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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81화 (82/497)

Chapter 81 - 81. 따라쟁이 (1)

'딸?'

나는 아까부터 김태진이 말하는 딸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였지만,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이제는 저 남자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던 상관이 없어졌다.

완전히 미쳐 버린 김태진은 우리를 얌전히 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고, 그런 그에게서 우리가 벗어나기 위해서는 끝장을 봐야만 했으니까.

···그래.

어떻게든 끝을 맺어야 했다.

쿵!

"짐승들은 저 밑에 떨어져서 다 죽어야만 한다고!"

김태진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며 어눌하지만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달려들었다.

"지수야! 세아씨! 피해!"

나는 김태진이 우리 일행을 노리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에 그의 진로 상에 있는 지수와 한세아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김태진이 노린 것은 그녀들이 아닌 바닥에 고정된 듯한 웅크린 자세를 하고 있는 생존자들이었다.

덥석!

"어?! 뭐야. 내가 왜-."

여태까지 멍을 때리고 있던 생존자들은 김태진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목덜미가 잡히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그러나 별 의미는 없었다.

휙!

······풍덩!

미처 말을 다 끝 맺지도 못한 채 중년 여성은 김태진에 의해 구멍으로 순식간에 던져졌고, 물소리만 간신히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꺄아악!! 이거 놔아아!"

무차별적으로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집어던져 죽여 버리는 김태진의 행태에 생존자들은 혼비백산하며 풋살장 이곳저곳으로 도망다녔다.

하지만 철망으로 된 우리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멀리 도망가지도 못한 생존자들은 김태진의 손에 속절없이 붙잡혀 구멍으로 던져졌다.

휙!

······풍덩!

휙!

······풍덩!

휙!

······풍덩! 풍덩!

채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구멍으로 던져져 추락한 사람만 벌써 다섯.

이제 남은 것은 여덟.

유일한 출입구가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본 생존자들은 그곳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김태진에게 먼저 노려졌고, 오히려 남들보다 빨리 죽는 결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던가.

혼란 속에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총을 주워든 중년 남성이 사정없이 떨리는 손으로 김태진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철컥!

"왜 이러는 건데! 하지 마! 오늘치 제물은 다 바쳐졌잖아! 씨발!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는데. 갑자기 이렇게 다 죽여 버리는 게 어딨어, 개새끼야! 약속이 다르잖아아악! 인간답게 말 잘 들으면 살려 준다고 했잖아!"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치는 중년의 남성.

잠시 대치 상황이 이어지나 싶었지만, 김태진은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차며 총을 들고 있는 중년 남성에게 돌진했다.

쿵- 쿵- 쿵-!

"세아씨! 지수야! 엎드려!!"

나는 총구가 우리 일행을 향해 탄환을 쏘아낼 것 같은 불길한 직감이 들었다. 머리를 강하게 울리는 경종에 서둘러 그녀들을 향해 외쳤다.

그와 동시에.

"커헉! 놔아악···! 꺼윽!"

김태진의 커다란 손에 목을 잡혀 들어 올려진 중년남성이 사방팔방으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타아아아앙!

타앙! 탕! 타아앙!

총구에서 쏘아진 몇 발의 탄환.

파바박-!

쏘아진 탄환의 일부가 인정사정 없이 인조 잔디 바닥을 파헤치며 박힌다.

꾸드드드득!

틱-틱-틱-!

그러나 열기를 감지한 소화제가 포자 덩어리를 만들어 순식간에 총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총구에서 총알은 더 이상 발사가 되지 않게 되었다.

조각의 소유자가 총을 발사한 것이 아니기에 총이 포자에 잡아 먹힌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총구가 빨리 막혀서 다행이었지.

다만 문제는.

···바닥에 박히지 않은 탄환이었다.

"언니! 안 돼!"

안전을 위해 뒤에서 숨어 있던 예린이 총구가 자신들을 향한 순간부터 찢어지는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중년 남성이 김태진을 물러서게 하려고 쏜 탄환들. 그것들 중 일부가 지수를 향해 쏘아지는 낌새가 느껴진 까닭이었다.

"······!"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매우 느리게 흘러갔다.

탄환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탄환.

그 무정한 목적지의 끝에는 지수가 있다.

방아쇠가 당겨져 격발음이 들렸을 때부터 그녀는 희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지수가 움직이는 것보다 탄환의 전진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그녀가 총알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요원해 보였다.

'제발······!'

나는 매우 강하게, 간절하게 바랐다.

그녀가 총알에 맞지 않기를.

지수를 향해 쏘아진 총알이 제발 빗겨나가기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원역에 왔고, 이제서야 겨우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제발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

그리고.

파직-

어디선가 스파크 튀는 소리가 들리더니.

"큭?!"

···기적이 이루어졌다.

이곳에 도착한 후부터 숨을 죽이고 있던 조각이 간절한 소망을 들어 주기 위해 활성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앗?!"

