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70화 (71/497)

Chapter 70 - 70. AK플라자 (4)

"마네킹?"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옆에서 한세아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플라자 건물의 최상층.

그곳에는 수많은 마네킹들이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층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세워져 있었다.

서로 마주보는 자세, 목말을 태우고 있는 자세, 나란히 앉아있는 자세···.

그동안 올라오면서 마네킹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 다 몰려 있어서 그런 듯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어른 크기의 마네킹과 아이 크기의 마네킹이 하나의 묶음처럼 손이 얽혀 있다는 점일까.

나와 한세아도 마네킹들처럼 손을 꽉 붙들고 한 걸음씩 앞으로 움직였다.

저벅··· 저벅···

조용한 발소리가 적막한 6층에 울린다.

나는 머릿속으로 6층이 뭐 하는 장소인지 떠올렸다.

-6층: 전문식당가/문화아카데미/아트홀/영화관

대략 4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이곳은 사방에 즐비한 마네킹 탓인지는 몰라도 불길한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우리는 벽에 걸린 안내도에 적힌 순서대로 6층을 탐색하기로 했다.

"···세아씨, 아무래도 생존자가 남아 있나 봅니다. 나무인간들이나 넝쿨들이 이런 짓을 할 리는 없으니···."

"만나지 않기를 바래야겠는데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은데, 현우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네. 확실히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아니겠죠. 그러니 좀 더 조심히 움직입시다."

"으으···. 완전 악취미야. 여기 너무 소름 돋아요."

나는 무언으로 긍정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 마네킹으로 이따위 장난질을 해 놓는다는 말인가?

마네킹 중에는 목이 없는 모델도 있어서 꺼림칙한 느낌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처음으로 탐색할 곳은 전문식당가.

건물 외벽을 이루고 있는 통유리쪽 라인을 타고 일렬로 세워진 식당가는 어느새 높게 뜬 태양에 의해 그나마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라인의 선두에 있는 버거킹을 스쳐 지나갈 때, 한세아가 걸음을 멈추며 나를 불렀다.

"현우씨! 저거 먹을 거 아니에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매장 테이블 위에 캔 콜라 하나와 냉동 햄버거 제품이 놓여 있었다. 나와 한세아는 서로를 잠시 보다가 버거킹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빠득- 빠드득

바닥에 깔린 유리 조각을 최대한 피하며 테이블 앞에 도착한 우리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오늘 먹은 것이라고는 약간의 과자뿐이라 허기가 매우 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을 향해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테이블 옆에 의자 앉아 있는 마네킹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 마네킹 앞에 놓인 햄버거와 콜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 마네킹.

"···현우씨. 저 속이 이상해요. 이거 가져가도 되는 걸까요?"

한세아가 불쾌함과 불편함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

나는 속으로 침음을 흘리며 생각했다. '누가 이랬는지는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고.

"세아씨. 그냥 마네킹일 뿐이에요. 햄버거는 완전히 상한 것 같으니까 그냥 두고 콜라만 가져갑시다."

"······그렇죠. 단순 마네킹일 뿐이죠···. 하아."

나는 망설이지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콜라를 챙겨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바로 땄다. 한세아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었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탁-

치익!

미지근하기는 했으나 탄산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콜라.

청량감 가득한 소리를 들은 나는 그것을 한세아에게 내밀었다.

"세아씨, 먼저 마셔요. 이거 마시고 속 풀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넵."

나와 한세아는 콜라를 사이좋게 나눠마시고 다음 장소로 출발했다.

그 뒤로 한세아의 굳은 얼굴이 조금 풀리는 듯했으나···.

다음 식당도, 그다음 식당에도 어김없이 존재하는 마네킹들과 소량의 식량에 우리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만 갔다.

한 장소를 거칠 때마다 나와 한세아의 손에 들린 식량은 많아졌지만, 그와 별개로 마음에는 납덩이가 있는 것처럼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무게는 키즈카페 앞을 지나갈 때 극에 달했다.

이곳 또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내부가 엉망인 것은 같았지만, 그 결이 달랐다.

그동안 질리도록 보았던 유리 조각은 존재하지 않았고, 어린아이들 장난감만이 가득했다. 마치 누군가 이곳만 의도적으로 청소한 것 같았다.

어지럽게 놓여 장난감들은 한 때 여러 어린아이들이 신나게 가지고 놀았을 테지만, 사람의 손때를 타지 않은 지금은 그저 먼지만 살포시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멍하니 장난감들을 보던 한세아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열었다.

"현우씨, 정말 이상한 소리라는 건 알지만···. 저희가-."

"쉿!"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퍽

무언가 내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눈이 휘둥그레진 한세아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나와 같이 전방을 주시했다.

이윽고.

구석 코너에서 점액질이 뚝뚝 떨어지는 팔이 튀어나왔다.

[······쉬익]

철퍽··· 철퍽··· 공기가 새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나타난 나무 인간 변종이 두 팔로 바닥을 밀어내며 기어나오고 있었다.

"힉!"

한세아는 헛숨을 들이키며 몸을 바싹 엎드렸다. 나도 그녀처럼 몸을 엎드리면서 도끼를 강하게 쥐었다.

