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65화 (66/497)

Chapter 65 - 65. 수원역 (5)

"현우씨, 왜 그래요? 불안하게."

내가 심각한 얼굴을 하니 옆에 있던 한세아도 덩달아 얼굴을 심각하게 만들었다.

"세아씨, 터널에 있던 나무 인간 변종들이 막에서 나왔을 때의 모습 자세히 보셨습니까?"

"아뇨···. 스크린 도어 문 여는 거에만 집중하다 보니 막에서 나온 모습은 못 봤어요. 제 쪽은 손전등이 없어서 어둡기도 했구요. 왜요?"

나는 다시금 그것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내가 도끼로 죽이기 전에도 스스로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던 나무 인간 변종들.

우리가 그 장소를 떠난 후 상황은 알지 못 하지만.

만약 그것들이 다시 막으로 돌아가 몸을 회복시키면서 완전한 변종화를 진행 중이라면···.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아마 그것들 전부가 도롱뇽 변종하고 연관이 있을 거예요."

"······그것들 전부?"

한세아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지 얼굴을 핼쑥하게 만들었다.

도롱뇽 변종의 임팩트는 거미 변종만큼 크지 않았으나, 물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점과 수가 엄청 많을 것이라는 끔찍한 예상에 몸이 거부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그래도 그것들은 물가에서만 살잖아요? 아니에요?"

한세아가 다급하게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저희가 편의상 도롱뇽이라고 부르는 거지, 실제로 그게 뭔지 모르잖아요. 만약 그게 도룡뇽이 맞다고 해도···. 양서류인걸요. 물과 육지에서 둘 다 살 수 있는 양서류요."

"으으······. 그럼 사방에 뚫려 있는 굴들도 그 도롱뇽 변종이?"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지상에 올라오기 위한 굴인 것 같아요."

"그럼 더 큰 일이잖아요···. 현우씨, 저 따라와 봐요."

한세아는 그 말을 끝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제일 가까운 통유리 앞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비가 거세게 내리는 바깥 풍경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빠득- 빠드득-

신발에 유리 조각이 바스러지는 느낌을 받으며 그녀의 옆에 간 나 또한 바깥을 보았다.

쏴아아아아-

갈라진 도로 틈을 따라 토사가 흘러 그 틈을 메우고 있었다. 움푹 패인 아스팔트에 빗물이 잔뜩 고여 있기도 했다.

콰르르륵-

지면에 사정 없이 뚫린 굴로 황토물들이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빗물만이 아닌 거리에 있는 각종 부유물들도 굴에 빠지고 있었다.

휘이이잉!

간혹 강풍이 불 때면, 벗겨진 아스팔트가 몸을 일으켜 펄럭이기도 했다.

[······! ······!]

비를 맞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온 일부 나무 인간들이 도로를 서성이다가 굴에 빠져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어쩐지 거리에 나무 인간들이 별로 없더라니.

지하에 왜 그렇게 나무 인간 변종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현우씨, 보여요? 굴 엄청 많은 거. 비가 오니까 확실하게 보이네요."

가만히 바깥을 지켜보던 한세아가 몸을 가늘게 떨며 내게 붙었다.

"굴도 굴이지만 더 큰 일은 따로 있어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굴만 해도 수십 개인데···. 제 생각에는 도롱뇽 변종이 지상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굴을 파진 않았을 거란 말이에요?"

"······."

"만약 현우씨 말대로 지하에 있는 모든 나무 인간 변종들이 도롱뇽 변종으로 바뀐다면, 지상에 뚫린 굴은 지금 보다 훨씬 많아지겠죠?"

"그렇겠죠···?"

"그럼 비가 계속 내리는 탓에 물을 잔뜩 머금게 되어서 약해진 지반이, 지상의 무게를 겨우 버티던 지반이 굴 때문에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

확실히, 한세아의 의문은 타당했다.

나는 그저 내가 상대했던 도롱뇽 변종의 두려움에만 매몰되어 그것들을 상대할 생각만 했을 뿐인데, 그녀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수원역을 보고 있었다.

지하에 있는 나무 인간 변종들이 모두 도롱뇽 변종으로 변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다.

한세아의 말대로 굴이 숭숭 뚫린 이쪽 지반이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도롱뇽 변종과 약해진 지반.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 없었다.

시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부족한 시간은 지금도 유유히 흘러 사라져만 가고 있었다. 우리는 비 때문에 발이 묶여 아무것도 못 하고 있건만.

