇 겹의 천으로 둘러싸인 그것은 위아래로 무게가 눌려도 깨지지 않을 듯했다.

여자 또한 남자 위로 완전히 올라갔고, 그대로 몸을 겹쳐 엎드렸다. 마치 알을 품듯이.

"끄응···."

남자는 갑자기 늘어난 무게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도 잠시, 품을 파고드는 온기가 좋았는지 두 팔로 여자를 감싸 안았다.

"힉!"

여자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그저 남자가 잠결에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안도하고 몸을 완전히 남자에게 맡겼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온기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피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귓가를 조용히 자극하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살며시 웃은 채로.

***

쏴아아아아-

창문을 두들기는 요란한 빗소리가 내 머리를 두들기자 의식이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다. 코로 숨을 들이쉬자 시원한 공기가 맡아졌다.

하루 푹 자서 정신적인 피로감은 다 풀렸지만, 몸은 여전히 휴식을 필요하는지 천근만근이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꼭 누군가가 내 전신을 옭아매고 있는 느낌.

들썩-

아니, 느낌이 아니라 진짜 무언가 말랑말랑한 게 내 몸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뭐야···?"

가물가물한 시야에 어지럽게 흩어진 적발이 보였다. 나를 누르고 있던 범인은 바로 한세아였다.

더불어 그녀가 나를 누르고 있는 것만이 아닌, 내가 그녀를 두 팔로 꽉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침대를 전부 차지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러니 빈자리를 뺏긴 한세아가 내 몸 위에 겹쳐 누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쩐지 몸이 뜨끈뜨끈하더라니···.'

두 팔을 풀었다가는 그녀가 바닥으로 떨어질까 싶어 나는 그녀가 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괜히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울 필요는 없으니까.

문득 내 시야에 한세아가 걸고 있는 목걸이의 푸른 조각이 보였다. 푸른 조각 안에는 입자가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조각이 내뿜는 매우 미약한 푸른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왜 지하 터널에서는 빛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제서야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빛.

빛은 인간에게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어둠이 가득했던 지하 터널이 주는 압박감은 다른 걸 생각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긴 시간 동안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또 갱도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무 인간 변종들과 도롱뇽 변종까지 있지 않았는가.

만약 내게 검은 입자와 푸른 입자를 보는 능력이 다시 생겼다면, 나와 한세아가 위험에 처할 일이 없었을까?

검은 입자가 있는 곳만 피할 수 있다면 훨씬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 텐데.

입자를 보는 능력을 생각하니 예린이 떠올랐다.

고양이 눈으로 변한 예린의 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까?

지금 예린은 안전한 곳에서 지수와 함께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쏴아아아아아-

밖에 비가 오는 걸 보니 오늘도 여기서 쉬어야 할 것 같다.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지수와 예린을 찾을 텐데.

푸른 조각이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거부감이 들었던 검은 입자와 달리 푸른 입자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의식 흐름의 극치였지만, 지금 나에겐 이런 휴식 시간이 필요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가끔 떠오르는 생각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그러다가 다른 잡생각으로 넘어가서 또 휩쓸리는 그런 시간이.

나는 그렇게 하염없이 푸른 조각 안에 떠다니는 입자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절반···.'

푸른 입자가 절반이 남은 조각···.

'···절반?!'

나는 순간 몸이 들썩거릴뻔한 걸 겨우 참으며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왜 충전이 되지 않았지?

한세아가 말하길, 푸른 조각과 내가 접촉하니 입자가 완전히 채워졌다고 했건만.

분명 터널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꽉 차 있는 걸 확인했는데···.

터널에서 나온 후에 이렇게 된 건가?

총과 가스 버너를 썼으니 입자가 줄어든 건 이해하지만.

'왜 다시 충전이 안 되는 거냔 말이다···.'

불과 총을 쓸 수 있게 해주는 푸른 조각에 문제가 생겼을까 하는 마음에 불안함이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유가 뭐냐.

충전이 되지 않는 이유가.

'···혹시 내가 문제인가?'

내가 푸른 조각을 노려보고 있을 때, 불쑥 붉은색이 내 앞을 채웠다.

"···어딜 보는 거예요?"

머리색과 비견될 정도로 얼굴이 잔뜩 붉어진 한세아.

이어서 붉은 머리카락이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어진 볼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러나 싶었지만, 나는 곧 내가 보고 있던 푸른 조각과 그것이 있는 위치가 절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게, 애초에 목걸이에 걸려 있는 거라서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네?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침착하게 상황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내 입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당황한 내 모습을 보던 한세아는 이내 킥킥 웃더니 몸을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에잇!"

"어어? 하지 마세요. 하지 말라니까요?"

"엉큼하기는! 제가 자고 있을 때 몰래 보다니!"

"아니, 그게 아니고! 다른 거 본 거예요. 조각! 그 푸른 조각! ······아."

"······앗."

돌연 탄성을 내뱉으며 몸이 뻣뻣하게 굳은 한세아.

"제가 하지 말랬잖습니까···."

"죄송합니다······."

지금 나와 한세아는 몸에 커튼만 두르고 있고, 그 위에 또 다른 커튼만 덮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서로 몸의 굴곡이 다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장난치듯 몸을 비빌 때마다 부드럽고 말랑한, 아니, 아무튼 민망한 상황이 우리를 덮치자 헌혈실 안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

"······."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주제에 우리는 자리를 피하지도 않고, 그저 서로의 숨소리만 조용히 들으며,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쏴아아아아-

"현우씨. 비가 와요."

"네. 비가 오네요."

"아쉽지만, 오늘도 쉬어야겠어요."

"어쩔 수 없죠. 비가 올 때 움직이면 위험-."

툭- 데구르르-

나는 무언가 내 옆구리를 타고 굴러가는 느낌에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한세아가 아차 싶은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으로 주워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달걀.

한세아는 올 것이 왔다는 듯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현우씨."

"···네?"

"우리 아이예요······."

"······!"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여자가.

아이라고? 저 계란이?

당황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 나는 옆 간이 책상에 2개의 알이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실 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고, 지금 꿈속에 있는 게 아닐까?

그때. 한세아가 내 어깨를 손으로 연신 두드리며 웃었다.

"풉! 아하하하핫!"

"······."

"뭘 그렇게 놀래요? 걱정하지마요. 이거 무정란이니까. 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구요?"

"하아, 그렇군요···."

"아니면. 무슨 일이 있기라도 바랬어요?"

나는 말없이 간신히 고개만 저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다시 자연스럽게 몸을 뉘었다.

"아직 피곤하죠? 좀 더 자둬요. 최대한 체력을 회복해야 나중에 많이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보아하니 새벽에 나무 인간이나 다른 위험한 게 이 근처도 오지 않은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세아씨도 좀 더 쉬어요."

"넵."

쏴아아아아아-

바깥에 세차게 내리는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 틈에 한세아 말대로 체력을 충분히 회복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자고 일어나서도 이야기 정도는 할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한세아가 피곤이 덜 풀린 듯 졸음이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기도 하고.

'지수야! 예린아! 진짜 미안하다! 진짜 내일부터 찾을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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