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66화 (67/497)

Chapter 66 - 66. 수원역 (6)

찰박- 찰박-! 철벅!

헌혈 카페에서 나온 나와 한세아는 바닥 벽돌이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길 위를 걷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비틀려 위로 솟아오른 벽돌을 발로 누를 때면 안에 고여 있던 물이 우리들의 무게에 의해 사방으로 튀며 물소리를 냈다.

뿌즉- 뿌즈즉-

물기를 잔뜩 머금은 넝쿨 줄기가 밟힐 때마다 체액을 토해냈다.

"후우!"

숨을 쉴 때마다 습기 가득한 공기가 폐를 간지럽혔다. 나는 시야를 막고 있는 물안개를 팔로 휘적여보았다.

팔의 움직임에 따라 송골송골 맺히는 이슬.

손에 들고 있는 도끼날에서도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앗! 현우씨 바닥 조심!"

순간, 옆에 나란히 걷던 한세아가 급하게 내 팔을 잡으며 제동을 걸었다.

"······!"

나는 몸을 바싹 굳히며 시야를 아래로 내렸다.

넝쿨 줄기에 의해 교묘하게 가려진 굴이 보였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새까만 굴이.

하마터면 굴에 빠져 지하로 직행할 뻔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물안개에 의해 얼굴이 촉촉해진 한세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진짜 조심해야 해요."

"네네. 세아씨 덕분에 살았네요."

"안개가 진짜 장난 아니네···. 어떻게 갈수록 점점 심해질 수가 있지?"

옆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한세아의 말에 나는 무언으로 긍정했다.

처음 나왔을 때보다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하늘에 있는 구름이 지상에 내려앉은 것처럼 가시거리가 3m가 채 되지 않았다. 거기에 안개가 품고 있는 습기까지 더해지니 기껏 마른 옷에도 물기가 맺혀 조금씩 축축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있던 헌혈 카페에서 수원역까지 100m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건만.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 먹잇감이 빠지길 기다리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굴들, 지근거리만 겨우 볼 수 있게 만드는 짙은 안개.

그 모든 것들이 얽혀 나와 한세아의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우리가 속으로 불평을 토해내고 있을 바로 그때.

"세아씨!"

이번에는 내가 한세아를 잡아당겨 내 등 뒤로 숨겼다.

[···흐으······흐······]

용케 굴에 빠지지 않은 폐차들 사이로 흐릿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서성이고 있었다.

···나무 인간이었다.

나무 인간은 그저 조용한 숨소리만 내는 채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관절 비틀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어제 내린 비와 지금 자욱하게 내려앉은 물안개 탓이겠지.

나와 한세아는 몸을 바싹 엎드리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움직여 유리가 전부 깨진 폐차 뒤에 몸을 숨겼다.

그와 동시에.

빠각!

"······!"

내 뒤에서 유리 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황급하게 뒤를 돌아보니 한세아가 넝쿨 줄기 밑에 숨겨진 유리를 밟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맺힌 물방울이 식은땀처럼 보일 만큼 핏기가 싹 가신 얼굴을 하는 한세아.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제 뒤로 오세요.'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고, 다가오는 나무 인간을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하기 위해 도끼를 강하게 잡았다.

내 뒤에 있는 한세아도 거미 변종의 유해를 손에 꼬나쥐어 곧 벌어질 상황에 대비했다.

[······끄륵?]

찰박- 찰박-

이내, 조용한 거리에 길게 퍼진 유리 깨지는 소리에 반응한 나무 인간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찰박- 찰박!

우리와 나무 인간의 거리가 차 하나로 좁혀졌을 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도끼를 높게 쳐들었다.

그리고 내가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으려는 순간.

미끌- [······!!]

······풍덩!

나무 인간이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굴에 빠져 사라졌다. 희미하게 퍼지는 물소리만 남기고.

"······?"

나와 한세아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굴에 빠진 거죠?"

"그···런 것 같은데요."

"저흰 더 조심합시다."

"···넵."

헌혈 카페에 머물고 있을 때, 이미 나무 인간들이 굴에 빠지는 모습을 봤었어도 직접 눈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순탄하게 일단락된 상황에 감사하며 우리는 다시 수원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와 한세아는 수원역의 무너진 잔해 앞에 도착했다.

"현우씨, 백화점에 들어가기 전에 무너진 수원역 좀 보고 가는 게 어때요? 한시가 급하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면 더 조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차피 백화점 입구도 바로 옆이고, 오래 안 걸릴 것 같아서요."

"그럽시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궁금하기도 했고."

나는 한세아의 의견에 동의했고, 물안개를 헤치며 수원역으로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생각보다 더 처참하게 무너진 수원역의 모습이 드러났다.