나와 한세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는 싸늘한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문득,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우씨. 혹시 지수씨랑 어떻게 만나기로 했는지 정했나요? 약속이나 신호 같은 거요."

"아."

그러고 보니 서로의 생존을 알릴 수 있는 신호를 지수와 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는 상황이 워낙 급박했던지라 다른 신호를 정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간신히 나중에 보자는 약속만 할 수 있었을 뿐.

한세아는 내 낭패어린 얼굴을 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못 정했나 보네요. 괜찮아요! 그때 워낙 급했다는 걸 저도 아니까! 그럼··· 현우씨나 지수씨가 서로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이나 그런 게 있나요?"

물건···.

순간 나는 지수가 아직 내 옷 조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지수는 후각이 좋아 보였으니까.'

옷 조각은 버렸더라도 적어도 지수가 아직 내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세아씨."

"네?"

"지수는 개와 합쳐졌거든요. 아마 제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흐응. 그렇구나. 귀가 무슨 귀인지는 몰랐는데. 지수씨는 암캐였군요."

"······?"

한세아는 이내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비가 오는 게 오히려 잘된 것일 수도 있어요. 비가 온 뒤면 원래 있던 냄새는 싹 씻겨나가니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그 자리를 현우씨 냄새로 채우면, 지수씨가 쉽게 찾아오겠죠. 지수씨는 암캐니까."

···암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이게 계륵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사람이 할 말인가?

한세아는 내 떨떠름한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근데 지수씨가 왜 현우씨 냄새를 잘 알고 있나요?"

"꽃가루 때문에 제 옷을 찢어서 얼굴에 둘러준 적이 있거든요."

"아. 꽃가루. 그거 심하긴 했죠.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럼 현우씨 냄새는 확실히 잘 알겠네요. 지수씨는 암캐니까."

"······?"

"왜요. 뭐요."

"아뇨···. 계속 말씀하세요."

"그럼 저희가 준비할 건 현우씨 냄새가 배인 물건이고···. 아! 그리고 총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지수씨는 청각도 꽤 좋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세아가 얼굴을 내게 들이밀었다.

"사실 따로 준비할 것도 없이 지금 현우씨가 두르고 있는 커튼만 챙겨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온종일 두르고 있어서 냄새가 잔뜩 배였을 걸요? 킁킁."

"어어? 하지 마세요. 부끄럽게 왜 이러십니까!"

"이미 같이 자기까지 해 놓고선 뭘 부끄러워해요?"

"자기만 했잖습니까!"

나는 갑작스럽게 킁킁거리는 한세아의 행동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내 뒤는 막힌 벽이라 물러날 공간이 없었다.

"아직 냄새가 좀 부족해 보이네요. 몸도 풀 겸 우리 땀나는 일 좀 해볼까요?"

"······!"

그녀가 히죽 웃으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에잇! 에이잇!"

"으악! 안 돼!"

그 이후로 잔뜩 난 땀이 내가 두르고 있는 커튼에 묻었다.

***

"후우···. 현우씨, 이제 옷도 다 마른 것 같으니 갈아입어도 될 것 같아요."

"······."

"···현우씨?"

"네네. 다행히 옷이 마르긴 했네요."

나는 멍한 얼굴로 서둘러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속으로 곱씹었다.

사실 별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서로 스트레칭하는 걸 도와 줬을 뿐.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이 다 빠지는 느낌에 애써 회복한 체력이 도로 사라진 기분이었다.

한세아가 내가 허물처럼 두르고 있는 커튼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

"옷 다 입으시면 이거 찢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수원역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두고 가면 지수씨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거예요."

"좋은 생각이네요. 잠시만요. 금방 갈아입겠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을 조심스럽게 집어 내 냄새가 잔뜩 배인 커튼을 잘게 찢기 시작했다.

부우욱- 부욱-

찌직- 찌지직-

"손 조심해요."

"넵. 현우씨도요."

자칫 유리에 베이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나와 한세아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커튼을 찢었다.

절대적인 시간은 부족했지만, 발이 묶인 지금 우리에게는 커튼을 하나하나 해체할 상대적인 시간은 충분했으니 말이다. 모순적이게도.

그리고.

밤이 지나 다시 낮이 되었다.

거세게 내리던 비와 세차게 불던 바람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거리에 짙은 물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세아씨."

"넵."

"갑시다. 수원역으로."

비록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제한했지만.

나갈 수 있는 기회는 비가 그친 지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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