한세아는 매고 있던 목걸이에서 강렬한 푸른빛이 폭사되기 시작하니 순간 당혹성을 내뱉었다.

조각은 그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계까지 응축되어 있던 푸른 입자를 사방으로 힘차게 뿜어냈다.

파앙!

푸른 입자는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주변에 흩날렸다.

파아아아앗-!

푸른 입자는 희미한 푸른 장막을 만들어내었다.

빛무리로 보일 만큼 얇지만 넓게 퍼진 푸른빛의 장막은 숨통을 끊기 위해 쏘아진 탄환의 궤적을 비틀어 튕겨 내었다.

팅!

피이이잉-

갑작스럽게 생긴 막에 부딪힌 탄환은 도탄되었고, 그것은 역으로 김태진을 노렸다.

푸슉!

"크흑!"

김태진의 몸 깊숙이 박힌 탄환.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지만 손에 들고 있던 중년남성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구멍 안으로 던지는 데 성공했다.

휙!

······풍덩!

사람이 빠진 물소리까지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움직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니, 내지 못했다는 것이 옳은 말이었다.

구멍에 빠져 추락하고 있던 중년 남성도,

무의식적으로 몸에 입력된 신호에 따라 생존자를 심연으로 처박은 김태진도,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며 지수를 바라보던 나도, 순간적으로 지수를 감싸던 한세아도,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푸른 입자가 만들어낸 황홀경을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사람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면 감탄이 아닌 오히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바싹 굳어 버린다고 하던가.

지금 우리가 그 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가 보았던 황홀한 광경은 환상이었다는 듯 푸른 입자는 모습을 드러낸 검은 입자에게 순식간에 모두 잡아먹혀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이어지던 침묵은.

"우웨에엑!"

김태진이 검은 피를 쏟아내듯 토하는 소리에 깨졌다.

철퍽!

후두둑- 후두둑- 후둑-

원래부터 피가 검은색이었을까.

아니면.

유해의 독이 몸에 퍼져 피가 검게 물든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다시피 기억에 남은 푸른 입자가 제 역할을 마치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니, 제 역할을 넘어선 힘을 보여주고 갔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케으윽! 우웨엑!"

김태진이 검은 피를 토해낼수록 그의 검게 물든 눈이 원래의 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비록 매우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그는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는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는 무언가를 찾는 듯 해 보였다.

대량의 피가 순식간에 빠져나가자 김태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간다.

그러나 김태진의 몸 상태가 악화된 것과 다르게 그는 어눌함에서 벗어난 좀 더 선명한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주먹을 쥐었다 풀어 보기도 하면서.

"어디···. 어디 있지?"

나는 김태진이 혼란에 빠진 지금 이 순간이 혼란이 가득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지수야, 예린아! 세아씨! 지금 도망칩시다. 저놈이 다시 머리가 돌아버리기 전에요."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지수를 일으켜 세우며 예린, 한세아에게 말했다. 그녀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움직여 출구로 향했다.

상황 파악을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몰아치는 사건의 연속에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심연, 어머니, 검은 피, 조각, 푸른 장막.

떠오르는 의문은 차다 못해 흘러 넘쳤지만 호기심을 해결할 시간 따위는 전혀 없었다.

지수, 예린, 한세아를 차례대로 바라보니 그녀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했다. 우리는 묵묵히 풋살장에서 벗어나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바로 그때.

"···목소리? 마지막 먹잇감? 제물이 모두 충족되었다니···. 그게 무슨 말- 아으윽! 머리가···! 그마안! 그만 웃어! 그만!! 시끄러워!!!"

김태진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심상치 않은 기색에 또 한바탕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하는 김태진의 모습.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풋살장의 유일한 문으로 이동했다. 아니,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김태진은 우리가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머리만 감싸 쥐고 무언가를 중얼거릴 뿐.

"시끄러워시끄러워시끄러워시끄러워시끄러워시끄러워시끄러워···."

본능이 자꾸만 여기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소리친다.

본능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이미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종은 더 격하게 울리고 있었다.

짙은 불길함을 느끼고 있는 내가 걸음을 좀 더 빨리 옮기려는 그 순간.

쿠우우우웅-!

건물 전체가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꽈당!

"꺅!"

"언니!"

"세아씨!"

한순간에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게 할 정도로 건물을 뒤흔든 강한 진동.

우리는 서로 부축하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어졌다.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지만, 귓가를 자극하는 어떤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우리 몸을 바싹 굳게 만들었다.

마치 거미 변종의 울음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아아아아아···]

남자, 여자, 노인, 청년, ···어린 아이.

성별과 연령을 정확히 알 수 없게 마구잡이로,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목소리가 진득하게 우리들의 귓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래.

저 아래.

깊고 깊은.

심연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잡아 먹은.

바로 그 심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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