자세히 보니, 나무 인간 변종은 앞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히에엑···히엑······]

철퍽··· 철퍽···

놈은 힘겹게 숨을 쉬며 그저 앞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 인간 변종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뿜어지는 점액질이 바닥에 덩어리째 떨어진다.

아니,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점액질 덩어리가 아닌 놈의 살점 덩어리였다.

입고 있던 옷들은 진작에 녹아 사라진 지 오래되어 보였고, 완전히 흐물흐물해진 피부나 지방층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꼬리는 아직 붙어 있었다. 비록 신경이 끊어진 듯 축 늘어져 있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지하에 있던 나무 인간 변종과 동일한 개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는 6층인데,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왔는가?

저것의 몸에서 뿜어지는 점액질을 이용해 벽을 타고 온 것인가?

몸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도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머리를 흔들어 상념에서 벗어났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떠오른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저것을 처리하는 것이었으니까.

"세아씨. 기회입니다. 이번에도 유해 막대기를 한 번 더 써봅시다. 1층에 있던 나무 인간을 한 방에 죽인 게 맞는지 확실히 해야죠."

한세아가 내 말에 고개를 내게 돌려 나를 보았고, 이내 굳게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가방 좀 맡아주세요. 아니면 현우씨가 하실래요?"

"아뇨. 앞으로 그 막대기는 세아씨가 쓰실 거니까 손에 최대한 익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후우···. 좋아요. 갑니다···!"

그녀는 작게 심호흡을 한 후 유해 막대기를 양손으로 쥔 채 천천히 기어 다니는 나무 인간 변종을 향해 다가 갔다.

저벅···

저벅···

[헤엑···쉬에엑······]

철퍽··· 철퍽···

한세아가 나무 인간 변종의 배후에서 자리를 잡았고, 놈은 그때까지도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끊임없이 앞으로 가고 있을 뿐.

"이얍!"

그때, 한세아가 작게 기합을 내지르고는 막대기를 나무 인간 변종의 등에 꽂아 넣었다.

푸욱!

[······!]

놈은 발작하듯 몸을 덜덜 떨더니 이내 몸을 축 늘어트려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가 옳은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볼 수 있었다.

한세아가 나무 인간 변종의 반투명해진 몸에 막대기를 찌르자, 찔린 부위에서부터 검은 무언가가 퍼지더니 놈의 온몸을 잠식하는 것을.

꿀렁! 꿀렁!

"어?"

나무 인간 변종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놈의 몸이 격하게 울룩불룩해지자, 불현듯 느껴지는 불길한 직감에 나는 한세아를 덮치듯 몸을 던져 밀었다.

"세아씨! 위험!"

"꺅!"

그와 동시에.

퍼엉-!

후두둑···

안에 들어 있던 가스가 터지듯 나무 인간 변종의 몸이 터지며 산산조각이 났고, 뭉개진 살점이 사방으로 튀어 이곳저곳에 착 달라붙었다.

"우욱!"

그리고 역겨운 하수구 냄새까지 퍼지자, 나와 한세아는 헛구역질을 하며 급하게 바닥을 굴러 거리를 좀 더 벌렸다.

"갑자기 왜 터진 거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내게 묻는 한세아였지만, 나도 답을 알지는 못했다.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글쎄요. 유해가 저것의 몸을 터트렸거나 안에 가스 같은 게 차 있었나 봅니다. 괜찮으십니까, 세아씨?"

"네에. 현우씨 덕분에요."

"하아, 정말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네요. 애초에 해서도 안 되는 거지만."

한세아는 붉어진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이제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요···?"

그녀가 소심한 말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제야 아직도 그녀를 품에 안고 바닥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네. 많이 무거웠습니까?"

"아뇨. 나쁘지 않았어요."

"······?"

나와 한세아는 바닥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었다. 한순간에 확 퍼진 하수구 냄새가 끈적지게 주위에 남아 우리의 코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한 줌의 살점 덩어리로 변해 버린 나무 인간 변종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지금 습도가 꽤 높긴 하지만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고치에서 나와 여기까지 왔을까?

혹 우리가 피운 소란 때문에 막 주머니에서 벗어난 건가 싶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무 인간 변종을 자극할 만큼 큰 소음도 일어나지 않았거니와 애초에 놈은 몸이 멀쩡한 상태도 아니었었다.

그렇다면.

막 주머니에 들어 있다고 전부 변종으로 변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전부가 아닌 일부만···?'

문득 도롱뇽들은 유생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알들을 낳는다는 것이 떠올랐다.

비록 막 주머니와 알들은 경우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동일하지 않은가.

나무 인간들이 특정한 환경과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변종화를 시작한다는 것.

그러나 모든 나무 인간들이 변종화에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것.

개체 차이가 존재하는걸 보아하니 특정한 조건은 한 두 가지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조건들이 얽혀 있겠지만 알 수는 없었다.

내가 형체도 남지 않은 나무 인간 변종을 관찰하고 있을 때, 한세아가 나를 불러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현우씨, 이거 봐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나무 인간 변종이 기어 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얗게 말라붙은 점액질이 놈이 움직인 경로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

그리고 그 흔적은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바로 우리가 그동안 일부러 외면해 왔던 엘리베이터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