콸콸콸콸콸······

밤새 고인 빗물이 끊임없이 타고 흘러내리고 있는 겹겹히 쌓인 콘크리트 덩어리들, 그사이에 가시처럼 삐죽 튀어나와 있는 쇠 파이프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고무 조각들.

그리고 언뜻언뜻 보이는 간신히 형태만 남은 에스컬레이터.

눈에 보이는 단서들을 조합하니 수원역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 고의로 폭탄이라도 터트린 것 같았다.

수원역이 어떤 곳이던가.

교통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유동 인구를 이곳저곳으로 옮겨 주는 역이었을 텐데, 지금은 그 편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ㅅㅜㅇㅜㅓㄴ>

낱말 퍼즐처럼 흩어진 간판 글자들을 조합해야 간신히 이곳이 수원역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된 모습이었다.

내가 착잡한 마음을 속으로 삼키고 있을 때, 한세아가 내게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현우씨! 잠깐 여기로 와봐요!"

한세아는 신발 끝으로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는 잔해 밑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왜 자꾸 나무 인간들이 여기에 꼬이나 했더니. 이것 때문인가 봐요."

"잔해요?"

"아뇨. 열기가 느껴지면 생기는 이상한 솜뭉치 같은 거요. 현우씨도 아시죠? 소화제 역할을 하는 그거."

"아."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소화제가 사람은 맡을 수 없는 냄새를 풍기나 봐요. 이것이 있었던 장소마다 나무 인간들이 꼬였거든요. 나무 인간들이 이걸 먹기도 했구요. 지금 이렇게 조금만 남은 걸 보니 놈들이 한차례 먹고 남은 찌꺼기인 것 같아요."

-열기를 머금은 가루들은 팽창해서 고치 같은 상태가 돼. 그 고치는 나무 인간들의 먹이가 되고.

나는 지수가 내게 해줬던 이야기와 월드 모텔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새벽에 온몸을 떨게 하는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성냥을 켰었지만 무언가에 의해 불이 강제로 꺼졌던 현상이 있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그때는 어두워서 끝까지 확인은 못했는데, 지금 그것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솜을 뭉쳐 놓은 듯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 그것.

언뜻 보기에는 불에 엄청 취약할 것처럼 보이건만. 이게 불을 잡아먹고 생기는 결과물이라니.

'잠깐만. ···불?'

열기를 잡아먹는 이것이 잔해에 붙어 있다는 것은 역시 수원역은···.

"흐음. 군인들이 여기를 무너트린 건가? 내가 떠난 직후에? 아닌데···. 군인들이 나보다 먼저 떠났는데···. 그럼 누가 군인이 두고 간 폭탄 같은 걸 터트렸나? 그래서 바닥에 균열이 이렇게 많이 생긴 건가? 근데 왜 하필 수원역만?"

옆에서 한세아가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수원역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한세아의 사고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만히 기다렸다.

애초에 나는 몇 개월간의 기억이 없기도 하고, 내가 가진 과거 수원역에 대한 기억은 지금 상황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을 마친 한세아가 고개를 확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세아씨, 뭐 좀 알아냈어요?"

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고 한세아는 해맑게 웃으면서 답했다.

"몰라요!"

"······?"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수원역에 불이 났고, 무너졌다. 그리고 지상과 지하가 서로 이어지는 굴이 뚫렸다. 엄청 많이! 이 정도? 근데 이런 건 현우씨도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저도 수원역에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 오래 있었다고 해도 제가 떠난 후의 상황을 현우씨처럼 유추할 수밖에 없다구요~."

내 실망한 얼굴을 본 한세아는 살짝 당황하며 몸을 움찔 떨었다.

"어어? 실망했어요?"

"···살짝?"

사실 내가 실망할 게 뭐가 있는가.

이내 내가 장난이었다는 듯 표정을 풀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자, 어서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요. 놈들이 몰려들기 전에요. 찌꺼기만 남았어도 미끼 역할은 충분히 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가 출발했던 번화가 쪽 방향에서 나무 인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에엑······그윽]

[쉬이이이익-]

지금은 안개에 가려 서로가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의 위치가 들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나는 백화점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바깥을 바라보았다.

짙은 물안개를 헤치면서 나무 인간들이 잔해에 깔린 정체불명의 소화제(消火劑)를 먹기 위해 무너진 수원역을 향해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끄르르르륵···]

[게에에엑······]

[흐-으으으으···]

그리고 이곳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끊임없이 빠지게 하는,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주변에 풀풀 풍기며,

선뜻 발을 들이민 사냥감을 굴로 떨어트리기 위한 함정인,

···개미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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